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쿠아아아아앙.
사천당문의 비침에 당해 바닥을 구르던 수백 개의 신형이 사방으로 밀려 나간다.
그 엄청난 내공이 만들어 낸 탄의 위력은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 정도의 바람을 만들어 내어 오백 년이 넘은 나무까지 뿌리째 밀려 올라오게 만들었다.
투두두두둑. 투둑.
현황우는 자신의 가슴께를 내려다보았다.
“……!”
분명 폐 하나가 있어야 할 자리. 하지만 지금은 커다랗게 구멍이 뚫린 채 피가 쏟아져 나왔다.
“커헉, 쿨럭. 쿨럭.”
“이제 그만이다. 아는 것들을 말하기만 하면 조용히 보내 주지.”
“크하하하핫. 젠장. 내공이 25갑자에 이르는데, 이기지 못할 상대가 있었다니.”
현황우의 고개가 쓴웃음과 함께 툭 떨어진다. 그러나.
“하지만 내공이 30갑자라면 이기겠지. 네놈도 한계인 듯하니.”
“바보 같은 소리! 그렇게 되면 너는…….”
쿠우우웅.
다시 한번 기운이 끌어 올려진다.
순식간에 현황우의 뚫린 가슴이 메워져 가고, 흰색의 연기뿐만이 아니라 붉은색의 연무까지 섞여 피어오른다.
상처로 벌어진 혈관에서 고열로 인해 피까지 증발하여 피어나는 붉은색 연무다.
콰아아앙! 촤아아악!
현황우의 내공이 30갑자에 도달했을 때.
그 신형이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튀어 나가 천일영의 머리 위로 검을 떨어트렸다.
검이 만드는 충격이 사방으로 퍼져 쓰러진 산적의 육신을 헤집고, 바람이 칼날처럼 수십 개의 상처를 만든다.
순간 현황우의 눈에 승리의 빛이 서리며 입가에는 웃음이 지어졌다.
텁!
그러나 현황우는 자신했던 것과 달리 온통 일그러진 얼굴로 돌변했다.
검이 막혔다.
그것도 기막으로 둘러싼 손바닥 하나에 의해서.
현황우의 눈에 분노로 피가 차오르고, 천지가 흔들릴 만큼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네놈은 도대체 누구냐! 어찌하여 이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 내공을 더 끌어 올려 네놈의 육신을 만 갈래로 찢어 버리겠다!”
“바보구나. 결국 네놈은…….”
현황우가 더욱 많은 내공을 끌어 올리기 위해 온몸에 기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화르르르르르륵.
“크아아아악!”
현황우의 온몸이 검은색의 화염으로 휩싸였다.
온몸이 타들어 가는 진기에서 뿜는 열을 견디지 못하고 불이 붙는다.
게다가 진기가 이미 전부 소모된 현황우의 몸은 생기가 전혀 남지 않아 마치 마른 장작처럼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어째서 몸에 불이! 세상을 내 밑에 놓을 수 있었건만……. 네놈 때문에!”
천일영은 현황우의 한이 서린 얼굴을 보며 가라앉은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 것이냐. 네가 배운 무공은 원래 그런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닳게 만들고 죽음에 이르도록 만드는 것이지.”
“내가 속았다는 것이냐. 아니면 소모품이었다는 것을 일깨우는 것이냐. 그딴 소리는 필요 없다.”
현황우의 얼굴이 타들어 가며 눈꺼풀이 사라지고 아랫입술이 떨어져 나간다.
또한 눈알은 끓어올라 거품이 일어난다.
천일영은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길을 떠나기 전에 남길 말이 있다면 들어주마.”
“나는 아무래도 이용을 당한 모양이군. 네놈이 원하는 것을 알려주마. 지천번회. 그들은 그 어디에도 없지만, 또한 항상 주변에 있지. 네놈도 몸조심해야 할 거다.”
“고맙다. 여행 잘하거라.”
파사사사삭.
마지막 천일영의 말이 끝나기도 직전.
현황우는 재조차 남기지 않고 타들어 간 육신을 바람에 태워 날려 보냈다.
아마도 그는 남은 진기를 짜내어 천일영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을 터다.
휘이이이잉.
천일영은 그 모습을 망연한 마음으로 고정된 듯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바라보다, 이내 현황우가 떨어트린 검을 집어 올렸다.
얼마나 높은 고열이었는지 손잡이조차 가죽임에도 현황우가 뿜어낸 열기에 새카만 손자국이 박혀 있다.
“젠장.”
씁쓸한 마음이 가슴속을 휘젓는다.
성운과 당강용, 그리고 백유화는 현황우와 천일영이 일으킨 바람에 찢긴 옷을 털어 내며 곁으로 다가왔다.
