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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44화 (145/270)

144화

극살태마신공(劇殺台魔新功).

그것은 과거 천일영을 살심의 나락으로 빠지게 만든 무공이자, 천마신교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강력한 무공이었다.

‘말은 필요 없겠지. 일단 죽이고 난 후에 움직임을 보겠다. 설사 삼사 태자태사가 죄가 없다 해도 그를 죽임으로 인해 움직이는 놈이 나올 것이다. 황실을 상대로는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음이다.’

전초제근(剪草除根)의 결심.

일의 근본(根本)이 나올 때까지 모두 죽여 버리는 방법을 다시 사용하지 않으려 얼마나 굳게 마음을 먹었던가.

그러나 지금의 천일영에게는 그런 결심 따위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근본을 파헤쳐 근원(根源)이 황제라면 죽여 버릴 것이었으니까.

‘다만…….’

천일영이 고개를 돌려 잠시 객잔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 보이고 싶지 않은 살귀(殺鬼)의 길로 다시 들어서는 발걸음.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니, 아무도 모르게 다녀오려고 마음을 먹었다.

‘돌아올 때는 몸에서 피 냄새가 빠져 있으면 좋으련만. 최소한 이영이에게는 그 냄새를 맡게 하고 싶지는 않구나.’

천일영은 고개를 한 번 가로저으며 결심을 굳히고 발걸음을 떼었다.

그때 천일영을 향해 급히 달려오는 건청의 기감이 느껴졌다.

“공자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무슨 일이냐.”

“손님이 오셨습니다.”

“유의선 승선포정사사가 온 것이라면 기감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만날 생각은 없구나.”

건청은 급히 달려오느라 차오르는 숨을 들이켰다.

절정 고수나 되는 건청이 이렇게 급히 숨을 몰아쉬는 것이라면 분명 그 이유가 있을 터.

그런데도 천일영은 옮기는 발걸음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저 역시 승선포정사사 어른에게 공자님께서 만날 상황이 아니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하냐. 그대로 돌아가시라 이르면 될 일이다.”

“그것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어째서냐.”

“승선포정사사가 말하기를 서하린 소저의 일이라고 합니다.”

“뭐라고?”

순간 천일영의 눈에 떠오른 혈광이 더욱 짙어졌다.

* * *

유의선은 앞에 마주한 천일영의 눈동자에 침을 삼켰다.

붉은 혈광이 돌아가는 섬뜩한 눈도 눈이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살기에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이 시키는 대로 유의선은 천일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니, 열 수밖에 없었다.

“공자, 가시는 길을 제가 잡은 듯하여 죄송합니다. 허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건대 어디를 가시는지 제가 여쭤도 되겠습니까?”

“종1품 삼사 태자태사를 죽이러 가는 길이다.”

“공자!”

유의선의 입으로 다급한 헛바람이 들이켜진다.

문관의 상층부에 있는 자신에게 황실의 사람을 죽이러 간다고 말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공자는 저희 모두를 적으로 돌릴 생각이십니까.”

“그래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럴 것이다. 뭔가 문제라도 있느냐.”

“황실과의 전면전입니다. 그것이 가능할 리 없지 않습니까.”

“누가 전면전을 한다고 하더냐. 이런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따로 있다. 나는 지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꿀꺽.

유의선의 목울대가 울렁이며 침이 넘어간다. 분명 공자의 표정을 읽어 볼 필요도 없다.

‘허세가 아니다. 실로 진심이로군.’

아무 말도 않고 멍하니 천일영을 바라보는 유의선의 눈길.

그러나 천일영은 혈광을 더욱 짙게 만들며 유의선을 향해 낮은 목소리를 퍼트렸다.

“건청에서 이야기를 듣기로 서하린의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군.”

“그렇습니다.”

“들어 주겠다. 그러나 빨리 이야기를 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 밤에는 태자태사의 목을 황궁 앞에 던져 놓고 싶으니.”

유의선은 천일영의 말에 대답을 잇지 못한 채 떨리는 손길로 품 안에서 종이 두 장을 꺼냈다.

탁.

그리고 천일영의 눈길을 따라 탁자 위에 올린 종이를 바로 보이도록 펼친 유의선은 다시 한번 침을 삼켰다. 종이의 정체는 바로 용모파기(容貌疤記)였기에.

