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금채홍은 느닷없이 떠오른 생각 하나가 입 밖으로 튀어 나갔다.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볼 수 없던 것이었다.
“저기…… 백유화 님은 인형이 필요 없으시잖아요. 그런데 어째서 시신을 그렇게 능숙하게 다루시는 건가요?”
“응? 그건 그냥 취미. 이야기하지 않았더냐. 해체하고 자르는 걸 좋아한다고.”
“그럼 그냥 사람을 도륙하고 죽이는 건가요?”
“뭐야. 아무리 내가 살인귀라고 해도 아무나 죽이지는 않는다. 내가 죽이는 놈은 겁탈하거나 산적질을 하는 쓰레기들뿐이다. 내가 해체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런 쓰레기들이라도 해체를 당해서 세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도움이요?”
의아해하는 금채홍에게 천일영이 웃음을 지었다.
“채홍이가 또 하나 오해를 하는 것이 있구나.”
“백유화 님이 약하지 않다는 것 말고 또 있나요?”
“백유화의 본업은 무인이 아니다.”
“중원 십육 대 고수인데 무인이 아니라고요?”
“백유화의 현재 본업은 의원이다.”
“너에에?”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라는 금채홍의 앞에서 백유화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조금은 쑥스러운 모양이다.
“뭐, 예전 이야기인데 혈도나 기도, 뼈대라든가 인체를 책으로는 알아도 실제로 본 적은 없었지. 그래서 눈으로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럼 전부 다 눈으로 확인을?”
“응, 그리고 해체하면서 자연스럽게 의학을 익혔지. 여러 가지 시험도 하고 말이다.”
“시험이라뇨?”
금채홍의 말에 순간 천일영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금채홍은 기왕 이야기의 뒤를 듣기 위해 용기를 내어 나머지도 물었다.
“시험이라면 설마?”
“응? 잡아 온 놈의 XXX를 XX에 XX하고, 또 XXX를 XXX를 하면서 시험을 했지. 그리고 일부러 XXX이 낫는 것을 보기 위해 수백 가지의 약재를 사용해 보고 그래도 낫지 않으면 XXX에 XXX를 해서 고치기도 하고. 또 XXX가 XXX가 되니까 XXX를……. 응? 저기 채홍아?”
백유화는 허옇게 눈을 뜨고 고정된 시선으로 꼼짝하지 않는 금채홍이 이상하게 생각되어 손바닥을 눈앞에 흔들기 시작했다.
“채홍아? 대답 좀 해 보렴?”
하지만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는다.
금채홍의 굳은 채 벌어진 입에서 침 한 줄기가 주룩 흘러내렸다.
“아……. 채홍이 죽었네.”
“이 녀석아, 아무리 의학 이야기라도 적당히 가려서 해야지. 내성이 없는 채홍이가 기절하지 않았느냐.”
“아니, 이 정도로 순진할 줄 몰라서요.”
“세상 사람의 기준이 너와 같더냐!”
쿠웅.
천일영은 백유화의 머리 위로 오랜만에 강대한 장권을 날렸다.
그것은 언제나 항상 기막을 두르고 다니는 백유화의 몸을 통과하여 정수리 한가운데 박혀 들었다.
“끄아아악.”
철푸덕.
백유화는 장권을 맞고 즉시 기절했다.
입에서는 거품이 나오고 눈은 허옇게 뒤집힌 채.
천일영은 손에 든 오리고기를 내려놓고 술을 들이켰다.
“변하지를 않는구나, 이 녀석은. 나도 꽤나 비위가 좋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만큼은 밥도 못 먹겠군.”
그때, 추가로 주문한 술을 가지고 들어온 점소이가 기절해 있는 두 명의 여인을 보고는, 천일영을 세상 제일의 몹쓸 놈처럼 노려보고 나가 버렸다.
천일영은 술을 들이켜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이 집 정말로 좋아했는데 다시는 못 오겠군.”
천일영은 호남채계(湖南菜系) 요리답게 매운맛을 내라고 놓여 있는 고추를 한 움큼 집어 기절해 있는 백유화의 코에 잔뜩 쑤셔 넣었다.
* * *
삼 개월 뒤.
천일영은 세하월과 함께 하남성 무림맹 근처에서 한창 공사 중인 장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연무장이 딸린 장원과 과거의 위세를 자랑하던 거대한 장원 두 개를 허물고 한곳에 짓는 것이니만큼 그 크기가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크기만큼이나 시선을 끄는 다른 것이 있었으니, 눈을 떼지도 못할 만큼이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다.
“장 목수, 노병천과 상의를 하여 기관 장치는 전부 만들고 있는가?”
“공자님이 이 먼 곳까지 와서 공사를 해 달라고 했을 때는 무슨 일인가 했습니다만, 설마 별유천지 분점보다도 많은 기관 장치를 만들어 달라고 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습니다.”
“이 장원은 객잔이 아니니 마음껏 만들어도 좋다.”
