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힘든 하루였다. 아니, 정확히는 진저리가 처질 정도로 끔찍한 날이었다.
사마정은 어젯밤 친히 자신의 입으로 명령을 내린 살수 중에서 단 한 명만이 살아 돌아왔을 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또 다른 살수 일백이 수천 조각으로 잘려져 있다는 보고에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정확히 일백구십구 명.
그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손에는 아무런 것도 쥐지 못했다.
‘얼굴도 알 수 없고 나이를 가늠하기도 힘들며 경지 또한 느껴지는 바가 없었다, 라…….’
사마정은 범인이 당추필과 남궁서우를 죽인 사람이라 예상했지만, 그것을 애써 남궁천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남궁천의 거친 야수와도 같은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지쳤으니까.
‘내가 이 일을 꺼내 들었을 때 맹주 남궁천의 얼굴이 어떠할지 궁금하군.’
오늘도 남궁천의 얼굴을 보지 않았던 사마정은 한숨을 내쉬고 우차에서 내렸다.
‘자시(子時)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는구나.’
자신이 오기까지 잠들지 못했던 하인들에게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들어서는 길.
하인 하나가 졸린 눈을 비비며 곁에 서며 애써 걱정 어린 웃음을 짓는다.
“방에 불을 놔 드릴까요? 화섭자(火攝子)를 가져오겠습니다.”
“아니다. 오늘은 제법 늦었으니 일은 그만이다.”
“요즘 주인어른의 얼굴이 많이 상하셨습니다. 하루만이라도 푹 쉬십시오.”
“고맙구나. 너도 어서 자거라.”
근래에 매일같이 늦은 밤이 되어서야 들어오는 사마정이 걱정되었는지 하인의 얼굴에 근심이 한가득했다.
사마정은 이십 년이 넘도록 함께한 하인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기에, 인자한 웃음을 보이고는 방으로 들어섰다.
드르륵.
검은 어둠이 방 안을 집어삼킬 것만 같이 보였지만, 종이로 메워져 있는 창문의 건너편에서는 달빛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조금은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내일도 남궁천의 노기 섞인 목소리를 들을 생각을 하자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사마정은 관자놀이를 한 번 짚고 빠르게 잠자리에 들려 했다. 순간.
“많이 늦었구나. 제법 오래 기다렸다.”
“누구인가?!”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놀람과 동시에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달빛이 비치는 창문 아래, 남자의 신형이 그림자가 되어 자신을 보고 있음에 사마정은 이내 냉정함을 되찾았다. 아니, 되찾으려고 애를 썼다.
그가 누구인지 이미 알 것 같았기에.
“정문으로 들어오셨으면 접대 준비라도 했을 것입니다. 차도, 술도 없음을 이해해 주십시오.”
“예전의 버릇 때문에 문으로 들어서는 것이 불편하니 놀라게 했다면 미안하구나.”
냉정함이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한들, 떨리는 손과 다리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없음을 모르지 않는 사마정은 남자의 앞에 마주 앉았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습니다.”
“이르지 않은 발걸음이다. 조용히 있었다면 평생 만날 일도 없었을 테지.”
“허허, 저희의 사정이 가만히 있는 것을 허락지 않는군요.”
사마정의 눈이 눈앞의 그림자를 지그시 훑어본다.
과연 살수의 말대로 느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 사마정은 작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고개를 들어 사람을 바라본 것이 얼마 만인가. 남궁천 앞에서도 항상 고개를 숙이고 있건만.’
사마정은 의자에 편하게 몸을 기댔다.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부디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습니까.”
“무엇이든 물어보거라. 해가 뜨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할 터이니.”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사마정은 눈앞의 그림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깊어질수록 이야기가 무르익고, 자신의 입가에 지어지는 웃음을 숨기기 힘들다.
그림자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찌나 재미있는지.
몇 수를 앞서 생각하는 능력. 세상을 보는 넓은 시야.
또한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는 듯한 그림자의 시선에 감탄이 토해져 나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만이 들게 했다.
몇 시진이 지난 후, 그림자를 마주하는 사마정은 어찌할 수 없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입을 열었다.
“제법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누군가의 얼굴을 이렇게 보며 이야기하는 것은 오랜만이군요.”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제 마음을 이해하시는군요. 저는 과거 괜찮은 벼슬자리에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일을 제법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곳에서 출셋길에 오를수록 점점 사람의 얼굴을 볼 수가 없게 되었지요.”
