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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49화 (150/270)

149화

성운의 힘없는 말이 잠시 멈추고, 이내 허공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과거 공동파의 모습이 그려졌다.

“현황우가 기질이 나쁜 것을 알고 있었기에 공을 세우면 협을 깨우칠까 하여 일 년 전에 녹림의 두목을 소탕하는 일에 같이 내보냈다. 그때 큰 공을 세우고 직접 녹림의 채주를 죽이기까지 했지.”

“이미 무공 실력은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군.”

“한때 공동파의 미래라고까지 불렸던 녀석이니.”

성운의 손길이 조금 떨린다.

자괴감일지, 혹은 현황우를 올바르게 이끌지 못한 후회와 책임감에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인지는 모른다.

“이후 녀석이 조금씩 변했다. 그간 보여 왔던 못된 행동을 더는 하지 않는가 하면 무공의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고, 공동파의 일을 나서서 하기까지 했지. 나는 현황우가 녹림의 채주를 죽이고 도리와 협이라는 것에 눈을 뜬 것으로 생각했다.”

“제법 뻔한 수에 속았구나.”

“빠르게 눈치를 챘어야 했다. 왜 현황우가 녹림의 채주를 죽였는데도 산적들이 멀쩡했는지 말이다. 녹림의 채주가 있던 섬서성의 산채가 없어지기만 했을 뿐 나머지 18채의 산채는 멀쩡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으니. 공동파의 일을 나서서 한 것도 밖으로 나갈 기회를 얻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하여간에 순진하고 마무리가 어설픈 건 여전하군.”

“하하하. 예전에도 뭐라 하더니만 지금도 타박하는 게냐. 녀석은 삼 개월 전에 급작스럽게 기운이 변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기묘한 기운이었는데 정파도 사파도 아닌, 그렇다고 마교의 것도 아닌 신기한 기운이었다.”

“전부터 숨긴 기운은 아니었는가?”

“그것은 숨긴다고 해서 느끼지 못할 기운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공이 오르기 전에 큰 변화가 있었지.”

체력이 다하는지 힘겹게 입을 열던 성운의 이마에 땀이 맺힌다.

그렇지만 성운은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삼 개월 전의 어느 날, 갑자기 현황우의 몸에서 열이 오르고 비 오듯 땀을 흘리더구나. 너무 심한 고열에 시달렸기에 우리는 온종일 차가운 물 속에 현황우를 담가야 했을 정도였다. 또한 고열뿐만 아니라 잠도 들지 못할 정도로 고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조금 천천히 이야기하거라.”

“괜찮다. 보름이 정확히 지난 날, 현황우를 괴롭히던 큰 통증과 고열은 사라졌다. 그리고 갑자기 내공이 3갑자나 늘어 있었지.”

“제법 믿기 힘든 이야기구나.”

“말을 하는 나로서도 지금까지 믿기지 않는다.”

“그때부터인가. 날뛰기 시작한 것이. 그것도 자신이 아플 때 돌봐 준 사람들에게 말이다.”

성운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웃옷을 벗었다.

앙상하게 갈비뼈가 보일 정도의 마른 몸이 보이는 순간, 천일영의 눈동자가 차갑게 변했다.

“현황우라는 놈, 제법 개만도 못한 짓을 했구나.”

“녀석은 장문인을 죽이고 내 몸 또한 다시는 무공을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선천적으로 내공이 모자란 나에게 단전까지 부술 필요도 없다는 듯 몸만 망가트리고 갔다.”

천일영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차라리 단전이라도 부수고 갔으면 나았을망정, 정말로 쓸데없는 짓을 성운의 몸에 한 것을 보니 천일영의 마음은 오히려 가라앉았다. 다만 무서울 정도로 차갑게 가라앉았을 뿐.

‘간장을 죽지 않을 만큼 뭉개고, 심장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구나. 게다가 오장육부가 몸에 붙어 있기만 할 뿐, 그 기능을 못 하게 만들었으니.’

