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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40화 (141/270)

140화

온몸으로 땀이 흘렀다. 젖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월영은 뛰고 또 뛰었다. 그러나 그런데도 절망이라는 감정이 절절히 가슴을 휘저었다.

불타는 마을을 나온 이후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지만, 마을은 절강성에 있었음에도 끝자락에 있는 곳이기에 항주까지의 거리는 수백 리에 달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포기도 하지 않았다.

만신창이가 된 서하린의 모습이 가슴을 쪼갤 듯 아프게 파고들었다.

이가 부러져 날아간 입에서는 간간이 신음이 흐르고, 찢긴 눈동자에서 흐르는 붉은 눈물은 함몰된 광대뼈 사이로 흘러 들어가 고였다.

몸에서는 고열이 치솟고, 안색은 점점 창백해지기만 했다.

서하린은 아픈 게 아니라 죽어 가고 있었다.

“허억, 허억. 제발 견뎌 주십시오.”

마을이 보였기에 말을 샀다. 그러나 그 말도 지쳐 쓰러졌다.

그래서 경공을 썼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내공이 다했기에 온전히 다리의 힘만으로 달리고 있었다.

눈앞은 이미 흐려진 지 오래고, 다리에는 감각이 없었다.

이미 세 시진을 넘게 달리고 있었으니까.

타다다닷.

이미 약해진 악력으로 인해 더는 안아 들지 못한 채 껴안듯 서하린을 품고, 목전까지 위액이 넘칠 정도로 속이 뒤집혀도 오직 바라는 한 가지. 제발 서하린이 살기를.

“흐으으…….”

“제발 소저! 제발! 젠장, 다시 한 번만 말을 살 곳이라도 있었으면!”

희미한 신음이 흐른 이후, 이제는 서하린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월영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진다. 설마 하는 섬뜩한 느낌이 골수를 타고 흘렀다.

“소저! 눈 좀 뜨십시오! 아니, 제발 숨을 쉬어 주세요!”

하지만 미동도 없이 잠이 든 것만 같은 모습. 이미 서하린은 죽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휘청.

이미 모든 힘이 다한 것은 서하린뿐만이 아니었다.

한계를 넘어선 지 한참 지난 다리가 풀리며 월영의 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끝내 마지막의 기운을 쥐어짜 균형을 잡으려고 했지만, 이를 악물고 버티는데도 속절없이 몸뚱이는 땅으로 처박히고 있었다.

“젠장!”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는 서하린을 안고 월영은 자신의 등을 땅으로 향하게 했다.

최소한 서하린이 더는 다치지 않았으면 했다.

설사 이미 죽었다 하더라도 이미 만신창이가 된 그녀의 몸에 더 이상의 상처만이라도 생기지 않게 하고 싶었다.

“제발! 으아아아아!”

절망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제 땅을 구르면 경련이 일어나는 다리로는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을 알기에.

그렇게 자신에게 안긴 채 서하린이 죽게 될 것이 떠오르자 월영은 다시 한번 고함을 질렀다.

“안 돼!”

아무도 들을 리 없는 산속에 허망한 목소리가 퍼져 나갔다.

* * *

사마정의 죽음 이후.

그의 목숨으로 일궈진 평온이라고 부른다면 너무도 잔인하다 할지 몰라도, 조용한 일상의 끝에서 천일영은 사마정의 얼굴을 선명히 떠올렸다.

그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해 주는 것만이 사마정이라는 사람이 살아 있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하오문 문주 세하월의 정보로는 남궁천이 그간 소홀히 했던 무림맹의 일을 성실히 하고 있다고 했던가. 그대로 움직이지 말고 있어라. 힘의 균형을 잡아 주는 것이 네 역할이니.’

그러나 조용한 일상과는 달리 천일영의 기감은 최대로 펼쳐져 있었다.

무려 일백오십 리에 달하는 기감. 안과 혜, 그리고 세하월이 주인으로 있는 하오문에서도 남궁천을 감시하고 있지만, 남궁천이 눈속임을 위한 조용함을 연기할지도 모르기에.

‘머리가 아프군.’

넓게 퍼진 기감에 잡히는 수만의 사람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기감은 거의 오백 리에 가깝게 펼칠 수도 있지만, 아무리 탈마의 경지에 이른 천일영이라 할지도 그 넓은 거리 안에 있는 것을 전부 느끼는 것은 무리이기에 한정 지은 것이 일백오십 리. 하지만.

‘최대한 수상한 기운만을 추리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수가 너무 많다.’

무인들만 골라서 추릴 수도 없다.

상단이 고용한 표사가 수십의 상인들과 함께 섞여 있다 한들 수상히 여길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수많은 사람이 뭉쳐 있는 것도 모두 의심할 수는 없다.

당장 이곳만 해도 군항이 있기에 금군들이 수십, 혹은 수백씩 몰려다니니.

‘무공의 경지가 절정 고수 이상인 사람들과 빠르게 이동하는 무인들, 또한 지나치게 기운을 죽인 자들 정도만 보면 되겠지.’