“걱정 많이 했습니다. 저놈 저거, 분명 마지막에는 내공이 30갑자 정도 되지 않았습니까?”
“괜찮다. 이 정도에는 죽지 않는다.”
여전히 씁쓸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는 천일영에게 백유화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매 끝을 붙잡았다.
“왜 그러십니까?”
“의문이 늘기도 하고 풀리기도 하였구나. 또한 무림에는 강해지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도 가릴 줄 모르는 바보들만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을 뿐이다. 자신의 몸이 어찌 되건 말이다.”
“그 말씀은…….”
“현황우는 죽어 가고 있었다.”
이제는 형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그을음 자국만이 그가 존재했었다는 것을 알렸지만, 현황우는 여러 가지로 무림에 혼돈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성운은 침을 삼키며 천일영에게 궁금함을 독촉했다.
“알아듣게 설명해 다오.”
“현황우는 오늘 힘을 쓰지 않았어도 대략 한 달 안에 죽었을 거다. 조금 전 그의 몸을 들여다보았을 때 기도가 뒤틀리고 기경팔맥이 모두 못 쓸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더욱이 선천진기는 모두 바닥이 나서 남아 있는 것조차 거의 없었지. 아마 현황우 본인은 몰랐던 모양이지만.”
“그…… 그 말은!”
“화경이나 현경에 든 무인이 아니다. 비록 채기법과 비슷한 방법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초절정 고수가 30갑자에 이르는 내공을 가질 수는 없는 법. 처음부터 선천진기가 타들어 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지. 수명이 사 개월로 단축된 것도 모른 채.”
“그 말은 결국 현황우를 처음부터 버리는 말로 택했다는 것이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구나. 문제는 그들이 왜 현황우를 택했냐는 것인데.”
천일영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고 청명한 기운이 하늘에 가득했지만, 그 푸른 하늘의 너머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처럼 천일영의 마음도 그러했다.
“항상 주변에 있다고 했나.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나게 될 것도 같구나.”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만나러 오지 않는다면, 만나러 가야 하겠지.”
하지만 천일영은 씁쓸한 표정의 뒤로 몇 가지의 일을 말하지 않고 마음에 품었다.
‘분명 현황우의 몸은 자신의 의지를 가진 듯 움직였지. 그것만으로도 현황우가 배운 무공의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만일 현황우처럼 초절정 고수가 아니라 현경에 오른 무인이 저 무공을 배운다면 어찌 될까. 그리된다면 선천진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본래 현경의 경지가 내보일 기운의 몇 배나 더한 힘을 사용하게 될 터. 지천번회, 꽤 엄청난 짓을 하는구나.’
천일영은 주변에 떨어져 있던 현황우의 검집을 찾아 검을 집어넣었다.
드물게도 밝은 갈색의 검집에 황금색의 꽃잎이 날리는 것을 새겨 놓았다.
무극지검이나 금채홍이 가진 금룡참월하검보다는 한참을 못하지만, 적어도 안과 혜가 가진 별학맹검이나 비룡맹검보다 두 배의 가치가 있을 정도의 명검이다.
또한 명검답게 검면에 새겨진 이름을 알리는 글자.
참천지화(斬天支花).
녹림의 채주가 가지기에는 지나치게 비싼 검이다.
아마도 금화 육백 냥 이상의 가치가 있을 터.
아무리 녹림십팔채의 채주라 해도 산채까지 지어 가면서 명검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었다.
이것도 지천번회에서 금전적인 지원을 했을까. 잠시 생각에 잠기던 천일영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깊이 생각한다고 하여 답이 찾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제 마무리를 할까. 나는 가지고 올 것이 있어 잠시 녹림의 산채에 다녀오겠다. 그동안 성운, 너는 남은 공동파의 무인들과 함께 납치해서 재워 놓은 산적들을 끌고 나와 옷을 모두 벗겨라.”
“옷을 모두 벗기라고?”
“속옷도 남기지 말고 알몸으로 만들면 될 것이다.”
“왜 그런 이상한 짓을…….”
“재워 둔 놈들은 현황우를 자극하여 산채를 빨리 짓게 하려고 납치한 목적도 있었지만, 사실은 지금 쓰려고 재워 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될 테니 빨리하기나 하거라.”
“이…… 일단은 알았다.”
당황해하는 성운을 두고 천일영은 땅을 박차 산채가 있는 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때마침 천일영이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이 산채로 오는 것이 기감으로 느껴진다.
‘딱 예상했을 때쯤에 오는구나.’
끼이이이익.
천일영이 산채에 도착하자 때마침 거대한 문이 열렸다.
제법 조심스레 문을 여는 것이 상황을 살피며 들어오는 모습이다.
