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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36화 (137/270)

136화

“아…….”

서하린의 추적술은 아무것도 모르는 월영이 보기에도 경탄을 자아내게 했다.

단순히 발자국의 흔적을 따라가는 정도로만 생각했기에, 발이 남긴 흔적에서 무공의 경지를 유추하거나 소변을 본 흔적에서 술을 얼마나 자주 먹는지.

그리고 몇 명의 금군이 어디에서 쉬었으며,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모조리 알아내는 것에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그것도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 대충 훑어보기만 해도 알아내니.

‘설마 나의 미래는 암흑인가.’

월영은 사악하고 악독한 서하린으로부터 평생 도망가지 못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놈들이 지나온 길치고는 어제, 그제 이틀 동안 아무런 일도 없었군.”

“혹 우리가 너무 넘겨짚어 생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닐 것이다. 금화가 오갈 정도로 큰돈을 받는데 정상적인 일일 리가 있을까.”

서하린은 속도를 내며 달리듯 튀어 나갔다.

분명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제발 틀렸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반 시진을 넘게 달리고 금군이 묵었을 법한 하나의 큰 마을을 지나쳤다.

서하린은 이후로 한 시진이나 더 달려서 숲이 우거진 산길에 들어서자 잠시 걸음을 멈췄다.

“시간이 신시(申時)를 넘어 유시(酉時)에 가까워가는구나. 아무래도 여기에서 노숙하고 내일 움직여야 할 것 같다.”

“일단 사 온 만두라도 먹지요.”

서하린은 봇짐을 내려놓고 월영에게 건네받은 만두를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잠시 숨을 돌리며 나무에 기댄 서하린의 가녀린 몸이 땀으로 젖어 든다.

“내공을 하루 내내 사용할 수는 없으니 달려온 거리가 멀어서 제법 힘드네.”

“놈들이 이틀이나 움직인 거리를 하루 만에 돌파했으니까요. 그것도 흔적을 따라서 온 것이니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만두하고 육포만으로는 허기가 가시지 않을 테니 산짐승이라도 잡아 오지요.”

“같이 가자. 혼자만 고생시킬 수는 없지.”

오늘따라 이상하게 태도가 부드러운 서하린에게 월영은 조금 이상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 순간 서하린이 만두를 입에 문 채 걸음을 멈추고 비틀린 눈동자를 떠올리자 월영은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

또 무슨 못된 소리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타는 냄새…….”

“저는 아무런 냄새도 안 나는데요?”

“순간 불어온 바람에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툭.

무서운 예감이 맞은 듯 경직된 서하린의 입에서 만두가 땅으로 떨어졌다.

파바바밧.

서하린의 신형이 경공술로 튀어 나갔다.

월영도 벗었던 봇짐을 집어 들고 급히 서하린의 뒤를 쫓았다.

“소저, 얼마나 떨어진 곳입니까!”

“대략 5리 안쪽이다.”

서하린과 월영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멈추지 않고 경공술을 펼쳤다.

그러나 서하린은 길을 가로지르지 않았다.

더 빨리 가는 길이 있지만, 금군의 흔적이 이어지는 대로 따라 달렸다.

“놈들의 발자국이 이어지지 않기를 바랐건만.”

“탄내가 나는 곳으로 이어지니 분명 놈들이 뭔가 저지른 것이 맞는 모양입니다.”

빠르게 달리며 대략 5리가 가까워져 올 때.

헛구역질이 날 정도로 심한 매캐한 냄새가 월영의 코로 파고들었다.

“켁, 쿨럭. 쿨럭. 이게 무슨 역한 타는 냄새가……!?”

“이런 개 같은 놈들이……. 코를 막아라. 사람이 타는 냄새다.”

“사람?”

순간 경공을 멈추고 눈앞에 보인 광경에 월영과 서하린은 이를 악다물었다.

작은 화전 마을.

대략 이삼십 명 정도가 살 법한 하나의 마을이 모두 불타 있었다.

하지만 어디 타들어 간 것이 집과 밭뿐이랴.

반쯤 타들어 간 사람들의 시신은 지독한 냄새와 함께 토악질이 나올 만큼 처참한 모습.

하루가 지났음에도 지금까지 새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광경에 월영은 눈을 부릅떴다.

“소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젠장, 그럴 리는 없을 것 같지만 찾아보자.”

파바밧.

애써 처참한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이 각이 넘는 시간 동안 무너진 집과 타 버린 밭을 뒤지도록 사람은커녕 짐승 하나 산 것이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하나같이 칼에 찔린 채 불태워졌다.

비록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그 처참한 광경은 슬픔이 되어 눈 앞을 가렸다.

휘이이잉.

그때, 눈물을 글썽이는 서하린의 콧가에 바람이 불어왔다. 순간 서하린의 표정이 굳어졌다.

“바람에 또 다른 냄새가 실려 오는구나.”

“무슨 냄새입니까?”

“정확히는 모르겠다. 이것도 타는 냄새이기는 한데…….”

서하린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가장 높은 산봉우리를 향하여 신형을 날렸다.

