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다음 날 저녁.
전날 길을 떠났던 사귀진과 유향설은 피곤함이 가득한 얼굴로 기진맥진한 채 별유천지 분점으로 들어섰다.
시급하다고 하여 최대한 빠르게 다녀온 길.
눈 밑에 그림자가 지고 내공이 바닥을 보일 정도다.
“다녀왔습니다.”
“고생했구나. 오늘은 마음껏 먹고 푹 쉬도록 하거라.”
“감사합니다.”
문득 금채홍은 기괴함과 이상함을 동시에 느꼈다.
백유화라는 사람을 데리러 다녀왔는데 사귀진과 유향설만 돌아온 것이었다.
그런데 공자님께서 쉬라고 하다니?
“저기 향설 언니? 그 백유화라는 분은요?”
“하아……. 데리고 왔지.”
“어디요?”
그때, 유향설의 등 뒤에서 한 여인이 고개를 빼꼼히 드러냈다.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얼굴.
여자의 주먹으로도 가려질 만큼이나 작은 머리.
커다란 눈과 오뚝한 콧대는, 마치 선녀가 환생이라도 한 듯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뿐일까.
여자인 유향설의 등 뒤에 숨어 있을 만큼이나 작고 가느다란 몸.
마치 만지면 부러지기라도 할 것만 같았다.
여인은 금채홍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미안해. 내가 낯을 가려서. 처음 보는 사람이랑 말을 잘 못 해.”
“아…… 아니에요. 그럴 수 있지요.”
금채홍은 의아했다.
이렇게 작고 가녀린 데다 낯을 가리는 사람이 역대 무인 중에서 최악의 사람이라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그때였다.
백유화의 시선이 천일영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그 순간.
휘이잉!
백유화의 신형이 쏜살같이 튀어 나가 천일영에게 달려들었다.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다.
백유화는 눈을 뒤집고 입에서 침을 흘리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드디어 천마님이 나를 불러 주셨어!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요!”
“됐다. 다가오지 말아라.”
“하악, 하악. 천마님!”
쏜살같이 달려드는 백유화의 머리를 잡고 더는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천일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몇 년 만에 만났기에 조금은 변했을 거라고 마음속에서 조금이나마 기대를 했다.
그러나 어쩐지 전보다 더욱 상태가 안 좋다.
“천마님. 천마님! 하악. 하악, 꺄하하하하학.”
금채홍은 백유화가 광기 어린 모습으로 천일영에게 달려들자 가슴속에 자그만 불편함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기…… 공자님을 지나치게 좋아하시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좋은 분 같은데요.”
“모르고 있을 때가 행복한 거지.”
“모르고 있을 때요? 정말로 무공을 하시는지 의심까지 갈 정도로 연약해 보이는 저분이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도 못 하겠어요.”
“아직도 눈치를 못 챈 것이냐. 기운을 느낄 줄 아는 채홍이 너도 처음에 백유화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을 정도다. 천마님만큼은 아니지만, 남들이 알기 힘들 정도로 기운을 죽일 수 있는 고수지.”
“아!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저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분이 그 정도의 고수라니 믿기질 않아요.”
순간 천일영에게 머리가 잡힌 백유화의 고개가 금채홍을 향했다.
백유화는 갑자기 신형을 날려 금채홍을 붙잡고 자신의 뺨을 금채홍의 얼굴에 비볐다.
“까악! 이 아이 너무 좋아. 말도 어쩜 이렇게 예쁘게 하니? 게다가 얼굴도 이렇게나 예쁘고. 탐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아이를 곁에 두다니, 천마님도 정말 너무해.”
“아…… 저기 백유화 님?”
백유화는 연신 뺨을 비벼 댔다.
금채홍은 백유화의 행동에 깜짝 놀랐지만 이내 안심하고 같이 뺨을 비비기 시작했다.
백유화의 뺨은 부드럽고 매끈거렸으며 몸에서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좋은 향기가 났다.
느닷없는 행동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 중원 최악이라니.
금채홍은 조금은 가엽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의 가슴으로 파고드는 백유화를 꼭 안았다.
그때, 금채홍과 백유화를 보던 천일영이 왠지 화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채홍아, 아마 모르고 있을 거로 생각하는데 백유화는 살인귀(殺人鬼)다.”
“네에?”
“어머, 들켰네.”
금채홍은 천일영의 말에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급히 몸을 떼려고 했다.
그런데 백유화는 꼼짝도 안 하고 계속 금채홍의 품을 파고들었다. 금채홍은 순간 당황했다.
‘어째서? 이렇게 가녀린 몸인데도 꼼짝도 안 해!’
순식간에 금채홍을 제압한 백유화는 엄청난 내공과 힘으로 점점 더 그녀의 품을 파고든다.
