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111화 (112/270)

111화

당강용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하나.

‘과연 공자님께서 전장의 전표를 사용하지 말고 일부러 금화를 들고 가라는 것이 잘 먹혔구나. 전표보다는 실물의 돈이 더욱 충격도 크고 효과가 좋을 것이라더니 딱 맞았다. 또한 기다리라고 했던 물건이 바로 검이었을 줄이야. 심지어 비단을 종남의 상징인 청색의 비단으로 덮을 생각까지 하다니, 겪을수록 무서운 사람이구나.’

당강용은 기뻐하는 종남파의 사람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이 정도까지 좋아하는 것을 보니 자신의 마음에도 버거웠던 짐 하나가 풀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당강용은 내친김에 또 하나의 선물까지 풀기로 마음먹었다.

“한 가지 제가 잊었습니다만 우차와 우차를 끌고 온 소들도 모두 선물입니다.”

“허허……. 이것 참, 당 문주께서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으십니다.”

청강은 처음 당강용을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로 종남의 본문을 향했다.

당강용이 종남에 준 것은 단순한 선물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죽은 청진이 보낸 선물이라는 느낌도 있지만, 이만큼의 물량과 돈이 있으면 잃어버린 종남의 힘을 다시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잘 아는 당강용은 종남파를 찾은 원래의 목적을 꺼내 들었다.

“장문인, 사실 지금까지의 것으로 사죄가 될 것으로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종남에 제의를 할 것이 있습니다.”

“제의요? 말씀해 보시지요.”

“사실 저희 사천당문은 과거의 죗값을 갚을 생각으로 구호 활동을 해 볼까 합니다.”

“구호 활동이요?”

“전국에 있는 빈민가를 돌며 치료를 해 줄 생각입니다.”

“오호, 그것 좋은 생각입니다.”

천일영이 한 달하고 이십오 일 전에 준 종이.

그곳에는 전국에서 망해 가는 의원 목록이 적혀 있었다.

실력이 조금 떨어져 망하게 된 자부터 자리를 잘못 잡아 거덜이 난 사람, 혹은 무인을 치료했는데 돈은 못 받고 오히려 얻어맞아 거동이 불편해진 자까지 오십 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당강용은 제법 큰 돈을 들여 그들을 모두 고용하였다.

“저희 사천당문은 독을 다루기도 하지만 약재에도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학 쪽에도 상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요. 허나 아무리 그래도 의원과 같지는 못한 법. 그래서 의원 오십을 고용하고, 저희 사천당문이 사 놓은 약재와 의학 지식이 있는 분가 사람들을 같이 보내기로 했습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황실에서도 못 하는 빈민 구제가 아닙니까.”

당강용은 관심을 보이는 청강에게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의학 지식이 있는 분가 사람들은 무공을 잘 못 합니다. 헌데 빈민가에는 거친 사람들도 많은 법이지요. 물론 아무리 무공을 못 한다 해도 비침을 날리는 정도는 하기에 걱정까지는 안 합니다. 허나 본가의 무공이 사람을 즉살시키거나 혹은 마비를 시키는 것이라서요.”

“그것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마비라도 사람이 땅바닥에 패대기치듯 쓰러지니 빈민가의 사람들은 분명 죽었다고 생각하고 무서워할 것입니다. 그러니 치료를 받으러 오겠습니까. 그들의 실력으로는 적당히 제압하여 돌려보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허허……. 그렇다면 당 문주께서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제가 두 번째로 종남을 찾아온 이유. 그것은 바로 의원과 사천당문의 사람들을 종남에서 호위해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에 대한 의뢰비는 따로 드릴 것입니다.”

그때 청강과 당강용의 뒤를 쫓고 있던 청운이 입을 열었다.

“당 문주의 생각은 잘 알겠으나 믿을 수 있는 일입니까? 전과 같이 종남의 무인들을 유인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부터 듭니다. 제가 나서도 되는 일이겠지요? 제가 일일이 감시해도 종남에 일을 맡기실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당강용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청운의 손을 잡았다.

청운은 갑자기 잡힌 손에 움찔 놀라면서 한 걸음을 뒤로 빼내었다.

“청운 님 같은 분이 도와주시면 든든할 것입니다. 무려 초절정 고수가 아닙니까. 부탁드립니다.”

“허헛, 그것참.”

청강은 느닷없이 청운의 손을 잡고 한 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 당강용의 모습에 잠시 고민을 했다.

분명 저 모습은 진심일 터.

