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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56화 (157/270)

156화

출진하는 현황우의 곁에는 일류 고수 열다섯과 절정 고수 세 명이 있었다.

모두 지금의 공동파에 불만이 많아 현황우가 장문인을 죽였을 때 두말없이 따라온 자들이다.

눈앞에 보이는 무력. 그것이 배신한 그들이 믿는 가장 절대적인 선이었기에 후회조차 남아 있지 않은 얼굴.

현황우는 고수들을 옆으로 나란히 하고 그 뒤로는 사백의 산적을 거느리며 문을 열었다.

쿠구구구궁.

공동파의 정문보다 두 배는 될 법한 거대한 문이 열리고, 이내 당당하게 밖으로 나가는 현황우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자신을 포함한 지금의 전력이라면 웬만한 무림 문파 하나를 상대한다 해도 구파일방이나 오대 세가만 아니라면 큰 손실 없이 상대할 수 있을 정도. 세상에 거칠 것이 없고 또한 무서울 것도 없는 얼굴이다.

“가자. 공동파를 짓이기고 밟아 그 이름을 무림에서 지울 것이다.”

“네!”

터덕. 터덕. 터덕.

보통의 산적이라고 하면 한군데에 뭉쳐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길을 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현황우가 채주로 있는 녹림의 본문은 달랐다.

척. 척. 척. 척.

정문을 나와 좁은 산길을 빠져나오자 산적들을 열을 맞춰 걷기 시작했다.

각자의 병장기도 산적답지 않게 도끼가 아닌 검과 창 위주로 되어 있는 것이 무공의 흔적을 몸에 담고 있는 듯 보인다.

현황우는 그들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가 꿈꿔 오던 새로운 세력의 출발. 천하를 발아래 두기 위한 첫걸음이다.

“여기에서 길을 돈다!”

“네!”

녹림의 본문을 내려와서 중간에 갈림길이 나오는 곳에 도착하자 중간 관리를 하는 산적 하나가 고함을 질렀다.

이제 이곳부터 다시 산길을 타고 올라가면 공동파의 본문.

마치 군병처럼 절도 있게 움직이니 비록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도 좁은 산길을 한 시진이 조금 넘는 시간 만에 통과하고 있었다.

‘확실히 국송연이 군사이자 책사로서 훈련을 잘 시켰군.’

현황우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백이 넘는 인원들로 공동파의 정문에 도착했다.

“모두 진형을 만들라.”

“네!”

공동파의 정문 앞에 선 산적들이 특별히 만든 진형을 따라 몸을 움직였다.

이것은 공동파를 치기 위해 만든 진형으로, 비교적 좁은 곳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었다.

산적들이 진형을 모두 만들자 현황우는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휘이이이잉.

바람이 불어 산에 덮여 있는 흙먼지를 날렸다. 그 너머로 보이는 신형.

성운의 모습을 본 현황우의 입에 비릿한 웃음이 걸렸다.

영약이라도 처먹었는지 몸도 건강해 보이고 얼굴도 갑자기 젊어진 듯했지만 무슨 상관이겠는가. 곧 죽을 놈인 것을.

“천하에 이름을 알리던 공동파에 남아 있는 무인이 겨우 이것뿐입니까.”

“수는 상관없다. 너희들과는 다르게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공동파의 무인들이니.”

스르르릉.

성운의 등 뒤로 서 있는 공동파의 무인은 약 일백.

대부분은 이류 무인과 삼류 무인들이었지만, 개중에는 현황우가 공동파를 멸문으로 몰아넣었을 때 살아남은 절정 고수와 초절정 고수도 그 눈에 살기를 맺고 있었다.

“비록 나이 들어 원로 소리를 듣는 분들이 계시지만 고수들이시니 현황우 네 마음대로는 안될 것이다.”

“그때 꽤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이만한 수가 남아 있었던가.”

현황우가 뒤통수를 긁적였다.

확실히 지금의 전력으로 부딪힌다면 이기기는 할 테지만 현황우의 녹림 역시 제법 많은 피를 흘리게 될 터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공동파로 돌아오거나 아니면 녹림으로 돌아가거라.”

“푸하하핫. 이거 아직도 공동파로 돌아오라는 소리를 하시는 것입니까. 성운 장로는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재미있는 분이십니다.”

크게 울려 퍼지는 현황우의 웃음소리는 이내 메아리를 남기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곧 현황우는 웃음을 멈추고 얼굴에 살기를 드러냈다.

“예전부터 성운 장로님의 말은 재미가 있었지만 따분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니 오늘까지만 뵙는 것으로 하지요.”

“그러냐. 네 뜻이 그렇다면 나 역시 빼든 검을 검집으로 돌리지 못하겠구나.”

성운이 검에 살기를 담아 들어 올렸다. 그때였다.

현황우가 검을 뽑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이죽거리는 목소리를 꺼낸 것은.

“저도 성운 장로님과 똑같은 말을 한번 해 보겠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으니 돌아오시지요. 녹림으로.”

“……?!”

현황우의 내공 섞인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순간 공동파의 편이었던 고수들이 검을 뽑아 성운을 향했다.