천일영은 관자놀이를 한 번 누르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 앞으로 백유화와 금채홍, 그리고 건청이 비무를 벌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딱! 따닥! 따다닥!

천일영의 명에 의해서 내공을 금지당한 채 무게 25관에 달하는 대검(大劍)을 휘두르는 세 명의 신형은 땀범벅이었다.

무게를 끝으로 모으고 손잡이를 가볍게 만들어 균형이 맞지 않는 검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손목 마디가 끊어지는 것만 같은 고통을 온몸에 각인시켰다.

이것은 천일영이 주문하여 만든 검으로, 팔목과 허리, 그리고 어깨의 근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었다.

휘이이잉. 파악.

그때 백유화가 지쳐서 검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는 금채홍의 품으로 파고들어 일격을 가했다.

검은 비록 날이 없기는 하나, 무게가 가진 힘이 금채홍을 땅바닥으로 고꾸라트렸다.

“꺄악!”

“흐흐흐, 검의 무게 때문에 허리를 너무 숙이니 반응이 느린 것 아니냐. 그리고 기억하겠지? 오늘 비무에서 제일 많이 진 사람은 연무장 삼백 바퀴인 것을.”

백유화가 짐짓 잘난 척을 하며 금채홍의 목에 검을 들이밀었다. 그러나.

“너도 지나치게 허리를 숙인 것은 마찬가지다.”

“에엣?”

천일영이 백유화의 다리를 툭 건드리자 쓰러진 금채홍의 몸 위로 무너지듯 쓰러진다.

백유화도 이미 다리 힘이 풀려 서 있기조차 힘들 지경이었기에.

“까악.”

“으악!”

백유화와 금채홍의 몸이 서로 포개졌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 미인 둘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아름다운 광경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워요. 무거워요. 백유화 님, 빨리 일어나세요.”

“나라고 네 끈적한 땀이 내 몸에 닿는 것이 좋겠느냐. 게다가 땀 냄새!”

“백유화 님도 마찬가지거든요? 이게 어디 여인의 몸에서 나는 냄새냐고요.”

백유화와 금채홍이 서로의 얼굴과 몸을 밀어내며 투덕거릴 때.

콩. 콩.

건청이 옆에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백유화와 금채홍의 머리 위를 검으로 때렸다.

“이걸로 제가 이겼네요.”

“야! 이 비열하고 치사하며 악독한 놈아! 쓰러진 사람의 머리를 공격하다니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냐!”

“아니…… 그렇게 서로 포개져 있으면 누구나 할 일 아닙니까. 등 뒤에서 공격해서 한꺼번에 꼬챙이에 꿴 것처럼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하셔야죠.”

“크아아악! 이 망할 점소이 놈! 내 몸에 세 배나 되는 데다 근육까지 많으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서 미치겠네. 내공만 사용할 수 있으면 이미 저세상으로 보냈을 것을!”

콩.

그때 건청이 백유화의 머리 위를 한 번 더 검으로 때렸다.

“또 이겼습니다. 제일 많이 진 사람은 연무장 삼백 바퀴 아시죠? 이제 슬슬 뛸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크악! 열 받아! 넌 죽었어. 이 망할 놈, 지금 당장 동파육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네네, 그러시든지요. 백유화 님이 열심히 뛰는 동안 저는 동파육이나 먹고 있겠습니다. 아! 맛있겠다.”

“아아악, 혈압 올라!”

백유화가 뒷목을 잡고 콧김을 뿜으며 건청에게 검을 향했다.

그러나 그 시선의 끝은 건청이 아니라 천일영을 향했으니, 억울함이 가득 담긴 심경이 눈동자에 한가득 비친다.

떨리는 팔 때문에 검도 흔들리고, 이내 백유화의 눈에서 기어이 눈물이 글썽거렸다.

“천마님, 제가 팔다리가 가장 짧고 힘도 없습니다. 이건 너무 불공평합니다. 제 가녀린 팔이 흔들리는 것 좀 보십시오.”

“평소에도 만년한철을 녹인 강선을 수십 관의 무게로 내공도 없이 들고 다니는 녀석이 무슨.”

“쳇, 들켰네.”

백유화는 연기로 뽑아낸 거짓 눈물을 쏙 집어넣기는 했지만, 입은 여전히 튀어나온 채 말을 이어 갔다.

“그래도 불리한 것은 맞습니다. 간격도 제가 제일 나쁠 수밖에 없고, 외공은 남자인 건청을 따라갈 수 없는 법이니까요.”

“그렇게 따지면 제일 불리한 건 채홍이다. 너는 초절정 고수, 건청은 절정 고수지만 채홍이는 일류 고수가 아니냐. 검을 사용한 세월이 다르니 경험도 훨씬 적구나.”

“쳇, 이것도 안 통하네.”

백유화의 투덜거림에 천일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벌써 한 달이 넘도록 하루에 여섯 시진 가까운 시간을 굴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음을 모를 리 없음이다.