순간 금채홍의 얼굴에 수치심으로 경련이 일어났다.
그때, 백유화는 고개를 들어 금채홍의 경련이 이는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저기 있잖아. 나 이 아이 가져도 돼?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아이를 만났어. 내가 키우고 싶은걸? 매일 밥도 잘 차려 주고 옷도 예쁜 거로 갈아입힐게. 그러니 박제해도 돼?”
“될 리가 있겠느냐, 이 망할 놈아.”
천일영이 강제로 백유화를 떼어 내어 들어 올렸다.
천일영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린 백유화는 고개를 숙이고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쳇, 그냥 농담한 거예요. 천마님이 바람피워서 심술부려 본 것뿐인데. 나한테는 연락도 안 하고, 저렇게 예쁜 아이를 곁에 두니까…….”
“너하고 사귄 적도 없고 바람도 아니다. 네 녀석과 그리될 일은 평생 없을 것이다.”
금채홍은 백유화가 파고들었던 가슴을 손으로 가리며 새빨개진 얼굴로 얼떨떨한 표정을 드러냈다.
수치심도 한몫했지만, 백유화가 한 말이 아직도 귓가에 울리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금채홍은 눈을 끔벅거리기만 할 뿐, 아직도 실감을 못 했다.
살인귀? 박제라니?
“귀진 님, 향설 언니? 혹시 해서 물어보는 건데 두 분이 지치신 이유가?”
“후우, 저놈을 데리고 오는 동안 ‘이것도 자르고 싶어.’, ‘저것도 해체하고 싶어!’라며 난동을 부려서 말리느라 지친 거다.”
“그럼…….”
“저놈이 가장 좋아하고 즐겨하는 취미가 바로 사람을 죽이는 거다.”
“사…… 사람을 죽이는 거요? 꺄아아아악.”
금채홍의 온몸으로 소름이 오소소 돋아 올랐다.
최악이라고 해도 공자님이 부르는 사람이니 ‘괜찮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살인귀라니.
금채홍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때, 백유화가 여전히 천일영의 손에 매달린 채 입을 삐죽거린다.
“아니야. 난 사람을 죽이는 게 취미가 아니라 그저 자르는 게 좋을 뿐이야. 그리고 좋은 사람은 안 죽여.”
“으으으.”
금채홍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사귀진의 입을 열었다.
“게다가 저 아름답고 소녀 같은 외모로 사람을 속이니 더 질이 나쁘지. 저 외모에 속은 사람은 온몸이 마비당하고 정신은 멀쩡한 채 해체당한다. 게다가 그걸 보고 좋아서 웃는 녀석이니 사혈련조차도 이름을 지우다시피 한 것이지.”
“그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까닭이…….”
사귀진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때, 금채홍은 한 가지 더 궁금한 것이 떠올랐다.
어째서 저런 살인귀를 불러들인 것일까.
백유화가 금채홍의 표정을 알아차리고 웃음을 지었다.
“나는 인형사(人形師)야. 아마도 천마님께서 나에게 부탁하실 것이 있는 모양이지.”
“인형사요? 처음 듣는 것입니다?”
그때, 천일영이 거칠게 백유화를 뒤로 집어 던지고 금채홍에게 다가갔다.
“더 들어 봐야 좋을 게 없다. 그만 듣는 것이 어떠하냐.”
“아……. 왠지 모르게 지금 상상이 됐어요.”
금채홍은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방을 나갔다.
메슥거리는 속은 점점 더 심해지고 기어이 금채홍은 토악질을 하기 위해 화장실로 달려갔다.
* * *
집어 던져진 백유화는 애잔한 눈으로 천일영을 바라보았다.
만나지 못한 동안 모습이 변해 있었지만, 그가 천마라는 것쯤 한 번에 알아보았다.
그동안 자신을 불러 주지 않아 밤마다 슬피 울었고, 보고 싶은 마음을 견디느라 하얗게 지새운 밤이 몇 날인지 모른다.
백유화는 천일영의 모습을 보며 애절하게 입을 열었다.
“하악, 하악. 천마님이 집어 던져 주시니 너무 좋아요. 이제야 만났다는 실감이 들어요.”
“어째 전보다 정도가 심해진 것 같구나. 쓸데없는 소리 말고 따라오거라. 네가 봐줬으면 하는 것이 있다.”
천일영은 헉헉거리는 백유화의 목덜미를 잡아 들고 숨겨진 방으로 걸어갔다.
벽과 천장 사이에 있는 돌출된 부위를 누르자 숨겨진 방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내 진득한 피 냄새가 훅 올라오며 백유화의 코를 찔렀다.
백유화는 눈앞의 시신들을 보자 반쯤만 눈을 뜬 채 냉혹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죽은 것들한테는 별로 관심이 없는데요.”
