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백유화가 순간 자신의 기운을 모두 손끝으로 모았다.
후와와와왕!
강선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게 천일영을 덮친다.
만 개의 강선을 오직 한 사람에게 날리는 것은 백유화로서도 처음 있는 일.
모든 사각을 없앤 공격임에 백유화는 웃음을 지었다.
‘이걸로 아무리 천마님이 내공을 꺼내 강선을 밀어내고, 검으로 잘라 낸다고 해도…… 응? 잠깐? 검이……?’
순간 백유화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이제야 천일영이 검을 들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젠장, 이기어검!’
까아아아아앙!
그 순간 백유화의 머리 위로 무극지검의 손잡이가 정면으로 내리꽂혔다.
“꽤애애애애액.”
“바보 녀석. 아직도 이런 기본적인 속임수에 걸리다니.”
아까 던진 무극지검이 천일영의 손길에 따라 허공에서 머물다가 이내 내공이 이끄는 대로 백유화의 머리 위로 떨어진 것.
백유화는 커다란 충격이 머리를 강타하자 이내 비틀거렸다.
휘이이잉! 퍼억.
천일영은 백유화가 비틀거리는 사이, 강선의 가운데를 파고들어 장권으로 가슴을 때렸다.
“까아아악!”
백유화는 연무장에 튕겨 마침 일어서려던 건청에게 날아갔다.
그런데 하필이면 몸을 일으키는 건청과 거꾸로 뒤집힌 채 날아가는 백유화의 얼굴이 정면으로 마주 보게 되었다.
둘은 기겁을 하며 비명을 질렀다.
“잠깐! 오지 마세요!”
“으아아!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콰당당당탕.
백유화와 건청이 서로의 얼굴을 얼굴로 들이박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비명.
“아아악, 내 입술!”
“단옥아, 미안해!”
쿠당당탕.
서로 입술을 들이박은 채 피를 줄줄 흘리며 백유화와 건청이 처박혔다.
둘은 서로를 떼어 내려고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를 눈빛을 빛내며 기다리던 사람이 있었으니.
휘이이잉!
뒤에서 기회를 노리던 금채홍의 검이 천일영에게 날아들었다.
제법 빠르고 때를 잘 노린 공격이다.
“오호? 제법이구나.”
“이번만큼은 피하실 수 없을 거예요!”
그러나 천일영은 피식 웃으며 금채홍의 왼팔을 들어 올려 허공에 띄움과 동시에 오른손으로 오른쪽 어깨를 때렸다.
“꺄악!”
금채홍의 몸이 허공에서 수십 바퀴를 돌기 시작하고, 이내 빠르게 바닥으로 처박힌다.
이것으로 금채홍의 몸에 감긴 강선이 그녀의 몸을 통째로 묶어 버리게 되었다.
천일영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걸렸다.
천천히 백유화를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
백유화는 입술을 닦아 내다 천일영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요 망할 녀석. 그 조동이로 채홍이에게 못된 말을 하는 것처럼 시켰겠다?”
“잠시만요! 천마님! 잠깐…….”
“음…… 나한테 못된 공자님이라고 하고. 또 검으로 엉덩이를 때려 준다고 했던가? 제법 발칙한 생각을 했구나. 이제 매타작의 시간이다.”
천일영은 백유화의 뒷덜미를 들어 올려 강선으로 몸을 꽁꽁 묶고 손수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렸다.
그리고 내공을 가득 실은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짜악! 짜악! 짜악!
“으아앙. 입술에 엉덩이에 오늘 무슨 날이 이래! 꺄아아악!”
“본인 스스로 치사한 수를 쓰는 것은 상관없지만, 주변 사람을 끌어들인 것은 잘못이다. 그러니 벌은 받아야지.”
“사람 살려! 너무 아파요!”
“앞으로 며칠 동안은 강선을 풀어 주지 않겠다. 이참에 채홍이에게 검사를 흘리는 연습이나 시켜야겠구나.”
“잘못했어요. 제발 살려 주세요!”
“시끄럽다. 내가 명하기 전에는 그 누구도 네 녀석의 묶인 강선을 풀어 주지도 못하고 네 운신을 구속할 것이니 그렇게 알아라.”
“으아아앙.”
반 각 동안 백유화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난 이후.
백유화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아픈 엉덩이를 만지지도 못하고 있었고, 건청은 혹시 주변에 단옥이 있지는 않을까 하여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때 천일영의 뒤로 시커먼 그림자가 솟아올랐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금채홍이 어느새 몸에 감긴 강선을 풀고 천일영의 뒤로 검을 날렸다.
하지만 백유화와 건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반 각 전에 워낙에 빠른 속도로 금채홍의 몸을 돌린 탓인지 아직도 조금은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절정 고수를 반 각이 지나도록 어지럽게 만들 정도의 속도라니 감탄을 넘어서 경악의 마음이 든다.
