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139화 (140/270)

139화

검에 검사가 휘감기는 것을 보면서도 남자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저 재미있는 장난감 정도를 바라보는 시선. 그의 입에서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흐른다.

“그 정도로 못생겼나요? 집사람은 제 얼굴이 좋다고 합니다만.”

“주제에 혼례까지 치렀나? 아이들을 죽이는 놈이? 만옥이와 순옥이를 살려 내라. 아니면 넌 죽는다.”

“만옥이 순옥이?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사람들을 죽인 것은 제가 아닙니다.”

“개소리하지 마라!”

분노에 떨리는 서하린의 목소리가 울렸지만, 남자의 실눈은 더욱 가늘어졌다. 마치 억울하다는 듯이.

“정말 제가 아니라니까요. 마을 사람들을 죽인 것은 제 부하들입니다.”

순간 실눈 남자의 눈이 커지며 동공이 보였다.

눈 안에서 꿈틀거리는 살기가 서하린과 월영의 심장을 찌를 듯 옥죄었다.

“그런데요, 제 명령에 충실하게 따르는 부하들을 아마 당신들이 죽인 것 같네요?”

화르르륵. 콰아아아.

남자의 표정이 변하는 것과 동시에 불길이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손때 묻은 집을 타고 번지는 불길은 이내 마을 사람들에게까지 옮겨붙고, 허무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육신은 서서히 장작이 타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타들어 갔다.

타닥. 타닥. 타다닥.

남자의 눈매가 경련으로 떨렸다.

죽어 있는 그의 부하 둘에게 불길이 덮쳐 불태우는 것이 못마땅한 것처럼.

이내 남자에게서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거 아시나요? 사람이 불에 타면 지방도 같이 타면서 온통 주변으로 퍼집니다. 그래서 입술이 사람 기름으로 인해 끈적해지는 게 느껴지죠.”

“그런 개소리가 무슨 소용이지?”

“별건 아닙니다. 소저처럼 그렇게 오래도록 검을 뽑고 있으면 날에도 사람 기름이 스며들거든요.”

“그래서?”

“그런 검은 잘 안 베인다는 것이죠.”

파앙!

순간 실눈의 남자가 검을 뽑아 번개 같은 속도로 서하린에게 부딪혔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신형의 움직임.

실로 보법인지 경공인지 구별도 안 될 정도의 속도였다.

서하린은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 올려 막았다.

채애애앵! 투두두둑!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올려 겨우 막기는 하였으나, 팔의 근육과 핏줄이 적이 휘두르는 검의 위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서하린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크윽!”

“어라? 이걸 막네요? 당신 보기보다 제법인데요?”

“웃기지 마라. 네놈만큼은 내가 반드시 죽일 것인데 막지 못할 리가!”

휘잉!

그때 월영이 서하린과 실눈 남자의 틈으로 끼어들며 검을 올려 쳤다.

월영이 생각하기에 검을 검으로 쳐올려 서하린을 빼내려는 것이었지만.

카앙.

월영의 눈에 서늘한 공포와 함께 절망에 가까운 빛이 스며들었다.

있는 힘껏 올려 쳤건만 미동조차 없기에.

남자의 검은 여전히 일도양단(一刀兩斷)을 하기 위하여 서하린을 찍어 누르고 있었다.

“젠장, 그렇다면!”

월영의 신형이 실눈 남자의 뒤로 튀어 나갔다.

등 뒤에서 공격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파바밧. 파밧.

한 명의 절정 고수와 세 명의 일류 고수.

그들이 월영의 앞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그때 실눈을 뜨고 있는 남자의 입에서 월영의 등을 따라 목소리를 흘려 보낸다.

“어딜 가시려고요?”

실눈의 남자가 수공으로 서하린의 가슴팍을 침과 동시에 월영에게 검을 날렸다.

“젠장!”

휘이잉. 카앙.

월영은 눈앞으로 날아오는 검을 급히 막았다.

모든 기를 끌어모아 오른손으로는 검의 손잡이를 쥐고, 왼손으로는 검 등을 잡아 양손으로 버티려는 생각이었다.

촤아아악!

그러나 양팔로 버텼건만 실눈 남자의 검은 그대로 월영의 검을 찍어 눌렀다.

