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주변에서 작은 웅성거림이 들렸다.
살수가 저지른 소란에 객잔에서 깨어 있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걱정하는 소리다.
천일영은 그 소리에 더욱 핏발이 올라섰다.
‘만든 지 두 달밖에 안 된 객잔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도 화가 나지만, 한 번에 제갈현을 죽이지 못하는 것도 한심하구나. 이러고도 살수라니. 이대로 두면 객잔 전체에 영향이 갈 것이다.’
천일영의 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것으로 객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겁을 먹고 밖으로 쉽사리 나오지 못할 터다.
천일영은 살기에 몸이 굳어 버린 살수에게 웃음을 지었다.
“형편없군. 객잔을 부수고, 손님들을 겁에 질리게 한 죄로 한 수 가르쳐 주마.”
“이 겁대가리를 상실한 미친놈이 개소리를 지껄이는구나.”
살수들은 천일영의 살기를 경계하면서도 제갈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일까.
보이지도 않는 한순간, 천일영의 손가락 하나가 살수의 목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피이잇. 뚜두둑. 촤아악!
천일영의 손가락은 살수의 목에 박힌 다음, 목의 근육과 핏줄, 그리고 뼈까지 모두 엮어 뽑아낸다.
“그 첫 번째. 살수는 사람을 죽일 때 소리를 내면 안 된다.”
목에 구멍이 뚫린 채 무너지는 살수의 신형이 바닥에 쓰러지기도 전에 천일영의 몸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천일영의 발이 허공을 가른다.
휘이잉!
단 한 번 허공을 갈랐을 뿐인 발.
그런데.
뿌드드득. 뿌득.
살수 둘의 목뼈가 으스러져 동시에 신형이 땅으로 무너져 내렸다.
천일영은 그들의 신형이 처박혀 소리를 내기 직전에 받아 들었다.
“그 두 번째. 살수는 죽는 사람조차 소리를 내게 하면 안 된다.”
천일영은 목뼈가 바스러진 살수 둘을 제갈현이 있던 객실의 창으로 집어 던졌다.
그러자 밖에서 망을 보던 다섯의 살수가 시신이 된 동료를 보고, 뭔가 일이 잘못된 것을 깨닫고는 즉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 천일영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다시 울렸다.
“그 세 번째. 살수는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적을 한곳으로 모은다.”
휘이이잉. 파바바바방!
천일영의 장권이 잔상조차 남기지 않고 다섯의 살수에게 일시에 박혔다.
순간, 살수 다섯은 그 자리에서 심장이 터져 나가며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몸 안의 심장만 박살 내는 신위.
천일영은 다섯의 신형이 쓰러지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제갈현의 방에 있던 종이를 집어 들고 그것을 복도에 있는 살수에게 날렸다.
휘이이잉! 촤아아아악.
순간 내공을 가득 실은 종이는 두 명의 살수의 목을 자르고, 이내 기운이 사라지며 바닥으로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그 네 번째. 살수는 딱히 무기를 가리지 말아야 한다. 특히 검과 같이 소리가 나는 것은 오히려 피해야 하는 것.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봤을 때 너희는 삼류다.”
눈 두 번 깜박일 사이에 처리한 천일영은 죽어 있는 살수들을 내려다보았다.
너무도 한심한 실력에 치솟은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
그때 평수찬이 변고가 생긴 것을 알아차리고 객잔의 복도로 달려왔다.
“공자님! 무슨 일입니까.”
“잘못 받은 손님 덕에 살수 열이 왔다.”
평수찬은 천일영의 말이 끝나자 아무런 대답도 없이 벽면의 높은 곳에 조금 튀어나온 부분을 눌렀다.
그러자 벽면의 한 귀퉁이가 열려 방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장 목수가 만든 숨겨진 방입니다. 일의 경황을 따지는 것은 나중. 일단 이곳으로 시신을 옮기겠습니다.”
“손님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부탁하마.”
평수찬은 목에 구멍이 뚫린 살수의 몸부터 들어 올렸다.
그때, 살수의 몸에서 작은 병 몇 개나 떨어졌다.
평수찬은 그것을 들어 올리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것은 기름통입니다. 놈들은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불을 지르려 했군요.”
“이상하게도 소란스러운 놈들이다 싶었더니 객잔째 없애려 했군. 이런 잔챙이들을 보내다니 제갈현의 이름값도 별거 아닌가.”
평수찬은 천일영의 말에 시선을 떨구며 웃음을 지었다.
무공을 잘 모르는 자신이 보기에도 평범하지 않은 자들이다.