꿍꿍이가 전혀 보이지 않는 즉각적인 행동이다.

“당 문주의 생각은 잘 알겠소이다. 허나 무림맹에서 사천당문과 관계를 십 년 동안 끊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무림맹에 소속된 모든 문파가 사천당문과 연관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헌데 저희가 의뢰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 제가 그 생각까지는 못 했습니다. 빈민을 구한다는 생각에 그만 정신이 없어서. 사실 저는 이것도 사죄의 대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은 이번 일은 종남과 사천당문이 좋은 일을 같이한다고 알릴 생각이었으니 말입니다.”

“종남과 사천당문이 좋은 일을 같이한다고 알릴 생각이었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것이 사죄라니요?”

청강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무인을 파견하는 일이 어째서 사죄로 연결되는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러나.

“죄송한 말씀이지만 지금의 종남은 그 위세가 많이 떨어졌지요. 해서 이번에 빈민을 구제하는 일에 종남이 나섰다고 하면 그 이름이 천하에 다시 한번 알려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세상의 무림 문파들이 자신들의 안위만 걱정할 때 종남이 나서서 빈민 구제를 한다고 하면 그보다 이름이 알려질 일이 있겠습니까. 허나 무림맹의 일로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잠깐.”

순간 청강의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분명 당강용의 말이 맞았다.

빈민 구제에 나서면 그 이름이 드높여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것도 전국에서 행해지는 일이다.

그것은 적게는 십 년, 길게는 수십 년에 걸쳐 쌓아야 할 명성을 일순간에 가져온다는 말이었다.

‘종남의 이름이 다시 알려지면 화산파로 몰려가던 제자들과 의뢰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거기다가 위상이 높아지면 무림맹에서의 발언권 또한 늘어나는 법. 화산파와의 오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순간 청강의 입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열렸다.

“하겠소.”

“하지만 무림맹과의 관계가 걱정되시는 것 아니셨습니까?”

“과거 무림맹에서는 귀주성 전투의 보상조차 해 주지 않았습니다. 또한 무림맹은 과거 사천당문과 함께 종남을 멸문시키려 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습니다. 그러니 망설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굴하지 않고 좋은 일에 동참하겠소이다.”

당강용의 입술에 작은 웃음이 맺혔다.

결코 놓칠 수 없는 기회를 잡아챈 청강의 모습이 예상한 그대로였기에. 당강용은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몇 장의 종이를 꺼내었다.

“마지막 선물입니다. 이것을 받으시지요.”

“이것이 무엇입니까?”

청강은 의아한 표정으로 금줄에 묶인 종이를 펼쳤다.

그 순간, 청강의 부드러웠던 눈매가 경련이 일어나듯 심하게 떨린다.

“이…… 이것은!”

“사천당문의 전 문주 당용택이 무림맹 맹주 남궁천과 주고받은 서신입니다. 그리고 그 뒤의 종이는 사천당문이 종남을 치는 대가로 받은 전장의 전표 기록입니다. 또한 종남과는 관계없지만, 해남도에서 벌어진 일에 상당한 양의 돈을 남궁천이 보낸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사천당문이 그동안 벌인 일은!”

“무림맹의 사주였습니다. 저도 당용택 문주가 죽고 나서 그의 방을 살펴보고야 알게 된 것입니다. 허나 장문인, 이것을 지금 꺼내서는 안 됩니다. 나중에 종남에 위기가 닥쳤을 때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종남을 노렸던 사천당문에게 고맙다는 말은 조금 이상하지만 정말로 감사하오. 이것으로 무림맹이 다시 종남파를 칠 일은 없을 것입니다. 무림맹이 또다시 종남을 노린다면 이것으로 남궁천을 끌어내릴 수 있소.”

선명하게 무림맹 맹주의 인장이 찍혀 있는 편지를 곱게 접어 품에 집어넣는 청강의 눈에 물기가 맺혔다.

십이 년 전 귀주성 전투에서 생긴 일의 모든 원인을 알게 되어, 이제라도 청진과 그때 죽은 무인들의 한이 풀릴 것만 같았으니까.

비록 적이었던 사천당문이 준 것이지만 과거를 잊을 만큼이나 큰 선물.

청강의 손이 당강용에게로 뻗어 나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종남은 사천당문과 함께하겠소.”

“감사하오.”

당강용과 청강은 서로의 손을 굳게 맞잡았다.

* * *

오 일 뒤 하남성(河南省) 무림맹.