천일영은 참천지화를 뽑아 들고 산채를 들어서는 오십 명의 남자들을 향해 낮은 목소리를 내었다.
“들어오라고 허락한 기억은 없다만?”
“허억! 그것이 아니라!”
순간 산채로 들어오던 오십의 남자들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사방에 깔린 시신들에서 흐르는 피 냄새가 역하게 올라오고, 고통에 가득 차 비틀린 신음을 흘리는 산적들이 널려 있다.
마치 팔열지옥(八熱地獄)과도 같은 모습.
“히익!”
오십 명의 남자들은 눈앞에 벌어진 모습에 기겁하며 급히 옷깃으로 코를 막았다.
개중에는 뒤로 달려 나가 토악질을 해 대는 사람까지 나왔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눈앞에 있는 남자.
붉은 눈으로 혈광을 터트리며 서 있는 그와 눈이 부딪힌 순간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이 떠올랐다.
‘죽는다.’
혈광을 터트리고 있는 남자의 입에서 저승사자와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희도 산적들인가?”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방금 대답했던 남자가 침을 삼키며 눈앞의 검을 바라보았다.
밝은 갈색에 황금빛 꽃잎.
분명 현황우라는 자가 가지고 있는 검의 특징이 눈에 보인다.
‘저 사람이 현황우의 검을 들고 있다는 것은! 이미 현황우는 죽었다는 것이군. 그런데 그것에 그치지 않고 이 참상이란!’
남자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젠장, 국송연에게 연락이 없어서 찾아왔더니만 이런 일이!’
살인귀라 불러도 부족할 남자 앞에 서 있자니 뱀 앞에서 얼어붙은 개구리 신세다.
기다림 끝에 참지 못하고 온 것인데, 남자는 그 결정을 미칠 듯이 후회했다.
‘큰일 났다.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한단 말인가. 분명 저자는 살수로서 황실이 회유하여 보낸 사람 같은데, 이래서는 적으로 보인다 한들 할 말이 없지 않은가.’
오십이 넘는 사람들의 허리에 검이 있고 옷차림도 무인의 그것이다.
모양이 이래서야 한판 해 보자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때, 다시 한번 서슬 퍼런 목소리가 남자의 귓가에 박혀 들었다.
“산적이 아니라면 뭔가 연관이 있는 놈들이겠구나. 살아 있어 봐야 해만 끼치는 존재들일 테니 슬슬 내 눈앞에서 지우도록 하지.”
“잠시만요! 기다려 주십시오. 저희는 황실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입니다.”
“황실?”
천일영은 시침을 뚝 떼고 모른 척하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녹림의 채주인 현황우를 회유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녹림의 산적들이 요즘 기세가 등등하니 차라리 벼슬을 주고 같은 편으로 만들라는 명령을 듣고는 몇 번 왔었습니다. 오늘은 녹림의 채주가 대답을 해 준다고 하여 마음 놓고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니 부디 오해는 말아 주십시오.”
“미안하게 됐군. 현황우는 이미 그 흔적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죽여 버린 지 오래다.”
“아니! 잘하셨습니다. 산적들은 죽어야죠. 저도 명령을 받고 오기는 했지만, 산적들이 죽은 것을 보니 속이 시원합니다.”
남자는 벌벌 떨며 경련이 일어나는 입꼬리를 애써 치켜올렸다.
순간 기지를 발휘하여 거짓말을 하기는 했어도 상대가 믿어 줄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경련 때문에 미칠 것 같았지만 남자는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곤란하군. 황실의 사람이라면 관무불가침으로 내가 어쩌지는 못하겠구나.”
“그…… 그럼요. 중요하죠. 관무불가침.”
“그런데 혹 그 말이 거짓이라면 어쩌지?”
휘이이잉. 콰아아아아앙!
순간 천일영이 휘두른 검에 오십 명의 무인들이 서 있는 땅의 바로 앞이 풍압으로 갈라져 나갔다.
제법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여 여차하면 도망이라도 갈 생각이었는데, 검 한번 휘둘렀다고 땅이 1장 깊이로 갈라져 파여 버리자, 남자는 입꼬리를 더욱 치켜올리며 떨리는 뺨으로 말을 이어 갔다.
“화…… 황실에서 온 명령서가 있습니다. 비록 비공식 문서이기는 합니다만, 내용을 읽어 보시면 저희가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됐다. 오늘은 너무 피를 많이 봐서 충분하구나. 네놈들의 피가 더해진다 한들 달라질 것도 없으니 봐주도록 하마.”
“그게 정말이십니까. 가…… 감사합니다.”
남자는 미칠 듯한 공포심에 빠르게 밖으로 나서려 했다.
