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천일영은 밖으로 나서며 천천히 걸어 시장으로 들어섰다.
월영에게 검을 빌려주어 빈손인 것이 허전했기에 검 한 자루를 사기 위해서였다.
평소 시장을 지나다니며 보았던 검을 파는 대장간 앞에서, 눈앞에 펼쳐진 수십 자루의 검을 보며 천일영은 손을 들어 턱을 짚었다.
그때 대장간을 하는 주인이 그 모습을 보고는 곁에 서며 입을 열었다.
“얼마짜리 검을 보슈?”
“잘 모르겠군. 검을 사 본 적이 하도 오래되어서.”
대장간의 주인이 슬쩍 천일영을 바라보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비실비실하고 학사 같아 보이기는 하는데,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과 비싸지는 않아도 깨끗한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영락없이 바람깨나 피우고 다닐 상이다.
보나 마나 어깨에 힘을 주고 검을 들고 다니고는 싶은데 명검이나 보검을 살 만큼의 돈은 없다 보니 꽤나 좋은 검처럼 보이는 것을 구매하여 여인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작자.
대장간 주인의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나라면 여기 은자 열 냥짜리 검을 사겠소.”
“제법 비싼 검이군.”
그러나 대장간 주인은 눈앞의 손님이 권해 준 검을 마다하고 다른 검을 집어 올리는 것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름 아닌 손님이 집어 든 칼은 주방용 식도(食刀).
그런데 날을 들어 올려 바라보는 그 모습에서 왠지 피 냄새가 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칼을 만드는 실력이 나쁘지 않은 모양이군.”
“그야 삼대째 대장장이를 하고 있으니……. 아니 근데 검을 사러 와서 왜 식도를 들어 보는 것이오?”
“그야 얼마만큼 뼈를 잘 발라내고 살을 깨끗하게 도려내는 칼을 만드는지 보기 위해서지.”
주륵.
순간 대장간 주인의 이마에 식은땀이 고여 흘렀다.
오랜 시간 칼을 만들다 보면 안다.
손님 중에서는 검에 살기를 넣고 예기를 더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또한 그런 사람 앞에서는 절대 실수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이다.
대장간 주인은 은자 열 냥짜리 검을 슬쩍 옆으로 밀었다.
“더…… 저 좋은 검을 보…… 보여 드릴깝쇼? 은자 이십 냥짜리 검이 있습니다.”
“괜찮다. 이 정도의 칼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가장 싼 검도 좋겠구나. 얼마인가?”
“제일 싼 검이라면 동전 이십 냥입니다만…….”
대장간 주인은 떨리는 손으로 싸구려 검을 건넸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잠시의 생각이 들기를, 이 눈앞의 남자가 제일 싼 검을 살 만큼의 돈밖에 없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겉으로만 고수인 척하며 창피함을 숨기는 무인들도 많으니. 그러나 그 순간.
쓰으으윽.
난데없이 검을 뽑은 손님이 손바닥으로 검날을 훅 훑는다.
언뜻 보기에도 분명 손바닥뼈까지 날이 닿을 만큼이나 힘을 준 모습.
“끄아아악. 뭘 하시는 거요! 아무리 싸구려 검이라고 해도 손바닥이 전부 잘려 나갈 거요!”
“검을 빨리 알아보는 방법일 뿐이다. 동전 이십 냥짜리치고는 생각보다 날도 균일한 편이고, 검 등의 휘어짐도 그럭저럭하는구나. 이 검으로 하지.”
“소…… 손님? 아무래도 고수이신 것 같은데 그 정도 검으로 되겠습니까?”
“산적 수백의 목을 베는 정도로는 이 정도가 딱 좋다.”
“……!”
짤랑.
검을 진열해 놓은 탁자 위로 동전 이십 냥이 놓이자 대장간 주인은 문득 손님의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결코 이 사람의 말이 농담이나 허세가 아님을 알았기에.
그리고 눈이 마주친 순간 대장간 주인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이 무슨!’
텅 빈 듯한 눈동자 안으로 보이는 붉은색의 살기.
그것이 순간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듯한 느낌에 대장간 주인은 난생처음 살기에도 색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이내 발소리조차 내지 않고 손님이 멀어지자 대장간 주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떡해. 나 쌌나 봐. 다섯 살 이후로 처음이네.”