월영 역시 그녀의 뒤를 쫓으며 빠르게 몸을 날렸다.

‘젠장, 속이 뒤집힐 것 같네.’

월영은 울렁거리는 속이 만들어 내는 단침을 삼켰다.

난생처음 사람 타는 냄새를 맡아서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불길한 무엇인가가 월영의 가슴속을 휘저었다. 그리고 산 정상에 올라서자.

“이 미친놈들이 무슨 짓을…….”

“이…… 이게 도대체!”

서하린과 월영은 하늘 아래 넓게 펼쳐진 땅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연기가 이렇게나…….”

“이곳을 제외하고도 두 곳에서나 더 연기가 피어오르다니. 이것이 놈들의 몸에서 나는 타는 냄새의 정체였나. 개 같은 놈들!”

“도대체 몇 명의 사람들이 죽은 것인지.”

쿵.

깊은 분노가 온몸, 뼈마디 하나에까지 배어들었다.

불타오르는 마을은 모두 화전을 일구거나 작은 농사를 지으며 힘겹게 연명해 가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벌인 것인지 이해가 안 갑니다.”

“나도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알게 되겠지.”

“네?”

“놈들의 입을 찢어서라도 불게 할 것이니.”

서하린의 입에서 살기를 넘어선 죽음이 깃드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자. 관무불가침이고 나발이고 다 죽여 버리겠다.”

“내 평생에 소저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군요.”

“놈에게 천리미향을 발라 둔 것이 다행이다. 기다려라. 하루 만에 따라잡아 줄 테니까. 네놈들의 몸통에서 모가지를 전부 뜯어내 주마.”

월영과 서하린은 눈을 부릅뜨고 마음을 돌처럼 굳히며 살기를 머금은 채 산자락을 타고 내려왔다.

* * *

피에 목이 잠긴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마을 곳곳에서.

그리고 이곳에서도.

“사…… 살려 주세요. 제발 제 아이만이라도. 이제 겨우 두 살입니…… 다.”

“곤란하군. 세 살이라 죽이고 두 살이라 살려 줄 수는 없는 법이니까.”

“제…… 제발.”

콰직.

금군의 검날이 아이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여인의 목으로 박혀 들어갔다.

“으아아앙.”

어미의 죽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안겨 있던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이제 겨우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될 법한 아이의 울음에 금군의 지휘관이 얼굴을 찡그렸다.

“빨리 죽여라. 온정 따위 남아 있을 리가 없지 않으냐.”

“네.”

푸욱.

아이가 울음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숨도 멎었다.

금군은 날 선 검을 들어 올려 묵묵히 피를 털어 냈다.

이미 십수 개의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을 죽이는 동안 양심은 사라진 지 오래다.

타다다닥.

그때 방금 아이를 죽인 금군의 귀에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언제나 사람을 죽이고 마을을 불태우기 직전에 나타나는 사람들이었다.

금군은 눈앞에 나타난 사람들을 향해 굳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반 시진이면 되겠습니까?”

“그렇다.”

짧은 한마디. 그것만을 남긴 다섯의 남자가 피 냄새가 피어오르는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아이를 죽인 금군이 입을 열었다.

“무서운 놈. 저 표정을 볼 때마다 소름이 끼친다니까.”

“행여라도 듣는 앞에서 그런 말은 하지 말게. 저 사람들은 우리 오십 명이 다 덤벼도 이기지 못할 상대이니.”

두 명의 금군은 그들의 무표정하지만 살기가 섞여 있는 표정에 몸이 떨려 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제부터 또 다른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었느니, 바로 약탈의 시간이었다.

금군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걸렸다.

“오늘은 돈이나 좀 나왔으면 좋겠군.”

“그러게 말이네. 바로 전에 불태운 마을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지.”

“푸하핫. 그 마을의 처자를 덮치고 괴롭히다 죽인 놈이 욕심도 많게 돈까지 바래?”

오십의 금군이 각자 나뉘어 마을의 집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분명 지휘관의 입으로도 위에서 허락을 내려 준 것이라 하니, 돈이나 혹은 귀중품이 나오면 마음껏 나눠 가지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오히려 산적들이 이런 짓을 벌인 것처럼 보이도록.

조금 전 아이를 죽인 금군이 물건을 헤집던 도중 문득 궁금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놈들은 자기네들이 직접 할 것이지 왜 우리한테 이런 짓을 시키는 거지? 이 정도로 돈이 되는 일인데 말일세. 어쩐지 궁금하지 않은가?”

“우리는 금군이고 저들은 무림인이잖나. 우리는 위에서 보호해 줄 사람이 있지만, 무림인이 이런 짓을 하고 다니면 무림 공적으로 찍혀 죽임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지.”

“허헛. 뭔가 마을 안에서 찾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게 얼마나 중요한 것이면 작은 마을마다 사람들을 몰살하라고 하는 것인지. 앗! 돈이다.”

“오! 얼마나 되는가?”

“동전 열 냥이군.”