“헌데 설계가 참으로 이상합니다. 나무로만 지어도 충분할 터인데, 이 많은 철이 나무 사이로 숨겨지듯 들어가는 것이 이상하군요.”
“이상할 것이 무엇이겠느냐. 허나 중원에서 이런 공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장 목수 한 사람뿐이겠지.”
“허허허, 잘 아시는군요.”
천일영은 웃음을 짓는 장평택의 뒤에 서 있는 반듯하게 생긴 남자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장평택에게 건넸다.
“전에 벌로써 주지 않았던 환상의 명주다. 다섯 병이니 아껴서 마시거라.”
“으하하하, 감사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 매빙화홍주로군요. 이것 때문에 제가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는지.”
“다 마시면 또 말하거라. 다시 준비해 줄 터이니. 그리고 뒤에 서 있는 남자가 앞으로 여기에 거하면서 장 목수의 일을 도울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저 사람과 상의를 하거라.”
“그러지요.”
장평택은 뒤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공자만큼은 아니지만, 눈이 번쩍 뜨일 만큼이나 단정하고 잘생긴 미남.
몸도 탄탄하고 키도 훤칠하다.
또한 어딘지 기품이 어린 몸동작은 눈길을 돌리기 힘들게 만들었고, 하얗고 깨끗한 피부는 여자들이 줄을 설 정도다.
삼십 대 초반 정도지만 왠지 관록이 붙어 있는 것만 같은 모습은, 무림맹이 있는 하남성에서조차 이만한 남자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안녕하십니까. 장 목수님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잘 부탁드리지요. 저는 탁현진이라고 합니다.”
“반갑소이다.”
장 목수가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자 천일영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노병천과 친해지며 장평택과도 몇 번이나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인데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그때, 천일영의 곁에 있던 백유화가 탁현진에게 다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야, 잘해라. 돼지 새끼.”
“맡겨만 주시지요.”
그랬다.
탁현진은 백유화의 손길에 새롭게 태어난 제갈현이었다.
백유화는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듯 제갈현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밝은 햇빛 아래에서 보니 그 감회가 새롭다.
‘피부를 탈색하여 하얗게 하고, 얼굴을 뼈대부터 완전히 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살도 빼고 몸도 단련해서 건장하게 만들었지. 게다가 공자님께서 진기를 불어 넣어 피부에 탄력을 주었고, 단전을 부숴서 제갈 가문의 흔적 또한 지웠다. 그리고 단전을 새로 만들어 새로운 내공심법으로 전혀 다른 기운을 가지게 했으니 세상에서 제갈현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터.’
그때 문득 생각이 났건대, 처음부터 공자는 제갈현을 다시 하남성으로 돌려보낼 계략을 꾸몄다고 생각하니 백유화의 팔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무림맹으로부터 몸을 피신한 사람을 다시 무림맹의 근처로 돌려보내다니,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할 일이다.
그때, 천일영이 세하월과 대화를 끝내고 백유화의 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귀주성으로 간다.”
“귀주성이요? 설마 귀천명으로 가시는 것입니까?”
“그곳에서 데려올 사람이 있다.”
“이 새롭게 짓는 장원에 들일 사람입니까? 공자님, 저 장원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객잔도 아니고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궁금했던 것이냐. 저 장원은 기루다.”
“기루요?”
천일영은 웃음을 한 번 짓고, 백유화의 배를 오른손으로 들어 옆구리에 걸쳤다.
“빠르게 가야 한다. 조금 참아라.”
“앞으로 안아 주시…….”
“쉿, 조용. 오늘까지만 살고 싶냐?”
“쳇, 틈이 없네요.”
천일영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천지일축공을 펼쳐 귀주성으로 향했다.
* * *
천일영은 백유화와 윤의강을 데리고 천혜향루로 들어섰다.
이미 세 번째 방문이니 천일영의 얼굴을 알아본 사람들은 빠르게 위층의 가장 좋은 방으로 안내했다.
그러나 기루에서 백유화는 지나칠 정도로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귀주성 제일의 기루인 천혜향루에서조차 백유화만큼이나 미인은 없기 때문이었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내내 천혜향루에 있는 손님들과 기녀들조차 백유화를 바라보며 숨을 삼켰다.
“젠장.”
백유화는 그 시선이 불편했는지 발걸음을 뒤로 한 발 물러 천일영의 옷자락을 잡고 몸을 뒤로 숨겼다.
하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사람들을 자극하여 남자는 물론이고 기녀들까지 콧김을 뿜어냈다.
그때, 다른 기녀들보다도 훨씬 많은 콧김을 뿜던 송체란이 다가왔다.
“어머 세상에. 공자님? 이 가녀린 소저는 누구입니까?”
“그냥 아는 사람.”
