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칠 일 후.
타다다다닥.
살수단 2개 조가 구름에 가린 어두운 달빛을 등지고 산길을 달렸다.
1개 조에 각 백 명의 무인들.
총 이백의 무인들은 산길이 갈라지는 기점을 앞두고 빠르게 갈라졌다.
사천당문과 종남파의 무인들이 있기에 한 조에 일백의 무인이 있다고 해도 방심할 수는 없는 법.
갈라진 길의 오른쪽으로 들어선 2조의 뒷모습을 보며 1조의 조장 등여원은 침을 삼켰다.
‘전에도 학살에 가까운 일은 해 보았다. 그러나 이번의 임무는 몰살인가.’
아무리 급한 일이라 해도 일의 잔악함이 지나치다.
그것도 사혈련이나 천마신교를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닌 빈민 구제를 하는 사천당문과 종남파를 상대로 하는 것이기에 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하지만 임무는 임무. 등여원은 이를 악물고 전음을 날렸다.
[실패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비밀을 철저히 지켜야 하는 일이니, 증거를 남겨서는 안 될 것이다. 증거를 남기는 자는 내가 직접 그 목을 칠 것이다.]
[예!]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빠르게 산길을 내려가지만, 그 은밀함은 살수단 중에서도 최고의 실력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발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그러나.
“흑흑흑. 엄마. 훌쩍. 아빠. 엉엉엉.”
마을로 연결되는 길의 끝에서 울리는 아이의 목소리.
길이라도 잃은 것인지 무서움에 떨리는 목소리가 천살천 일백의 귀에 파고들었다.
아무도 없어야 할 밤의 산길에서 구슬피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제법 산자락을 타고 울린다.
등여원은 울음소리가 어쩌면 마을까지 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길을 멈추었다.
‘젠장, 아이의 울음소리를 마을에서 듣기라도 한다면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증인을 없애자고 마을에 있는 사람들을 죽이기라도 하게 되면 시간이 모자라게 될 터. 아이를 이 자리에서 처리해야 하는가.’
그러나 아이는 이제 겨우 일곱 살이나 여덟 살쯤 되었을까.
나무 아래에서 몸을 숙이고 앉아서 서럽게 우는 모습이, 마음에 세웠던 살심에 조금의 가책을 느끼게 한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달이 위치가 조금의 시간이 있음을 알려 주자, 등여원은 조원들에게 전음을 날렸다.
[누구 한 명 나서서 저 아이를 마을에 데려다주거라.]
[조장! 저 아이가 증인이 되어 저희가 움직인 동선을 알려 줄지도 모를 일입니다. 마땅히 죽여야 하니 마음을 돌리십시오.]
[됐다. 기절을 시켜서 마을 입구에 던져 주기라도 하면 될 일. 마을 사람들이 눈치채기 전에 빨리 실행한다. 저 아이는 아직 우리를 보지 못했으니.]
검은색의 무복이 어둠에 녹아들어 잘 보이지 않음을 상기시킨 등여원의 명령에 한 명의 조원이 앞으로 나섰다.
[제가 하겠습니다.]
[빠르게 처리하거라.]
타다다닷.
조원의 신형이 아이의 뒤로 돌아서 갔다.
퍼억.
나무 뒤에 모습을 숨긴 조원이 아이의 머리로 권(拳)을 날리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아이의 신형이 무너지듯 앞으로 쓰러졌다.
등여원은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의 울음이 그친 것만으로도 쓸데없는 살인을 피했다.
[빨리 마을 어귀에 버리고 와라.]
[예.]
그러나.
아이를 안아 든 조원은 마땅히 가야 할 마을로 가지 않고 오히려 등여원과 조원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등여원의 인상이 순간 구겨졌다.
[무엇 하는 것이냐. 아이를 마을에 버리고 오라니까!]
[…….]
순간 이상함과 섬뜩함이 동시에 찾아드는 것에 등여원은 식은땀을 흘렸다.
이 기괴하고 이상한 상황은 언뜻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오랜 경험을 쌓아 온 등여원은 즉시 검을 뽑아 들었다.
[이놈이 정신이 나갔구나. 아이의 모습에 동정심이라도 생긴 것이냐.]
[…….]
등여원은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명령을 듣지 않는 수하는 버리는 것이 살수단의 원칙.
휘이잉!
더는 말이 필요 없다는 듯 등여원의 검이 조원을 향해 세로로 날아갔다.
정확히 몸통의 가운데를 겨냥한 일격이자 아이까지 반으로 쪼개 버리기 위함이다. 오랜만에 베푼 인정이건만, 더는 시간이 없으니. 하지만.
채앵!
순간 조원이 들어 올린 검에 가로막힌 등여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분명 조원의 실력은 일류 고수. 헌데 절정 고수인 자신의 검을 막는다?
순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등여원은 급히 몸을 돌려 빠르게 다시 한번 검을 날렸다.
