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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32화 (133/270)

132화

닷새 뒤.

산동성(山东省) 태산(泰山) 인근에 있는 산자락.

비록 태산의 산줄기가 이어진 야트막한 산에 불과하지만 아무도 발길을 하지 않는 곳이기에 단학용은 땀을 흘리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높지는 않지만 길이 거칠고 걷기가 힘든 곳이군.”

단학용은 그중 가장 높은 산을 찾아 올랐다.

높지는 않지만 빽빽한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사람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곳.

‘이런 곳에 도대체 무엇이 있단 말인가.’

단학용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혹여라도 편지를 받을 사람의 거처에서 밥 짓는 연기라도 피워 올리지 않을까 하여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스윽.

느닷없이 등 뒤에서 겨눠진 검날. 오묘한 청색이 감도는 철의 느낌이 서늘하게 목을 타고 올라왔다.

“누구냐!”

“내가 물어봐야 할 소리를 하다니, 재미있는 놈이군.”

등 뒤의 목소리에서 서늘함을 넘어 죽이겠다는 의지가 전해진다.

“죽기 싫다면 빨리 꺼내 보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호…… 혹시 이것 말이오.”

단학용이 남궁천의 편지를 꺼내자 등 뒤에서 어느새 서늘함이 사라지고 피식하는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길을 잘못 든 놈인 줄 알았더니 제대로 온 놈이었군. 재미있으려다가 말았다.”

“제법 과격한 마중이었소.”

주룩.

애써 겁먹지 않은 척을 하며 힘주어 말했건만 목에서 흐르는 한 줄기의 피.

지금에서야 느끼는 것이지만 제법 깊게 살이 베여 나갔다.

단학용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목은 미안하게 됐다. 외진 곳에서 살려면 조심해야 할 때가 많아서 말이다.”

“괜찮소.”

남자는 미안하다면서도 눈길 한 번을 단학용에게 주지도 않고 편지를 읽어 내렸다.

그리고 눈 세 번 깜박일 시간이 지난 후, 남자는 단학용을 바라보며 실눈이 되도록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군. 그럼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가는 게 좋을 거다. 여기는 빨리 어두워지는 곳이니까.”

“혹시 답신은 없소? 돌아가는 길에 전해 드리리다.”

“괜찮다. 곧 무림맹에서 다시 만나게 될 테니.”

“알겠소.”

아직 유시(酉時)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어둠이 밀려오는 산자락의 습한 기운에 단학용은 조금 몸을 떨었다.

급히 마을에 들어서지 않으면 산에서 길을 잃게 될 터다.

“그럼 무림맹에서 다시 뵙겠소.”

“그러지.”

단학용은 눈앞의 신형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리고 두 걸음을 걷는 순간.

갑자기 몸이 앞으로 기우는 것에 당황하며 단학용의 입으로부터 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헉! 이게 갑자기 무슨 일!”

돌부리에 걸린 것도 아닌데 몸이 땅바닥을 구르는 것에 의아함을 느꼈던 단학용은, 이내 자신의 다리가 이상함을 느끼고 종아리를 만졌다. 그러나.

“크아아아악! 어째서 다리가!”

무릎 아래로 잘려져 아무것도 없으니, 흐르는 피만으로도 손이 흠뻑 젖어 버린다.

단학용은 눈앞의 신형으로부터 지어지는 비웃음을 마주하며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크윽,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오! 나는 무림맹의 총관이란 말이오!”

“알고 있다. 편지에 쓰여 있더군.”

“그것을 알면서도 이런 짓을 한단 말이오. 크아아악.”

“총관이라는 자리가 너 정도로 오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더냐? 본인의 그릇도 모른 채 너무 욕심이 과했구나.”

남자의 얼굴은 비웃음에서 이내 비릿한 표정으로 바뀌어 갔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너는 명분이다. 무림맹의 총관이 죽고 부총관까지 실종되었다고 하면 어찌 되겠느냐!”

“크윽! 그것이 무슨 의미…….”

“아직도 눈치를 못 챘느냐. 총관 하나가 죽었으면 맹주가 무능력하다고 손가락질을 할 테지만, 부총관까지 실종되면 누군가가 무림맹을 노린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간단한 것도 생각 못 하는 것이냐.”

“그렇다면 그 말은!”

“너는 명분을 세우기 위해서 실종이 되어 줘야겠다.”

