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154화 (155/270)

154화

나이 사십육 세.

날카로운 얼굴의 곡선과는 대비되는 둥글둥글한 눈매가 언뜻 사람의 긴장을 풀어 주는 듯 보이는 인상의 현황우가 오랜만에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오늘 하루 동안 밖으로 나간 자 중에서 일곱 명이 사라졌다고? 그것도 한 조에서 딱 한 명씩만 사라졌다는 말이냐. 그런데 그것을 본 사람도 없고, 심지어 없어지고 나서야 눈치를 챘다면 내가 뭐라고 할 것 같으냐.”

“그…… 그것이…….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고개를 처박고 벌벌 떠는 산적의 모습에 현황우는 기나긴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산적 아니랄까 봐 멍청하기는. 내가 무조건 죽이기나 하는 놈으로 보이느냐. 목숨을 살려 달랄 게 아니라 아무런 정보도 없이 왔으니 화를 내는 것쯤 눈치 좀 채거라. 어디에서 어떻게! 시간은 언제이며! 없어진 이후 얼마나 지난 후에 눈치를 챘는지를 정리해서 보고해야 할 것 아니냐!”

“즈…… 즉시 정보를 취합해서 오도록 하겠습니다.”

“하아……. 한 시진 주마.”

“네…… 네!”

중간 관리자쯤으로 보이는 산적이 허둥지둥 밖으로 나선다.

그 모습을 보고는 연달아 한숨을 내쉬던 현황우가 곁으로 눈길을 돌렸다.

“너희들은 어찌 생각하느냐. 모두를 납치한 것이 아니라 한 조에서 딱 한 명씩만 사라졌다는 게 이상하기는 하다만.”

“자세한 것은 조금 이따가 올라오는 보고를 들어야 알 수 있겠지만, 공동파가 움직인 것이 아닐까 합니다.”

“공동파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무인이라면 성운 정도만 남았을 것인데 그의 몸으로는 무리다.”

“그 성운이 외부인을 불러들인 것이겠죠.”

현황우의 곁에 서 있는 남자 임면택. 그가 서슬 퍼런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의 화난 듯한 표정의 이면에는 다름 아닌 성운을 살려 두어서 일이 복잡하게 되었다는 원망도 조금은 섞여 있는 듯도 했다.

“됐다. 그런 표정을 지어 봐야 성운은 어차피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게다.”

“죄송합니다. 감정이 지나쳤습니다.”

“아니다. 이 정도야 뭐 상관없지 않겠느냐. 네 의견은 잘 알겠고, 이번에는 책사인 네 의견을 들어 보지.”

현황우의 곁에 있는 미모의 30대 중반의 여인 국송연.

그녀의 꽃 같은 입술이 벌어지자 제법 청아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녹림 총관 임면택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한 가지를 더 덧붙이자면 놈들의 의도는 고수가 있으니 함부로 덤비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일 거로 생각합니다. 그것이 한 조에서 딱 한 명씩만 납치한 이유겠지요. 아마도 놈은 오늘 하루 정도 움직이고 말 것입니다. 천하의 고수가 납치 같은 허드렛일을 며칠씩이나 할 리도 없고, 또한 납치한 놈들을 옮기는 것도 제법 큰일이니 말입니다.”

“내 생각과 비슷하군.”

현황우는 의자에 앉은 몸을 일으켰다.

“내일부터 밖으로 나갈 때 고수 한 명씩을 같이 보내거라. 공동파에서 나와 함께 거사를 도모한 일류 고수 한 명씩과 함께 움직이면 적어도 적이 어떻게 납치하는지 알 수 있겠지. 혹은 일류 고수가 섞여서 움직이면 적들도 일이 커질 것을 우려하여 조용히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알겠습니다. 그리 말씀하신다면 조 편성을 다시 하겠습니다.”

국송연이 대답하자 이내 현황우가 고개를 저었다.

“국송연은 할 말이 있으니 잠시 여기에 남아 있거라. 새로운 조의 편성은 임면택 총관에게 맡기지.”

“알겠습니다.”

드르르륵. 탁.

임면택이 밖으로 나서자 현황우는 국송연에게 다가갔다.

슬그머니 뻗어 나가는 현황우의 손길.

그러나 국송연은 현황우의 손끝을 밀어내며 사뭇 요염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녹림의 채주 정도로 만족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늘도 거절하는 것이냐.”