일류 고수에서 아마 절정 고수도 있었을 터.
그런데 잔챙이라 말하는 공자에게는 그저 할 말이 없을 뿐이었다.
“저 혼자는 무리입니다. 일단 기름통을 수거하고 사람을 불러올 터이니 공자님은 제갈현과의 관계를 정리하시지요.”
“그러지.”
머리 좋은 평수찬은 빠르게 판단했다.
그가 보기에 처음부터 공자가 마음만 먹었다면 제갈현은 다치지도 않았을 일.
천일영은 제갈현이 압력을 느낄 정도로 화가 난 마음을 몸 밖으로 뿜어내며 다가갔다.
“네 녀석 덕에 객잔이 불타고 내 사람들이 다칠 뻔했구나.”
“크으으윽, 미안하오.”
“네 잘못이 무엇인지는 잘 알 것이다. 그러니 당장 나가…….”
끼이익!
그때 밖의 소란을 눈치챈 금채홍이 문을 열고 나왔다.
제법 깊이 잠이 들도록 진기를 밀어 넣었는데도 금채홍은 천일영이 걱정되어 기어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공자님은 괜찮으신 것입니까?”
“어…… 음, 살수가 왔구나. 내가 정리했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다행입니다. 그런데 공자님께서 위험하실 때 한심하게 잠이나 자고 있었으니, 공자님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그때, 금채홍의 눈이 피를 흘리며 거친 숨을 들이켜는 제갈현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평수찬이 불이 붙을까 하여 일단 살수들의 몸에서 기름통을 꺼내는 것도 보였다.
“역시 공자님께서 제갈현을 구하셨네요. 그리고 저도 지켜 주셨고요.”
“응? 그…… 그렇지?”
천일영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금채홍의 눈길을 슬그머니 피했다.
어쩐지 이상하게도 금채홍에게만은 나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저 순진하고 믿음으로 가득한 눈을 볼 때면 더욱 그렇다.
“하아…….”
천일영은 결국 제갈현에게 나가라는 말을 마저 하지 못했다.
피를 흘리고 죽어 가는 사람에게 나가라고 하면 분명 금채홍은 ‘공자님의 뜻이 그러하니 알겠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제갈현이 피를 흘리면서도 몸을 일으켜 천일영에게 고개를 숙였다.
“크흑, 감사하오. 두 번이나 목숨을 빚졌구려. 이 은혜는 꼭 갚겠소이다. 이만큼이나 은혜를 입었으니 부디 이름이라도 가르쳐 주시겠소?”
“네놈한테만은 죽을 때까지 안 가르쳐 줄 거다.”
천일영은 심통 맞은 표정으로 제갈현에게 툭 내뱉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명줄 질긴 이놈하고 또다시 악연이 쌓일 것 같았으니까.
그때, 제갈현의 신형이 무너지듯 바닥으로 쓰러졌다.
* * *
지금의 제갈현은 여러모로 불편한 존재였다.
남궁천이라는 거대한 권력자에게 쫓기는 신세.
또한 죄라도 뒤집어씌우는 날에는 무림 공적이 될 가능성도 컸다.
‘거둘 수도 없고, 집으로 데려가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또한 별유천지 분점이 이미 알려졌으니 무림맹에서도 사람을 계속 보낼 테지. 거기다가 채홍이에게는 살려 주는 것으로 보였으니 나가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러나 수많은 이유 중에서도 가장 천일영이 내켜 하지 않는 것은 다른 이유였다.
‘같이 있으면 내 가족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크다.’
천일영의 원래 계획대로라면, 제갈현은 남궁천 때문에라도 죽어야 했다.
모든 일에 실패한 남궁천이 오갈 데 없는 분노를 풀지 못하는 이때.
딴마음을 품지 못하게 하려면, 하다못해 제갈현이라도 죽여서 만족감을 느껴야 할 터다.
비록 악독하다 할지 몰라도 천일영이 생각할 때 무림맹과 사천당문 관계로 벌어진 일의 가장 좋은 마무리였다.
천일영은 조금씩 아파져 오는 머리를 손으로 눌렀다. 그때.
“으음, 제가 정신을 잃었던가요?”
“내가 누구냐고 묻자마자 쓰러졌지.”
정신을 차린 제갈현이 면목 없는 표정을 지었다.
자칫 수백의 사람들이 불타 죽을 뻔했으니 그로서는 백 번 천 번 고개를 숙여야 할 일이다.
“여러모로 몹쓸 꼴을 보였습니다. 헌데 저를 공격한 살수를 누가 보낸 것인지.”