“그래, 알겠다. 그럼 잠시 쉬고 난 후에 셋이 나에게 모두 덤벼들어라. 세 명 중 한 명이라도 검이 내 몸을 스치기만 하면 공격이 성공한 것으로 인정하고 오늘 연무장을 뛰는 것은 면하게 해 주마. 당연히 내공도 마음껏 사용하거라.”

“정말이지요? 검도 이 괴상한 거 말고 제가 쓰던 것을 사용해도 좋습니까?”

“검부터 강선까지 맘대로 쓰거라.”

“으흐흐흐흐흐. 그 말씀 후회하실 겁니다.”

백유화의 얼굴에 비열함이 가득해졌다.

딱 봐도 뭔가를 꾸미고 있는 악당의 표정이다.

하지만 천일영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방금 말을 하면서도 백유화가 손가락으로 천일영 몰래 강선을 펼쳐 두고 있는 것을.

이미 천 개가 넘는 강선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지만, 천일영은 백유화의 까딱거리는 손가락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금채홍을 바라보았다.

“채홍이는 잠시 이리 오거라.”

“네, 공자님.”

바닥에 눕다시피 엎어져 있던 금채홍이 겨우 몸을 일으켜 천일영에게 비척비척 다가왔다.

다 죽어 가는 얼굴과 함께 눈 밑에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는 입을 열기도 힘들 정도의 상태임을 알게 해 줄 정도.

“쉬는 동안에 잠시 이야기나 할까 하는구나.”

“이야기요?”

“그래, 옛날에 우라고 하는 왕이 있었다. 그는 왕이 된 이후에 여러 가지 일을 벌였는데, 특히 하천을 정비하고 토지를 경작하는 데 집중했지. 그는 왕인 자신이 있는 중앙을 기준으로 동서남북으로 구역을 나누고 차이를 두었는데 당연하게도 중앙이 가장 번성하게 했다. 이후 우는 나라를 9주로 나누어 더욱 세심하게 구역을 쪼갰다. 그랬던 이유는 복잡한 제도를 폐지하고 쉽게 일을 할 수 있게 하여 서로 교류가 쉽게 만들기 위해서였지.”

“에엣?”

금채홍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흘렀다.

그것은 천일영이 이야기를 하면서 손가락으로 금채홍의 단전을 시작으로, 동서남북과 9개의 방향을 기도와 혈도를 따라 그렸기 때문이었다.

“우가 그렇게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는데, 복잡한 제도를 폐지하고 중앙의 힘을 강하게 하자 동서남북과 9주에서 중앙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자신들이 사는 지방이 번성케 하고 싶었으나 우가 왕이 되기 전에는 너무도 절차가 복잡하여 불가능했던 일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지. 그래서 우는 중앙의 힘을 강하게 하면서도 힘을 나누어 주었다. 그 결과 중앙뿐만 아니라 동서남북과 9주도 모두 잘살게 되었다. 그리고 우가 원하면 동서남북과 9주는 모두 힘을 빌려주어 결과적으로 중앙이 더욱 강성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금채홍은 여전히 자신의 몸에 손가락으로 기도와 혈도, 그리고 단전을 오가는 천일영의 손가락을 느끼며 골똘히 생각에 사로잡혔다.

“우라는 왕은 그럼 힘이 필요할 때 빠르게 도움을 청할 수 있었습니까?”

“당연하지. 그 때문에 복잡한 절차를 폐지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힘을 다 쓰고 나면 어찌 되었습니까?”

“그들은 빠르게 동서남북과 9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도 계속 힘을 유지한 채 말이다.”

“아?!”

“재미있었느냐? 하나라의 왕 하후(夏后)의 이야기다. 그의 본명은 우이고, 왕이 된 이후에 이름을 고쳤지.”

천일영이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마치자 금채홍은 자신의 몸에 그린 선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기도에 흔적을 그린 것은 그동안 금채홍이 느끼지 못한 곳.

분명 폭발적인 기를 터트리고 싶은데 어디가 문제를 일으키는지 그동안 알지 못했음이다.

‘절차가 복잡한 것을 간편하게 만들고, 동서남북 네 방향과 9주……. 그리고 단전에만 내공을 두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온몸에 퍼트려 네 방향과 아홉의 방향에 기를 순환시켜 두면…….’

열 번 눈을 깜박일 시간이 지나자 금채홍의 눈에 선명하게 공자님의 손가락이 지나온 자리가 떠오른다.

화아아아악.

순간 기운이 솟아오르며 금채홍의 몸을 휘감았다.

“고…… 공자님?”

“깨달음이다. 이것으로 절정 고수가 되었구나. 어서 운기조식을 하거라.”

“네? 네!”

금채홍은 커다란 눈을 끔벅거리며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이한 일이다.

‘이렇게 쉽게 깨달음을 얻어도 되는 건가?’

무림을 오래 겪지 못한 금채홍은 알지 못했음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 모든 무인이 그토록 원하는 기연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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