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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22화 (123/270)

122화

금채홍이 잠시 눈을 끔벅이는 찰나의 순간, 햇살이 나뭇가지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사이로 무엇인가가 뻗어 나갔다.

피이이이잉. 촤라라락.

금채홍은 본능적으로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했다.

그곳에는 백유화가 가녀린 팔과 조막만 한 손길을 펼치고 있었다.

그것은 무기가 없어 수공을 펼치며 작은 아이가 발악하는 모습처럼도 보였다.

금채홍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졌다.

“백유화 님! 부디 제발 제 뒤로 오세요. 인형이 없으시잖아요. 놈들은 비록 쓰레기라 할지라도 무기 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초고수입니다.”

“넌 아까부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인형이라니?”

“네? 인형사니까 인형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백유화의 얼굴에 재미있다는 표정이 지어진다.

손끝에서 무엇인가 반짝이는 것이 금채홍의 눈을 스쳐 지나갔다.

주변의 공기를 팽팽하게 달구는 서늘한 감각과 함께 백유화가 입을 열었다.

“인형이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했더니.”

“그렇다면……?”

순간 백유화의 손길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 빠르기가 마치 전광석화.

백유화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무엇인가를 잡으려는 것처럼 손을 뻗어 나갔다.

그리고 손가락 사이로 공기가 터져 나오는 듯한 작은 소리가 울렸다.

휘이잉. 파아아앙.

백유화는 다시 한번 허리를 툭툭 치고는 금채홍을 바라보았다.

“일부러 보여 주려고 천천히 움직였다.”

“네에?”

그때였다.

겁탈을 하러 왔던 초절정 고수의 입에 비릿한 웃음이 걸렸다.

아무리 보아도 키가 작은 여인이 허공에 손짓을 하는 게 이상해 보인다.

진짜 미친년이다.

초절정 고수는 곁에 서 있던 절정 고수에서 눈짓했다.

“미쳐도 보통 미친년이 아니다. 일단 저년부터 내가 가져야겠구나. 너는 그동안 저 뒤에 서 있는 계집 같은 남자 놈의 목을 잘라라.”

“맡겨 주십시오. 저놈의 목을 잘라 겁탈당할 때 눈에 보이도록 여인들의 옆에 두겠습니다.”

“하여간에 네놈이 나보다 더 심하구나.”

“남자 놈들이야 쓸 데가 그런 것뿐이지요. 겁탈당하는 동안 여인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어 주는 역할이면 됩니다.”

절정 고수가 검을 뽑고 앞으로 나섰다.

풍기는 기운으로 보아 분명 황보세가(皇甫世家)의 무인들.

무림맹에 파견 나와 있는 동안 이런 끔찍한 일을 여러 번 저지른 듯 절정 고수는 익숙하게 천일영의 곁으로 신형을 날렸다.

“네놈의 팔을 잘라서 겁탈당하는 것을 말리지도 못하는 모습부터 보여 줘야겠다. 태산십팔반검(泰山十八盤劍)이 펼쳐지는 검에 팔이 잘리는 것을 영광으로 알거라.”

“검? 도대체 검이 어디에 있다는 것이지?”

백유화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절정 고수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순간, 절정 고수는 뭔가 섬뜩한 느낌이 들어 검을 든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절정 고수는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바뀌며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악. 이것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어째서 내 팔이!”

“더러운 검을 들고 있는 팔이라면 진작에 잘라 버렸다.”

백유화의 얼굴에 비웃음이 담긴다.

그리고 그 순간, 팔이 잘린 남자의 신형이 패대기쳐지듯 앞으로 기울었다.

촤아아악!

오른팔이 잘린 것을 겨우 알아차린 그 순간, 절정 고수 다리 두 개가 피를 뿜어내며 잘려 나갔다.

마치 허공에서 혼자 스스로 잘린 것처럼.

철퍼덕.

절정 고수의 몸이 땅바닥을 뒹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무엇엔가에 잘린 느낌조차 없었다.

절정 고수의 머릿속에서 공포와 함께 단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죽는다!’

순간 절정 고수는 본능적으로 왼팔을 사용하여 빠르게 땅을 짚었다.

내공을 끌어 올려 근육을 압박하고 출혈을 막으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황보세가의 무인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만 했기에 몸을 들어 올렸다.

“크아아악, 죽을 것 같으냐!”

그러나 절정 고수는 기묘한 느낌에 눈을 끔벅였다.

분명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몸이 일으켜진 느낌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의 눈은 조금 전과 똑같이 더러운 흙바닥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그 순간 절정 고수는 깨달았다.

