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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64화 (165/270)

164화

국송연이 그동안처럼 나머지 녹림십팔채를 관리하고, 성운은 천일영의 꼬임에 넘어가 채주가 되었다.

지금은 비록 구파일방과 오대 세가가 지원해 준 돈으로 공동파를 일으킨다고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큰돈이 들어가는 문파의 유지비가 녹림에서 충당 가능했기에 성운은 결국 무릎을 꿇고 채주 자리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물론 공동파의 장문인이 되기로 한 것도 당연한 일.

“한잔하지.”

일이 마무리되어 국송연을 비롯하여 고생했던 당강용, 당양희, 백유화, 그리고 성운이 모두 모여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채주가 된 사실에 아직도 우울한 성운에게 천일영은 위로 섞인 목소리를 건네었다.

현황우가 쓰던 검 참천지화를 넘겨주면서.

“대외적으로는 공동파의 장문인으로 살게 될 것이니 걱정은 말아라. 그리고 이 검도 네게 주마.”

“하아, 내 살아생전에 산적 놈들의 두목이 될 줄이야. 게다가 이 무슨 명검이냐. 팔면 술이 몇 병짜리인지…….”

“대부분의 일도 국송연이 알아서 할 거다. 그리고 사천당문에서도 도움의 약조를 받았다. 대외적으로는 사천당문의 무인 중 하나가 새로운 채주인 척할 테니까.”

천일영의 설명에 곁에 있던 당강용이 웃음을 지으며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렇지요. 무려 천마님의 부탁이니 이 당강용 도와드리겠습니다.”

“응?”

순간 천일영과 성운, 그리고 백유화와 당양희의 얼굴이 그 자리에서 굳었다.

분명 천일영은 정파 중에서도 오대 세가인 사천당문이었기에 적절한 때가 오면 정체를 밝히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던 터.

그러한데 어찌하여 당강용이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었는가.

“아니 뭐, 저도 알고 싶어서 알게 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백유화 소저가 성운 장문인과 함께 현황우와 싸울 때 말입니다. 천마님이 맡기신 자리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뿐입니다.”

“……!”

싸악.

분위기가 차갑게 식으며 모든 시선이 백유화에게 몰렸다.

백유화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안절부절못했다.

식은땀도 아닌 진땀이 온통 온몸을 적시고 있는 가운데, 백유화는 용기를 쥐어짜 작은 목소리를 흘렸다.

“자…… 잘못 들은 거야.”

“설마 그럴 리가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귀 하나는 중원 제일이라 자부합니다.”

“처…… 천마가 아니라 천 씨가 맡긴 일이라고 한 것을 잘못 알아들은 걸걸?”

“왜 의문형이죠? 게다가 왜 진땀을 흘리고 계십니까?”

“아니…… 속이 울렁거려서…….”

“무림맹에 소속된 곳 중에서도 무려 오대 세가인 사천당문이 천마신교의 천마와 관계가 되었다니 이것 참 큰일입니다. 게다가 천 씨가 맡긴 일이라니요. 천마신교의 천마도 성이 천 씨가 아니었던가요.”

움찔.

백유화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몸에 더욱 진땀을 흘렸다.

“이름은 일영이라 들었는데.”

움찔.

“폐관 수련에 들어선 지 일 년이 넘어 그 모습을 보이지 않고, 경지가 극마라 하니 공자님의 경지와 비슷하네요. 게다가 공자님이 활동하는 시기와 맞물리기도 하고요.”

움찔.

“게다가 극마가 되어 무척 젊은 외모라고 하던데, 딱 공자님의 나이만큼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듯합니다.”

움찔.

백유화는 당강용의 은근한 말에 눈이 핑글핑글 돌기 시작하고, 이내 진땀이 흐르는 품 안에서 강선을 꺼내며 괴상한 비명을 질렀다.

“꺄악. 공자님, 일단 죽일까요?”

“죽이긴 뭘 죽이느냐, 이 얼간이가!”

꾸우우우웅.

천일영의 내공이 가득 담긴 주먹이 백유화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꽤애애애액.”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에서 파닥거리는 백유화에게 천일영은 깊은 한숨을 내리쉬었다.

