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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71화 (172/270)

171화

허탈한 웃음도 잠시.

천량도사와 도철용은 황망한 시선으로 눈앞의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어디의 문파라고 할 것도 없이 수많은 기운이 뒤섞여 있었다.

그중에는 화산파의 무인과 개방의 방도조차 섞여 있다는 것에 천량도사와 도철용은 각오를 굳힐 수밖에 없었다.

“천량도사님과 제 움직임을 아는 곳은 개방뿐일 터인데.”

일이 어찌 돌아가는지 대충 감을 잡은 도철용의 입가에 싸늘한 웃음이 맺힌다.

처음부터 감숙성 공동산에서 아픈 몸이 나아 공동파를 찾았을 때.

그때부터 이상함을 느껴야 했다.

공동파에서 모든 것이 끝나 있음을 확인한 이후, 허탈한 마음으로 내려온 마을에 기다렸다는 듯이 사혈련이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와 있었다.

‘이 도철용, 제법 우습게 보였나 보군. 사혈련이 움직이자 그 정보를 일부러 흘린 것이었다? 무림맹이 만일 개방에 배신자를 만들고 천량도사와 나를 제거하려고 한 것이라면, 그 싸움 받아 주마.’

천량도사도 이미 자신이 오랫동안 몸담아 왔던 무림맹이 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느낀 듯, 이내 지난 세월을 원망하는 눈빛을 떠올렸다.

“아가야, 내 뒤로 오너라. 아무래도 피를 보게 될 것 같구나.”

“괜찮습니다. 생각하시는 것보다 싸움에는 익숙해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금채홍이 오히려 천량도사와 도철용의 앞에 섰다.

스릉.

금채홍의 손아귀에 들린 은자 삼십 냥짜리 검이 해를 반사하며 빛을 발한다.

“아가야. 저들 중에는 익히 아는 얼굴도 있으니, 네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고수들도 있구나.”

“상관없습니다. 그보다 천량도사님과 방주님께서는 아직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그것이 무슨 말인고?”

“…….”

금채홍은 공자님이라면 앞으로 벌어질 일을 어떻게 예상할까 생각했다.

무림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그 이름이 높은 두 사람.

정파에서 천량도사와 도철용에게 할 짓은 하나뿐이다.

‘회유다.’

공자님처럼 몇 수를 앞서지는 못해도 최소 한 수 정도는 먼저 생각해야 한다.

금채홍은 서서히 다가오는 무림맹의 무인 수백을 향해 홀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너희들이 수로 이기려 한다면, 이쪽은 오직 머리 하나로 이기겠다고 생각하면서.

어느 때를 기점으로 생각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공동산의 입구에 있는 마을에서 사혈련이 청해성을 향한다는 정보를 건네준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니면 길을 지나다가 만난 사람일 수도 있다.

‘분명 추척향이겠지.’

천량도사나 개방의 방주인 도철용도 모르게 천리미향을 발랐을 정도라면 분명 의심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친근한 사람이 접근했을 터다.

‘게다가 보통의 천리미향도 아닐 테고.’

역시나 천량도사나 도철용이 느끼지 못할 정도의 천리미향이 동원된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자명했다.

‘정파에서 거대한 위세를 지니자 중 상당수가 배신자라는 이야기다. 남궁천이 조용하다고 생각했더니 뒤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었나.’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친 금채홍은 검을 어깨에 걸치며 눈앞의 남자에게 웃음을 지었다.

“이 앞은 수천 년 전부터 개인의 땅입니다. 주인의 허락이 없다면 들어올 수 없다는 말이지요.”

“허허, 그렇습니까.”

삼백이나 되는 무인들을 거느린 남자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흔쾌히 대답했다.

“저는 소저의 뒤에 있는 분들에게 볼일이 있습니다만, 저희가 들어가지 못한다면 저 두 분을 대신해서 불러 주시겠습니까?”

“그 정도라면.”

