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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41화 (142/270)

141화

금채홍이 절정 고수의 경지에 올라 기운을 흡수하는 동안, 잠시 쉬며 땀을 말리고 있던 백유화와 건청의 표정은 평상시와 별반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알기 힘든 기묘한 위화감이 가슴속에서는 꿈틀대고 있었으니.

‘얼마 전에 해가 바뀌었다 해도 채홍이의 나이는 이제 겨우 스물둘이다. 그런데 절정 고수라니 이건 너무 지나치게 빠르지 않은가.’

건청도 한때 신동(神童)이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런 그조차 나이 스물에 일류 고수가 되었고, 서른에 절정 고수가 되었을 때는 종남의 홍복(洪福)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사십 세에서 오십 세 사이에 절정 고수가 되어도 빠르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무림의 평균적인 수준인 것을.

‘현재 무림에서 스물두 살에 절정 고수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 채홍이 혼자일지도.’

금채홍을 바라보는 건청의 눈길이 거칠지는 않지만 조금은 두려운 기색이 섞였다. 그리고 그것은 백유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만든 환단의 효과. 그리고 천마님의 무공 지도가 있었다 한들 상상도 못 할 속도다. 그러고 보니 강선에 검기를 흘리는 것도 불과 한 달 만에 깨우쳤지.’

문득 백유화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혈통(血統).

본능이 이끄는 대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분야에서 대성을 거두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글이나 그림, 혹은 시와 같은 것에만 한정되지 않고 무공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가문의 피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경우가 많으니, 오랜 세월 무림에서 명문 오대 세가의 이름이 땅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채홍이가 명문 무가의 자녀라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뭐, 상관없나. 그 어떤 피가 흐르든 채홍이는 채홍이니까. 그 피가 악귀의 피라 할지라도.’

백유화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저 착하디착한 금채홍이라면,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저런 재능이 내려진 것에 안심이 되기 때문에 지어지는 웃음이었다.

* * *

한 시진이 흐른 후.

운기조식이 끝난 금채홍에게 백유화와 건청이 진심이 가득한 말을 건네었다.

“절정 고수가 되었구나. 이제 무림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채홍아, 이제야 검사를 이용해서 강선을 다루게 되었구나. 앞으로 오 년이나 십 년 후쯤의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벌써 경지에 오르다니 내가 다 자랑스럽다.”

“모두 공자님과 백유화 님의 덕입니다. 건청 오라버니도요.”

금채홍이 붉어진 얼굴로 쑥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아마도 본인은 절정 고수가 되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를 터. 백유화는 그런 금채홍을 보고는 송곳니가 보이도록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곁에 섰다.

“채홍아, 빨리 그 힘을 시험해 보고 싶지 않으냐. 공자님이 하신 약속을 지키게 해야지.”

“아! 그러고 보니 무슨 수를 쓰더라도 공자님에게 스치기만 하면 오늘 연무장을 뛰는 벌칙을 면해 주신다고 하셨지요.”

백유화가 붉은 혀를 내밀고 입술을 핥는다.

이번 참에 금채홍을 부추겨 천일영에게 한 방 먹이고 싶은 것이었다.

실력 차가 지나치게 뚜렷하여 그간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일인지라, 오늘에 와서 어쩌면 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었기에 표정에는 야비함이 드러났다.

‘채홍이가 운기조식을 하는 동안 이미 강선 만 개를 펼쳐 두었다. 오늘이 유일한 기회일지도.’

백유화의 발걸음이 앞으로 나섰다. 마치 천일영에게 선전 포고를 하듯.

“이제 시작해도 되겠지요? 약속은 반드시 지키셔야 합니다.”

“때마침 좋은 기회일지도 모르겠구나. 오늘 네가 화경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격의 차이를 느끼게 해 주마.”

일백오십 리에 달하는 기감이 머리를 어지럽혔지만, 천일영은 관자놀이를 한 번 지그시 누르고는 무극지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파바방!

잠시의 틈도 주지 않기 위해 백유화가 빠르게 움직인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이기지 못할 상대.

튕기는 손가락 사이로 공기 터지는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백유화의 입에서 빠르고도 단호한 목소리가 튀어 나갔다.

“채홍이와 건청은 각각 천마님의 옆으로 뚫고 들어가라. 길은 내가 트겠다.”

“네!”

타다다닷.

금채홍이 오른쪽으로, 건청이 왼쪽으로 각각 신형을 날렸다.

순간 금채홍의 얼굴에 밝은 웃음이 지어졌다.

그간 경공에서 건청에게 한참을 밀렸는데 이제는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피비비빙!

익히 백유화와 함께 있으며 익숙해진 강선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

금채홍은 소리에 맞춰 신형을 날렸다.

타다다닷. 타앙!