월영의 팔이 꺾이는 순간, 검이 월영의 왼쪽 어깨로 박혀 들었다.

뿌드드득. 콰악! 촤아악!

“크아악!”

“어허? 이거 참, 제가 문제일까요? 검이 두 번이나 막히다니 생각도 못 한 일입니다.”

그때 어이없는 표정으로 피식 웃음을 짓는 남자의 사이로 서하린이 근육이 끊겨 나간 팔을 들어 검을 올려 쳤다.

카앙!

크나큰 실력 차에 방심을 했던 탓인지, 약간의 틈을 두고 검이 뜸과 동시에 월영이 이를 악물고 몸을 빼냈다.

드드득.

월영의 어깨뼈에 박힌 검날이 빠지며 뼈를 긁는 소리를 서늘하게 퍼트렸다.

서하린과 월영은 급히 신형을 뒤로 빼냈다.

“이 정도의 실력인가요? 별것 아니긴 한데 당신들 좀 피곤하게 구네요?”

“네놈의 말대로 검은 이 정도의 실력일 뿐이지. 다른 것은 일류지만.”

“네네, 그러시겠죠. 검만 일류가 아니시겠죠.”

실눈 남자의 이죽거림이 이어지는 것과 동시에 서하린은 월영에게 전음을 날렸다.

[이대로면 죽는다.]

[그렇겠죠. 저놈, 보통 고수가 아닙니다.]

[내가 놈을 상대하겠다. 너는 놈을 상대하는 척하면서 기다려.]

[뭘 기다리라는 것입니까?]

[그건 때가 되면 알게 될 거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만옥과 순옥의 복수를 하겠다. 설사 내가 죽는다고 할지라도.]

[소저? 무슨 짓을 하려는 것입니까. 설마?!]

월영의 전음이 끝나기도 전에 서하린의 신형이 튀어 나갔다.

속임수 없이 몸을 일직선으로 날려 검을 정면으로 들이미는 것이 실로 어리석어 보일 정도.

카앙! 카앙! 카아앙!

세 번의 검격이 실눈 남자에게 들어갔다.

그러나 닿지 못하고 튕기는 검. 팔의 끊어진 근육으로 인해 고통이 퍼져 나간다.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인가요? 이건 이것대로 조금 귀엽게 보이기는 하네요. 하지만 이제 죽어 주세요. 앞으로도 태워야 할 땅이 많거든요.”

“발악? 분명 말했을 텐데? 다른 것은 초일류라고?”

“뭐라고요?”

서하린의 입에 순간 웃음이 지어졌다.

카앙.

월영의 검이 서하린을 대신하여 부딪혀 왔다.

그 순간, 서하린은 흘리듯 검을 빼내며 뒤에 있는 네 명을 향해 작은 병 네 개를 날렸다.

그러나.

검을 들고 틈을 보고 있던 네 명의 무인들은 병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비웃음을 지었다.

분명히 독이 들어 있을 법한 병이지만, 그것을 깨지 않고 튕겨 내는 것 정도는 쉬운 일이었기에.

허공에 떠 있는 병을 향해 한 명의 절정 고수와 세 명의 일류 고수의 검이 뻗어 나갔다.

팅. 티잉. 팅. 팅.

깨지지 않은 병이 오히려 또다시 반대편을 향하자, 네 명의 무인들은 이내 동시에 서하린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이대로 목숨을 끊어 내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 순간 네 명의 무인들과는 반대로 실눈 남자가 고함을 질렀다.

“안 돼! 오지 마라!”

“이미 늦었다.”

실눈 남자는 월영의 검을 튕겨 내며 몸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푹. 푸북. 푸욱. 푸북.

네 개의 병은 미끼. 병에 온통 신경이 집중되어 다른 것은 보지 못하는 그 찰나를 이용하여 서하린은 팔목에 있는 기관 장치에서 독침을 발사한 것이었다.

“……?”

목에 박혀 들어가는 비침이 섬뜩한 소리를 냈지만, 네 명의 무인들은 당했다는 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신형이 무너져 내렸다.

“쿠애애액!”

“크헉!”

네 명의 무인 입에서 피가 토해진다.

그리고 이내 토해지는 피가 덩어리로 변하고, 눈에서도 진득한 핏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죽음을 목전에 두게 된 네 명의 무인들로부터 실눈의 남자는 혀를 한 번 차고 미련 없이 등을 돌리며 냉혹한 표정을 지었다.