“며칠 전에 사천성에서 금군 오십이 수백 조각이 나서 살해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금군이 오십이나 죽는 일은 황실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일입니다. 그래서 추적대가 붙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추적을 한 결과 만들어진 것이 이 용모파기입니다.”

“왜 이것을 나에게 보여 주는 것이냐.”

“저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공자님도 이미 눈치채지 않았습니까. 이 용모파기에 그려진 얼굴이 서하린 소저라는 것을요. 이 특이한 눈 화장은 오직 서하린 소저만 하는 것입니다.”

쿠웅.

순간 유의선은 자신의 몸을 덮쳐 오는 거대한 압력에 몸이 찌그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버티려 해 보고 견디려 했지만, 이내 몸을 누르는 힘은 객잔의 바닥의 나무까지 갈라지는 소리를 내게 만들며 유의선의 신형을 바닥으로 처박히게 했다.

“크윽! 공자! 지금 저에게 힘을 쓴다 해서 해결이 될 일이 아닙니다.”

“상관없다.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손을 대려는 사람들은 오직 배제할 뿐이다.”

“공자님은 그러시겠지요. 하지만 서하린 소저는 이 용모파기가 돌려지는 순간 평생을 황실에 쫓기게 될 것입니다. 모르지 않으실 줄로 압니다. 황실에서 만든 용모파기에 그 얼굴이 올라간 사람은 무림 공적보다 더 심한 추적에 시달린다는 것을 말입니다!”

파앙.

유의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를 짓누르던 거대한 힘이 사방으로 퍼지며 소멸했다.

유의선은 몸을 속박하던 거대한 힘이 사라짐과 동시에 기침을 쏟아 냈다.

“콜록, 콜록. 공자, 이 용모파기는 아직 돌려지지 않았습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처음부터 거래할 생각이었던 모양이구나.”

유의선은 숨을 몰아쉬며 저리는 몸을 일으켜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천일영의 표정이 조금 전보다도 더 굳어지고, 더욱 진한 혈광이 떠올라 있었으니, 까딱 입 한번 잘못 놀리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유의선은 죽음을 면하기 위해 일단 미끼부터 먼저 던졌다.

“공자님이 원하는 사람은 삼사 태자태사가 맞습니다. 그가 이번 일의 배후입니다.”

“제법 쉽게 이야기를 하는구나. 마치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근래에 산적들이 마을을 불태우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황실에서도 큰 골칫거리인 참이라 별도로 알아보다 우연히 알게 된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네가 먼저 이야기했다는 것은 해결 방안이 있다는 것이겠군.”

“아쉽게도 그러하지 못합니다. 금군을 파견하고 뭔가 일을 꾸민 정황만으로는 그의 위세를 꺾지 못합니다.”

“훗. 해결 방안이 없다는 것은 뭔가 다른 일을 엮으려는 것인가.”

유의선은 천일영의 표정을 보며 미끼가 통했다고 생각할 뻔했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가.

상대의 열 수 정도를 앞서 생각하는 사람임이 떠오른 유의선의 손마디가 떨렸다.

“제가 생각을 잘못했군요. 차라리 공자님에게는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나은 것을요. 태자태사는 마을에 불을 지른 것을 산적이 한 일로 위장하고, 파견한 금군이 마을을 오히려 구하려고 했다는 명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공교롭게도 사흘 전 절강성에 있는 산 아래에서 금군 오십이 죽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산 위에서 바위와 나무를 굴려 깔려 죽게 만든 짓으로 아마 진짜 산적들이 한 짓으로 판단이 됩니다.”

“금군을 건드릴 만큼 미친 짓을 하는 산적이 있다는 말인가? 대담함을 넘어선 놈이군.”

“아마도 늦은 밤인지라 금군을 포졸로 착각을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허나 주변을 조사하다가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산꼭대기에서 나무와 바위가 굴러떨어지기 전 거대한 소리가 났다고 합니다. 저희도 올라가서 확인했습니다만 엄청나게 커다란 구덩이가 생긴 것으로 보아 분명 화약을 터트린 것 같았습니다. 산적이 화약을 손에 넣었다는 것은 크나큰 문제입니다.”

유의선의 이마에서 기나긴 땀줄기 몇 개가 흘러내린다.

그 모습을 보자니 이제부터 본 이야기가 나올 터. 천일영의 눈에 더욱 진한 살기가 감돌았다.

“나에게 바라는 것을 말해 보아라.”