예상했던 대로 천량도사와 도철용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금채홍은 고개를 돌려 천량도사와 도철용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더해 손까지 흔들어 이리로 오라는 시늉까지 하자 무인을 이끄는 남자는 금채홍을 기도 안 막힌다는 눈길로 쳐다보았다.

‘이게 미친년이 아닌가. 무림에서 그 명성이 높은 천량도사와 개방의 방주 도철용을 손짓으로 오라고 하다니. 그 말을 들을 두 분도 아니거니…… 헉!’

남자는 두 눈을 끔뻑이며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인가 하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로 새파란 미친년의 손짓에 두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고 있었으니까.

“이분께서 천량도사님과 방주님께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시는데요?”

“흐음, 일단 이야기를 들어 보지.”

잠시 해괴한 상황에 눈을 끔벅이고 있던 남자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천량도사와 도철용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무림에서 명망 높은 두 분께 감히 인사 올립니다. 소인은 형산파(衡山派)에서 수련하고, 지금은 무림맹의 소소한 일을 하는 제범재라 합니다.”

“그 이름은 익히 잘 알고 있네. 헌데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것은 어찌 알았는가.”

“알고 온 것이겠습니까. 다만 이곳에 오니 두 분이 계셔서 인사를 올리러 온 것뿐입니다.”

그럴 리가.

천량도사와 도철용은 동시에 똑같은 생각을 머리에 떠올렸다.

“내 그대의 인사는 잘 받았네. 이제 볼일이 끝났으니 돌아가는 게 어떠신가.”

“허허,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제범재는 여전히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머금으며 받아치듯 말을 이어받았다.

“공교롭게도 이곳에서 악독한 사혈련이 활동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말입니다. 그러니 두 분께서도 저희에게 힘을 빌려주시는 것이 어떠하신지요. 사유지에만 숨어 계신다는 것은 나중에 중원에서 웃음거리가 될 만한 일이니까요.”

“흐음, 그것은 제법 곤란한 말이군.”

천량도사의 날 선 눈빛이 대답과 동시에 살기를 흘렸다.

제범재는 돌려서 이야기했지만, 영기의 땅에 두 사람이 있으면 들어설 명분이 없어서 하는 말일 뿐이다.

도철용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싫다고 하면 우리에게 검이라도 겨눌 생각인가?”

“그럴 리가 없겠지요.”

순간 제범재는 미친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분명 자신이 말하려 했던 말 ‘그럴 리가 없겠지요.’가 저 여인의 입에서 나왔으니까.

“천량도사님, 방주님. 식사 시간이 됐습니다. 시장하실 테니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가요.”

“응? 밥?”

금채홍의 말에 천량도사가 웬 생뚱맞은 말이냐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금채홍은 문목화의 집으로 들어가 손수 커다란 솥은 짊어지고 나와서 장작에 불을 붙이고 쌀을 씻어서 집어넣었다.

그뿐인가.

문목화가 잡은 고라니의 고기를 창고에서 꺼내어 굽고 나물을 무치기까지 한다.

집 안의 주방에서나 해야 할 일을 밖에서 태연하게 하는 금채홍을 보며 천량도사와 도철용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가야?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냐?”

“뭘 하긴요, 밥하는 중이죠.”

“그건 보고 있으니 안다. 아니, 그보다 아가는 어찌하여 이리도 태연한 것이냐.”

“별건 아니에요. 저들이 천량도사님과 방주님을 지금 건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에요.”

“그것이 무슨 의미이냐.”

금채홍이 생각하기를, 무림맹의 무인들은 어떤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움직이지 않을 것이었다.

“지금 무림맹의 무인들로 천량도사님과 방주님을 공격한다는 것은 상당한 피를 볼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렇겠지. 우리가 아무리 노쇠했다고 해도 저들에게 질 거라는 생각은 안 드는구나. 혹 진다 해도 놈들의 오 할 이상은 같이 지옥으로 끌고 갈 것이다.”

