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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66화 (167/270)

166화

금채홍이 사라져 마음이 다급해진 천일영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금채홍의 방문을 열었다.

드륵.

천일영은 자신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것을 느꼈다.

깨끗하게 정리된 방.

탁자 위에 올라와 있는 편지 한 장.

그리고 금룡참월하검.

“이게 무슨…….”

분명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 믿었고, 가장 보고 싶어 했을 사람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에 허탈해지는 심경을 가눌 길 없다.

부스럭.

천일영은 마음을 굳게 먹고 편지를 펼쳤다.

[잠시 다녀올 곳이 생겨 자리를 비우려 합니다. 금룡참월하검은 공자님께서 내려 주신 것이니, 제가 자리를 비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 같아 두고 가겠습니다. 하지만 금룡참월하검을 두고 가는 것은 다시 돌아오겠다는 제 뜻을 대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부디 제가 없는 동안 잘 보관해 주세요. 두 달 정도의 여정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반드시 꼭 돌아오겠습니다.]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도대체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가야 할 곳이 어디란 말인가.

천일영은 곁에서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는 건청에게 급히 말을 걸었다.

“채홍이가 갈 만한 곳 중 짚이는 곳은 없느냐.”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아서 딱히 생각나는 데가 없습니다.”

“채홍이가 사라지기 전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이 누구더냐.”

“서하린 소저와 이야기를 나눴지요. 마침 긴 잠에서 깨어난 이후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알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천일영은 무엇인가 불길한 것이 마음속을 긁어내리는 듯한 느낌에 서하린이 있는 방문을 거칠게 열었다.

드르르륵.

문을 열자 밥을 한 움큼 떠 입에 넣으려고 입을 쩍 벌리고 있던 서하린과 눈이 마주쳤다.

서하린은 얼굴이 붉어진 채 얼른 입을 다물고 일어서서 인사를 올렸다.

“다녀오셨습니까, 공자님.”

“다행히도 몸은 괜찮아 보이는구나.”

“공자님과 유화 언니 덕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리 땀을 흘리고 계십니까? 무슨 일이 있으신 것입니까?”

천일영은 대답 대신 금채홍이 남긴 편지를 건넸다.

당황스러운 눈으로 편지를 읽어 내리던 서하린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얘가 지금 편지 한 장 남기고 무슨 짓을!”

“혹시 채홍이와 대화 중에 이상한 것이 있었느냐.”

“그다지 별것은 없었습니다. 월영과 함께 금군을 상대했던 이야기를 했을 뿐입니다.”

“그때 했던 말을 자세히 이야기해 다오.”

“객잔에서 금군의 정체를 의심하여 청해성으로 가는 놈들을 사천성에서 도륙했다는 이야기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영약의 마을에서 있었던 사건하고요.”

“그것뿐이란 말…… 이냐.”

털썩.

천일영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단서가 없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일에 충격을 받은 것이 천일영뿐일까.

곁에 서 있던 백유화도 고개를 숙인 채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천마님과 함께 있는 사이에…….’

자신의 애틋한 마음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백유화의 가슴이 날뛴다.

‘애초에 천마님과 금채홍이 행복하기를 바랐건만, 내가 욕심을 부렸고 행복해했기 때문에 벌을 내린 것인가. 안 돼!’

숨이 차오른다.

멍해진 머리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찬 바람이라도 쐬며 머리를 식혀야 할 것 같은 생각에 백유화는 밖으로 나왔다.

‘어째서 채홍이가……. 도대체 어디로 간 거니. 나 때문이니?’

바닷바람이 백유화의 머리를 헝클이고 지나간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백유화는 조금은 냉정해진 마음으로 금채홍이 갔을 법한 곳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아니, 떠올려야만 했다.

자신이 행복해하던 순간에 금채홍이 괴로운 일을 겪었다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았기에.

‘서하린의 입에서 나온 지명에 답이 있을 거야. 감숙성에는 채홍이가 오지 않았으니까 아닐 것이고, 그렇다면 절강성과 강서성의 경계선에 있는 마을? 아니, 그곳은 월영이 무덤을 만들고 있던 곳이다. 그렇다면 사천성과 청해성 둘만이 남는 것인데.’

백유화는 이를 악문 채 주먹을 꽉 쥐었다.

잠시의 결의가 마음속에서 굳어지고, 이내 백유화는 천일영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입을 열었다.

“공자님, 아마 사천성 아니면 청해성이 아닐까요.”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던 중이다. 하지만 그곳에 채홍이가 가야 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구나.”

천일영의 머리가 땅으로 기운다.

사실은 별일 아닐지도 모른다.