성운의 몸은 지법(指法)으로만 온몸이 꿰뚫려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두 개는 들어갈 법한 공격으로 온몸의 급소와 장기를 뭉개 버린 것이다.

이러하니 이제 육십을 넘긴 그가 구십이 넘어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

불과 삼 개월 사이에 늙어 버린 것이다.

‘3갑자가 넘어가는 내공을 손끝에 모으고, 그것으로 성운의 몸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군. 성운의 내공이 1갑자에도 미치지 못하니까 많은 내공을 자랑하듯 일부러 한 짓인가.’

천일영이 서서히 퍼져 나가는 분노로 성운의 몸을 노려보는 동안, 성운은 거친 숨을 몰아쉬다 이내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을 이불 위로 떨어트렸다.

“미안하구나. 잠시 누워야겠다.”

“미안이라니, 오히려 자세히 이야기해 줘서 고맙다.”

성운이 몸을 기울이자 천일영이 그의 몸을 받쳐 조심히 눕힌다.

안쓰러운 마음이 천일영의 가슴속을 휘저었다.

그때 백유화가 몸을 일으켜 성운의 곁으로 다가갔다.

“영감탱, 이대로라면 너 죽는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다만 너하고도 술 한잔하고 싶었는데 그것도 힘들 것 같구나.”

“하여간에 이놈은 변하질 않네. 도사 놈이 뭔 술을 그렇게 좋아해?”

“만날 반말해 대는 너도 변하지 않지 않느냐. 하하하.”

성운의 웃음소리가 방 안을 울리자 백유화의 얼굴에 따스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변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너도.”

백유화는 품에서 침통을 꺼내 들며 천일영을 바라보았다.

눈길에는 허락을 구함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라도 치료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유화야, 일단 침을 꽂고 몸을 안정시키거라. 특히 단전으로 직접 연결되는 기도를 모두 활짝 열어 기운이 모이도록 하면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파바바바밧.

순간 백유화의 손길이 수백 번 성운의 몸으로 꽂혀 들어가는 듯 움직였다.

불과 눈 다섯 번 깜박일 시간 동안 오백 개가 넘는 침이 성운의 몸에 꽂히자, 성운은 그동안 경지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의술이 늘어난 백유화를 멍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천일영이 놀란 성운의 몸 위에 손을 올렸다.

“천하제일의 무공 천재라고 불렸던 성운이지만 내공이 모이지 않는 체질 때문에 육십이 넘어서도 사십 년 치의 내공뿐인가.”

“죽을 사람의 아픈 곳을 찌르다니, 네 녀석, 안 본 사이에 못돼졌구나.”

“그거 아는가? 성운.”

“뭘 말이냐.”

천일영의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과거 내가 네놈의 무공을 질투했었다는 거 말이다. 너무도 완벽한 무공 실력이었지. 초식 하나를 펼치더라도 그 안에 수백 가지의 뜻을 품으니 나로서는 따라 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천재라는 말로도 모자랐지.”

“하지만 내공에 밀려서 허구한 날 네놈한테 두들겨 맞기만 하지 않았냐.”

“이제 다시는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뭐라고?”

쑤우우우욱.

천일영의 손길을 타고 성운의 몸으로 진기가 들어갔다.

그 진기는 백유화가 침을 꽂아 길을 만든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트드드드득.

몸에 꽂힌 침이 비명을 지르듯 떨린다.

천일영은 단전으로 연결되는 기도에 기운을 때려 박듯 넣었다.

엄청난 양의 진기가 열린 기도를 통과하여 단전으로 몰려든다.

“조금 아프겠지만 참아라.”

“뭐, 곧 죽을 몸인데 맘대로 해라. 다만 술 한잔 먹고 죽을 만큼만은 기력을 남겨 줬으면 좋겠군. 제법 좋은 술 한 병을 몰래 숨겨 놨다.”

“그 술은 같이 마시도록 하지.”

천일영의 왼손이 허공으로 올라가 성운의 단전 위로 떨어졌다.

콰앙!

“크아아아악!”

성운이 비명을 지르고, 동시에 단전이 터져 나갔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성운의 눈이 커다래졌다. 하지만.