“제가 말씀드린 것을 모두 가지시기 이전에는 계속 거절할 것입니다. 그것이 제 지혜와 제 전부를 드리는 조건이었다는 것을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높은 자리에 오르실 것이라면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어야 할 것입니다.”

“어차피 곧 전부 가지게 될 것인데.”

“아직은 아니지요. 저는 제 눈앞에 보이는 것만 믿는답니다.”

“하하하. 천하의 국송연을 가지기 쉽지는 않다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완고할 줄이야.”

현황우는 국송연을 향하던 손길을 내렸다.

녹림십팔채의 채주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장강수로채의 주인까지 되어 그 누구도 건들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국송연이 자신의 모든 것을 준다고 했던 약속.

아쉽지만 지금은 뒤로 물러서야 할 때임을 현황우는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여유를 부리는 그의 모습과는 달리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요소령은 왜 오지 않는 거지? 무공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비법을 알려 주겠다며 꼬셨는데. 공동파를 멸문으로 몰아넣을 정도의 무공을 거저 주겠다고 하니 분명 온다고 했거늘.’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장강수로채와 녹림십팔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그 때문에 요소령과는 연락하고 있었고, 안면도 있는 사이다.

분명 전 채주를 죽음으로 몰아넣음과 동시에 몰래 녹림을 집어삼키는 과정에서 요소령의 도움을 받았고, 이후 무공을 급격히 키워 내공이 3갑자나 늘어난 것을 요소령에게 직접 확인까지 시켜 줬다.

또한 공동파까지 거의 멸문으로 몰아넣어 그 힘을 증명했으니, 요소령으로서는 이 무공을 탐내는 것도 당연한 일.

‘분명 장강수로채를 떠날 때 전서구가 왔었고, 감숙성에 도착했을 때도 연락이 왔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 그 의심 많은 성격대로 멸문하는 공동파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겠다고 연락이 왔는데 갑자기 사라지다니.’

현황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분명 자신은 요소령이 오면 제거를 하고 장강수로채까지 집어삼키려 했다.

그것이 국송연이 자신의 것이 되는 조건이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요소령이 행방불명이 되었다.

‘설마 뭔가를 눈치를 챈 것인가?’

잠시의 생각 끝에 현황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 없었으니까.

지금 이 계획을 아는 사람은 단 두 명. 현황우 본인과 국송연뿐이다. 총관인 임면택조차 모르는 사실이 외부로 누출될 리는 없음이다.

‘요소령, 빨리 오거라. 하루빨리 너를 제거하고 국송연을 품고 싶구나. 고통은 적게, 최대한 빠르게 죽여 준다고 약속하지. 반으로 찢어 죽일 것이니.’

조금은 느긋하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현황우의 둥글둥글한 눈매에 살기가 맺혔다.

한편.

천일영의 손아귀에 뒷덜미를 잡혀 산 아래로 곤두박질친 지 삼 일째.

요소령은 겨우 눈을 떴다. 하지만.

“모…… 몸이 안 움직이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다급한 마음에 내공을 모아 몸의 여기저기를 살펴보던 요소령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

어찌나 내공을 때려 박아 회전까지 시켜 집어 던졌는지 온몸의 뼈마디가 전부 빠져 있다.

이대로라면 움직이기는커녕 물 한잔 마음껏 마시는 것도 불가능할 지경.

끼이이익.

그때 문이 열리며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이제 정신을 차리신 모양이군요.”

“여…… 여기는 어디냐!”

“의실입니다. 심하게 다치셔서 정신을 잃은 지 꽤 되었습니다. 벌써 삼 일이나 지났지요.”

“이런 망할, 이 정도로 심하게 다쳤을 줄이야. 몸을 치료하는 데는 얼마나 걸리겠느냐.”

“몸의 뼈를 끼워 맞추고 붓기를 가라앉히는 데까지 열흘 정도면 됩니다. 급하게 움직여야 한다면 물론 삼 일만으로도 거동은 가능하겠지만요.”

“알았다. 빨리 치료를 부탁하마.”

“알겠습니다.”

의원이 대침과 소침을 꺼내 드는 것을 본 요소령의 입에서 한숨이 흐른다.

하지만 잠시 후.

요소령의 머리에 떠오르는 기억에 이내 한숨이 거친 숨결로 바뀌고, 그것도 모자라 이를 뿌득하고 가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망할 놈의 공자 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천하의 요소령을 그렇게 집어 던져? 내 이놈을 죽여 버리고 말 것이다.’

요소령의 분노는 이내 결의가 되고, 빠른 치료를 하며 진땀을 흘리는 의원에게 눈길이 고정되었다.