“화약을 손에 넣은 산적이라면 보통의 놈은 아닐 것입니다. 분명 녹림십팔채의 산적이라 생각됩니다.”

“설마 나에게 녹림의 두목을 치라는 것은 아니겠지?”

유의선의 고개가 숙여진다. 정곡을 찔린 탓이다.

“서하린 소저의 용모파기를 파기하고, 같이 있던 남자의 정체 또한 숨겨 드리겠습니다. 또한 산적 두목의 목을 가지고 미리 일을 막지 못한 죄를 물어 저희 파벌이 태자태사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능구렁이답게 제법 머리를 굴렸구나.”

천일영이 그 뜻을 바로 알아차리자, 유의선의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죄를 물어 태자태사를 유배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이후의 일은 묻지 않도록 하지요. 유배 가는 길에 실종되는 일은 흔하니 말입니다.”

“서하린의 일로 내가 거절하지 못할 것을 알고 온 것인가.”

천일영의 입가에 비웃음이 지어졌다.

여러 가지의 길이 있지만, 유의선이 들고 온 계략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모르지 않기에 거절할 이유도 없음이다.

정적들이 유배 가는 관인을 덮쳐 죽이는 일은 흔하니 판을 만들어 온 것이었다.

“나중에 이 빚은 갚게 만들지. 그래서 내가 처리해야 할 산적 두목은 어디에 있는가.”

“감숙성(甘肅省) 공동산(崆峒山)에 있습니다. 이름은 현황우라고 합니다.”

순간 천일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녹림의 두목이라면 거래의 형평성이 맞지 않는군.”

“그 말씀은…….”

“내가 손해라는 의미다.”

유의선의 진심이 막혔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야기를 무를 수는 없는 법.

유의선이 또 한 수를 두기 위해 입을 열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절강성에서 강서성으로 들어서는 곳에 마을 하나가 있다. 그곳에 금군들 외에 무인들이 나타났다고 하는군. 이미 죽은 시신 조각만 남아 있지만, 그들이 누군지와 어디 소속인지 알아내라.”

“공자, 그 말은 금군과 같이 움직이는 무인들이 있다는 말입니까? 설마 무림맹…….”

“남궁천이 관련이 있는지, 혹은 지천번회와 관련이 있는지 알아내라. 황실의 정보력이라면 충분히 해낼 터다.”

“알겠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마땅히 도와드려야 할 일. 또한 황실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공자님과 한편이 되시려 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도 이번 정보를 좋아하실 것입니다.”

“황실의 가장 높은 인간 따위는 됐다. 그놈에게 서하린을 보호하겠다는 말이나 지키라고 하거라. 그렇지 못하면 그때는 내 손에 모두 죽을 것이다.”

“알고도 남음입니다.”

천일영은 더는 볼일이 없다는 듯 몸을 일으켜 밖을 향했다.

그런데 기분을 가라앉게 만드는 유의선 외에도 뭔가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금군을 죽인 산적이라. 근데 왜인지 낯설지 않은 이야기인데 기분 탓이려나?’

천일영(금군을 죽인 진짜 범인)은 산적들의 행동이 이상한 것을 느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 일로 오히려 황실과 무림이 엮인 것을 파헤칠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일지도 모르겠군.’

안과 혜가 아무리 대단하다 할지라도 황실과 연결된 것을 파헤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태자태사가 범인이라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오 할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방식이 이상하다. 남궁천이라면 분명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사마정이 없는 지금은 더욱 그렇겠지. 또 다른 누군가가 끼어든 것인가? 아니면…….’

과거를 단절시키고 평온한 삶을 바랐다.

그것은 지금도 꿈처럼 원하고 또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서하린이 죽을 뻔한 일로 천일영의 마음은 바뀌었다.

‘더는 외면하지 않겠다. 남궁천, 지천번회, 그리고…….’

천일영의 가슴속으로 또 하나의 생각이 떠오른다.

‘무림맹이 종남을 집어삼키려는 이유. 그리고 몸에 양기와 음기가 차는 사람들이 생기는 이유와 빈민들이 실종되는 것. 마지막으로 영약에 미쳐 있는 무림 삼대 세력. 연결 고리가 무엇인가.’

천일영의 주변으로 차가운 공기가 내려앉는다.

그것은 과거 무명암살대에서 일만 명의 사람을 죽였던 사람이 만들어 내는 죽음의 그림자가 섞인 끔찍한 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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