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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70화 (171/270)

170화

타다다닷.

강한 영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경공술을 사용하여 빠르게 달려 나가던 세 사람은 거센 빗줄기가 더욱 강해지는 것에 눈살을 찌푸렸다.

벌써 며칠째 이어지는 빗줄기에 곤륜산맥 일부는 토사가 흘러 무너지는 곳도 있었고, 물이 흐르는 곳은 이미 범람을 시작하여 땅을 뒤덮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우기(雨期)인 것도 아닌데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만 같구나.”

“그래도 이 비가 더러운 것을 씻어 내고 있어서 영기가 더 넓고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아가야, 영기의 땅까지는 얼마나 걸리겠느냐.”

“앞으로 이십 리 정도입니다.”

폭포에서 영기를 받아들인 이후, 금채홍은 신체가 개화(開花)라도 한 듯 천량도사와 도철용의 경공에도 밀리지 않는 속도로 달렸다.

그렇게 달리기를 일각.

눈앞에 보이기 시작하는 마을의 모습에 금채홍은 안도하는 한숨을 토했다.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야.”

문목화가 괭이를 들고 비가 오는 와중에도 밭을 갈고 있는 것이 보인다.

금채홍은 안도하는 마음 때문에 다리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목화야!”

“어머? 채홍이 아니니?”

괭이를 곁에 두고 달려 나온 문목화가 금채홍의 손을 꼭 잡는다.

“여기는 어쩐 일이야? 내가 보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닐 테고.”

“아…… 실은 그게…….”

곤란한 눈빛을 눈치챈 문목화가 이내 웃음을 짓고는 금채홍의 손마디를 잡아 집 안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비가 많이 옵니다. 같이 오신 분들도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허허, 고맙구먼.”

“혹시 밥 있는가? 배고파서 죽을 지경이군.”

혼자만 눈치 없이 밥 타령을 하는 도철용에게도 웃음을 지어 준 문목화를 따라 모두가 집으로 들어서자, 문목화가 산에서 딴 나물과 영약을 노리고 찾아온 고라니의 고기를 밥과 함께 내놓았다.

“우와. 맛있어.”

“많이 먹어, 채홍아. 그리고 같이 오신 분들도 많이 드세요.”

“고맙네. 이리도 좋은 상차림은 오랜만이구먼.”

오랜만에 제대로 된 밥을 먹자 금채홍의 눈에 서러운 감정과 함께 눈물이 고였다.

금채홍은 입에 밥을 퍼 넣으면서도 앞으로 벌어질지 모를 일에 대해서 문목화에게 설명했다.

“목화야, 지금 당장 떠나자. 영약을 챙겨서 떠나면 놈들이 헛걸음만 하게 될 거야.”

“갈 수 없어. 아니, 가지 않을 거야.”

“어째서?”

문목화의 달관한 듯도 하고 해탈한 듯도 한 표정 속으로 죽음이 보이는 것만 같아 금채홍은 불길함으로 가슴이 떨렸다.

“지금은 천년하수오가 씨를 뿌리는 시기. 때마침 많은 양의 비가 오고 있어. 이 비에는 미약하나마 영기가 섞여 있고, 땅의 양분만으로는 부족한 영양을 비에 섞인 영기로 보충해야 해.”

“영약보다는 목숨이 더 소중하잖아. 영약을 돌보다 죽을 생각이야?”

“그래야 한다면.”

문목화가 한 치의 미동도 없이 단호한 심경을 말로 내보이자 금채홍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우리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복청이도 모두 영약 때문에 죽었어. 그런데 나보고 너까지 포기하라는 말이니?”

“일족의 사명은 죽음보다 더 중요하니까.”

“사명?”

문목화는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죽을지도 모르는 이때, 웃음을 짓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법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문목화의 웃음은 무엇인가를 초월한 것처럼 청명하고 깨끗해 보였다.

“이곳이 중원에 남은 마지막 영기의 땅이고, 내 무덤이 될 곳이야. 네가 말하는 금군이라는 자들이 찾아 헤매는 영기의 땅은 존재하지 않아. 원래 영기의 땅은 처음부터 한 곳이었어.”

“뭐라? 아가야, 그 이야기를 조금 자세히 해 줄 수 있겠느냐.”

천량도사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짓자 문목화는 망설임이 들었지만, 잠시의 생각을 거친 후 이내 입을 열었다.

“어차피 이곳이 들통났고,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지 못할 것 같으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디 영기의 땅은 한 곳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바로 여기 곤륜산에서입니다. 하지만 이곳에 피가 뿌려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영기의 땅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기에 흙을 옮겨 황산에서 영약을 키워 왔지요. 결국 그곳도 불타고 피가 뿌려졌지만…….”