“네, 그래서 저들은 사혈련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사혈련과 필시 충돌하게 될 우리를 그때 치려는 것이다?”

금채홍은 천량도사의 말에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것이 맞는다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같이 보이는 것에 천량도사는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아마도 오늘 여기에 온 무림맹의 무인 삼백은 협과 도리를 아는 자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아가야, 쉽게 이야기해 다오.”

“무림맹에서 자신들의 입맛대로 사용할 수 없는 자들을 모두 죽게 만들려고 보낸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제범재를 비롯한 몇 명을 제외하고는요.”

“아가야! 설마!”

금채홍은 타기 전 고라니고기를 뒤집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본대는 분명 따로 있습니다. 길을 뚫고 명분을 만든 이후 천량도사님과 방주님, 그리고 자신들까지 모두 죽는 것이, 저들 자신은 모르고 있는 진짜 임무입니다.”

“허허,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그나저나 거기까지 꿰뚫어 보았는가. 아가가 보기보다 똑똑하구나.”

“그게 무슨 뜻이죠?”

샐쭉한 표정을 짓는 금채홍에게 도철용이 껄껄 웃음을 터트린다.

“사혈련과 전투가 오히려 벌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눈엣가시를 한꺼번에 제거하는 방법으로는 더할 나위 없구나.”

“아마도 저들은 사혈련에 침투해 있는 간자를 통해 자연스럽게 그들을 이곳으로 이끌고 있을 겁니다.”

금채홍은 고기를 접시에 담으며 조금은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저들이 천량도사와 도철용을 노린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남궁천이 이제는 대놓고 거슬리는 사람을 제거해야 할 만큼 다급하다는 말일 거다. 그리고 거칠 것 없이 행동해도 무림맹에서 수많은 배신자가 침묵하고 있다는 것일 테고.’

쿠르르르릉.

곤륜산맥의 높은 봉우리를 타고 먹구름이 흘러내려 오는 것이 보인다.

그 먹구름이 마치 무림맹의 본질과도 같아 보인다.

금채홍은 음식을 천량도사와 도철용에게 내밀었다.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 사혈련이 올 것입니다. 그러니 배불리 먹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다만 한 가지, 천량도사님과 방주님께서 저들과 합류하시면 분명 살게 되실 것입니다. 다만 이후 저와 친구를 죽이고 영약을 손에 넣는 것까지 동참하시게 될 테지만요. 조금 전 제가 말한 선택이 바로 이것입니다. 어쩌시겠습니까. 그 무엇을 선택하시더라도 원망은 안 하겠습니다.”

“후릅. 이거 맛있구나.”

“저기…… 선택은요?”

도철용은 고라니고기를 입에 넣으며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천량도사도 털썩 자리에 주저앉아 밥에 나물을 올리고 입에 한 움큼 집어넣는다.

우적. 우적.

대답은 하지 않았다.

다만 천량도사와 도철용은 무림맹 삼백의 무인들이 뚫어지게 지켜보는 가운데 맛있게 밥을 먹을 뿐이었다.

* * *

다음 날.

쿠르르르릉. 쏴아아아아.

잠시 멎었던 비가 다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쏟아지네. 전보다도 더.”

무림맹에서 나온 무인들은 영약이 있는 밭에서 조금 떨어진 평야 아래에 천막을 치고 비를 피하는 모습이었다.

금채홍은 그것을 지켜보다 비 때문에 나른한 몸을 비틀며 눈을 감았다.

어제 문득 든 생각.

기감보다 훨씬 넓게 영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을 응용한다면 적들을 빨리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영기가 흐트러지는 곳에 적이 있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그러면 기감이 닿지 않는 곳까지 살펴볼 수 있어.’

모든 것을 지우고 오로지 영기만을 느끼기 위해 눈을 감았다.

제법 멀리까지 느끼도록 영기를 감지하는 순간.