그러나 그의 발길을 붙잡은 생각 한 가지. 이것을 확인하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남자는 침을 삼키고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저기…… 공자님? 혹시 그, 여인 한 명이 이 안에 있는 것을 보시지 못했습니까?”
“여인?”
“제가 여기에 몇 번 들르는 동안 마음에 든 여인이 있어서……. 30대 중반에 제법 미인인 아가씨가 있습니다만…….”
“꽤 많이 죽여서 누구를 말하는지 모르겠구나. 괜찮다면 들어와서 찾아보아라.”
“……!”
천일영이 팔을 펼쳐 피 웅덩이의 가운데를 가리키자 남자는 순간 눈앞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머리조차 수십 조각으로 갈라져 죽은 고깃덩이들이 굴러다니는데, 어찌 국송연을 알아본단 말인가.
게다가 오십이나 되는 수하들의 목숨을 담보로 잡고 국송연의 시신을 찾을 만큼 눈앞의 남자를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젠장.’
남자는 침통한 표정을 자신도 모르게 지었지만, 경련 때문에 올라간 입꼬리는 굳어있는 채 웃음만 지어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그저 조금 마음에 들어서 다가가 볼까 생각만 했던 정도라, 미련이 남지 않을 정도의 사람이니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가. 인상착의를 알려 주면 시신을 정리하는 동안 찾아보지.”
“괜찮습니다.”
남자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남은 무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경공에 가까울 정도로 정신없이 내려가는 가운데 남자는 침통한 마음을 숨기기 어려웠다.
“황실에는 뭐라고 말씀하실 겁니까?”
“실패다. 하지만 저 정도의 사람을 보냈을 거라고는 우리에게도 알려 주지 않았기에 황실에서도 실책을 책망하지는 않겠지. 후우, 저건 사람이 아니다. 우리 같은 자들이 수천 명 덤빈다고 해고 검 끝 하나 찔러 보지도 못한다.”
남자의 무공은 절정 고수 초입. 방금 말을 건 부하는 일류 고수 끝자락이다.
나머지도 일류 고수 다섯에 이류 무인과 삼류 무인들.
전력으로는 굉장하다 할 수 있지만, 저 사람 앞에서는 무슨 소용이겠는가.
‘국송연은 사망인가. 아니, 아직 살아 있다 해도 이제 곧 죽겠지.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이야.’
남자는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다물며 흐르는 눈물을 참았다.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눈을 감는 것뿐.
마음이 시키는 대로 다 함께 국송연과 죽는 길을 선택한다 한들 개죽음일 뿐이다.
남자의 이름은 맹수곡.
그는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국송연을 짝사랑했던 남자였다.
* * *
천일영은 황실에서 녹림을 집어삼키기 위해 온 남자들을 보내고 난 후, 국송연에게 위치를 파악했던 화약을 들고 공동파로 돌아왔다.
“시킨 대로 전부 준비를 끝냈구나.”
“도무지 이 기괴한 상황을 나는 이해 못 하겠으니 슬슬 의미를 알려 주는 것이 어떠냐.”
사천당문의 약에 의해 아직도 정신을 잃고 있는 백여 명의 산적들.
그들은 옷이 모두 벗겨진 상태로 공동파의 정문 앞에 누워 있었다.
천일영은 녹림의 산채에서 가져온 화약을 공동파의 깊숙한 곳에 집어넣고 성운을 바라보았다.
“성운, 미안하다. 원망하겠지만 어쩔 수 없구나.”
“뭘 원망한다는 말이냐.”
“이제부터 공동파에 불을 지를 거니까.”
“뭐…… 뭐라고?”
파바바밧.
천일영이 재빠르게 성운의 혈도를 짚었다.
성운은 혈도가 짚이자 머리 아래는 움직이지 못한 채 입만 놀렸다.
“그만둬라! 공동파에 불을 지른다니, 미친 것이 아니냐.”
“지금은 마음이 아프겠지만 나중에는 감사하다고 하게 될 거다.”
“하지 마라. 부탁이다. 내가 네놈이 시키는 일은 그 무엇이든 다 할 테니! 제발 부탁이다.”
휘루루루루룩. 퍼엉!
천일영의 내공이 검 끝을 타고 이내 공동파의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화르르르륵!
오래된 공동파인 만큼, 장원과 전각을 지은 나무들이 물기가 마른 지 오래되어 삽시간에 타들어 간다.
“안 돼…….”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성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멸문당한 공동파지만, 마지막 남은 상징인 전각과 장원이 타들어 가는 모습은 맨정신으로 볼 수가 없었기에.
성운은 기어이 흐르는 눈물 속에 시선을 담그고, 흐릿한 눈으로 공동파의 마지막을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