그런데 눈앞에서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비틀. 비틀.
빙빙 도는 눈으로 다가와, 되는대로 날린 금채홍의 금룡참월하검이 천일영의 몸이 닿았다.
툭.
그 순간 백유화와 건청, 그리고 검을 날린 금채홍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공자님? 왜 그러시나요? 설마 채홍이라고 해서 일부러 검에 맞아 준 것은 아니시죠?”
“…….”
뭔가가 이상했다.
멍하니 서 있는 그 모습은 강선에 묶인 채 바닥에 쓰러져 있던 백유화마저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며 곁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금채홍이 급히 천일영의 손을 꽉 잡았다.
“공자님!”
애타는 금채홍의 목소리가 천일영의 귓가를 때리는 순간.
천일영의 입이 열리며 떨리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하…… 하린아.”
순간 사방으로 바람이 몰려들었다.
이내 천일영의 입가가 비틀리며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서늘한 표정이 떠올랐다.
콰아아아아앙!
“꺄아아악!”
“으헉!”
순간 연무장에 깔린 돌바닥이 거대한 충격에 쪼개져 사방으로 날아가고, 이내 엄청난 태풍과도 같은 바람이 사방으로 퍼졌다.
건청과 금채홍은 신형이 밀려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땅바닥을 수십 차례나 굴렀다.
“에퉤퉤. 이…… 이게 무슨 일…….”
무려 땅 아래로 족히 3장은 파여 있을 법한 연무장 바닥.
건청과 금채홍은 입에 들어간 흙을 뱉어 냈다.
“분명 공자님. 지금 하늘로 날아가신 거 맞죠?”
“그래, 나도 처음 보는구나. 분명 날아가기 전에 서하린이라고 했지?”
“네, 설마 서하린 소저에게 무슨 일이?”
겨우 몸을 일으킨 건청과 금채홍은 천일영이 날아간 하늘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언제나 땅으로만 다니던 사람이 하늘로 사라졌다면 그것이야말로 엄청난 일이 벌어졌음을 모르지 않으니까.
“어라? 근데 백유화 님은요?”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 거지?”
건청과 금채홍이 주변을 둘러보는 가운데, 천일영이 박차고 올라 3장이나 바닥으로 뚫린 땅속에서 백유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려 줘. 나 구덩이에 빠졌어.”
목소리가 들린 구덩이에 건청과 금채홍이 고개를 빼꼼 내밀어 들여다본다.
그러자 구덩이의 끝에서 몸이 묶인 채 꼼지락거리는 백유화의 신형이 보였다.
하지만 금채홍과 건청은 서로를 마주 보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백유화 님이 실종된 것 같네요. 찾으러 가요, 건청 오라버니.”
“그러게. 아무래도 멀리 날아간 듯하니 뒷산으로 가 볼까.”
“나 여기에 있다고!”
하지만 애절한 백유화의 목소리에도 건청과 금채홍의 발길은 거침없이 옮겨졌다. 뒷산으로 찾으러 간다던 사람들이 객잔을 향하는 발소리가 귓가에 들리자 백유화의 목소리가 더욱 애절해진다.
“나 몸이 묶여 있는 걸 잠시 잊은 거지? 그런 거지?”
허공에 메아리가 울리듯 퍼지는 목소리가 구슬프게 귓가를 울리지만, 건청과 금채홍의 발길은 더욱 빨라지기만 한다.
“저기? 채홍 님? 건청 님?”
비록 이기기 위해서였다지만 입을 벌리게 하고 이상한 소리를 한 죄와 미끼로 사용하고도 입술까지 들이박게 만든 백유화의 목소리는, 금채홍과 건청의 한쪽 귀로 흘러 들어가 또 다른 귀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 삼일쯤? 백유화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을 예정이었다.
* * *
“빌어먹을, 어째서 하린이가!”
내공을 가득 싣고 연무장의 바닥을 박찬 천일영의 신형이 쏘아지듯 날아갔다.
기감의 끝자락에 걸린 일백오십 리 밖.
그곳에 갑자기 느껴진 서하린의 기운을 처음엔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만 반가운 기운이었을 월영이 느껴지고 난 이후, 그 끝에 희미하게 느껴진 서하린의 기운은 거의 죽음에 이른 것이었니, 천일영의 심장은 그 자리에서 떨어질 듯 했었다.
“위험한 것을 모르지 않았을 터다. 그런데도 말리지 않은 내 잘못이다. 서가흔에 이어서 하린이까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천일영의 신형이 거칠 것 없이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지만, 이내 불길함에 감기는 눈은 어쩔 수 없었다.
천일영은 서하린이 있는 방향으로 모든 기감을 모았다.
“아직은 숨이 붙어 있다. 이대로 날아가기만 하면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천일영이 주변으로 퍼져 있는 기감을 거두고 서하린이 있는 곳으로 집중하여 방향을 정확히 가늠하기 시작했다.