대장간 주인은 이렇게나 무서운 경험은 처음이었다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것이 지려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죽을 만큼의 공포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그렇게 한동안 축축해진 바지를 입은 채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 * *
천일영은 시장에서 검을 들고나오면서 웃음을 지었다.
“인제 그만 슬슬 나오는 것이 어떠냐.”
“어라? 생각보다 부르시는 것이 늦으셨습니다.”
천일영의 등 뒤로 이 장 거리에서 백유화가 상품대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백유화는 혀를 내밀고 오른손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어딘가로 가시기에 따라왔습니다.”
“딱히 부르지는 않으려 했다.”
“왠지 그러실 거라고 생각은 했습니다.”
백유화는 천일영의 곁에 선 채 당과 하나를 사 들며 전음을 날렸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 때문입니까?]
[내가 일을 잘하는지 궁금한 모양이다. 열 명쯤이 계속 감시하고 있구나.]
[그래서 일부러 보이시려고 살기를 풀지 않고 계시는 거군요. 검도 일부러 제일 싼 거로 구매하셨고요.]
눈치 빠른 백유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일 값싼 검으로 녹림십팔채의 머리를 친다는 것은 그만큼의 무력이 있으니 앞으로는 용모파기 따위로 시험하는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유의선이 감시하는 사람을 푼 것은 아닐 테고 누구입니까?]
[서하린과의 일을 덮어 주기로 한 사람이겠지. 일개 승선포정사사의 힘으로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 터이니.]
마을의 시장에서조차 섬뜩한 기운을 내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천일영의 행동은 모두 하나하나가 계산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상하기만 한 느낌이 백유화의 가슴속을 여전히 휘저었다.
[그런데 천마님, 어째서 유의선의 제안은 받아들이신 것입니까? 천마님이라면 다른 방법도 많았을 텐데요.]
[어디까지 들었느냐.]
[다 들었습니다. 벽에 강선을 연결해 두면 목소리의 울림에 따라 움직이니 멀리 떨어져서도 모두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녀석, 허락도 없이 그런 짓을 하다니 제법 발칙하구나.]
하지만 타박하는 말을 하면서도 천일영의 표정은 부드러웠다. 분명 걱정되어 몰래 엿들을 것일 테니까.
[처음에는 나 역시 유의선의 제의를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하린이의 용모파기는 핑계였을 뿐 상대보다 다섯 수 정도 앞서려고 했구나. 황실에서 녹림십팔채의 채주 현황우를 제거해 달라는 의미가 무엇이겠느냐. 이미 녹림에 사람을 잠입시켜 놓고 현황우가 죽으면 그를 대체할 수 있게 해 놓았을 것이다. 그것으로 녹림을 집어삼키려 한 것이겠지. 재주는 내가 부리고 말이다.]
[아?! 그렇다면?]
[이제야 눈치챘느냐. 나는 놈들의 꼭두각시가 된 척을 한 것뿐이다. 녹림은 황실에서 손을 대기 전에 내가 먹어 버리겠다. 이걸로 서하린과 월영의 일도 손쉽게 해결되고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으며 나중에는 녹림을 핑계로 삼아 유의선과의 이야기에서 우위에 설 수 있게 되겠지.]
[오호호호.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니만 역시 그런 것이었군요.]
천일영은 대략의 설명 후에 동전 이십 냥짜리 검을 들고 섬서성의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빠르게 일을 끝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백유화는 그 자리에 고정된 듯 천일영의 등만을 쓸쓸히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천일영의 등을 민 것은 피의 바람이라는 생각에, 백유화의 슬픈 마음이 전음을 타고 날아갔다.
[전부 다 알겠어요. 그런데 혼자 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번에도 모두 혼자 다 하시고 온전히 피 값을 전부 짊어지실 것입니까? 저는요? 제가 천마님의 죄를 같이 짊어질 수 있습니다. 저를 데려가십시오.]
[유화야, 이번의 일은 잘못하면 황실의 눈에 띌 수도 있는 일이다. 어찌 너에게 그런 일을 시킨단 말이냐. 나 혼자로도 충분한 일이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천마님이 모두 다 짊어지려는 것을 또 보고만 있으라는 것입니까.]
백유화의 눈에 조금의 눈물이 고인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매번 혼자만 더러운 일을 하려는 그 마음에 억장이 무너진다.
백유화의 원통한 마음이 기어이 눈물을 떨어트리게 하기 직전.