하루가 다르게 늙어 가는 듯한 느낌의 남궁천은 탁자 위에 놓인 차를 보고도 찻잔을 들어 올리지 않았다.

설의룡이 전장의 전표와 비침 더미를 던져 놓고 간 지 제법 오래.

하지만 지금도 골치 아픈 일은 계속되고 있었다.

‘출처를 믿을 수 없는 전표라고 했거늘, 정말로 만금전장까지 찾아가서 전표의 대조까지 해 볼 줄이야. 이번 사건을 마무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결국 전표가 진짜인 것으로 판단이 나고 남궁천은 궁지에 몰렸으나, 무림맹에서 재정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 하나를 지목하고, 그가 사천당문과 짜고 일을 도모한 것이라 발표한 이후 즉시 목을 쳐 우격다짐으로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너무도 뻔히 보이는 수작에 무림맹 맹주 남궁천에 대한 불신은 날이 갈수록 커져 가고, 남궁천은 찾아오는 사람마다 설득하여 돌려보내는 나날이 계속되었으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설의룡에게 휘둘린 이후 벌써 며칠이 지났는가. 그러나 조금 진정이 됐으니 이제는 이 일을 누가 벌인 것인지 알아볼 수 있을 터. 사천당문이 분명 전표를 설의룡에게 넘긴 것이겠지. 그렇다면 더 이상의 증거가 나오기 전에 놈들부터 쳐야겠구나.’

남궁천의 손가락이 탁자를 툭툭 쳤다.

사천당문을 아예 무림맹에서 내쫓고 자연스럽게 몇 가지 분란거리만 던져 주면 알아서 멸문으로 들어갈 것이다.

지금의 사천당문은 힘이 빠져 있을 테니. 하지만 그 전에 당강용의 입부터 막을 필요가 있었다.

‘내키지는 않지만, 하오문의 힘을 빌려 볼까. 일단 사천당문에 얼마만큼의 돈이 있는지부터 파악해야겠군. 해남파에 들어간 돈이 너무 많다. 메우기 위해서는 사천당문의 재산을 빼앗은 다음 당강용의 목부터 치는 것이 좋겠지. 그리고.’

탁자를 두들기는 남궁천의 손가락이 점점 빨라졌다.

‘당추필과 남궁서우를 죽인 놈. 그놈을 찾아야 한다. 그놈은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이지? 무엇을 목적으로 그놈이 해남파의 일에 끼어들고 남궁서우를 죽인 것이냐. 앞으로 종남을 멸문시켜야 하는데 또 그놈이 끼어든다면……. 설마 그놈, 종남에 있는 그것을 눈치챈 것은 아니겠지?’

순간, 탁자를 두들기던 남궁천의 손가락이 멈췄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

종남에 있는 것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자신의 목 정도로는 끝나지 않는다.

남궁천은 큰 목소리로 방문 앞을 지키는 무인에게 명령을 내렸다.

“밖에 누구 있느냐. 지금 가서 무림맹 총관을 모시고 오거라.”

“알겠습니다.”

남궁천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한숨을 쉬었다.

‘이참에 제갈현도 없애야겠다. 정확히 사정을 파악한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쯤 내 뒤를 캐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힘든 상황인데 제갈현이 뭔가 증거라도 찾아내는 날에는 되돌릴 수 없게 된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필시 해야 할 일. 편지 한 장 딸랑 보내고 자취를 감추다니, 영악한 놈. 이렇게 될 줄 이미 알고 있었겠지.’

그때 무림맹의 핵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총관 사마정이 문을 두드렸다.

“맹주님, 들어가겠습니다.”

“들어오거라.”

남궁천은 자신의 앞에 조용히 앉는 사마정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제갈현에게 보여 주는 맹주의 웃음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이 터져 나오는 야비한 웃음.

사마정은 남궁천의 웃음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나이가 칠순을 바라보는 그는 언제나 남궁천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시키실 일이 무엇인지요.”

“아무도 모르게 하오문에 다녀오거라.”

“그렇다면 시키실 일은 사천당문의 조사, 그리고 해남도의 일을 망친 자의 정체, 제갈현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일이겠군요.”

“그렇다. 금화 이백 냥 정도면 아마 하오문에서 일을 맡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허나 맹주님.”

“왜 그러느냐.”

“맹주님이 방금 지으신 웃음은 너무 이른 웃음이었습니다.”

“뭐라고?”

“사천당문은 이미 움직였습니다.”

순간 남궁천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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