“농담도. 이렇게나 예쁜 사람을 그냥 아는 사람이라 하시는 게 말이 됩니까. 소저의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송체란이 키가 작은 백유화를 상대로 허리를 숙이고 말을 하자, 백유화의 얼굴이 붉어지며 천일영의 등 뒤로 더욱 숨었다.
백유화는 겨우 눈만 내놓고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듯 수줍은 목소리를 꺼냈다.
“미안, 나 낯을 가려서 처음 보는 사람이랑 말을 잘 못 해.”
“꺄악, 귀여워. 그런데 공자님? 이런 미인을 데려오시면 소혜가 많이 슬퍼할 것입니다.”
“괜찮다. 연인이 아니라 콧구멍에 고추를 집어넣는 사이다.”
“푸풋, 정말로 공자님은 매일같이 농담만 느십니다.”
천일영이 송체란이 안내하는 대로 방에 들어서고 눈 한 번도 깜박이지 않았는데 등 뒤로 허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옷차림도 흐트러지고 머리도 헝클어진 것이 아직 준비조차 하지 않았는데 급히 달려온 듯했다.
은소혜는 숨을 헐떡이며 입을 열었다.
“공자님! 어째서 기별도 없이 오셨습니까. 게다가 약속하신 넉 달도 한참 지났습니다.”
“미안하구나. 그래도 이렇게 왔으니 용서하는 것이 어떠냐.”
“용서라고 할 것은 아니지만…….”
은소혜의 눈길이 백유화를 향했다.
약속보다 늦게 오고, 자신보다 예쁜 사람을 데리고 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은소혜는 차오르는 눈물을 가리며 떨리는 목소리를 내었다.
“준비하고 오겠습니다.”
“기다리마.”
잠시 후.
천일영이 원한 대로 기녀 은소혜와 초야화, 그리고 송체란이 방으로 들어왔다.
은소혜는 힘없는 얼굴로 천일영의 곁에 앉아 술을 따랐다.
준비하는 동안 제법 울었는지 눈이 빨개져 있었지만, 은소혜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오늘이 저와 보는 마지막 날입니까?”
“어째서 그런 생각을 했느냐.”
“그야 저렇게 아름다운 분을 데리고 기루에 오셨으니 말입니다. 허나 너무 잔인하셨습니다. 비록 제가 기녀이기는 하나 여자분을 데리고 오셨으니 제 마음이 찢어지는 것을 모르지 않으실 것입니다.”
“저 녀석과는 아직 연을 맺을 생각이 없구나. 워낙에 흉포한 놈이기도 하고.”
“말이 되는 말씀을 하십시오. 어찌 가녀린 여인이 흉포하다 하십니까.”
천일영은 고개를 돌려 백유화를 바라보았다.
백유화는 곁에 있는 초야화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조용히 술만 마시고 있었다.
그뿐인가.
오늘 처음 만난 윤의강을 천일영이 직접 인사까지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섞기는커녕 제대로 바라본 적조차 없다.
‘여전하구나. 친하지 않은 사람하고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고 술만 마시고 있으니. 낯가림도 그대로고.’
벌게진 얼굴로 송체란과 술을 마시는 윤의강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마치 서늘한 한기를 풍기듯이 차가운 얼굴로 앉아 있는 백유화의 모습은 무척이나 이질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유화야, 네가 흉포하다는 것을 믿지 않는구나.”
“계집, 공자님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믿지도 못하면서 어찌 눈물까지 흘리는 것이냐.”
“아…….”
그러나 냉정하게 이야기를 하는 백유화이지만 천일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쌀쌀맞은 목소리를 내면서도 백유화는 어느새 은소혜의 맥을 짚고 있었다.
“공자님의 말씀도 믿지 못하는 건방진 년. 얼굴이 이상하다 했더니 협습형(挾濕型) 감기 기운이 있구나. 내가 강활승습탕(羌活勝濕湯)의 약재를 적어 줄 테니 내일 꼭 사서 달여 마셔라. 알겠냐? 이 무례한 것아.”
“네……? 네에.”
“알았으면 됐다.”
백유화는 은소혜를 무섭게 노려보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은소혜는 얼떨떨한 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 좀 괴상하기는 하다만 흉포하다는 말을 이제야 믿겠느냐.”
“아니…… 흉포하긴 한데……. 왜 귀엽고 친절한 거죠?”
“푸훗, 이상한 녀석. 소혜야, 이따가 너에게 할 말이 있구나. 그 때문에 왔다.”
“알겠습니다. 공자님의 말씀이라면 그 무엇이라도 들을 것입니다.”
“그래, 고맙다.”
은소혜는 천일영의 술잔을 채우며 잠시 마음속의 망설임을 떨치기 힘들었다.
정말로 백유화와 연을 맺은 사이가 아닌가 하고 불안했지만, 그보다 공자님이 하실 말씀이 무엇인지 마음에 걸린다.
은소혜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가슴을 휘저었기에, 아침이 오지 않기만을 바라는 자신의 모습을 숨기기 위하여 한 잔의 술을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