“무림에서 닳고 닳은 놈이 넘겨짚는 말에 이리 쉽게 넘어가면 어쩌자는 것이냐.”

“아아아악. 아니 그게 평소에는 안 그러는데 공자님 관련만 되면 저도 모르게 자꾸 긴장이! 끄으으으윽.”

“하아, 이 망할 녀석.”

천일영은 자리에 털썩 앉으며 당강용을 마주 보았다.

언젠가는 이야기를 하려 했지만 이렇게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 백유화를 더는 탓하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

‘대충 넘어가는 것보다는 정면으로 마주하는 게 낫겠지. 당강용도 보통이 아닌 사람이니까.’

천일영은 술잔을 채우며 안광을 날카롭게 세웠다.

“그래서 사천당문의 문주 당강용은 어찌할 것인가.”

“으음, 조금 고민이 되는군요.”

“고민할 게 무엇이겠느냐. 네 뜻을 말하거라.”

“기왕에 녹림까지 손에 들어왔으니, 이것은 안과 혜가 무척이나 잘 사용할 것 같지 않습니까. 전국에 깔린 산적들을 활용하면 정보의 질이 더욱 높아질 테니 앞으로는 두 배의 돈이 벌릴 것 같습니다만.”

“응?”

천일영이 멍한 눈으로 바라보자, 이내 당강용이 파안대소(破顔大笑)하며 배를 잡고 웃는다.

“으하하하핫. 평소라면 제가 무척이나 심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공동파의 문주가 산적 두목을 하는 판국이니, 사천당문이 천마와 손을 잡는 일이라고 뭐가 이상하겠습니까. 하하하하.”

“크윽!”

당강용의 말에 성운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하지만 당강용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천마신교와 무림맹에 소속된 오대 세가의 위치를 유지하면서도 실리를 얻겠다는 말일 뿐.

‘게다가 무림맹과 척진 상태이기도 하고.’

천일영의 입에 웃음이 지어졌다.

“술이나 받거라.”

“그러지요. 그리고 공자님은 모르셨겠지만, 안과 혜는 생각보다 유명했습니다. 저도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안과 혜가 그 유명한 천마신교의 천마가 거둔 아이라는 것쯤 제가 원하지 않아도 알게 되더군요.”

“세월이 제법 지났는데도 기억을 하는 자가 남아 있었던 모양이군.”

“게다가 공자님이 지원을 요청하신 편지에 저더러 직접 가라고 한 것은 안과 혜입니다. 이미 상황을 꿰뚫어 보고 있던 그 아이들이 공자님도 한 번쯤은 당해 봐야 경각심을 잃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정체에 대한 것은 그 아이들의 뜻입니다.”

“사천당문의 무인만으로도 정파 무인들에게 명분이 서기에 직접 당 문주한테 부탁을 하지는 않았는데, 이면에는 안과 혜가 일을 잘 풀리게 하도록 손을 쓴 것인가. 그 녀석들, 요즘 제법 심심한가 보구나.”

“그럴 리 있겠습니까. 안과 혜는 녹림의 가치를 미리 알아볼 만큼의 혜안이 있었던 것이고, 서로 믿음을 가진 채 관계를 유지하려면 슬슬 공자님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저도 녹림에 수저를 좀 올릴까 생각하는데, 당연히 허락하시겠지요?”

“마음대로 하거라.”

천일영이 술잔을 기울이자 다른 사람도 따라서 기분 좋게 술의 향기를 즐기며 목 넘김에 즐거워한다. 단 한 사람, 국송연만을 제외하고는.

‘여…… 여기 이거 뭐야! 공동파의 장문인 성운만 해도 기절할 노릇인데 사천당문의 문주 당강용이라고? 게다가 처…… 천마라니. 나는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사람들과 엮이게 된 것이지? 기…… 기절할 것 같아. 아니, 그냥 기절할까?’

국송연은 술의 향기도, 자리의 즐거움도 모두 느끼지 못한 채 울렁이는 속 때문에 가슴을 움켜쥐고 구석에서 몸만 벌벌 떨었다.

* * *

닷새가 지나고 대부분의 일은 안정되고 있었다.

하지만 성운은 산채의 연무장에서 무인들을 지도하면서도 조금은 얼이 빠진 듯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가 이런 표정을 짓는 이유는 다름 아닌 운현 때문.