이번에는 목을 날리기 위한 일검이다.
카아아앙!
있을 수 없는 일.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또다시 조원의 검에 일격이 막힌 것이다.
허나 그때 등여원은 분명히 들었다. 그것은 조원의 입에서 작게 흐른 신음이었다.
“크윽.”
분명 조원은 자신의 검을 막으면서 팔을 다친 것.
실력 차이가 분명한데도 어째서 수하는 이런 이상한 짓을 하는가.
그러나 등여원은 고개를 가로젓고 검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 했다. 이상한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젠장.”
순간 어디에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등여원은 눈을 끔뻑거렸다.
낭랑한 여인의 목소리지만 거친 말투. 마땅히 없어야 할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에 등여원은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아, 진짜 이건 너무 약하잖아. 못 써먹겠네. 검 두 번 막았다고 팔이 나가 버리니.”
“뭐…… 뭐냐! 어디에서 나는 목소리냐!”
그러나 등여원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경악이 물든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다름 아닌 조원의 팔에 안겨 있던 여자아이가 꿈틀거리면서 땅으로 내려서는 것이었다.
“너…… 너?! 기절한 게 아니었던가?”
“기절한 척을 했을 뿐이다. 그나저나 아이의 머리를 그렇게 세게 때리면 되겠느냐. 제법 진심을 담아 권을 날리다니, 아주 못된 놈들이구나.”
“이 꼬맹이가 지금 무슨 말을! 아니, 그게 아니지. 네년, 지금 자세히 보니 심지어 아이도 아니구나!”
“어라? 아직은 피부가 탱탱해서 먹힐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알아차리네. 망할. 요즘 죽도록 뛰었더니만 그새 조금 늙었나?”
등여원과 백여 명의 조원들은 아이 같은 모습의 여인이 하는 말과 모습에 입을 쩍 벌렸다.
짝다리를 짚고 한쪽 입꼬리만 올린 채 이죽거리며 건들거리는 것이 영락없는 파락호.
그런데 여인의 몸인데도 불구하고 위화감 없이 너무도 잘 어울렸다.
스르르릉.
하지만 그들은 노련한 살수. 빠르게 상황 파악을 끝낸 백여 명이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이……! 이 악독한 것. 아이인 척 속이다니, 비열하고 치사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구나. 어찌 이런 더러운 수를 쓴단 말이냐. 비열한 것을 넘어 사혈련도 쓰지 않을 방법이다.”
“잘 기억해 두어라. 나는 원래 치사하다. 비열한 건 기본이고. 백유화라는 이름은 한때 무림에서 제일 성격 더럽고 악독하며 수단과 방법 안 가리는 것으로 유명하거늘.”
“백유화? 듣도 보도 못한 잡스러운 이름이군. 네년의 치사한 수는 오늘로 마지막이다. 죽어라.”
등여원의 검이 백유화의 머리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들었다. 또한 노련한 살수답게 백유화의 근처에 있던 열의 조원들도 일제히 검을 날렸고, 뒤에 있는 사람들 역시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피이잉! 피이이잉! 피빙!
그러나 그들은 이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눈을 끔벅거릴 수밖에 없었다.
여인의 머리 위로부터 약 2치 떨어진 곳. 그곳에서 모든 검이 멈추었다.
또한 몸통이며 다리까지 온몸으로 날린 검도 마찬가지였다.
백유화는 자신의 팔에 전해지는 검의 울림을 느끼며 손가락을 펼쳤다.
“바보들. 너희들은 나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주었다. 너희 백 명을 한꺼번에 죽여 버릴 만큼의 시간을 말이다.”
“뭐라고?”
“아직도 보이지 않는 것이냐. 구석구석까지 펼쳐진 만 개의 선들이.”
꿀꺽.
등여원은 순간 침을 삼켰다.
피잉. 피잉. 피잉. 피잉.
눈앞의 여인이 약지를 까딱거릴 때마다 팽팽해진 공기 사이로 무엇인가가 튕기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그리고 이내 비틀린 입술 사이로 나오는 여인의 말에 등여원은 자신의 터무니없는 실수를 깨달았다.
“너희들이 정파의 기운을 가진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더 이상의 볼일은 없구나. 잘 가거라.”
“무슨 개 같은 소리를! 네년 혼자 어찌 백의 무인을 죽인단 말인가!”
“그것이 가능한지는 죽고 난 다음에 열심히 생각해 보거라. 망자(亡者)가 되면 시간이 많을 터이니.”
파앗!
순간 백유화의 펼쳐진 양손이 오므려졌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등여원은 자신의 살에 느껴지는 기괴함에 숨을 들이켰다. 분명 느껴지는 것은 얇은 선.
그러나 가느다란 선은 살을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베고 들어온다.
그것이 검강과 같은 원리라는 것을 순간적으로 이해한 등여원은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피할 수조차 없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온몸을 파고드는 선의 개수는 이미 수백 개.