“연기는 됐다. 이미 눈치채지 않았느냐.”
“그것은 공자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무공도 모르는 비실비실한 사람이라고 하더니.”
제갈현은 웃으며 말을 이어 갔지만 이내 눈에는 씁쓸함이 차올랐다.
분명 살수는 무림맹에서 보낸 자들.
썩은 내가 나는 무림맹으로부터 피하자마자 이 꼴이다.
제갈현은 몸을 억지로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떠나겠습니다. 공자님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
“아마 내일쯤이면 산길에서 죽어 있겠군.”
“죽어 있는 저를 발견하시거든 향이나 피워 주시지요.”
“개소리 마라. 향 값이 네놈보다 비싸다.”
천일영은 제갈현의 몸을 밀어 다시 눕혔다.
침상 위로 떨어지는 충격에 제갈현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큭!”
“하나 물어보지. 네놈은 정파가 선이고 마교와 사파가 악이라 생각하느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었다고 하는 편이 옳겠군요.”
“이제야 제대로 눈을 뜨고 세상을 볼 준비가 된 모양이군. 어차피 세상에 악은 없다. 각자 자신이 믿는 것을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뿐.”
“그런가요. 그렇다면 공자님이 믿는 것은 어떤 선입니까.”
“내가 믿는 선? 그런 것은 없구나. 나는 드물게도 진정한 악이니.”
“……!”
천일영은 제갈현의 곁을 떠나 사귀진에게 전서구를 날리기 위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 * *
한 시진 후.
사천당문 무인 이십을 죽이는 임무를 끝내고 별유천지 본점에서 뒹굴뒹굴하던 사귀진과 유향설이 전서구를 받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리고 사귀진과 유향설은 눈을 끔벅이며 천일영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전후 사정을 모두 전해 들었건만 불려 온 이유를 도무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기 천마님, 혹시 저희에게 객잔의 호위라도 시키시려는 것입니까? 말씀만 하신다면 귀문살 전원이 별유천지 분점을 지키겠습니다.”
“귀문살이나 되는 자들이 객잔을 지키는 게 말이 되느냐. 내가 부탁하고 싶은 것은…….”
천일영은 잠시 망설였다.
아니, 차마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었다.
지금 입을 열고 자신이 생각한 것을 내뱉는 순간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혹시 다른 방법이 있지는 않을까 하여 수많은 생각을 거듭해 왔지만, 오직 방법은 하나뿐이었기에 마음을 다잡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몇 번이나 다짐했다.
그럼에도 차마 입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게…… 저기…… 음…….”
“천마님? 도대체 무슨 일이시길래 이러십니까?”
“그…… 저기…….”
“그냥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무림맹으로 쳐들어가서 남궁천의 목을 가져오라고 하셔도 기꺼이 할 것입니다.”
사귀진의 결단 서린 말에 천일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귀문살의 단주가 이 정도의 각오를 보여 줬으면 자신도 각오를 다져야 할 터.
천일영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혈련에서 백유화를 데려오너라.”
“네에? 백유화요?”
순간, 사귀진과 유향설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유향설은 연신 침을 삼키며 천일영의 옷깃을 잡았다.
“천마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백유화는 안 됩니다. 그냥 가서 남궁천의 목을 가져올게요. 그러니 다시 생각해 주실래요?”
“천마님, 혹 오늘 아침을 잘못 드신 것은 아닌지요. 어찌 그런 무서운 생각을 하셨습니까. 아무리 천하의 천마님이라고 해도 백유화만은!”
“차라리 이 유향설, 제가 삭발을 하는 한이 있어도 천마님이 백유화와 만나는 것만큼은 제발 말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얼굴까지 시뻘게져 가며 열변을 토하는 사귀진과 유향설을 보며 곁에 있던 금채홍은 백유화라는 이름을 떠올려 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무림에서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름이다.
금채홍은 공자님이 이렇게 망설일 정도의 사람이 어떠한지 궁금하여 작은 입술을 열었다.
“저기, 죄송합니다만 백유화라는 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채홍아, 그 이름을 입에 담지 마라. 너같이 착하고 순진한 아이가 입에 담을 이름이 아니다.”
유향설은 눈을 뒤집어 가며 금채홍을 껴안고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금채홍은 그럴수록 궁금한 마음을 감추기 힘들었다.
“도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향설 언니가 떨기까지 하는 것입니까.”
유향설은 금채홍의 얼굴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과거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림에서 가장 최악의 무인으로 손꼽히는 사람이다.”
순간 금채홍을 잡고 있던 유향설의 손에 경련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