“제법 큰 돈이구먼. 오늘은 재수가 좋은 날일세.”

“대신 미인이 없었지.”

그들은 방에서 눈도 감지 못한 채 죽어 있는 중년 여인의 시신 앞에서 마음껏 돈을 주머니에 넣었다.

주르륵.

죽은 여인의 목에서 흐르는 피가 굳어서 이내 멈추고, 안색이 띠는 빛은 살아 있을 때의 생동감이 사라지며 창백해졌다.

그 시각까지 온통 마을을 뒤지며 돈이 될 것을 챙긴 금군들이 잠시 휴식하고 있을 때 다섯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빈손인 채 조금은 구겨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이 마을을 끝으로 하지. 내일 마을을 발견하거든 전서구를 날려라.”

“알겠소.”

훅.

다섯의 남자들이 신형을 감추자 금군의 지휘관은 잔인한 목소리를 흘렸다.

“삼십 명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나머지는 혹시라도 주변에 살아 있는 자나 목격자가 있는지 샅샅이 뒤져라. 짐승조차 살려 두지 말고 전부 몰살한다.”

“알겠습니다.”

떨어진 명령에 금군들이 흩어졌다.

‘이걸로 또 하나의 마을이 사라졌군. 도대체 뭘 찾기에 이런 짓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상관없나.’

금군의 지휘관 등서진은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을 펼쳤다.

그것은 금으로 만든 제법 고가의 가락지였다.

‘시골의 마을이지만 시집올 때 집에서 소를 팔아 마련해 준 모양이군.’

손수 죽인 여인의 품에 고이 숨겨져 있던 것.

사람들이 죽는 소리가 나자 여인은 아마도 산적이 쳐들어온 것으로 생각하고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서 품에 숨긴 모양이었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지. 손가락에 반지 자국이 선명했으니. 이건 나중에 집사람에게 주면 좋아하겠군.’

화르르르륵!

몇 번이고 마을을 불태운 금군의 익숙한 손길에 화마가 피어올랐다.

타닥. 타닥.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집들이 불길에 싸이기 시작하자, 주변을 확인하러 나갔던 이십의 금군이 돌아왔다.

“옷에 피가 묻은 자들은 새 옷으로 갈아입고 헌 옷은 태우거라. 증거가 사라지고 완전히 불타는 것을 확인하면 철수한다. 또한 일부 시신은 반 정도만 태우고 몸에 칼자국이 있는 것을 나중에 보는 자가 알 수 있도록 하거라. 철저히 산적들이 저지른 짓으로 보여야 한다.”

“네.”

치솟는 불길. 반만 타들어 가는 사람. 혈흔에 찢기듯 붉게 물든 담장의 집.

오십의 금군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웃음을 지었다.

이것이 비록 패악의 길이라 해도 살아생전 이만큼 좋은 일거리는 다시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람의 길을 한번 저버리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한번 길을 저버리면 그다음부터는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비록 악귀가 되었다 하더라도.

껍데기가 사람이라면 그들은 사람인 척 사람들에게 섞여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으니.

어찌 이 쉬운 길을 택하지 않을까.

* * *

타다다다닥.

이미 늦은 밤이지만 서하린과 월영은 빠르게 달렸다.

이미 내공이 바닥을 보이고 온몸이 땀으로 젖어 들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하루가 늦으면 수십의 사람이 죽는다.

그것이 얼마만큼이나 무서운 일인지 잘 아는 월영과 서하린은 계속 달렸다.

피비빗. 타탁! 피비빗!

얼굴을 스치는 나뭇가지가 상처를 내고, 십수 개의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왔지만 상관없었다.

이를 악물고 눈에는 독기를 띄우며 넘어가는 숨을 참았다.

“헉헉, 죽인다. 죽인다. 죽여 버린다.”

서하린의 입에서 똑같이 반복되는 소리.

이미 지나오는 동안 오늘 낮에 금군이 살육을 벌인 또 하나의 마을을 발견했다.

아이들까지 죽어 나간 처참한 광경이 다시 떠오르자 서하린의 꾹 다문 입술 사이로 이가 갈려 나간다.

“전부 죽여 버린다!”

그때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자 서하린은 천리미향이 만든 향에 의지하던 추적을 길가에 남긴 흔적으로 다시 눈을 돌려 더욱 속도를 높였다.

이내 완전히 떠오른 해가 빛무리를 사방에 퍼트리고.

“아마 이쯤에 큰 마을이 있을 것이다.”

서하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을이 보였다.

월영과 서하린은 마을의 입구부터 천리미향의 흔적으로 이미 떠난 금군의 뒤를 다시 쫓았다.

그리고 이 각이 지난 후, 서하린의 얼굴에 서늘한 기운이 배어 나왔다.

“찾았다, 이 개 같은 놈들.”

서하린이 신형을 날리며 검을 뽑아 들고, 월영은 이를 악물며 뒤에 걷던 금군의 다리를 향해 검을 날렸다.

“전부 죽여. 한 놈만 빼고!”

서하린의 분노 가득한 목소리가 공기를 찢으며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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