“그렇다면 오직 황산 한 곳뿐이었더냐.”

“한 군데가 더 있습니다. 절강성과 강서성을 잇는 경계 부근에 황산에서 다시 흙을 옮겨 영약을 키우는 곳이 있지요.”

“목화야, 그곳은 이미…….”

“……!”

문목화는 놀란 표정을 지은 이후, 멍한 눈길로 허공을 응시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은 우리 삼촌과 조카가 있는 곳인데. 그렇다면 만옥이와 순옥이도 죽었겠구나.”

그다지 표정의 변화 없이 담담하게 입을 연 문목화가 몸을 일으켰다.

“어쨌든 나는 이곳을 떠나지 않을 거야. 차를 내올 테니 그것만 마시고 돌아가렴.”

“목화야!”

다 먹은 접시를 들고 부엌으로 문목화가 돌아가자 천량도사와 도철용은 비틀린 표정으로 침음을 흘렸다.

“사혈련이 보낸 무인의 수가 일천에 이른다고 하니 이곳이 발각되는 것도 시간문제로군. 그렇다고 믿을 수 없는 무림맹의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고.”

“천량도사님, 차라리 화산파 청해성 지회의 무인에게 지원을 요청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저는 개방의 방도들을 부르겠습니다.”

“그리하면 너무도 많은 피가 흐르게 될 것일세.”

“그렇다면 이대로 흐르듯 사혈련 놈들이 하는 짓을 그냥 두자는 것입니까!”

도철용의 성난 목소리에 천량도사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사람의 목숨을 숫자로 세는 것은 아니 될 말이지만, 영약을 지키는 소저 하나의 죽음과 무인 수백의 죽음이 같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비록 영약을 빼앗긴다 해도.

천량도사는 고개를 한 번 가로젓고는 이내 눈을 뜨고는 금채홍을 바라보았다.

“아가야, 미안하구나.”

“저희의 일입니다. 여기까지 같이 와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입니다.”

“혹 다른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겠다. 그러니 기다려 보아라.”

“괜찮습니다. 각오는 이미 굳히고 왔으니 걱정을 거두셔도 됩니다.”

“흠…….”

천량도사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금채홍은 모르지 않았다.

처음부터 자신의 사정으로 그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조금 있으면 해가 질 것입니다. 그 전에 산에서 내려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았다.”

천량도사와 도철용은 문목화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금채홍과 같이 주방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때.

“흐흐흑, 흐흑. 만옥아, 순옥아! 삼촌! 어찌 그렇게 죽었단 말입니까. 으흐흐흐흑.”

찻잔을 손에 쥔 채 바닥에서 서글프게 우는 문목화의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영약을 지켜야 한다는 일족의 사명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애를 썼건만, 그녀의 무너진 신형에 천량도사와 도철용은 고개를 숙이고 금채홍의 손은 입을 틀어막아 탄식이 쏟아지려는 것을 막았다.

“흐음…….”

“인사는 나중으로 미루시지요. 아무래도 소저에게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으니.”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구슬픈 목소리로부터 도망치듯 밖으로 나섰다.

중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막지 못했다는 무림인의 책임으로 도철용과 천량도사는 슬픔에서 외면하고 싶은 절절한 심경이었고, 금채홍은 이제야 서하린이 죽을 뻔했던 마을의 사람들이 일족이었다는 실감이 들어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목화가 아끼던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무너진 것 외에도 그렇게 슬프게 울었던 이유가 하나가 더 있었으니.

어찌하랴.

이제는 일족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자신과 금채홍뿐인 것을.

* * *

금채홍은 답답한 마음으로 밖에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쏴아아아아아.

영약의 밭 위쪽에 있는 거대한 폭포.

그곳에서도 약하나마 영기가 끊임없이 흐르고, 넓은 물줄기가 평야의 옆을 따라 흐른다.

그 주변으로 영기의 영향을 받은 아름드리나무가 수없이 자라나 있고, 영약이 자라는 밭 아래로는 평야처럼 넓은 땅이 펼쳐져 있었다.

산 중턱임에도 이러한 평야가 존재한다니 놀라운 일이지만, 이곳은 처음부터 마치 영약을 위해 준비된 땅 같았다.

금채홍은 그것을 보며 과거 백유화와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유화 언니, 공자님은 어째서 저렇게 책략에 능하신 건가요? 아무도 생각지 못할 일을 태연스럽게 해내는 것이 너무 신기해요.]

[나도 궁금해서 예전에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천마님이 무명암살대에 계셨을 때인데 대답이 너무 마음 아파서 지금도 기억이 나는구나.]

[뭐라고 대답하셨길래 마음이 아파요?]

[오늘 좋은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면 내일 당장 죽는다. 이것이 천마님의 대답이었지. 그리고 그 생활이 매일 이어졌다고 하는구나.]