금채홍이 눈이 번쩍 떠졌다.

이곳에서 오십 리 떨어진 곳에서 상당히 넓은 공간의 영기가 흐트러지고 있었다.

‘수가 대충 오백 정도인가.’

타다다닷.

생각도 하기 전에 먼저 몸부터 튀어 나가자, 천량도사와 도철용도 금채홍이 무엇인가 느낀 것을 직감하고 곁으로 다가왔다.

“오고 있는 것이냐.”

“네. 그런데 천량도사님, 방주님.”

“왜 그러느냐.”

“두 분이 해 주실 일은 따로 있어요.”

“우리가 가장 힘이 강할 터인데 정면 승부가 아니라 따로 해야 할 일이라니?”

아무래도 뭔가 잘못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가득 들어 천량도사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분명 제범재를 비롯하여 남궁천이 직접 거둔 수하 몇몇은 싸움이 일어나는 순간 몸을 뺄 거예요. 천량도사님은 그들을 처리해 주세요. 그리고 방주님은…….”

금채홍이 자신의 계략을 자세히 설명하자, 잠시 후 천량도사와 도철용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용케도 그런 생각을 했구나.”

“지금은 정면 싸움보다는 판을 흔들어야 해요. 진짜 싸움은 무림맹의 본대가 오고 나서부터니까요.”

금채홍은 검을 움켜쥐며 주변에 쌓아 놓은 나무에 불을 붙였다.

타다다닥.

비가 내리고 있기에 이미 며칠 전부터 장작 중에서 일부를 말려 놓았었다.

금채홍은 말린 장작을 안으로 넣고, 비에 젖은 장작을 그 위에 덮은 다음 불을 붙였다.

그러자 안에서 마른 장작이 피워 올린 불이 빗물에 젖은 장작으로 옮겨붙는 동안 엄청난 양의 연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걸 보고 사혈련이 빠르게 올 거야. 그리고 또 하나, 제발 이 연기를 그들이 봐야 하는데!’

복잡하게 얽힌 계략이었다.

하나라도 틀리면 안 될 정도로 정교하게 시간을 요구하는 일.

금채홍은 타오르는 장작과 함께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자신의 계략이 들어맞기를 빌고 또 빌었다.

* * *

두 시진 후.

각종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내 사혈련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진형을 유지한 채 올라오는 그들의 모습을 본 순간, 제범재는 흉악한 이를 드러내며 살기 돋는 웃음을 지었다.

알아서 죽으러 와 주는 꼴이라니.

아무것도 모른 채 달려와서 죽는 어리석음이라니.

사혈련과 무림맹의 무인들이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제범재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함을 질렀다.

“모두 일제히 공격!”

“와아아아아!”

무림맹의 무인들이 사혈련을 향해 뛰어나간다.

‘사혈련의 전력 사 할만 깎아 다오. 그리하면 너희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물론 너희를 위해 향을 피워 줄 사람은 없지만.’

제범재는 웃음을 뒤로하고 몸을 빼내기 시작했다.

완전한 승리를 위해 꼴도 보기 싫은 정파의 우직한 인간들을 사혈련에게 집어 던졌다.

하지만 뭐가 잘못됐을까.

그때.

사혈련 무인들의 입가에도 이상한 웃음이 지어졌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을 예상한 것만 같은 기이한 표정이 입가에 드러났다.

열을 맞춰 진을 만드는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고, 사혈련의 무인들은 앞줄의 바로 뒤에 숨겼던 기다란 창을 일제히 들이밀었다.

“상산사수미상구진을 펼쳐라.”

기다렸다는 듯, 사혈련의 무인 오백을 이끌고 명령을 내리는 사람의 안광이 번들거린다.

그의 이름은 손대법.

그는 바로 제갈현과 마염지, 그리고 손대법이라는 무림 3대 군사이자 책략가인 사람이었고, 금채홍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의외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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