천일영의 부드러운 손길이 백유화의 머리에 닿았다.
“고맙구나.”
“항상 곁에 두어 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저는 그것으로 충분하니…….”
“바보 녀석. 스스로 불구덩이에 웃으며 뛰어드니 네 녀석이나 나나 똑같이 멍청하구나. 공동산까지는 제법 먼 길이다.”
“압니다. 그러니 천지일축공을 사용하는 동안 안아 주세요.”
“시끄럽다.”
“쳇.”
천일영은 항주의 성곽을 빠져나가자 백유화를 옆구리에서 끼듯이 들어 올렸다.
“감시하는 인간들도 슬슬 지겨워지니 이제 슬슬 작별해 볼까.”
“천지일축공이면 따라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 천일영이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내 옆구리에 들고 있던 백유화를 앞으로 돌려 껴안았다.
순간 백유화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천마님? 이번에는 정말로 안아 주시는 건가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안 됩니다.”
“너무 기뻐하지는 말거라. 이번에는 천지일축공이 아니라 날아가려 할까 해서이니.”
“네? 날아가요? 잠시만요. 저 마음의 준비가……?!”
“준비하나 안 하나 똑같다. 입 꽉 다물어라. 혀 깨문다.”
“잠깐만요!”
콰아아아아앙!
“까아아아아악! 아야야야야!”
“입 다물라니까. 바보 녀석.”
백유화는 급히 입을 꾹 다물고 천일영의 품에 꼭 안겨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 눈물이 품에 안겨 기뻐서인지 아니면 혀가 아파서인지는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할 거라고 마음속으로 맹세하면서.
* * *
천일영은 절강성에서 안휘성까지만 날아간 이후 천지일축공을 사용하여 감숙성으로 향했다.
하늘에서 새빨개진 얼굴로 파닥거리던 백유화가 기어이 머리에서 김을 뿜어내며 기절했기 때문이었다.
천일영은 백유화를 안고 빠르게 하남성을 통과해서 섬서성을 거쳐 감숙성에 도착했다.
그 거리가 이미 수만 리인데 걸린 시간은 불과 하루 남짓.
백유화가 천일영의 목에 감았던 팔을 풀며 새빨개진 얼굴로 땅에 내려섰다.
“옆구리에 걸치듯 들리는 것은 허리만 아팠지만 안기는 건 여러 가지로 아프네요.”
“응? 안겨 왔는데 아픈 데가 있느냐?”
“아니, 아닙니다.”
백유화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아프다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공자님 이상하지 않습니까?”
“너도 느꼈느냐.”
“네, 공동산은 도교의 제일산이라고 불리는 데다가 12선산 중 하나입니다. 게다가 공동파(崆峒派)가 있는 곳인데 녹림십팔채라니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던 중이다.”
천일영의 한쪽 입꼬리가 피식 소리를 내며 올라갔다.
공동산이라면 황실에서도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곳이다.
‘헌원(轩辕) 황제(黄帝)가 도교의 신선 광성자(广成子)에게 도(道)에 대하여 가르침을 청했고 이후 한무제(汉武帝)도 산에 올랐다 하여 소중히 여기는 곳인데…….’
황실에서 왜 자신을 끌어들였는지 천일영은 납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곳을 산적에게 당했다는 것은 치욕적인 일이기에 공공연히 알릴 수도 없고, 그 때문에 직접 치고 들어가지 못하니 다른 수를 생각해 낸 것이었다.
‘하필이면 그것이 나라니. 유의선 위에 있는 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군.’
천일영은 아직도 얼굴이 새빨개진 채 숨을 몰아쉬고 있는 백유화의 뒷덜미를 잡아 들어 올려 인근의 객잔을 찾았다.
이런 곳에서 가장 빨리 정보를 살 수 있는 곳은 객잔이니 세하월이나 안과 혜의 도움까지도 필요 없음이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백유화.
“빨리 시원한 물이라도 먹여야지, 이대로라면 얼굴이 익어서 쓰러질 것 같구나. 그렇게도 하늘이 무서웠냐.”
“필요하네요, 물이. 그리고 하늘보다 더 무섭습니다.”
“뭐가 더 무서웠다는 말이냐.”
“아…… 아무튼 그런 게 있습니다.”
천일영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흐느적거리는 백유화를 위해 빠르게 객잔을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