단전을 부수고 파문했건만, 그는 현청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어딘가로 실종 상태였다.

‘하긴, 현황우와 싸우느라 그 야단법석을 떨었으니, 그 녀석에게 눈길을 돌릴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

아마도 그는 몰래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니라면 불에 타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파문했다고는 하나, 단전도 부서져 먹고살기 막막할 터인데. 살아 있다면 허드렛일이라도 시킬까 하여 찾았건만…….’

자신의 등에 칼을 꽂았음에도 아직 운현을 걱정하는 성운은 한숨을 내리쉬었다.

그때 천일영이 백유화와 당강용, 그리고 당양희와 함께 성운을 찾아왔다.

“이제 가야 할 것 같구나.”

“벌써 가는 것이냐. 아직 같이 마시고 싶은 술이 한가득이건만.”

“그것은 조금 나중으로 미루지. 당 문주가 당양희 소저와 무인 오십을 여기에 남겨 두고 간다고 하니 사천당문과의 사이도 돈독하게 해라. 공동파와 사천당문, 그리고 종남파가 하나로 묶이니 전과 같이 남궁천이 기묘한 짓을 해도 이제는 흔들리지 않을 테지.”

“마치 새로운 무림맹의 시작 같구나.”

“그것도 나쁘지 않군.”

성운과 공동파의 무인들이 모두 나와 천일영 일행을 배웅했다.

그때 천일영은 처음 공동파를 찾아왔을 때 문을 지키고 있던 자들이 아직도 정문을 지키고 있는 것에 시선이 고정된다.

천일영은 처음 공동파를 찾아왔을 때를 떠올리며 입가에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성운, 여기 문을 지키는 사람들이 내가 처음 왔을 때 막말을 했었다.”

“뭐라?”

“게다가 유화를 보고 음심이 가득한 눈길로 온몸을 훑었지.”

“그게 사실이냐! 이 망할 놈들이!”

정문을 지키던 무인들이 벌벌 떨며 천일영을 바라본다.

“공자님! 그때 넓으신 마음으로 용서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나는 용서했지. 하지만 성운은 별개다.”

“으윽!”

덥석!

성운이 정문을 지키는 무인들의 어깨를 짚고 서늘한 표정을 짓는다.

“내, 이놈들의 교육을 다시 해야겠구나. 살려 달라는 소리가 나올 지경으로 굴릴 것이다. 멀리 나가지 못하는 것을 용서해라.”

“알았다.”

억울해하며 성운에게 끌려가는 무인들에게 천일영은 씨익 웃음을 지어 주고는 백유화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요소령의 가짜 호열자 증상은 풀었느냐.”

“아마 오늘은 운신이 가능할 테지요. 다만 꼭 한 달을 채우지 않고 천량도사와 도철용의 호열자 증상을 풀어 주라 하시는 것은 조금 불만입니다. 천량도사와 도철용은 아마 닷새 후쯤 거동이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모두 완벽하다 할 만큼 계획대로 되었구나. 이럴 때는 제법 기분이 좋지 않으냐.”

“그럼요. 도철용과 천량도사를 좀더 괴롭히지 못한 것만 빼면요.”

“다음에 또 기회가 오겠지. 그들과는 악연이 이어질 것 같으니.”

제법 시원한 산바람을 느끼며 공동산의 입구에 있는 마을에 도착하자 천일영은 당강용에게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당 문주, 한 가지 해 줘야 할 일이 있군.”

“어떤 것입니까.”

“남궁천이 그토록 원하는 것이 종남파에 있지 않으냐.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거라.”

“종남과는 연이 닿아 있으니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알겠습니다.”

“부탁한다.”

각기 가야 할 방향이 달랐기에 천일영과 백유화는 당강용과 헤어져 항주를 향해 길을 걸었다.

햇볕이 좋고 풀 내음이 향긋한 길.

흐르는 물소리에 마음마저 편해지는 길을 걸어 공동산에서 십 리 이상 벗어날 때쯤.

걷던 길의 한쪽 편에서 조금은 비릿한 냄새가 풍겨 나오는 것을 느낀 천일영의 걸음이 멈추었다.