“뭐…… 뭐냐! 이 기운은!”

“그동안 내공이 약해서 고생했던 시절은 이제 끝이다.”

백유화가 미리 침을 놓아 길을 뚫어 놓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천일영은 그간 영약 등을 이용하여 더욱 큰 단전을 만들었었는데, 얼마 전 백유화와 이야기를 하면서 침을 놓아 기도를 넓히고 기가 움직이는 양을 크게 늘릴 수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단전 안에 엄청난 기운을 몰아넣고도, 주변의 기도와 단전 근처에 기운을 미리 대기시켰다가 단번에 커다란 단전을 새로 만들 수 있었다.

쓰아아아아악!

깨진 단전 사이로 엄청난 기운이 몰려들자 이내 천일영은 온 힘을 집중해서 새로운 단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거의 다 되었다.”

“뭔가 몸이 엄청 뜨겁구나. 따뜻하게 데운 술을 먹는 것처럼 말이다.”

“미리 이야기하는데, 이건 새로운 단전이지 술통이 아니다.”

피식 웃음을 흘린 천일영의 손에 의해서 새로운 단전이 만들어졌다.

그 크기가 천일영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큰 것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연이어 지어진다.

“상처도 치료하지.”

“상처의 치료? 그게 가능한 것이냐. 극마의 경지에 올랐다는 이야기는 들었다만 대단하구나.”

천일영은 백유화가 미리 상처에 꽂아 놓은 침을 통해 진기를 쏟아부었다.

그 양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기에 성운은 눈앞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슈우우우욱.

성운의 상처가 삽시간에 아물어 갔다.

흉터라고 불렸던 것들이 모두 사라지자 성운은 영문을 알 수가 없어 눈을 끔뻑였다. 그러나.

투두두둑.

얼굴과 몸에서 이내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성운은 자신의 손을 들어 바라보았다.

“그 주름이 많던 손이!”

“고치는 김에 전부 다 손봐 주마.”

천일영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진기의 실을 허공으로 띄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평소같이 진기 300년 치가 아니라 무려 500년 치의 실.

내공이 잘 모이지 않는 성운을 위해 천일영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진기의 실이었다.

허공에 떠 있는 진기의 실을 보자 성운의 목울대로 침이 넘어간다.

난생처음 보는 이 광경이 현실인지 꿈인지 구별조차 되지 않았기에.

스으으윽.

황금색의 실이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자 성운은 더욱 뜨거운 기운이 몸 안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천일영은 모든 치료가 끝나고 성운을 바라보며 과거가 떠올라 웃음이 지어졌다.

“이제야 내가 아는 성운이구나.”

“잠깐만, 뭔가 이상한데? 면경 좀 보겠다.”

성운이 면경을 보는 순간.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얼굴이 너하고 같이 잠시 지냈던 그때와 같구나.”

“그래, 힘들었지만 같이 있어서 즐거웠던 그때의 얼굴이다.”

성운은 자신의 몸에 찾아온 변화가 놀라우면서도 이내 눈물을 흘렸다.

말해 무엇 하겠는가.

친구가 준 이 선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를 리 없음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놀랄 일은 따로 있었으니.

“성운, 현황우라는 놈이 갑자기 늘어난 내공이 3갑자였다고 했느냐. 그렇다면 그놈의 총 내공은 얼마나 되는가?”

“원래 1갑자의 내공이 있었으니 총 4갑자구나.”

“그렇군. 그렇다면 이제 네가 질 리는 없겠구나.”

“그게 무슨 말이냐.”

“네 내공은 이제 5갑자이니.”

성운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천일영을 바라보았다.

현황우가 보름 만에 3갑자의 내공을 얻었는데, 자신은 불과 이 각의 시간 만에 4갑자하고도 이십 년 치의 내공이 몸에 생겼다.

“기운이 몸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으니 아직은 일어나면 안 된다. 최소한 두 시진은 누워 있거라.”

“이런 믿기지 않는 일이!”