‘지금 날아가는 방향과는 조금 틀어져 있나. 방향을 수정하여 한 번에 날아간다.’
후우웅!
신형을 아래로 기울이고, 바람이 몸을 미는 대로 최대한의 속도로 땅을 향했다.
그리고 눈에 거대한 산의 봉우리가 보이는 순간.
콰아아아아앙!
천일영은 산의 꼭대기를 박차고 다시 허공으로 떠올랐다.
서하린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기 위함도 있었고, 조금 전 연무장의 땅을 박찰 때 금채홍과 백유화, 그리고 건청이 다칠까 하여 모든 힘을 다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더욱 강하고 빠르게 날아가기 위해 모든 힘을 때려 박기 위함이다.
쿠우우우웅.
천일영의 등 뒤로 산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산꼭대기가 무너질 만큼 강하게 박찬 힘.
“이 속도라면 반 각 정도 후에 도착한다.”
천일영은 서하린을 향한 기감을 단 한 번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았다.
이미 천일영은 서하린의 몸 상태를 구석구석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창상과 그곳에 고인 피. 도착하자마자 바로 치료할 준비를 하고 있음이다.
“젠장, 더 빨리! 이미 숨이 넘어가고 있구나. 하린아! 제발 조금만 더 견디거라.”
천일영의 발아래로 천지일축공을 사용할 때처럼 내공이 모였다.
파앙!
발끝으로 모은 내공이 다시 한번 터지고, 이내 천일영의 몸이 더욱 속도를 내며 쏘아져 나갔다.
신형은 반 각도 안 되는 사이에 어느새 일백오십 리를 뚫고 서하린의 곁으로 도달하고 있었다.
그리고 천일영의 눈에 드디어 서하린이 보인 순간.
“이런!”
월영이 서하린을 품에 안은 채 땅바닥으로 뒹굴려 하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분명 월영이 땅을 구르는 순간 그 충격으로 서하린은 죽게 될 터이니.
“안 돼!”
콰앙!
내공을 가득 실은 몸이 바람을 거스르고, 이내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천일영의 신형이 다시 한번 쏘아졌다.
* * *
점점 다가오는 지면을 등의 서늘한 감각으로 느끼고 있던 월영은 안고 있던 서하린의 몸을 조금 들어 올렸다.
이제 곧 지면과 부딪히는 순간 느껴질 충격으로부터 서하린의 몸을 조금이라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그것이 아무런 소용도 없다 한들, 다친 서하린이 더는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이다.
그때 월영의 귀에 거대한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박혀 들어왔다.
쿠우우웅!
순간 월영은 땅이 꺼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몸이 아래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니, 실제로 몸이 벼랑에서 떨어지듯 아래로 향한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자신이 넘어지는 땅의 아래가 모두 사라지는 것이 어찌 이해가 가겠는가.
그러나 월영은 자신의 등을 부드럽게 받아 드는 손길을 느끼며 이내 웃음을 지었다.
‘눈치채고 와 주신 것인가.’
월영은 순간 안도하는 마음에 눈물이 울컥 치솟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안고 있던 서하린을 천일영이 있는 방향으로 내밀었다.
다급함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온다.
“공자님! 서하린 소저를!”
“알았다.”
천일영은 서하린을 받아 드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얼굴이며 몸까지 성한 곳 하나 없음에 처음에는 자신이 받아 든 신형이 서하린이라는 것을 알아보지도 못할 지경이었으니.
‘어떤 개 같은 놈이!’
천일영은 그러나 고개를 가로젓고 서하린의 몸으로 급히 진기를 밀어 넣었다.
촤아아악!
서하린의 창상 입은 어깨가 벌어진다. 천일영은 안에 고인 피를 거둬 냈다.
쿵. 쿵. 쿵.
천일영의 심장이 미칠 듯이 뛰기 시작했다.
창상을 입은 자리의 핏덩이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아무리 치료해도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니, 치료하는 동안 서하린의 생명이 꺼질까 하여 가슴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누구냐. 서하린을 이렇게 만든 놈이.”
“영기의 땅이 있는 마을을 덮친 놈들과 싸우다 이렇게 되었습니다.”
“영기의 땅?”
천일영은 핏덩이를 제거하고 엄청난 양의 진기를 밀어 넣었다.
그러자 이내 서하린의 창상이 아물어 간다. 손길을 들어 몸 안 곳곳에 진기를 넣으며 치료를 하던 천일영의 이마에 땀이 솟아났다. 그러나.
툭.
간절한 마음도 소용없이 서하린의 손이 허망하게도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가느다랗게 이어지던 숨도 멎었다.
천일영은 이를 악물고 손을 들어 올려 서하린의 가슴을 내리쳤다.
쿠웅!
“정신 차려! 서하린!”
천일영의 포효와도 같은 목소리가 산자락을 타고 수십 리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