“어째서인가?”
“어느 순간부터 구역질이 치솟았습니다. 음모를 꾸미고 경쟁자를 끌어내리며 정략(政略)이 난무하는 표정을 보는 순간 더는 견디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사마정은 이미 나이를 먹고 늙어버린 육신을 가지게 된 지금. 고개를 끄덕여 주는 그림자의 모습에 아쉬움을 느꼈다.
비록 같은 길을 걷지 않았건만 이 오갈 데 없는 비참한 마음을 이해해 주는 이 사람의 삶도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사마정은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관직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때 제게 손을 내민 사람이 무림맹의 맹주 남궁천입니다.”
“그랬군. 그렇다면 그대는 지금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인가.”
“맹주가 말하는 참된 세상을 보고 싶었기에 따랐지만, 어느 순간부터 또다시 알게 되었지요. 그런 세상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며 거짓만이 남았다는 것을요. 이제는 맹주의 얼굴을 자세히 본 지 십 년이 넘어갑니다.”
“그렇군.”
사마정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지어졌다.
그는 비록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뜻밖에도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았지만, 이내 깨끗하고 청명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 때가 되었으니.
“시간이 벌써 묘시(卯時)인 듯합니다.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이었군요.”
“그렇군. 나도 오랜만에 재미있었다.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제법 아쉽게 느껴지는구나.”
사마정의 앞에서 그림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떠오르는 해의 빛무리가 방 안으로 가득 들어오고, 사마정은 서서히 그림자가 지워지는 사람의 얼굴을 회한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신기한 일이구나. 그림자였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사람의 얼굴은 구역질이 올라오지 않으니.’
진작에 이 사람을 만날 수만 있었더라면.
“또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이 서운합니다. 마지막으로 공자님의 이름 정도는 알려 주시지요.”
“천일영이다. 값싼 이름에 불과하지만, 오랜 친구와도 같이 이야기를 나눠 준 너에게는 알려 줘도 상관없겠지.”
“천마신교의 주인이셨군요. 그러나 그 이름은 친구로서 마음에 담아 두겠습니다.”
사마정은 고개를 툭 떨궜다.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이름.
미소가 입가에 지어진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바라건대 나가실 때는 부디 정문을 사용해 주시겠습니까.”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 주었으니 마땅히 들어줘야겠지.”
“그거 다행입니다. 그럼 안녕히 가시지요.”
스윽.
사마정은 자신의 머리 위로 올라오는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의식이 끊어졌다.
퍽.
천일영은 최대한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사마정의 머릿속으로 기를 흘려 한 번에 터트렸다.
이것으로 뇌가 터지며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죽음을 맞이했을 터.
천일영의 얼굴에 비틀린 표정이 새겨졌다.
“가만히 있어 주기를 바랐건만 남궁천 너는 기어이 내가 만든 함정에 발을 들이밀었다. 내가 마땅히 죽여야 했을 남궁천 너를 대신해 사마정을 죽인 것은, 무림 삼대 세력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맹주라는 이름값이 네놈을 살린 것뿐.”
천일영은 씁쓸한 얼굴로 코피가 쏟아져 나오는 사마정의 얼굴을 한 번 보고는 약속대로 정문을 향했다.
변고를 빨리 알아차리고 하인들이 자신의 시신을 발견해 주기를 바라는 마지막 충심을 남궁천은 알까.
‘남궁천, 네놈에게 사마정은 지나치게 아까운 사람이었다.’
사마정을 죽인 것은 남궁천을 상대로 천일영이 둔 마지막에 가까운 한 수였다.
‘사마정의 죽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거라. 네가 다음 수를 둔다면 이후에는 죽일 것이니.’
천일영은 사마정의 집 정문을 소리가 나도록 열어젖혔다.
* * *
무림맹의 총관 사마정이 죽은 지 닷새.
칠일장 중에서 이틀만이 남았건만 사마정의 집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무림맹에 속해 있는 구파일방부터 오대 세가.
그리고 수많은 무림 문파의 사람들로 집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았으니, 무림맹 총관이라는 자리의 무게가 여실 없이 드러났다.
그러나 살해당했다는 이유로 크나큰 소란이 일어야 했을 자리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이상한 일이다. 사마정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으니. 어째서인지 그가 죽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구나.’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는 기묘한 장례식.