“고맙다는 말은 유화에게 하거라. 유화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아니다. 둘 모두에게 고맙구나. 이제야 죽은 장문인의 억울함을 풀어 눈을 감게 해 드릴 수 있겠다.”

천일영은 갑자기 늘어난 내공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성운을 누이고 백유화와 함께 방문을 열었다.

“복수를 방해할 생각은 없지만, 현황우 그놈은 내가 죽인다.”

“아니! 잠깐. 공동파의 일인데 왜 네가 나서는 것이냐.”

“그야 내 친구를 죽을 뻔하게 만든 놈이 아니냐.”

“그 말은…….”

“자신을 품어 준 성운 너를 건든 현황우라는 놈은 이제 이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그러니 너는 가만히 있어라. 내가 전부 알아서 한다.”

말의 끝에 여운을 남기고 밖으로 나선 천일영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성운의 모습이 바뀌고 건강을 되찾은 것 때문에 잠시 소란이 일겠군.’

어찌 보면 유의선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아니었으면 공동산에 올 일도 없었고, 하마터면 성운이 세상을 떠나는 것도 모를 뻔했다.

“유화야, 네 덕분에 영약이 없어도 더욱 큰 내공을 만들게 되었구나. 사실 월영이 서하린이 다친 마을에서 혹여 영약을 찾아오면 그 도움을 받을까 생각도 했었다.”

“서하린이 다친 마을에서 영약을 가져오다니요?”

“너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었나?”

눈이 동그래진 백유화의 표정에 천일영은 잠시의 의문을 느꼈지만, 이내 그간의 상황을 빠짐없이 설명했다.

순간 백유화의 표정이 급변했다.

“천년삼, 혹은 만년삼을 서하린의 상처에 바르고 만년하수오를 먹였단 말입니까?”

“그것으로 하린이가 살아났으니 천운이었던 모양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백유화가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기다가, 반 각이 지나자 개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서하린의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원래 영약은 하나만 쓰는 게 맞습니다. 배합하더라도 극소량만을 사용해야 하지요. 그런데 두 개의 영약을 사용한 데다가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양을 사용한 듯하니, 거대한 기운이 서로 뒤엉켜 몸 안에서 흐르고 있을 것입니다.”

“거대한 기운이 뒤엉켰다니, 그것이 사실이냐.”

“천마님은 아마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영약의 기운은 내공에 섞여 그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서하린의 정신을 들게 할 수 있겠구나.”

“물론입니다. 몸을 뚫고 기도를 강제로 열어젖혀 지나친 기운을 뽑아내면 금세 정신이 돌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빨리해야 합니다. 영약의 기운은 몸 안에 스며들지 못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단전에 고이고, 이내 굳어져 모든 기도를 막아 버리게 됩니다. 흔히 대환단이라고 하는 내공 증진 약들이 얼마나 극소량의 영약을 사용하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이런 부작용 때문에 그리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설명하는 동안 백유화의 얼굴에는 조금씩 어둠이 덮였다.

절강성 항주와는 한참을 떨어져 있는 감숙성에서 지금 당장 서하린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백유화의 표정을 알아차렸는지 천일영이 웃음을 지었다.

“마침 온 것 같구나.”

“무엇이 말입니까?”

천일영이 성운의 방에서 나오자마자 하늘을 보았던 이유.

그것은 절강성 항주부터 감숙성까지 따라온 참매가 도착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하오문의 문주 세하월이 준비해 준 참매다. 내가 어디에 있든 따라오도록 훈련을 받은 아이니 저 녀석을 통해서 연락하면 될 것이다.”

“아! 절강성에서부터 따라오기 시작하여 지금 도착한 것이군요.”

백유화는 오른팔을 들어 올리는 천일영에게 다가오는 참매를 보며 몰래 웃음을 지었다. 지금 항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의 웃음이다.

‘지금만이라도 천마님이랑 단둘이 있는 것이 너무도 좋구나. 지금만이라도…….’

백유화의 얼굴에 씁쓸하지만 안도감이 짙게 섞인 웃음이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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