“검을 사용하는 무인이 아니라 독을 다루는 인간이었습니까? 어쩐지 검법이 조금 어설프다 싶었더니만.”

“잘난 척한 것치고는 눈치채는 것이 너무 늦군.”

“한 수 배웠군요. 허나 말장난을 하며 시간을 끌어 봐야 소용없습니다. 이제부터 진심을 보일 테니까요.”

실눈 남자의 말에 서하린은 비웃음을 지었다.

“진심? 과연 그런 걸 보일 수 있을까?”

“그것은 또 무슨 개소리입니까? 새로운 속임수인가요?”

“속임수라니. 너야말로 독을 다루는 사람을 우습게 보네. 너도 이미 독에 당했는데 아직도 모르겠어?”

“재미있는 농담이네요. 저는 독에 그리 쉽게 당하지 않는답니다. 게다가 저는 많은 독에 내성이 있습니다. 천독불침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죠.”

“보통 독에 당한 사람들이 너하고 똑같이 이야기한다. 믿어도 좋아. 경험담이니까.”

실눈 남자는 서하린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듯 비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표정과는 달리 실눈 남자는 자신의 검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 같음을 느끼고는 침을 삼켰다.

관자놀이에 흐르는 땀 한 방울.

“해독제는?”

“있을 리가.”

“그렇다면 빠르게 죽이고 해독을 하러 가야겠군요.”

휘이이잉!

실눈 남자의 날카로운 검이 서하린의 육신을 사선으로 가르기 위해 날아갔다.

서하린은 실눈 남자의 떨리는 검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검에는 검사를 두르고 이내 검강과 마주쳤다.

카아아아앙!

“크윽!”

검강이 검사를 잘라 내며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챙강!

서하린의 검이 검강을 버티지 못하고 일격에 반으로 잘려 나갔다.

“꺄아아아아악!”

어깨부터 가슴께를 파고드는 검날.

서하린은 미칠 듯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죽은 아이들을 떠올리며 버텼다.

콰지지지직!

파고드는 검날이 몸을 가르는데도 서하린의 얼굴에 잠시의 웃음이 지어졌다.

무딘 검. 그의 검에도 불타는 사람에게서 나온 기름이 들러붙어 검강이 깨끗하게 둘리지 못했다.

그것으로 인해 파고드는 검날의 속도가 줄어든 것이었다.

텁!

서하린은 자신이 가진 모든 내공을 끌어내어 실눈 남자의 검을 양손으로 잡았다.

호신강기(護身罡氣)를 쓸 정도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기에 검사를 손에 두른 채 잡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일까.

콰직! 콰직!

서늘한 검날이 손바닥뼈까지 밀고 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손바닥이 통째로 잘려 나가기 직전이다.

“끄아아아압!”

가슴께의 살과 피가 무딘 검에 엉켜들었다. 그리고.

서하린은 기어이 양손으로 검날을 잡아 세웠다.

사실은 손이 잘려 나가도 상관없다는 생각까지 했으니.

‘수백 독에 불침인 놈이다. 이런 고수를 죽일 수 있는 독은 현재 가지고 있지 않으니 방법은 이것뿐. 뼈와 살을 모두 내어 주마. 원한다면 내 목숨도 줄 수 있다. 그러니 네 그 재수 없는 얼굴만큼은 반드시 없애 버린다. 만옥이와 순옥이가 편히 잘 수 있도록!’

파바바밧.

서하린은 검날이 멈추자 즉시 오른손을 빼내어 실눈 남자의 옷깃을 붙잡고 왼손으로는 등을 붙잡았다.

몸을 밀착하여 검을 사용할 수 있는 간격을 빼앗기 위함이다.

“이 미친년이! 이거 안 놓아!”

순간 당황한 실눈 남자의 권이 서하린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퍼억! 퍼억! 퍼어어억!

입술이 터지고 코뼈가 부러져 나갔다.

눈동자의 핏줄이 터져 붉은색의 눈물이 튀어 날아갔다.

“커허허헉!”

그럼에도 서하린은 베인 손에 온 힘을 다하여 실눈 남자의 살 속으로 손가락을 비집어 넣었다.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고통을 넘어서는 순간.

