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이미 닷새째.
금군을 죽인 사천성에서부터 말을 타고 달리는 월영과 서하린의 눈 밑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하루가 넘어가는 축시(丑時)인 지금조차, 계속 말을 몰아가고 있는 월영과 서하린의 얼굴에 드러나는 다급함은 도착하지 못하는 마을의 걱정으로 점점 어두워졌다.
“소저, 잠시 쉬어야 합니다. 말이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어차피 말이 지치면 버리고 새로운 말을 사잖아. 해가 뜰 때까지만 타고 새로운 말을 사면 돼!”
“그게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립니다. 지금은 반 시진이라도 말을 쉬게 하는 것이 더 빠릅니다.”
“젠장, 빌어먹을……. 알았다.”
한밤중의 관도에서 잠시 말을 세우자 월영은 봇짐을 열어 만두를 꺼내 서하린의 입에 물렸다.
“먹어야 견딥니다. 반 시진 동안 잠도 자고요.”
“이러는 사이에 그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일단 빨리 먹고 눈을 감으세요. 제가 깨워 드릴 테니. 소저의 마음은 알지만 조금이라도 쉬어야 더 빨리 갈 수 있습니다.”
“안다. 알고는 있는데…….”
우걱. 우걱.
서하린은 월영의 말뜻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미친 듯이 만두를 씹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먹고 잠시라도 더 잠을 자야 더 오랜 시간 달릴 수 있으니 급히 만두를 삼켜 버린 서하린이 월영을 바라보았다.
“이 다음번에는 내가 너를 깨워 줄 테니 그때 자라. 그리고…… 그…… 미안하다. 내 사정에 휘말리게 해서.”
“별일이네요. 소저가 미안하다는 말을 다 하고요.”
“아니……. 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다. 내가 사람하고 친해질 때까지 떠보는 짓을 많이 해서 말이다. 그동안 내 변덕 때문에 고생이 많았…….”
순간 월영이 서하린의 입을 막으며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압니다. 그러니 빨리 쉬세요.”
“그래.”
서하린은 대답이 끝나자 쓰러지듯 누워 잠에 빠져들었다.
닷새째 잠조차 거의 자지 않았다.
말이 쓰러지면 경공술로 달렸고, 마을이 보이면 말을 사서 다시 달렸다.
월영은 아이들에게 줄 선물이 들어 있는 봇짐을 소중하게 안고 자는 서하린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소저는 너무 직설적이라 오히려 속마음이 보입니다. 그 마음을 몰랐다면 내가 소저 곁에 있을 일도 없었겠지요.”
투박하지만 속정 깊은 그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월영, 그도 뒷골목에서 살며 똑같은 행동을 해 왔거늘.
월영은 졸린 눈을 잠시 비비고는 말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일으켰다.
* * *
다음 날, 월영과 서하린은 해가 지기 직전 강서성과 절강성의 경계에 있는 마을에 가까워졌다.
밤새 달린 말은 아침 일찍 도착한 마을에서 버리고, 새로운 말을 사서 다시 달린 지 여섯 시진이 가까워져 오는 시간이었다.
푸드득. 푸득.
쉬지 않고 여섯 시진 가까이 달린 말은 더는 앞으로 가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서하린은 급히 말에서 뛰어내렸다.
“수고했다. 자유롭게 살아라.”
말의 엉덩이를 가볍게 두드린 서하린의 굳은 표정이 월영에게 빨리 가자는 재촉을 한다.
“요 앞 산길을 돌기만 하면 마을이 보일 거다.”
“빨리 가죠.”
타다다다닷.
두 명의 신형이 경공술을 사용하며 빠르게 산길을 돌았다.
하지만 그 길은 멀지 않음에도 하루에 가깝게 느껴졌다.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다.
그리고.
“……!”
산길을 돌아 마을이 보이기 시작할 때, 서하린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마을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았고, 평상시와 그대로인 모습이었다.
“하아, 하아. 다행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빨리 달려온 보람이 있군요. 앗! 소저!”
월영은 말을 하는 도중 다리가 풀려 주저앉는 서하린을 받쳐 들었다.
“괜찮습니까? 안색이 안 좋습니다.”
“그냥 긴장이 풀린 것뿐이다. 그보다는 네 몰골이 더 만만치 않은 것 같은데.”
“하하, 마을에 가면 우물가에라도 다녀오지요. 소저도 흙먼지 때문에 머리가 하얗습니다.”
“그러지. 오늘은 이 마을에서 편히 쉴 수 있겠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서하린의 느린 보폭에 맞춰 월영은 천천히 마을의 입구로 다가갔다.