비록 경지의 초입이기는 하지만 절정 고수인 금채홍을 걱정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불행한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문득 천일영의 머릿속에 떠오른 일 년하고도 조금 전의 일이 떠올랐다.

금채홍을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이다.

‘문목화! 금채홍의 친구이자, 또한 어렸을 때의 친구와 결혼까지 했다고 했던 그 사람이 청해성에 영기의 땅을 찾아 놓았다고 했지! 그곳에 나에게서 받은 천년하수오의 씨앗을 뿌린다고 했었다.’

분명 금채홍은 서하린으로부터 청해성까지 금군이 찾아가 영기의 땅을 찾아 모두 죽이고 영약을 탈취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마지막 남은 친구의 안위가 걱정되어 길을 떠났을 터였다.

‘바보 녀석! 서하린을 죽일 정도의 무인들이 엮인 일이라 건청이 허락해 주지 않을 것 같으니 거짓말을 한 것이군.’

천일영의 몸이 벌떡 일으켜졌다.

‘젠장, 아까 유의선이 무림맹의 무인들이 청해성으로 향한다고 했었지.’

손마디가 떨려 왔다.

만일 금채홍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은 멀쩡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천일영이 급히 밖으로 나서려 했다.

그때.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사를 올리러 왔습니다.”

“사귀진과 유향설인가. 딱히 인사를 하러 오지는 않았어도 되는데.”

“그게 아니라 잠시 이곳을 떠나 있어야 해서 작별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떠난다니?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

사귀진이 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사혈련의 천주께서 임무를 내렸습니다. 이놈의 영약 타령을 드디어 사혈련에서도 하는군요.”

“천주가 직접 영약에 대해서 명을 내렸다면 부탁 한 가지 해도 되겠느냐.”

“말씀만 하십시오.”

“사혈련에서 어디에 영약을 쓰는지 알아봐 다오.”

“천주의 뒤통수를 때리는 것인가요. 그것 재미있겠군요.”

“고맙구나. 다녀오는 데는 얼마나 걸리겠느냐.”

“아마 한 달쯤 아닐까 합니다. 청해성으로 가는 것이니까요.”

“청해성?”

천일영의 얼굴에 황망함이 깃든다.

‘무림맹에 이어서 사혈련도 청해성으로 움직인다?’

불길한 마음의 한 켠이 말해 주는 것.

‘무림맹과 사혈련이 그동안 영약을 뒤지다 손길이 닿지 않은 곳으로 몰려드는 것인가. 채홍아!’

꾹 다문 입술 사이로 이가 악다물어지고, 피투성이가 된 금채홍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만 같아 천일영은 황급히 몸을 돌렸다.

* * *

다음 날.

유의선은 침을 꿀꺽 삼키며 별유천지 앞에 섰다.

그의 곁에는 최고급의 비단옷을 입은 남자가 얼굴을 가린 채 서 있었고, 뒤로는 무공의 경지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무인 세 명이 싸늘함이 깃든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곳입니다. 헌데 정말로 들어가시겠습니까.”

“비록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일을 뒤집어 녹림을 집어삼키지 못하게 했지만, 공자는 현황우를 죽이고 의뢰하지도 않았던 요소령까지 잡아 왔다. 하지만 우리는 태자태사를 그에게 넘겨주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괜찮다. 황실에서도 암약이 벌어지고, 목숨은 언제나 위험하지 않았느냐.”

“뜻이 그러하시다면 알겠습니다.”

유의선이 별유천지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내 건청이 유의선을 흘끔 바라보고는 등을 돌려 버린다.

아마도 별유천지의 공자를 유의선이 이용하려 했다는 것을 아는 듯.

유의선은 낯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큼큼, 공자와 약속이 있다. 미안하네만 공자에게 내가 왔다고 말해 주겠는가.”

“공자님이라면 안 계시는데요?”

“뭐라?”

유의선의 인상이 순간 확 구겨졌다.

모시고 온 사람이 어떠한 분인데 약속을 어기고 나가 있다는 말인가.

“언제 돌아오시는가.”

“그건 모릅니다. 굉장히, 아주 아주 굉장히 먼 곳에 가셨습니다.”

“윽! 내 목이 걸릴 만큼이나 중요한 약속이라네. 공자는 어디에 갔는가.”

“승선포정사사님의 목이 걸려 있다니 입이 찢어져도 말씀을 드리면 안 되겠네요. 다음에 다시 뵙지는 못하겠지만 안녕히 가시지요. 아! 가끔 향은 피워 드리겠습니다.”

“크윽.”

한 마디로는 안 되지만, 두세 마디라면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승선포정사사의 위치임에도 한낱 점소이에게 꼼짝도 못 하는 신세에 유의선은 고개를 푹 숙였다.