휘이이잉. 콰직!

그 순간 단학용의 머리가 땅 위로 굴렀다.

붉게 번지는 피가 돌과 풀 위로 튀었지만, 그 누구도 죽음을 알아차리지 못할 곳.

남자는 단학용의 시신 위로 내공을 터트려 불을 붙였다.

“맹주가 불렀으니 이제 이 산도 이별이구나. 하지만 재미있었다. 은둔 생활.”

남자는 검을 어깨에 걸치고 건들거리며 산자락의 아래를 향했다.

그는 불가능하다고 했던 임무를 수없이 성공시키고, 과거 안과 혜를 죽음 직전으로 몰아갔으며 도현의 몸에 검을 휘저었던 사람.

바로 서후량이었다.

* * *

삼 일 후.

서후량은 제법 상한 얼굴의 남궁천을 보며 한숨을 내리쉬었다.

단목세가에서 쫓겨나 세상을 헤매던 자신을 거둔 사람의 얼굴치고는 지나치게 형편없음에 마땅치 않은 마음이다.

“그간의 일은 모두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조용히 처리하겠습니다.”

“지나치게 이름이 알려져 은둔 생활에 들어간 자네를 불렀으니 미안한 마음뿐이군.”

“은둔 생활도 지쳐 가던 때입니다. 그보다 맹주님, 이제 빈민들을 납치할 수 없으니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원래는 영약을 사용했어야 하는 일이지. 헌데 우리와 때를 같이하여 천마신교와 사혈련도 채취하기 시작하니 영약이 씨가 말라서 그 대신으로 납치를 한 것인데,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결국 다시 영약을 채취해야 할 것 같네.”

서후량은 남궁천이 꺼낸 두강주(杜康酒)가 마음에 든 듯 또 한 잔의 술을 따르며 입맛을 다셨다.

“조조(曹操)가 좋아한 술이라더니 꽤나 맛있습니다. 은둔 생활이 길어져 입맛이 나빠진 것인지는 몰라도 말입니다.”

“갑자기 조조의 이야기가 나오다니 자네도 엉뚱하구먼.”

“그럴 리가요. 조조가 했던 말이 있습니다. 영교아부천하인 휴교천하인부아(寧敎我負天下人 休敎天下人負我). 아십니까?”

“내가 천하 사람들을 저버린다고 할지라도, 천하 사람들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었지.”

“그 말대로입니다. 맹주님이 정체 모를 그놈에게 휘둘린 것은 다름 아닌 맹주님이 직접 나섰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서후량의 뱀 같은 혀가 입술을 휘감았다.

“맹주님은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그리하면 세상의 사람들은 점점 맹주님의 편을 들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 죽인 총관 단학용처럼 제가 물밑에서 적당히 맹주님께 동정을 일으킬만한 일을 만들면 세상은 맹주님이 처한 상황이 가엽게 느껴져 힘을 빌려주겠지요.”

“즉 자네가 무림맹을 적당히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척하고, 나는 다른 사람들의 협조를 편히 얻으면 된다는 말인가.”

“조조가 한 말뜻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그것으로 괜찮을 것입니다.”

살수 같은 습성과 상대의 수를 한참 뛰어넘는 머리는 자신이 최고의 패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서후량은 다음 말을 이어 갔다.

“영약의 건은 사혈련과 천마신교가 똑같이 나선 것이 뭔가가 있다는 것을 뜻하겠군요. 하지만 이쪽은 정파. 명분을 만들어 놈들을 앞지를 수 있습니다. 그것도 저희의 힘이 아닌 다른 힘을 빌려서요.”

“말해 보게.”

“제가 조금 더러운 일을 하면서 여럿 알게 된 사람들이 있지요. 그중에서 종1품 삼사(三師) 태자태사(太子太師)가 있습니다. 그에게 영기의 땅을 찾도록 황실의 사람을 동원하겠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종1품이라면 엄청난 관직이네.”

“말하지 않았습니까? 과거 그가 의뢰했던 일로 저의 부탁을 거절치 못할 것입니다.”

“약점을 쥐고 있다는 말이군.”

남궁천의 입가에 야비한 웃음이 지어졌다. 그러나 서후량의 다음 말에 남궁천은 잠시 웃음을 멈추었다.