“지금이야! 월영!”

“이제야 제 이름을 제대로 기억해 주시네요!”

월영의 검이 날아갔다. 심장을 향해서.

실눈의 고수는 서하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다시 권을 날렸다.

빠악. 퍼억. 콰직!

이가 부러져 날아가고, 광대뼈는 부서지며 함몰됐다. 눈동자가 찢겨 나갔다.

그러나 결코 잡고 있는 손을 놓지 않았다.

그때서야 손의 존재를 깨달은 실눈 남자의 권이 서하린의 손아귀로 날아갔다.

뚜두둑. 뚜둑!

손목뼈가 부러지고 손가락의 뼈가 조각났다. 그러나 서하린은 놓지 않았다. 절대로.

푸우우욱!

그 순간 월영의 검이 실눈 남자의 심장을 꿰뚫었다.

“커헉, 이런 미친 짓을…….”

“쿨럭, 독에 당했다는 거짓말에 속았으니 검날에서 힘이 빠지지. 한 수 더 가르쳐 줬으니 빨리 지옥으로 꺼져라.”

심장을 꿰뚫린 실눈 남자의 입에서 이내 걷잡을 수 없을 만큼의 피가 솟구쳤다.

휘이잉! 촤아아아악!

그러나 뿜어지는 피에도 월영은 상대가 초고수임을 잊지 않고 심장에 박힌 검을 뽑아 목을 날려 버렸다.

목이 땅으로 떨어지고, 신형이 무너지는 순간, 월영은 서하린의 몸을 받아 들었다.

“서하린 소저!”

“컥, 쿨럭. 이름 부르지 말라니까.”

“너무 심하게 다쳤습니다. 처음부터 이러려고 한 것입니까!”

“쿨럭, 쿨럭. 쿠애애액.”

핏덩이가 서하린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월영은 서하린의 상처를 보자 가슴이 뜯겨 나갈 것만 같다.

얼굴이며 눈동자, 이빨 하나 성한 것이 없다. 그뿐인가.

가장 중한 상처는 바로 왼쪽 어깨부터 가슴 위까지 잘린 창상(創傷)이다.

서하린의 옷 위로 피가 차오르고, 이내 바닥으로 쏟아지듯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이미 한쪽 폐부도 일부 잘려 나갔으니 숨을 쉴 때마다 피가 튄다.

“쿨럭, 쿨럭. 나…… 아무래도 죽나 봐.”

“됐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남은 내공을 상처로 모아 출혈부터 막으세요. 나머지는 내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

월영은 실눈 남자가 소중히 들고 있었던 나무 상자를 급히 열었다.

분명 그 안에는 서하린과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라면 영약이 들어 있으리라.

그리고 예상대로 상자 안에는 소중하게 흙에 담아 놓은 여럿의 영약이 보였다.

월영은 상자 안에 삼처럼 보이는 것을 꺼내 짓이기기 시작했다. 얼핏 듣기에도 천년삼이나 만년삼은 출혈을 멎게 해 준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서하린의 상처에 미친 듯이 발랐다.

주루룩. 툭툭.

외견상으로는 피가 조금씩 멎어 갔다.

하지만 과연 몸 안에서도 피가 멈췄을지는 모를 일이다.

월영은 나무 상자 안에 든 것 중에서 무처럼 생긴 것을 서하린의 입에 넣고 삼키게 했다. 이것이 만년하수오라면 분명 선천진기의 소모를 막아 주고 생명 줄을 늘려 줄 것이었다.

꿀꺽.

미끈한 것이 서하린의 목을 타고 넘어갔다.

월영은 거친 숨소리가 즉시 가라앉는 것을 느끼고는 서하린을 들어 올렸다. 영약의 효과가 있음이다.

“젠장, 이다음은! 의원인가?”

하지만 의원이라 할지라도 이만큼의 심한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방법이! 분명 뭔가 방법이 있을 텐데!”

그때 월영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이대로 항주까지 간다. 내가 숨이 차서 심장이 멈추고 폐부가 터져 나간다 해도 상관없다.’

월영의 시선이 서하린에게 향했다.

“제발 별유천지에 도착할 때까지 죽지 마시오.”

월영은 모든 내공을 끌어내 경공술을 펼치며 미친 듯이 길을 찾아 산길을 뛰쳐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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