건청과 금채홍을 가로질러 날아간 강선 수백 개가 천일영을 압박하고, 강선 수백 개를 허공에서 갈라 버리는 천일영의 틈을 비집고 건청과 금채홍이 들어섰다.

건청의 검이 옆구리로, 금채홍의 검이 천일영의 오른팔로 각각 날아가는 순간.

“계획이 나쁘다고 하지는 않겠다만, 강선이 지나치게 빨랐다.”

“에엣?”

빠박. 파앙!

순간 천일영의 왼팔이 공기를 터트리며 건청의 어깨에 장권을 때려 박고,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한 무극지검의 면이 금채홍의 옆구리로 날아든다.

건청과 금채홍은 기묘하게 움직여 예측할 수 없는 천일영의 신형에 이를 악물었다.

퍼억!

“커헉.”

“크윽!”

건청과 금채홍의 신형이 엄청난 충격과 함께 뒤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 틈새를 향해 날아드는 신형. 백유화다.

“이때를 노렸습니다.”

“백유화다운 방법이군. 건청과 금채홍의 속도를 알면서도 그보다 훨씬 빠르게 강선을 날렸던 것인가.”

처음부터 건청과 금채홍이 얻어맞고 날아갈 경로를 머릿속으로 그렸던 백유화의 손에서 강선 오천 개를 움직일 내공이 모이는 순간.

촤라라라라락!

천일영의 곁으로 강선의 날카로운 예기가 몰려들었다.

“저 둘을 제물로 바쳤으니 분명 스칠 것입니다!”

“건청이랑 채홍이 안 죽었다.”

천일영의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강선이 천일영의 곁으로 날아드는 것과 같이하여 주변으로 바람이 모여들었다.

휘이이이잉. 파라라라락.

바람이 강선의 속도를 늦추는 사이, 허공에서 무극지검이 검로를 수백 번 그린다.

그때 백유와의 얼굴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지금이다.’

피비비빙. 피빗!

허공에서 수백 번의 빛을 가르던 무극지검이 지나온 자리의 뒤로, 백유화의 검강이 스며든 강선 수천 개가 다시 날아들었다.

건청과 금채홍을 제물로 바친 첫 번째 미끼를 이어 바람을 몰게 만든 두 번째 속임수.

그리고 지금 본 공격인 세 번째 강선이 날아들었다.

피비비빙!

백유화의 얼굴에 확신의 표정이 떠오른다. 그러나

파바바방. 파방.

천일영의 손에서 뭔가 기운이 터지는 것이 보였다.

백유화는 이를 악물며 그 기운을 피해 강선의 경로를 바꿨다.

촤라라라락.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그랬던 강선이 속도를 잃은 채 제멋대로 천일영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천일영의 무극지검이 허공으로 들린 순간.

투두두두두둑.

소리도 머금지 못할 만큼 얇은 강선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백유화가 낭패의 빛을 얼굴에 띠며 신형을 뒤로 빼려 했다.

빠르게 다음의 수를 쓰기 위함이다.

휘이이잉.

하지만 어느새 천일영의 신형이 눈앞에 서 있었다. 백유화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에헤헤. 천마님?”

“채홍이와 건청을 미끼로 사용했는데, 너만 멀쩡하면 안 되지 않겠느냐.”

“자…… 잠깐만요!”

씨익.

천일영의 살벌한 웃음이 지어지고.

빠악!

얼굴 정면으로 날아든 천일영의 장권에 백유화의 신형이 날아갔다.

“케엑! 으갸갸갸. 아파, 아파!”

“겨우 그 정도로 앓는 소리이냐.”

쿠당당당.

백유화의 신형이 바닥을 수십 바퀴 굴렀다.

하지만 백유화는 즉시 몸을 일으켰다. 혹시 다음 공격이 이어지지 않을까 해서다.

주륵.

백유화의 코에서 두 줄기의 피가 흘렀다.

백유화는 삼 장 거리에 떨어져 있는 천일영을 흘끔 보고는 쓰러져 있는 건청과 금채홍을 발로 툭툭 찼다.

“아파서 미치겠네. 건청, 채홍아, 빨리 일어서라.”

“으윽, 무슨 장권이 뼈를 부술 것처럼 충격을 주다니.”

“너무 아파서 토할 거 같아요. 그나저나 백유화 님! 건청 오라버니와 저는 미끼였습니까? 너무해요!”

“웃기는 소리. 이 정도라도 해야 옷깃 하나 스칠까 말까다.”

백유화의 말에 금채홍은 절정 고수에 들어서서 어찌 될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하던 자신의 어리석음에 고개를 숙였다.

중원 십육 대 고수 백유화가 미끼를 써도 옷깃 하나를 스치지 못한다.

‘젠장.’