안도하는 마음에 비록 지친 몸이지만, 그보다는 안심하는 서하린의 표정이 더욱 마음을 편하게 한다.
하지만 월영은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무엇인가 서늘한 느낌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 아니다.
마을로 들어서는 작은 산길의 나무 아래에서 서하린의 표정이 급변했다.
월영의 심장이 불길함에 빨리 뛰기 시작했다.
“왜 그러십니까, 소저.”
“아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발자국의 수가 너무 많다.”
“어디에 발자국이 있습니까? 저는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풀이 누워 있다. 대충 사십에서 오십 명 정도가 밟은 듯한…….”
마른침이 넘어가고, 이내 심장이 쿵쾅거리며 빨리 뛴다.
순간 서하린의 발걸음이 자신도 모르게 빨라졌다.
“아…… 안 돼!”
눈 한 번 깜박일 시간이 지남과 동시에 서하린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절망이, 두려움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뒤를 쫓는 월영의 마음에도 불안이 싹텄다.
“제발, 만옥아, 순옥아!”
하지만 불안의 마음은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확실함으로 바뀌는 것을 어찌 모를까. 알면서도 아니기를 바랐을 뿐.
“피 냄새!”
월영과 서하린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가슴을 움켜쥐고 마을로 들어섰다. 그 순간.
뿌드드득.
이가 부러질 것 같은 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수십 구의 시신.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의 죽음이 눈앞에 펼쳐졌다.
월영의 입이 급히 벌어졌다.
“소저, 빨리 아이들이 사는 집으로 가십시오. 저는 마을 안을 뒤지겠습니다.”
“알았다.”
손이 떨린다. 다리도 떨린다.
이미 마을 안은 적막만이 흐르고 있음이다.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주변을 돌아보는 서하린의 동공이 텅 비어져 갔다.
‘다 죽은 건가? 정말로? 아무도 살아 있는 사람이 없어?’
서하린은 한 번의 고갯짓을 하고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뛰었다.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 집 마당을 지나쳐 마루 위에 올라서고, 이내 문손잡이를 붙잡는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음에도 서하린은 거침없이 문을 열었다.
아이들이 잘 숨어 있기를 바라면서.
끼이익.
그러나, 그토록 바랐건만.
“마…… 만옥아, 순옥아…….”
붉은빛.
창백한 아이들의 얼굴 뒤로는 온통 검붉은색만이 흩어지듯 깔려 있었다.
이불 위에 곱게 누워 있는 아이들은 무서움에 서로를 안고 있었던 듯했다.
도망갈 줄도 모르는 아이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이불만 뒤집어쓰고 울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것을 누군가가 더러운 신발로 집 안을 헤집고 들어서서, 이내 검을 꺼내고 이불을 벗겨 내 껴안고 있는 아이들을 한 번에 찔러 죽였으리라.
서하린은 아이들의 곁에 앉았다.
“많이 울었구나. 눈도 부었고. 그래도 예쁘네. 만옥이, 순옥이.”
서하린의 손길이 아이들의 젖은 눈가를 훔쳐 냈다.
그리고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조용히 눈을 감기고, 이불을 들어 아이들을 덮었다.
“조금만 자고 있어. 언니 다녀올게.”
서하린은 조용히 일어서 검을 뽑았다.
그리고 텅 빈 눈동자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날 선 검이 떨리는 손아귀에서 흔들렸지만, 서하린은 그래도 마을의 한가운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월영은 서하린이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는 것과 동시에 죽어 있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마을의 중심에 들어섰다.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는 이미 자명했지만, 어째서인지 일을 저지른 자들이 보이지 않았기에 찾기 위해서였다.
‘어디냐. 어디에서 그 흉악한 눈빛을 숨기고 있느냐.’
월영의 날카롭게 다듬어진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면 기감으로 찾아낼 뿐이다.
그때 월영의 기감에 거슬리는 기운 두 개가 걸렸다.
‘겨우 두 명? 그런데 왜 금군이 아니고 무인인가!’
월영은 마을의 가장 안쪽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화르르륵.
마을의 안쪽, 기감이 알려 주는 두 명의 무인들이 있는 곳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그 불길은 미리 기름과 나무를 준비했는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월영의 발이 땅을 움푹 패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쿠웅! 파바바방.
월영은 달리며 검을 뽑았다.
문답무용(問答無用).
더는 그들의 사정 따위 알 필요도, 또한 알고 싶지도 않다.