‘젠장……. 이미 목까지 잘렸을 줄이야.’

촤아아악.

뒤늦은 깨달음과 함께,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일으켜졌던 자신의 상반신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절정 고수의 의식이 끊어졌다.

“이…… 이것이! 당장 저년을 죽여라.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사용하니 조심하거라!”

“예!”

황보세가 무인 넷이 백유화를 향해 동시에 신형을 날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신형을 날리려고 했다.

그러나 초절정 고수를 포함한 네 명의 눈에 급작스러운 당혹감이 몰려들었다.

“크윽! 어째서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냐.”

“으으윽! 이게 무슨!”

초절정 고수의 미간이 찌그러졌다.

말 그대로 멈췄다.

그것도 기운을 끌어 올려 움직이려 해도 모든 신체는 그대로다.

자신의 몸인데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 서늘한 공포가 온몸을 갉아먹는 듯한 느낌이 되어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크아아악. 네년, 무슨 짓을 한 것이냐.”

“그다지 별다른 것은 하지 않았는데?”

“그게 말이 되느냐!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이 요상한 술법을 멈추거라. 그리하면 목숨만은 살려 주마.”

“오? 나를 살려 준다고? 딱히 네놈들이 나를 걱정해 준 적은 없을 텐데?”

백유화의 서늘함이 심장을 찌를 듯한 압력이 되어 짓누른다.

초절정 고수는 그 순간 몸의 모든 기운을 끌어 올렸다.

무서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을 뛰어넘는 뭔가가 가슴속을 헤집었다.

“흐아아압!”

금채홍은 초절정 고수의 기합에 몸을 움찔거렸다.

기운이 형상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지는 듯하다.

드드득. 드득.

기운을 올린 초절정 고수의 몸이 조금씩 움직였다.

조금이기는 하지만 초절정 고수의 발걸음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하지만 움직임이 더해질수록 그 스스로가 목숨을 갉아먹는다는 듯, 오히려 백유화의 눈은 광기에 젖어 들어갔다.

“네년, 죽이겠다. 죽여 버리고 죽은 다음에도 또 죽이겠다.”

“그러시든지.”

백유화는 아예 초절정 고수로부터 신경도 안 쓴다는 듯이 눈을 돌려 버렸다.

그리고 이 미칠 듯한 즐거움에 동참이라도 해 달라는 듯 금채홍을 바라보았다.

“채홍아, 인형사라는 것은 말이다. 인형을 가지고 다니는 게 아니다.”

“네? 그럼요?”

“살아 있는 사람 그 자체가 인형이 되는 것이다.”

“……!”

그때, 백유화의 손가락이 까딱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금채홍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일류 고수 하나가 검을 들어 자신의 옆에 있던 일류 고수의 목을 날려 버린 것이었다.

그것은 백유화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인형 그 자체였다.

휘이이잉! 촤아아아악.

“끄아아악!”

허공으로 치솟는 피.

백유화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한 번 지은 다음, 다시 약지를 까딱거렸다.

그러자 방금 일류 고수의 목을 날린 남자가 검을 자신의 벌어진 입에 들이대기 시작했다.

남자의 얼굴에 절망이 떠올랐다.

“제…… 제발! 부탁입니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그러니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그래,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말은 믿어 주지. 하지만 그전에 저지른 죄는?”

“……!”

“죽어.”

푸우욱. 촤아아악.

검은 비명을 지르는 남자의 입속으로 서서히 박혀 들어갔다.

버티고 견뎌 보려는 남자의 발악이 계속됐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듯이, 입안으로 박히는 검날에 비명은 차오르는 피와 함께 삼켜졌다.

이내 붉고 끈적이는 소리만을 남긴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이런 빌어먹을!”

초절정 고수는 곁에서 부하가 스스로 죽는 모습에 온몸의 기운을 더욱 끌어 올렸다.

선천진기까지 모두 끌어내어 이유 모를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 순간, 초절정 고수는 허공에 떠 있는 핏방울을 발견했다.

그것은 조금 전 목이 잘려 죽은 일류 고수가 사방으로 뿌린 피의 흔적이었다.

“네년! 실 같은 것을 사용해서 몸을 속박한 것인가! 이제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를 알았다.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 곧 이것을 풀어낼 수 있을 터. 당장 네년을 죽여 내 부하들의 원수를 갚겠다.”

“흐음, 그랬으면 좋겠네. 그런데 이미 죽은 놈이 그런 말을 해 봐야.”

“뭐라고?!”

백유화는 오른손을 내뻗고 손바닥이 보이도록 활짝 폈다.