남궁천 역시 같은 생각을 되뇌며 향이 만들어 내는 연기를 피웠다.
그러나 슬퍼야 했을 자리에서조차 마음속에는 패악으로 가득했으니.
이미 그의 마음에서는 사마정의 죽음이 중요할 만큼의 자리조차 차지하지 못했다.
‘젠장, 제갈현은 죽였고 사마정은 죽임을 당했다. 내가 가진 말을 없애는 것으로 다음의 수를 어찌 둘지 보이라는 것인가.’
오백의 천살천 중에서 이백이 죽었다.
사마정은 어찌 죽었는지 가늠도 안 되는 방법으로 세상을 떠나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남긴 죽음은 많은 의문과 함께 무림맹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것은 분명 팔다리를 전부 잘라 패를 보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
‘네놈의 의도는 알겠다. 허나 나 역시 네놈이 모르고 있는 숨긴 패가 있음이다. 그것을 꺼내도 네놈은 알아차리지 못할 터.’
남궁천은 사마정의 집을 빠르게 벗어났다.
사마정이 죽었다는 것은 그의 능력을 의심케 하는 또 하나의 사건이었다. 빠르게 자리를 피한 남궁천은 맹주의 집무실로 들어서며 문 앞을 지키는 무인에게 거친 목소리를 흘렸다.
“부총관에게 서둘러 들라 이르라.”
“네.”
남궁천은 맹주의 방에 들어서자 차를 따르며 살기가 가득한 눈을 번들거렸다.
이제는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때다.
그때 문 앞에서 제법 굵고 당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르셨다 들었습니다.”
“들어오거라.”
문이 열리고 들어온 부총관 단학용.
그는 사마정의 죽음으로 슬퍼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어딘가 딱딱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남궁천은 그의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지 않았기에 거침없이 입을 열었다.
“부총관, 이제 무림맹의 총관을 맡아 주어야겠소.”
“죄송한 말씀이나 아직 총관 사마정의 장례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을 후일로 미뤄 주시지요.”
“물론 공식적인 발표는 나중이오. 그러나 무림맹의 일을 뒤로 미룰 수도 없으니 총관께서 하루빨리 나서 주셔야 하지 않겠소.”
이미 총관이라고 부르는 남궁천의 말에 단학용의 눈빛은 조금 전 사마정의 장례를 걱정했던 것과는 달라져 있었다.
야심을 숨기지 못함이다.
“하나 묻지요. 사마정이 맡았던 일에는 무림맹의 중요한 업무가 있었소. 허나 무림맹의 일 이외에 다른 중요한 일도 있었지요. 단총관, 당신은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떤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오?”
“어려운 질문이기는 하나, 무림맹은 무림의 일이고 그 외의 일이란 맹주님의 일일 것입니다. 둘 중에서 어떤 일이 중요한지를 떠나 구별하지 않고 둘 다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그 어떠한 일일지라도 말이오?”
“맹주께서 하시는 일을 제가 가릴 것이냐 묻는 것이라면 아니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이것으로 제 뜻이 전해졌을지요.”
“하하, 충분히 전해졌소.”
무림맹 이외의 일이 어떠한 것인지 모를 리 없는 단학용은 야심이 흐르는 얼굴을 숨길 생각조차 안 한다.
남궁천은 한 장의 편지를 꺼내 들었다.
“이 편지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소?”
“맹주의 인장이 찍힌 것이란, 무림의 일이면 합당한 용도이고 개인적인 일일 때에는 절대 들켜서는 안 되는 일이겠지요.”
“오 일 이내요. 맡기겠소.”
실제 종이의 무게는 얼마 안 되지만, 임무의 중요성에 편지는 묵직하게만 느껴졌다.
총관 단학용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산동성(山东省) 태산(泰山) 인근이오.”
“완수하겠습니다.”
빠르게 밖을 향하는 단학용의 모습은 충성되고 믿음직하게 보였다.
남궁천은 차를 들어 올리며 깊게 한 모금을 넘겼다.
‘이로써 마지막 한 수를 꺼냈다. 이것으로 네놈과의 마지막 결전을 벌이게 되겠구나. 이제 걸어야 할 것은 서로의 목숨. 그러나 내가 먼저 네놈의 목줄을 움켜쥘 것이다.’
남궁천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 줄 믿음직한 수하를 얻은 만족감과 다음의 수를 앞설 수 있다는 생각에 웃음을 지으며 차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