[……!]

금채홍은 이제야 그 말의 의미가 뼈저리도록 가슴속에 다가왔다.

‘이런 의미였구나.’

한동안 주변을 더 둘러보던 금채홍은 묵묵히 문목화가 쓰던 괭이를 가지고 주변의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내일 죽지 않으려면 땅을 파는 것밖에는 할 게 없었으니까.

그 모습을 보던 도철용이 궁금한지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뭐 하는 것인지 물어봐도 되겠느냐?”

“살고 싶어서요.”

“살고 싶어서 땅을 판다?”

도철용은 한 걸음 물러서서 주변을 둘러보고는 웃음을 한 번 지었다.

그 역시 개방의 방주.

머리가 좋지 않은 사람이라면 절대 오를 수 없는 자리이니만큼, 도철용은 이 아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도철용은 이내 금채홍의 곁에서 같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방주님?”

“도와주마. 내 성격에 그냥 돌아가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

천량도사는 산길을 내려갈까 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금채홍과 같이 땅을 파는 도철용을 보고는 얼마 전의 기억 한 자락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저 아가의 기운이 익숙하다고 생각했더니 사천성에서 사혈련 놈들에게 잡혀갔던 소저와 매우 비슷하구나. 그때 내가 그 아이를 결국 구하지 못했거늘, 그 아이는 이후 어찌 되었을지.’

묵직한 죄책감이 가슴 한 군데를 짓누른다. 이번에도 아이의 괴로움을 모른 척하고 외면한다면 천량도사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팍. 팍. 팍.

천량도사도 금채홍의 곁에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나도 같이하마. 아가가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천량도사님…….”

“허허, 내가 아가를 버리지 않아서 감동했느냐. 그리 촉촉한 눈으로 바라보다니.”

“아니요. 손으로 땅을 파는 것은 너무 느리니까 이걸로 하시라고요.”

금채홍은 천량도사의 손에 괭이를 꼭 쥐여 주었다.

* * *

삼 일 후.

후욱!

흙이 끼어 새카매진 손톱 밑에 바람을 불어 털어 내는 금채홍의 뒤로 천량도사와 도철용은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 아가야, 이 두 노인을 잡으려고 작정을 한 것이냐.”

“으윽, 게다가 저 아이는 지치지도 않으니 대단하기만 합니다.”

사흘 동안 잠은커녕 쉴 새도 없이 땅을 파헤친 세 사람은 전혀 상반되는 표정으로 아침 해가 떠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내공으로 땅을 파헤쳤기에 할 만했지만, 하루가 지나고부터는 내공이 바닥을 보여 순수 외공만으로 땅을 파다 보니 천량도사와 도철용은 죽을 지경이었다.

금채홍은 괭이를 어깨에 걸치며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저는 매일 연무장을 몇백 바퀴씩 뛰었거든요. 내공도 중요하지만, 외공도 그에 못지않다는 가르침대로 했더니 이 정도는 괜찮네요.”

“끄응, 나이 이야기는 쏙 빼고 말하다니 고약한 것.”

천량도사는 투덜거리면서도 이내 금채홍의 신형을 유심히 살폈다.

분명 외공의 힘이 대단한 것도 알 것 같다.

하지만 그뿐일까.

아가라고 부르고 있는 이 여인은 영기를 받아들인 이후로 전혀 지치지를 않고 있었다.

‘신선이라도 되지 않으면 불가능할 터인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 아니, 세상의 법칙을 뒤틀며 존재해서는 안 될 사람을 바라보는 것 같아 천량도사의 마른 입술이 갈라지듯 다물어진다.

그때.

“오는 모양입니다.”

“그렇구나. 딱 지금쯤이라고 생각한 아가의 말이 옳았구나.”

영기의 땅 아래로 펼쳐진 넓은 평야의 끝.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무인들을 보며 천량도사와 도철용은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순간 천량도사와 도철용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사혈련이 아니라 정파의 기운인데요? 어째서 저들이 이곳을 알고!”

“허허, 이건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네. 아무래도 우리가 이용당한 것은 아닐지. 저놈들, 꼭 우리를 따라온 것 같지 않은가.”

사혈련이 움직인다는 정보는 분명 맞는 것일 터다.

그리고 무림맹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정보도 계속 개방을 통해 도철용에게 들어 오고 있었다.

그러한데 어찌하여 수백에 달하는 무림맹의 무인들이 이곳에 와 있는가.

이가 ‘빠득’ 갈렸다.

개방에조차 배신자가 있었다니.

그것도 도철용에게 직접 연락할 만큼의 높은 사람이 말이다.

“설마 우리가 판 땅이 무덤이 될 줄 몰랐군.”

천량도사와 도철용은 이를 드러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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