“이…… 이게 무슨?!”

“으하하하핫. 이제야 말씀드리지만 사실 공동파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 것이었습니다.”

성운이 든 검이 떨렸다. 성운도 떨었다.

공동파는 이미 끝이었다.

성운에게 검을 겨눈 고수들의 뒤로 오십 정도의 공동파 무인들이 따라 움직이니, 기껏 성운의 편이자 끝까지 공동파를 선택한 사람들은 고작 오십.

그것도 모두 삼류 무인과 이류 무인뿐이었다.

“네놈! 공동파의 장문인을 죽였을 때 다른 장로들과 고수들을 죽이면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네놈의 마음이 악으로만 가득 찬 것은 아니라 믿었거늘,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단 말이냐!”

“그야 그때는 이미 제 편인 사람들만 살려 둔 것이었지요.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 적당히 아프게는 해 드렸지만.”

“어찌하여 처음부터 공동파를 멸문시키지 않고 이런 짓을 한 것이냐! 희망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 것은 더욱 악독한 짓인 것을!”

“제가 장문인을 죽이고 공동파를 아예 멸문시켰으면 어땠겠습니까. 무림맹이며 다른 무림 문파에서 뛰어왔겠지요. 그래서 거의 멸문으로 위장했습니다. 공동파의 명맥을 남겨 놓으면 지금의 무림맹은 가만히 있을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네놈, 그럼 녹림을 집어삼키고도 굳이 돌아왔던 이유가 공동파의 무인들을 네 편으로 끌어들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나!”

성운은 마음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는 듯한 충격과 함께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했다.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의 충격이 얼마나 큰지, 그의 마음에서 생긴 상실의 충격은 눈앞마저 흐리게 만든다.

‘하지만…….’

성운은 자신의 마음을 뒤로 물리고 고개를 가로저어야 했다.

남아 있는 공동파의 무인 오십 명.

여전히 공동파를 따라 주는 그들이 있는 한, 성운은 지금 여기에서 꺾여서는 아니 되는 일이었다.

“운현아, 너는 지금 당장 남아 있는 오십의 무인들을 내 뒤로 물리거라.”

“네, 장로님!”

운현이 옆을 바라보며 공동파의 무인들에게 손짓했다.

공동파의 진법인 삼절검진(三絶劍陳)을 만들어 성운의 뒤로 오라는 뜻이었다.

성운은 즉시 남은 무인들이 진을 만들며 자신의 등 뒤로 들어오자 검에 검강을 둘러쌌다.

“성운 장로님의 검강은 오랜만에 보는군요. 초절정 고수인데 내공이 사십 년 치밖에 안 되어 웬만하면 쓰지 않는 검강 아닙니까.”

“오늘 같은 날 쓰지 않으면 언제 쓰겠느냐.”

“애써 오랜만에 쓰시는 검강입니다만 참으로 쓸데없는 짓이었습니다. 써 보지도 못하고 죽을 테니까요.”

푸욱! 콰지지직!

현황우의 말이 끝나는 순간, 성운의 등 뒤로 검이 박혀 들었다.

투두둑. 투두두둑.

바닥으로 쏟아지는 피.

성운은 애써 떨리는 눈동자를 진정시키며 뒤를 돌아보았다.

“우…… 운현아! 네…… 네가 어찌!”

“죄송합니다, 장로님. 정말로 죄송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현황우의 편이 된 것이냐. 너만은…… 너만은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더냐. 너만은 내 편이 아니었더냐!”

“그랬습니다. 아니, 그랬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운 장로님처럼 내공이 모자라 죽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리 노력하여 무공이 늘어도 내공이 없어서 지기만 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툭. 툭.

운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땅으로 떨어졌다.

이를 악물고 검에 힘을 주면서도 운현은 떨리는 신형을 주체 못 하고 성운의 눈길을 피했다.

“단지 손가락 하나로 지법에 의해 죽음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장로님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무공을 잘하고 협과 도리를 알며 정도를 걷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요! 손가락 하나에 죽기 위해 무공을 연마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내공이 없어서 그렇게 죽는다면 그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크흑.”

“그랬냐. 그랬구나.”

성운의 고개가 툭 떨어지듯 땅을 향했다.

씁쓸하기도 하고 인자한 것 같기도 한 미소가 성운의 얼굴에 드리워졌다.

“현황우 사형이 말했습니다. 내공을 키울 수 있는 비법이 있다고요. 그리고 사형은 실제로 3갑자나 되는 내공으로 만들어 보였습니다. 저는 약하다 하여 더는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약해서 죽는 것도 싫었습니다. 장로님처럼 피를 토하며 죽음의 문턱을 넘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것이 네 뜻이더냐. 그렇다면 너는 네가 가기로 마음먹은 길을 가거라. 그것이 나를 죽이고 다른 길로 가는 것이라 할지라도 한번 정했으면 망설이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크흑, 장로님. 죄송합니다.”

푸우우욱.

성운의 등으로 검줄기가 서서히 박혀 들어갔다. 그러나.

투두두둑. 투둑. 툭.