비단옷의 남자는 건청을 향해 한 번의 웃음을 보이고는, 미련 없이 유의선을 끌고 별유천지 밖으로 나섰다.

“하하하하. 이거 참, 유의선이 이런 꼴을 당하는구먼. 다른 점소이였으면 벌써 목을 날려도 할 말이 없을 테지.”

“면목이 없습니다.”

“괜찮다. 공자가 어디에 갔는지 알 것 같구나.”

“그것을 어찌…….”

“약 한 달 조금 안 되어서 여자 한 명이 별유천지를 나서 길을 떠났다. 공자를 감시하기 위해 깔아 놓은 무인들이었는데, 엉뚱하게도 공자는 놓치고 길을 나선 여인에게 감시로 붙여 놓았지. 여인은 지금 청해성에 있다.”

“허억! 그런 짓을 했다가는 공자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릅니다.”

“괜찮다. 그나저나 재미있지 않으냐. 청해성에서 뭔가 벌어질 것 같으니 말이다.”

“설마!”

“우리도 청해성의 곤륜산에서 맑은 공기나 마셔 보기로 하지. 아무래도 골치 아픈 무림의 분들께서 뭔가 일을 저지르는 듯하니.”

유의선은 자신의 눈앞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남자를 말리고 싶었지만, 이내 눈을 내리깔았다.

그가 어떠한 사람인가.

대명국(大明國)은 황태자(皇太子)를 제외하고 나머지 황자(皇子)들은 15세가 넘으면 지방에서 지내며 그곳을 벗어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람은 황자라 불리면서도 전국을 마음껏 다니고, 심지어 황실을 들락거리는 것도 자유다. 즉 지금 가장 황제에 가까운 황태자이면서도 암살을 피하고 숙적을 제거하기 위해 황자인 척하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감히 무슨 말을 올린단 말인가.

유의선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따르겠습니다.”

“승선포정사사, 무림이 지나치게 날뛰면 황실은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백련교도가 난을 일으키고, 나라가 한때 뒤집힐 뻔했다. 그리고 대명국을 세운 분도 농민 출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무림이 지나치게 큰 힘을 가지면 그들이 황제의 자리를 탐하지 말란 법이 없다는 말이다. 지금도 영약을 둘러싼 불온한 기운과 무림맹이 같은 정파를 공격하는 사건들이 발생하지 않는가. 혼란이 점점 정점으로 향하고 있고, 황실도 이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니 청해도로 가서 확인하려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유의선이 고개를 더욱 숙이자 남자는 짐짓 재미있다는 표정을 천으로 가린 얼굴 사이로 드러냈다.

“공자라는 자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정체를 알 수 없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 무공의 끝을 알 수가 없구나. 또한 머리가 뛰어나게 좋다는 것도 마음에 드는군. 어떻게 해서도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

“죽을 때까지 길이 들지 않는 야생마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그것도 청해도에서 확인해 보지. 뭐, 여차하면 여동생 중의 한 명이랑 혼례를 치르게 하는 방법도 있으니.”

남자는 호위무사 세 명 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사람에게 나직한 목소리를 내었다.

“황실의 무인 중에서도 고수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들을 모아 삼백 명을 청해성으로 보내거라.”

“네.”

남자의 눈에서 이채가 흐른다. 야심과 야욕이 가득한 눈.

그가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가지고 싶었던 것을 갖지 못한 적은 없었다. 네놈은 나를 섬겨야 하는 것이 숙명이다.’

하지만 남자는 몰랐을 것이었다.

천일영이 이미 어제 청해성으로 길을 떠나기 전까지 유의선과 남자의 대화를 모조리 듣고 있었다는 것을.

* * *

어제.

청해성으로 떠나기 전, 유의선과 엮여 있는 사람이 제법 골치 아픈 존재라는 것을 이미 눈치챈 천일영은 황실에서 청해성으로 따라올 것을 예상하여 한 가지의 방책을 떠올렸다.

사혈련이 청해성으로 가고, 황실의 무인도 청해성을 향한다.

그뿐인가.

무림맹의 무인들도 청해성으로 집결하고 있다.

천일영은 편지를 써 내려갔다.

시급을 요구하는 정도가 아닌, 가장 빠르게 최우선으로 실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편지.

‘이렇게 되면 아예 진흙탕으로 만들어 버린다. 서로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도록.’

천일영은 하오문의 세하월에게 전서구를 날렸다.

분명 세하월이 전서구의 내용을 보고는 기겁을 했을 테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

천일영은 그렇게 최고이자 최악의 한 수를 두었다.

바로 천마신교까지 청해성으로 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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