“혹시 해서 묻는데, 내일 나가도 되는가.”

“엄청난 고통이 따르겠지만 가능은 합니다. 하지만 허락은 불가능합니다. 같이 오신 두 분이 호열자에 걸리셨거든요. 아마 옮으셨을 확률이 높습니다.”

“뭐라고?”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호열자에 특효약이 있으니까요. 그러니 지금 드셔 주시겠습니까?”

의원이 눈앞에 환단 하나를 들이민다.

요소령은 침을 꿀꺽 삼켰다. 느닷없이 호열자라니.

왠지 수상한 약을 들이밀기에 요소령은 먹지 않으려 몸부림을 치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온몸은 물론이고 손가락 마디 하나까지 전부 분리된 듯 뼈가 빠져 있었으니까.

“몸에 좋은 겁니다. 드시지요.”

눈앞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환단을 두려운 눈길로 바라보는 요소령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텁.

입으로 들어오는 환단.

순간 의원이 사악한 웃음을 지은 것 같은데 착각이었을까.

꿀꺽.

요소령은 미칠 듯한 불안감과 함께 환단을 삼켰다.

* * *

다음 날.

어제 납치해 온 일곱의 산적들은 모두 당강용의 독에 의해 잠들어 있었다.

산적들은 영문도 모른 채 납치당하는 순간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끌려왔다.

당양희가 독으로 마비를 시키는 순간 성운이 납치를 하고, 백유화는 강선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무 뽑듯이 사람을 뽑아 올리니, 그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게다가 당강용은 그동안 안과 혜와 함께 서류 더미에 파묻혀 지내고 있었으니, 지금 이 일이 너무 즐거워서 참을 수 없을 지경인 모양이다.

그는 새로 만든 독의 시험까지 겸하여 산적들을 딱 죽지 않을 만큼만 만들기까지 하니, 문주로서의 무공 실력으로도 이제는 죽은 당용택을 넘어서고 있는 듯했다.

천일영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살펴보니 한 조에 일류 고수가 한 명씩 끼어 있는 듯하구나.”

“어제와 같은 방법으로 하면 되겠습니까.”

“아니, 오늘은 일류 고수만 납치하거라.”

“오호, 그거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몸을 풀며 즐거운 표정을 짓는 당강용을 향해 천일영이 조용한 눈빛을 보냈다.

“알고 있겠지만 한 사람이 한 짓으로 보여야 한다.”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만큼의 전력으로 납치를 하는 것도 이상하기는 합니다.”

“생각이 있다.”

천일영은 어제 납치가 이루어지고 난 이후, 기감을 통해 녹림의 산채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의 경위 따위 알 바는 아니지만, 황실에서 녹림으로 잠입시킨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 보려 했기 때문이었다.

‘황실도 음흉하기가 무림 못지않군. 아마도 납치를 계속하다 보면 황실에서 잠입시켜 놓은 사람이 먼저 움직이게 되겠지. 굳이 납치를 계속하는 이유가 그것뿐만은 아니지만.’

휘이이이잉.

그때 바람이 불어오며 하늘에 참매 하나가 나타났다.

며칠 전에 편지를 전해 준 참매와는 다른 것이다.

좀 더 크고 날렵해 보이는 참매. 바로 세하월이 사용하는 것이다.

참매는 천일영이 손을 들어 올리기도 전에 그의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천일영은 다리에 끼워져 있는 편지를 빼 들어 읽어 내렸다.

‘이쪽도 제대로 잘하는 모양이군.’

분명 천일영은 성운에게 무림맹과 구파일방에 매일 편지를 쓰라고 말했다.

그리고 성운은 투덜거리면서도 매일같이 편지를 쓰고 보냈다.

세하월은 그 편지가 도착할 때쯤 되어 일종의 소문을 흘리고 있었다.

그 내용은 바로 이러했으니.

[모용세가는 공동파에 가고 싶지만, 무당파가 말리기에 못 가고 있다.]

[무당파는 공동파를 지원하고 싶지만, 남궁세가가 말리고 있기에 움직이지 못한다.]

저 둘뿐이겠는가. 모든 구파일방과 무림의 문파에 서로를 핑계로 삼는 소문을 내고 있었다.

‘앞으로 조금만 더 옆구리를 찌르면 되려나.’

천일영은 편지를 불태우고, 무거운 엉덩이를 가진 정파를 대신해 동전 이십 냥짜리 검을 가지고 납치를 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