박혀 들어가던 검날이 서서히 멈추고, 이내 아무리 힘을 주어도 더는 움직이지 않는 검날에 운현의 눈길이 박히듯 고정되었다.

“이…… 이게 무슨! 젠장, 이럴 때마저 내공이 부족해서 장로님 하나 죽이지 못하다니!”

콰직.

운현의 손길에 따라 검에는 더 많은 힘이 더해지고, 이내 검날을 비틀어 살갗을 헤집는 손길이 더욱 거칠어졌다.

“매일같이 나를 바라보며 짓는 웃음 속에는 그런 마음이 있었구나. 왜 나를 죽이지 않느냐. 검날은 아직도 손끝에서 네 뜻대로 움직이고 있지 않으냐.”

“그…… 그것이…….”

텁!

성운은 손을 뒤로 뻗어 운현이 잡고 있던 검의 날을 잡았다.

스으으윽.

성운이 힘을 주자 검날은 이내 붉은 피를 튀기며 서서히 뽑혀 나왔다.

성운은 등에서 뽑아낸 검을 바닥에 던지고는 몸을 돌려 운현을 바라보았다.

파앙!

성운의 손에서 복마대력수(伏魔大力手)가 터져 나오며 운현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꿰뚫었다.

콰가각.

“크아아아악!”

“운현아, 나는 지법으로 당하면서도 너희들을 지키기 위해 이 몸을 던졌었다.”

“크윽, 장로님!”

“죽을 위기에 처하면서도 나는 내 목숨보다는 네 모습이 먼저 떠올랐다. 내가 현황우의 발목을 잡는 동안 너희가 도망가기만을 바랐다.”

휘이이잉! 콰각!

공동파의 또 다른 수공인 비봉수(飛鳳手)가 운현의 폐를 뚫었다.

“커헉!”

“손가락에 온몸이 꿰뚫리는 수치심보다도 너희를 걱정했던 그때의 내 마음이 참으로 바보 같구나. 나는 너희만 살아난다면 수치심 따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고, 죽는 것 따위 두렵지도 않았거늘.”

“장로님!”

휘이이잉. 퍼어어억.

성운의 손끝에서 터진 구음수(九陰手)가 운현의 단전으로 박혀 들었다.

단 하나의 손가락만으로 운현의 단전을 박살 내 버리니, 이내 성운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죽이지는 않겠다. 그러나 너는 파문이다. 공동파에서 나가거라.”

“크흑.”

성운의 눈길이 운현을 떠나 자신의 등을 찔렀던 검으로 옮겨졌다.

성운은 천천히 운현의 검을 들어 올려 현황우를 겨누었다.

“모두가 내공에 미쳐 있었던 모양이구나. 웃기게도 정작 내공이 절실했던 나만이 미치지 않았음인가.”

“뭐, 별로 기대는 안 했지만, 운현은 정말로 쓸데없는 놈이군요. 사십 년 치의 내공뿐인 데다가 온몸이 엉망인 성운 장로님 하나 죽이지 못하다니.”

“네놈이 운현과 공동파의 사람들을 이렇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마음에 악심(惡心)이 깃들게 했구나.”

“악심이라니요. 그게 인간의 본질입니다. 저는 그것을 조금 부추기기만 했을 뿐이고요.”

현황우도 성운을 바라보며 검을 뽑았다.

그렇게 서로를 마주 보며 잠시의 시간이 지났다. 마주한 몸에서 뿜어지는 기운이 사방을 잠식하고, 이내 성운이 일그러진 얼굴로 운현의 검을 바람에 태우며 신형을 날렸다.

파방! 채앵!

순간 파고든 성운의 검을 현황우가 받아 내었다.

하지만 이내 현황우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현황우는 자신의 떨리는 팔을 바라보며 이마에 튀어나온 혈관이 더욱 튀어나오도록 힘을 주었다.

“육십 년 동안 사십 년 치의 내공으로 살아온 사람을 얕보지 말아라.”

“이 무슨 검속(劍速)!”

카가가각. 파앙.

현황우는 다급히 성운의 검을 밀어내며 몸을 뒤로 물렀다.

하지만 성운은 애써 현황우를 쫓지 아니하고, 운현의 검을 들고 있던 오른손 외에 비어 있던 왼손에 자신의 검을 들었다.

“검으로 도법을 쓰면 어찌 되는지 아는가.”

“뭐라고? 검으로 도법을? 그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내공이 사십 년 치에서 더는 늘지 않아 나는 더욱 강한 힘을 내기 위해 노력을 해 왔다. 그중에는 강한 내공과 외공으로 내려치는 도법을, 적은 내공으로 쓰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여 연구했었지. 그리고 완성했다. 그 결과가 검으로 도법을 쓰는 것이다.”

“그 무슨 개 같은 소리를…….”

“개 같은지 아닌지는 그 몸으로 한번 받아 보아라.”

휘이이이잉. 파앙!

순간 두 자루의 검이 허공으로 올려짐과 동시에 천지를 울리는 소리와 함께 현황우에게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말 그대로 성운의 분노가 형상화되어 하늘에서 떨어지는 천벌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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