‘기운이 흐리다고 생각하여 방심했건만, 사실은 초고수였던가.’
촤아아악. 촤악. 촤아아아악!
백유화가 손가락을 접음과 동시에 양팔을 펼쳤다. 그리고 그 뒤로 튀기는 피들.
백 명의 무인들은 그 순간 수천 개의 고기 조각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눈을 감지 못한 채 수백 조각이 되어 가면서도 등여원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이 그려졌다.
‘무림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노인과 아이라고 하더니……. 아니, 저건 아이도 아니지. 차라리 아이였으면 이렇게나 억울하지는 않았을 텐데.’
머리조차 수십 조각이 나며 등여원의 이승에서 마지막 생각이 끝날 때.
백유화는 사방으로 뻗어 있는 만 갈래의 선에 맺힌 핏방울을 보며 이죽거리는 웃음을 지었다.
“귀신같은 천마님 때문에 매일 연무장을 오백 바퀴씩 뛰고 죽도록 굴렀더니 다룰 수 있는 강선이 만 개에 이르렀구나.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종아리에 밴 알 때문에 아파 죽겠네. 수련하는 동안은 내공 사용을 금지당하니……. 그런데도 갑자기 뒷덜미를 잡아서 이런 곳으로 끌고 오시니 천마님도 참…….”
백유화는 등여원이 가지고 있던 검을 들어 땅을 짚고 쩔뚝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 * *
천살천의 2조 조장 권갑태는 눈앞의 신형을 향해 검을 들이밀면서도 떨림을 멈추지 못했다.
1조와 길을 달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자신이 혼자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99명의 죽음. 그것은 눈앞의 남자가 불현듯 내린 것이었다. 마치 저승사자처럼.
권갑태는 어둠 속에 가려져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신형을 향해 떨리는 입을 열었다.
“네놈은 누구냐. 무슨 의도로 우리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냐.”
“내가 누구인지 묻기 전에 백 명의 살수가 움직이는 이유부터 말하는 것은 어떠냐.”
천일영은 피 묻은 무극지검을 가로로 펼쳐 혈향을 떨궜다.
허공으로 날아가는 핏물의 줄기가 거대한 기운과 함께 흩어진다.
“많은 수가 움직이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로 생각한 모양이군. 무림맹의 살수는 고작 이 정도였나.”
“놈!”
“아마도 무림맹의 총관이 관리하는 살수단이겠지. 허나 너희들은 오늘로 끝이다.”
“지금 보이는 수가 우리의 전부라고 착각하지 말거라. 그리고 무림맹이라니, 그것이 무슨 말이냐. 뭔가 오해하여 이런 짓을 벌인 것이라면 곱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가.”
휘이잉. 촤아아악!
순간 천일영의 보이지도 않는 검이 권갑태의 오른팔을 날렸다.
피가 흩어지는 가운데 권갑태는 이를 악물며 신음을 참았다.
“크으으윽!”
“돌아가거라. 목숨은 살려 주지.”
“놈! 그게 무슨 말이냐. 내 목숨을 가지고 노는 것이냐.”
“이미 네놈에게 알아낼 것은 전부 알아냈다. 그러니 더는 필요가 없구나.”
“크으윽, 그게 무슨 말이냐.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 거로 해 두지.”
천일영은 권갑태로부터 등을 돌렸다.
거의 백에 달하는 죽은 자로부터 피어나는 혈향이 과거 살수로서 살았던 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잔인함을 마음 위로 떠올렸다.
‘살려 줬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인 것보다도 잔인한 짓이지. 너는 치료를 받을 수도, 네가 속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힘들 터. 설령 돌아간다 해도 의심을 사고 죽임을 당할 것을 알 것이다. 자, 그리하면 너는 어떻게 움직이겠느냐.’
처음부터 살수단이 움직이는 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미 안과 혜가 저들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살수를 이백이나 동원했을 때부터 배후가 무림맹인 것은 예상했다. 이럴 때 쓰는 수는 우물에 독을 타거나 음식에 장난을 치는 게 훨씬 효과적인데, 힘들게 돌아가는구나. 검으로 죽여야 살수라고 생각하니 그야말로 무림맹답군.’
천일영은 혈향이 피는 곳을 벗어나 조용한 목소리를 퍼트렸다.
“안, 혜. 오른팔이 잘린 무인을 감시하거라.”
“알겠습니다.”
나무 뒤로 그림자만 보인 안과 혜가 빠르게 뛰어가자 천일영은 무극지검을 어깨에 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결국 지천번회는 무림맹과 관련이 있었던 것인가. 게다가 남궁천은 멈출 생각이 없는 모양이구나. 그동안은 남궁천의 다리를 잘라 왔으니 이제는 팔을 자르러 가 볼까.”
천일영은 휘적휘적 짙은 혈 향이 꿈틀거리는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