“이런…….”

“왜 그러십니까, 천마님?”

천일영이 바라보던 길가의 구석.

잔가지가 무성하게 자라 있는 나무의 뒤로 눈길을 돌린 백유화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바로 떠나라 했을 텐데.”

“아마도 며칠 전에 화약이 터지고 공동파가 불타는 것에 놀라 그제야 부랴부랴 길을 떠난 것일 테지요.”

천일영의 손길이 잔가지에 온통 긁혀 있는 아이의 얼굴로 뻗어 나갔다.

그 아이는 객잔을 안내해 주고 은자를 받는 어린 소년이었다.

품 안에 한두 살 정도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를 안은 채 온몸에는 피가 굳어 딱지가 앉아서 죽어 있는 것을 본 천일영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뭐가 완벽하게 계획된 대로 되었다고 좋아한 것인지. 이런 아이 하나 어찌 될지 생각도 못 한 주제에…….”

“천마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허탈하게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아이의 부패하여 가는 얼굴을 쓰다듬는 천일영의 손길 너머로 백유화는 한번 뒤집히는 속을 참아 내기 어려웠다.

죽어 있는 아이의 곁에 있는 또 한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았음이다.

‘운현, 이 개자식. 스승의 등을 찌르고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백유화는 그간 많이 지워지기는 했지만, 발자국이 남아 있는 것으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추정을 해 보았다.

‘분명 아이는 화약이 터지는 소리에 놀라서 여동생을 데리고 마을을 급히 떠났겠지. 짐을 싸고 여동생을 챙겨 떠나는 길이었기에 빨리 떠나지는 못하고 몇 시진이 지난 후에야 길을 나섰을 것이다. 그리고 운현 이놈은 단전이 부서지고 난 이후, 몰래 도망을 나왔다가 이 길에서 아이들을 만났겠지.’

그다음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임에 백유화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마을을 떠나는 것이 불안한 여동생을 안심시키려고 아이는 은자를 보여 줬을 것이다. 이 돈이면 큰 도시에 가서 살 수 있다고. 그리고 그것을 때마침 도망가는 운현이 보았겠지. 몸이 성치 못하니 굶어 죽을 것을 걱정한 운현이 아이의 돈을 빼앗으려 했고 반항을 하니 죽인 것인가.’

하지만 운현은 천벌을 받았으리라.

그것을 또 마침 지나가던 다른 산적일지, 혹은 무인인지는 모르겠으나 은자에 눈이 뒤집힌 자에 의해 운현도 그 명을 달리했으니까.

‘천마님은 운현과 성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시니, 이 이야기는 나만 마음에 담아 두고 끝내야겠다. 분명 아시게 되면 또 자신을 탓하실 테니까.’

그때 천일영이 손을 흙 속에 담갔다.

“무덤이라도 만들어 줘야겠다. 가식적인 일이라 해도 그리해야 될 것만 같구나.”

“돕겠습니다.”

“나는……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모르겠구나. 그때 은자를 주지 않았다면 이 아이가 죽을 일도 없었겠지. 좋은 일이라 생각한 적은 없지만 작은 도움이라도 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이리되어 버리니 나는 내가 한 일에 자신이 없어지는구나.”

“그것은 천마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천마님의 행동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도우려는 생각이 어찌 잘못이겠습니까.”

“그랬으면 좋겠다만…….”

말끝을 흐린 그 뒤에는 어떠한 마음이 숨어 있을까.

백유화는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입을 다물었다.

툭. 툭.

두 아이의 무덤을 만든 천일영은 수공으로 돌을 깎아 비석까지 세우고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반 시진이 흐르고.

이내 흙을 쌓아 올린 무덤을 두어 번 손으로 치며 다듬던 천일영이 몸을 일으켰다.

“가자. 길이 머니.”

“네.”

천일영이 무덤에 세운 비석에 백유화의 눈길이 흐르듯 고정되었다.

[태평연월(太平烟月). 사해형제(四海兄弟).]

비석에 새겨진 의미를 어찌 모를까.

백유화는 천일영이 생각하는 세상이 어떠한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 고개를 숙이고, 어른들이 잘못 만든 이 세상에서 일찍 떠난 어린아이들을 위해 합장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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