“안다. 허나 이것을 이용해서 사람 하나를 만들어야겠구나. 해 줄 터이냐.”
“천마님의 말씀인데 당연히 해야지요. 그런데 만들어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요?”
천일영은 여전히 백유화의 뒷덜미를 잡은 채 제갈현이 누워 있는 객실의 문을 열었다.
백유화는 대롱대롱 매달린 채 제갈현의 몸과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세 시진이면 됩니다.”
“그럼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일을 잘 해내면 칭찬해 주실 거죠?”
“짧게 한마디 정도라면.”
“하악, 하악. 그럼 바로 시작할게요.”
백유화는 사귀진에게 맡긴 자신의 도구를 들고 뛰쳐나갔다.
사귀진과 유향설은 백유화가 광기 서린 눈으로 시신을 도륙하는 것을 보며 입을 열었다.
“천마님, 저놈을 불러들이시다니,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쉿, 조용. 이미 후회 중이다.”
천일영과 사귀진, 그리고 유향설은 살점이 튀는 사이로 번득이는 칼날로부터 애써 고개를 돌렸다.
* * *
다음 날.
현청 앞에 커다란 거적때기가 깔리고 그 위에는 사람 시신 열한 구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벽에는 커다란 종이에 글이 적혀 있었는데, 그 글귀가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자들을 살해한 자의 정체를 알려 주는 사람에게는 은자 오십 냥을 주겠노라.>
처참한 광경이지만 남녀를 가리지 않은 제법 많은 사람이 시신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은자 한 냥이면 한 가족이 석 달을 먹고산다.
그런데 범인을 잡아 오는 것도 아니고 알려 주기만 하면 은자를 오십 냥이나 주니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젠장, 연락이 끊겼다 했더니 전부 죽은 것인가.’
사람들 사이에 섞여 흑의를 입은 남자 하나가 안광을 뿜어내며 시신들을 살폈다.
분명 처참하게 도륙당한 열 구의 시신은 자신의 수하이고, 또 한 명은 제갈현이다.
돌아오지 않는 수하들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하여 어젯밤 별유천지 객잔 책임자라는 평수찬에게 뒷돈을 주고 누가 묵었는지 조사를 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귀문살로 의심이 가는 자들이 묵었다는 정보를 얻은 것이었다.
당연히 객잔 책임자는 이 일을 신고했고, 현청에서는 조사를 위해 모든 시신을 가져가 버렸다고 하여 안절부절못했었다.
‘제갈현을 죽이는 과정에서 귀문살과 엮이고 모두 죽임을 당한 것이라고 봐도 되겠군. 재수가 없었지만 어쨌든 임무는 완수했다.’
남자는 제갈현의 얼굴을 확인하자 즉시 전서구를 날렸다.
그리고 밤에 현청으로 침입하여 제갈현의 머리를 가지고 나올 계획 또한 세웠다.
소금에 절여 가기만 하면 모든 일은 끝이기에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근처 객잔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
죽은 수하들의 몸에서는 여러 개의 뼈와 피부가 도려져 있었고, 눈은 감겨 있었기에 안구 두 개가 사라졌음을.
* * *
천일영은 백유화와 차를 마시며 입을 열었다.
“분명 놈들은 제갈현의 머리를 가지고 갈 것이다. 그것을 남궁천이 보고 의심하지 않을 만큼 자신이 있느냐.”
“오호호호, 그럼요. 열 개의 몸에서 조금씩 떼어 내어 뇌도 만들었고 안구도 완벽하게 처리했습니다. 두개골도 완벽하지요. 또한 제갈현과 비슷한 피부색을 가진 놈의 껍데기를 사용했고 눈썹과 머리도 모두 실제 체모를 사용했습니다. 그대로 해체해도 만든 것인지 못 알아볼 것입니다.”
“잘했구나. 그리고 하나 더 부탁이 있다.”
“말씀만 하세요, 천마님.”
“제갈현의 얼굴을 바꿔 다오.”
“쉬운 일입니다. 헌데 얼굴은 어찌 바꿀까요?”
“네 마음대로 바꾸거라.”
“정말요? 여자로 만들어도 괜찮습니까?”
“모든 것을 맡기지.”
백유화는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웃음을 지었다.
천일영도 백유화의 실력을 믿었으니 딱히 다른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이 이야기가 제갈현이 누워 있는 자리에서 나눠진 대화라는 것이었다.
제갈현은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저기, 제 의견은 듣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제가 원하는 대로 바꿔 주실 수는 없는지요?”
힘겹게 떨리는 목소리는 낸 제갈현은 애원하는 눈빛으로 천일영과 백유화를 바라보았다.
천일영과 백유화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당연히 안 되지.”
제갈현은 사악한 웃음을 짓는 두 사람의 모습에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