바람이 빠르게 가라는 듯 월영의 앞에서 갈라졌다.
타다닷. 파앙.
월영의 신형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높은 곳에서 이내 두 명의 무인이 보인다. 월영은 그대로 신형과 함께 한 명의 무인의 머리로 검을 내리꽂았다.
휘이이잉. 촤아아악.
불을 들고 있던 무인이 반으로 갈라져 피를 뿜었다.
월영은 순간 죽어 나가는 무인을 보며, 검을 뽑는 또 한 명을 상대로 유운신법(流雲身法)으로 간격을 벌렸다.
‘일류 고수.’
상대의 경지를 파악하자 월영의 신형이 다시 튀어 나갔다.
이대로 적의 목을 날려 버리려 함이다.
휘이이잉!
월영의 검이 빛을 반사하며 날아가자 검을 든 일류 고수가 막아 내기 위한 검로를 그렸다.
월영은 그대로 검과 함께 적을 잘라 버리기 위해 검을 내리쳤다. 그 순간.
콰직!
느닷없이 적의 몸통 앞으로 검날이 튀어나왔다.
등 뒤에서 검날을 뒤집은 채 척추를 부수고, 몸 앞으로 튀어나온 검날의 뒤에서 서늘한 서하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안, 내가 물어볼 게 있어서.”
“소저! 만옥과 순옥은 어찌 되었습니까.”
“자고 있다. 너무 깊게 잠이 들어 다시는 눈을 뜨지 않을 것 같지만…….”
“이런 젠장.”
월영은 검을 거두었다.
자신조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아이들의 죽음이 슬픈데, 서하린의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애써 묻지 않아도 알고도 남았으니, 서하린은 말 그대로의 슬픔과 분노가 치미는 얼굴로 검을 비틀었다.
“크아아아악!”
“앞으로는 비명 말고 대답을 해라. 금군은 어디에 가고 네놈들만 있는 것이냐.”
“크으윽, 그들은 철수하라 했다.”
“어째서지?”
“대답할 것 같으냐! 끄아아악.”
서하린의 눈에 잔인한 웃음이 지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서하린은 뒤집힌 검날을 들어 올렸다.
척추를 따라 올라가는 검날이 사정없이 뼈를 도려냈다.
촤촤촤촥.
“으아아아악!”
“두 번 묻지 않는다.”
“미친년! 죽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래? 그럼 죽어.”
촤아아악!
검날이 위로 솟구치며 머리까지를 정확히 반으로 갈랐다.
불길이 치솟는 열기 속에서 서하린은 얼음과도 같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월영은 그런 서하린의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내 탓입니다. 내가 소저에게 쉬자는 말만 하지 않았더라면.”
“아니다. 네 말이 맞았다. 그때 쉬지 않았다면 아마 더 늦게 도착했을 거다.”
“소저!”
서하린은 검을 든 채 만옥과 순옥이 있는 집으로 걸었다.
“화마가 아이들을 덮치기 전에 옮겨야겠다.”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맙다.”
월영은 서하린과 함께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둘은 동시에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바로 원흉이라 할 만한 것의 존재를 눈치챘으니.
“온다.”
“저도 느꼈습니다.”
화르르르륵.
서하린과 월영이 서 있는 등 뒤로 집 한 채가 불길에 집어삼켜졌다.
열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로막아 온 마을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때 어두워진 마을의 한 곳에서 다섯 명의 남자가 신형을 드러냈다.
그중에서 가장 앞에 서 있는 실눈의 남자가 웃음과 함께 다정한 목소리를 내었다.
“어라? 사람이 있었습니까? 마을이 타는 것을 본 것은 상관없지만 제 얼굴은 조금 곤란한데요.”
나이가 오십 중반을 넘어섰을 정도의 남자.
순간 서하린과 월영의 표정에 긴장이 흘렀다.
‘상당한 고수다. 우리 둘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하지만 서하린은 남자가 들고 있는 제법 큰 나무 상자로 눈길이 옮겨지자, 긴장보다 더한 분노에 다시금 서늘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이 영기의 땅이 있는 마을이었군.”
“흐음? 뭔가 많이 알고 계시네요?”
“그냥 영약이나 가지고 갈 것이지 사람들은 왜 죽인 것이냐.”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제 얼굴을 보는 건 좀 곤란하거든요.”
“그래? 그렇다면 그 얼굴부터 없애 버려야겠군. 그렇지 않아도 못생긴 얼굴이라 짜증이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서하린의 마음이 불길하고 어두운 검사(劍絲)의 모습으로 검줄기에 휘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