백유화도 예상을 넘어서는 천일영의 무공에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생각도 못 했다. 천마님이 내공을 밖으로 꺼내어 사용하는 것을. 분명 강선을 내가 조정하는데도 천마님이 맘대로 움직였지. 이건 내공을 몸 밖으로 꺼내 강선을 공자님이 마음대로 움직인 것이다. 항상 사람을 놀라게 하는 분이시라니까.’

백유화는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코에서 흐르는 피가 입가에 머물렀기에.

그 순간 피를 핥던 백유화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잠깐! 입이라?! 이거라면 통할지도 모르겠는걸?’

백유화의 얼굴에 다시 한번 야비하고 사악한 표정이 떠올랐다.

“채홍아, 네가 가장 앞에 서거라.”

“제가요?”

“꼭 너여야만 한다. 그리고 건청은 채홍이의 뒤에서 기회를 봐라. 때가 오면 내가 이끌겠다.”

피비비빙.

아주 작은 소리가 건청과 금채홍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소리인가.

‘강선으로 몸을 이끌어 몇 배의 속도로 공자님에게 다가가게 하려는 것이군.’

건청의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또한 강선을 이렇게 사용하는 데 감탄이 나온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실패하면 다음은 없다.”

“네!”

백유화의 말대로 금채홍이 앞에 나서며 금룡참월하검을 뽑았다.

분명 백유화가 자신의 신형을 빠르게 이끌어 줄 테니 그대로 틈을 파고들 생각에 발을 떼는 순간.

‘어째서?’

빠르게 나갈 것으로 생각했던 몸은 굳은 듯 그대로였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몸 대신 자신의 입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분명 백유화가 강선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그리고 입이 벌어지자.

“못된 공자님! 이 검으로 그 엉덩이를 때려 주겠어요!”

다시 입이 닫히는 순간, 백유화의 강선에 이끌린 신형이 튀어 나가며 금룡참월하검이 허공을 가른다. 그리고 금채홍의 악다물어진 입이 다시 한번 열렸다.

“악독하고 사악한 공자님. 맨날 죽도록 굴리면서도 뒷짐이나 지고! 게다가 웃기나 하고!”

카앙.

금채홍의 검이 천일영의 무극지검과 부딪힌 순간.

“얼굴만 잘생기면 다입니까? 이렇게 만날 막 굴리는 공자님 따위! 절대 싫어요!”

순간 금채홍의 신형이 뒤로 빠지며 천일영의 장권을 피한다.

그리고 그대로 허공으로 몸이 떠올라 세 바퀴를 도는 순간, 금채홍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백유화 님! 강선으로 제 입을 벌리고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제가 공자님에게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잖아요!”

“바보 녀석! 이미 효과가 있는 걸 눈치채지 못했느냐.”

비록 금채홍의 입만 강선으로 벌리고 말은 자신이 했건만, 천마님의 몸이 순간 둔해지는 것을 확인한 백유화의 얼굴에 야비함이 가득 찼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런 소리를 들으면 그 누구라 할지라도 제정신을 순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건청!”

“네!”

건청의 신형이 튀어 나가자 백유화의 강선이 그 속도를 높인다.

그리고 건청의 검이 천일영을 향해 뻗어 나가는 순간.

카앙.

그와 동시에 금채홍의 검이 천일영의 턱 아래 사각을 향해 치고 올라갔다.

그리고 그 순간 금채홍의 입이 다시 벌어지고.

“이 검에 맞아 주지 않으면 평생 싫어할 거예요!”

백유화가 제멋대로 떠드는 말에 천일영이 다시 움찔거린다.

건청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짜 야비하고 사악하며 더러운 수를 쓰는 걸로는 중원 최고다.’

그러나.

잠시 움찔거리며 멈춰 섰던 천일영이 몸을 뒤로 빼며 금채홍의 검을 피하면서 건청의 다리를 걷어차 균형을 흩트렸다.

타탓. 파앙.

건청의 몸이 흐트러짐과 동시에 무극지검이 허공으로 날아간다.

천일영은 무극지검을 허공에 던지는 것과 동시에 양손으로 건청의 명치를 향해 권을 날렸다.

퍼억! 콰아앙.

건청의 몸이 날아가 연무장의 돌바닥에 퉁겨지며 뒷산까지 날아가 나무에 처박혔다.

“크아아악!”

천일영은 건청을 날려 버림과 동시에 백유화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백유화의 손끝에 걸린 만 개의 강선.

속임수를 쓰면서도 실패를 대비해 강선을 또다시 펼쳐 두었다.

그러나 이번에 펼친 강선은 다르다.

“정면 승부입니다, 천마님!”

“덤비거라.”

온 사방에서 사각 없이 덮쳐 오는 강선을 바라보며 천일영이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강선을 뻗어 내는 백유화의 얼굴에도 야비한 웃음이 지어졌다.

이제 결전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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