“천마신교와 사혈련까지 영약을 찾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저는 숨겨진 영기의 땅을 찾아 영약을 모두 거두고, 영기의 땅을 관리하는 사람들을 전부 죽인 다음 불을 태워서 증거를 인멸하겠습니다. 사혈련과 천마신교가 손도 대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조금 과하게 일을 벌이는 것은 아닌가?”

“상관없습니다. 영기의 땅을 찾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니 황실에 줄을 대는 것이지요. 영기의 땅에서 나오는 흙은 영약의 보존을 오래도록 가능하게 만듭니다. 이것을 우리만 얻고 적은 손도 대지 못하게 하면 이후에는 어찌 되겠습니까. 우리는 급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알겠네. 황실의 사람이 동원된다면 들킬 일도 없고 나는 연기만 계속하면 되겠군.”

남궁천의 얼굴에 조금 전 보였던 야비한 웃음보다 배는 더한 음흉한 웃음이 걸렸다.

“그리고 저는 황실의 인간이 영기의 땅을 찾는 동안 놈을 찾아내겠습니다. 영기의 땅을 찾는 일은 중원에 작은 소란을 일으키게 될 것이니 놈이 꼬리를 드러낼 가능성도 커지겠지요. 영기의 땅을 태우는 것으로 영약을 얻는 것과 동시에 놈을 끌어내어 두 가지 모두를 얻게 될 것입니다.”

“역시 서후량이군.”

남궁천은 사람을 시켜 두강주 열 병을 더 가져왔다.

“이 일이 끝나면 요 앞에 생긴 기루에 같이 가도록 하지. 목천월향이라는 아주 좋은 기루가 생겼더군. 오늘은 이 술로 참아 주도록 하게.”

“그러지요. 하지만 저는 이 술로도 괜찮습니다. 이제부터 재미있을 것 같으니 말입니다.”

서후량은 남궁천과 함께 술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 * *

“으으읍! 으읍!”

“으아아압! 으아압!”

건청과 금채홍은 어둡고 습한 곳에 온몸이 묶인 채 입도 벌리지 못하고 신음을 내뱉었다.

느닷없이 벌어진 일에 손을 쓸 사이도 없이 당한 일이다.

절정 고수 끝자락인 건청과 일류 고수의 마지막에 도달한 금채홍으로서는 어이없게도 힘 한 번을 써 보지 못했으니, 상대의 귀신같은 실력에는 지금의 상황보다도 경탄이 먼저 나올 지경이었다.

건청과 금채홍은 자신들을 납치한 사람의 살기 어린 눈을 보며 침을 삼켰다.

“꽤나 강했다고 생각했지만 형편없는 실력이구나. 딴에는 제법 경계하고 있었던 모양이지만 이렇게나 쉽게 잡히다니.”

“으으읍! 으읍!”

그림자처럼 보이는 신형은 환단처럼 보이는 것을 꺼내 들었다.

그것을 본 순간 금채홍과 건청은 몸을 비틀며 묶인 몸을 풀려 애를 썼다.

세상의 모든 절망이 건청과 금채홍을 덮쳐 왔다.

“자, 이제 이걸 먹어 줘야겠다. 하지만 너무 걱정은 말거라. 고통은 남지 않을 테니.”

“으으읍! 으으으읍!”

“한순간에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러니 그냥 순순히 받아들이거라. 이것이 너희의 운명이다.”

“으아아압! 으아압!”

금채홍과 건청은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그런 절망 섞인 노력의 끝에도 눈앞의 신형은 끝내 가까이 다가와 환단을 눈앞에 들이밀었다.

“입에 물린 재갈을 풀어 줄 테니 조용히 하거라. 아니, 뭐 큰 소리를 질러도 누구 하나 듣지 못할 테지만.”

눈앞의 신형이 건청과 금채홍의 입에 물린 재갈을 푸는 순간.

둘의 목소리가 애원하듯 터져 나왔다.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것입니까.”

“당장 멈춰 주십시오. 이것은 용서받지 못할 짓입니다.”

“마지막 발악이냐. 하지만 소용없다.”

신형은 건청의 입을 강제로 벌려 환단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코를 막고 입도 막아 강제로 삼키게 했다.

건청은 버틸 대로 버티다 이내 환단이 목으로 넘어가는 것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눈 한 번 깜박일 시간이 지나자 건청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안 돼요! 건청 오라버니!”

금채홍의 절규가 급박하게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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