초절정 고수는 순간 세상이 정지된 것 같은 기묘한 느낌과 함께 눈앞에 펼쳐진 손바닥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리고 그때 백유화의 펼쳐진 손바닥이 접혔다.

촤아아악! 촤악. 촤아아악.

금채홍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고도 현실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손이 접혔을 뿐이었다. 그런데.

“끄아아악!”

“커허허헉!”

초절정 고수와 절정 고수, 그들의 비명이 찢어지듯 산속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촤아아악. 투두두둑. 투두두둑. 촤아아악!

초절정 고수와 절정 고수의 몸이 수백 조각으로 갈라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온 피는, 거친 나무의 결에도, 그리고 수풀과 아름다운 들꽃 사이로 휘날려 퍼지며 피의 비를 내렸다.

그것은 무척이나 아름다우면서도 섬뜩한 것으로, 금채홍은 눈앞의 피 안개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 잠깐 황홀경을 느낄 정도였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살인귀 그 자체.

“이것이 인형사의 무공이다. 잘 보았느냐.”

“백유화 님! 어떻게 세상에 이런 무공이. 게다가 초절정 고수까지 있었는데.”

“이제 막 초절정 고수가 된 놈 따위야 별거 아닌 놈이지.”

“초절정 고수가 따위라는 말을 붙일 정도로 약했던가요. 미…… 믿기지 않아요.”

흰 백화가 붉게 물들어 가는 것을 보며 몸을 떨었다.

아니, 몸이 떨렸다.

저 연약하고 가녀린 사람이, 키도 작고 주먹은 자신의 반도 안 될 것 같은 소녀 같은 사람이 이런 무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

그때 모든 것을 지켜보던 천일영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채홍아, 뭔가 오해를 하는 모양이구나.”

“오해요?”

“백유화가 가녀린 모습이어서 약하다고 착각하는 것 같구나.”

“분명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어요. 다리가 아파서 걷는 것도 내켜 하지 않는 분이니까요.”

“푸훗, 채홍아. 백유화는 약하지 않다. 그도 그럴 게 저 녀석은 중원 십육 대 고수니까.”

“네에?”

금채홍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백유화를 바라보았다.

* * *

금채홍은 오리고기를 입에 넣으며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오리고기가 기대만큼 맛이 없어 짓는 표정이 아니었다.

오리고기는 공자님의 말대로 천하에 이름을 떨칠 만큼의 맛이었다.

그렇다면 금채홍이 이런 표정을 짓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까 본 피의 비 때문도 아니다.

평소 같았으면 속이 메슥거려 음식을 입에 대지도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까의 광경은 잔혹하면서도 지나치리만큼이나 아름다워 음식을 먹는 데 아무런 지장을 끼치지 않았다.

금채홍은 억울한 심정을 표정에 띄었다.

“왠지 속은 기분이에요. 업어 달라고 하고, 다리 아프다고 하고.”

“하지만 괴롭히고 싶었거든. 좋아하는 사람을 괴롭히지 않고는 버티지 못하니까.”

백유화의 짓궂은 표정에 금채홍은 화가 난다는 듯 오리 다리를 입에 통째로 물고 우물거렸다.

“게다가 저는 인형사가 정말로 인형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 제갈현의 얼굴과 몸을 만든 것처럼요. 그래서 무기가 없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채홍이의 몸을 인형으로 만들어서 놈들을 죽일 걸 그랬나? 실감 나게 놈들을 수백 조각으로 잘라 죽이는 것을 보여 줬을 텐데.”

“우웁, 우욱.”

순간 금채홍은 속을 뒤집고 올라오려는 오리고기를 억지로 다시 삼켰다.

자신도 그동안 적들의 팔다리를 잘라 왔지만, 몸 전체를 수백 조각으로 자르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비록 이상한 사람이라 해도 고수 다섯을 손가락만 가지고 도륙해 버렸다. 저 무공을 가르쳐 주신다니.’

금채홍은 오리 다리를 입에 문 채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지었다.

왜인지 기쁘고 들뜬 마음을 창피해서 보여 주기 싫다.

그때, 백유화가 먹는 데 열중하는 금채홍을 향해 남몰래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나를 지켜 줬던 사람은 천마님밖에 없었는데, 무공도 약하면서 나를 지키겠다고 나서다니 참으로 고맙구나. 너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기로 한 선택은 틀리지 않았던 것 같다.’

백유화는 눈물이 조금 차올랐다.

하지만 들키는 것은 창피하다고 생각이 되었기에 백유화도 금채홍처럼 오리 다리를 크게 한입 물고는 고개를 숙인 채 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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