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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74화 (175/270)

174화

손대법은 정말로 미칠 것만 같은 심경이었다.

앞에는 비록 반수 정도 날아갔다 해도 말을 탄 무림맹의 무인들이 자신들을 향해 창을 날리고 있었고, 뒤에는 곤륜파의 검날이 사방으로 퍼지며 피를 튀기고 있었다.

“방법이 없단 말인가!”

머리를 굴려야 했다.

선발에서 살아남은 자 고작 일백.

본대의 무인이 오백이다.

그렇다면 지금 육백의 무인이 있어야 하거늘, 얼추 보아도 오백 명을 밑돌고 있는 것은 계산 따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원래대로라면 곤륜파를 뚫고 나간 이후 냅다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게 제일 좋을 터. 하지만 곤륜파가 있는 협곡에서는 일점돌파가 불가능하다. 아무리 곧은 진형으로 병력을 일자로 세운다 해도 오히려 양옆으로 갈라진 곤륜파의 협공을 받아야 하는 상황.’

손대법은 이를 악물고 금채홍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지금에 와서야 드는 뒤늦은 후회다.

조금 전 저 여인의 손을 잡아야만 했다.

그랬다면 무림맹의 본대를 유인해 함정으로 처박고, 곤륜파는 천량도사와 도철용이 돌려보냈을 테니까.

손대법은 다음부터 무협 이야기를 읽다가 집어 던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국은 길이 하나뿐인가.’

최후의 결단을 내리자 손대법의 마음에서 망설임이 사라진다.

비록 모험에 가까운 미친 짓이지만 그는 명령을 내려야만 했다.

그것은 바로 곤륜파를 뚫는 것이 아니라, 미친년이 있는 방향으로 병력을 옮기는 것이었다.

“고수는 쐐기형 진형을 만들고, 창을 든 자는 그 뒤에 곧은 진형을 만들어라!”

“네!”

손대법이 생각한 진형은 만일 위에서 바라만 볼 수 있다면 거대한 화살과 같은 모습이었다.

고수들은 검과 창을 병행하여 기마를 상대할 것이었고, 곧은 진형에 있는 자들은 일렬로 늘어서 창으로 말이 다가오는 것을 막을 터.

‘다만 곧은 진형의 뒤편에 있는 자들은 곤륜파에게 수도 없이 죽겠지.’

악다물어진 입에서 이가 갈려 나간다.

“모두 전진! 궁수대는 절반은 후미에서 달려드는 곤륜파에게 화살을 날리고, 나머지는 전방의 말을 노려라!”

“네!”

촤라라라락!

하늘을 새카맣게 뒤덮은 화살이 양옆으로 퍼져 날아간다.

손대법은 진땀을 흘리며 진형의 앞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모두 다 했다.

남은 것은 무인들이 각자의 역량으로 길을 뚫는 것뿐.

‘저들이라면!’

마지막 기대를 품고 바라보는 시선의 끝에는 초절정 고수 두 명이 있었다.

저들이 꽤 많은 기마를 제거하며 길을 뚫을 터다.

그럼에도 손대법은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도대체 귀문살은 전서구를 보낸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안 오는 것이란 말인가!’

다섯 명 모두 무림 백 대 고수 집단인 그들이 앞장만 서 줬어도, 이렇게 치욕스러운 결과가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히이이잉! 촤악!

그 순간.

손대법의 기대대로 중원 오십 대 고수로 불리는 타진표가 선두를 뚫었다.

그는 양손에 든 창 열 자루를 던지며 사방을 도륙하고 있었다.

“어여차! 다 덤벼라!”

휘이잉!

타진표의 뒤에서 다른 무인이 계속 새로운 창을 가져다주고, 기마에 올라 있는 무인들을 향해 날린 창끝에는 한꺼번에 두 명의 목이 꿰뚫렸다.

“매일같이 말 타느라 고자가 된 새끼들아! 겨우 이 정도란 말이냐? 그야말로 고자답구나. 크하하핫!”

“크윽!”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기마대의 문호창도 애를 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손대법은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지었다.

그의 전략이 맞아떨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가장 빠른 속도로 진군!”

“네!”

촤아악. 촤아아아악!

“끄아아악.”

“커헉.”

앞과 뒤에서 동시에 비명이 들렸다.

앞은 무림맹의 기마대가.

뒤에서는 곤륜파에 도륙당하는 사혈련 무인들의 비명.

하지만 손대법은 멈추지 않았다.

“뚫어! 길을 넓혀!”

“와아아아아!”

쐐기 진형의 앞머리가 통과하고, 뒤를 이은 곧은 진형의 무인들이 기마대와 마주하자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일백이 넘은 무인들이 일제히 창을 들고 간격을 빽빽이 한 채 경계하는 것을 기마대로는 뚫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움직일 때마다 화살이 날아들어 길을 막아 버리니 더욱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었다.

‘망할 놈이 곱게 죽지 못하고 이 지경이 되어서도 기어이 길을 뚫다니.’

문호창의 눈매가 거칠어졌다.

평상시의 전력이라면 말로 들이박아 진형을 부수고, 말발굽으로 밟아 버렸을 터.

“진형을 새로 갖춘다. 추적 진형으로 만들어라.”

“네!”

문호창은 기마대를 뒤로 물러 사혈련의 뒤로 돌아 들어가 칠 생각이었다.

그리하면 기마의 숫자가 적어졌다 할지라도 사람이 적은 후미부터 각개 격파가 가능해지니까.

그런데.

“와아아아아!”

후미에 있던 사혈련의 무인들이 빠져나오자 그 뒤를 쫓아 좁은 협곡에 있던 곤륜파의 무인들이 일제히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씨X.”

문호창은 당황한 끝에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 나갔다.

눈앞에서 사혈련의 무인들이 빠져나가는 것도 화가 났지만.

“저놈들은 진형 따위 없는 거냐!”

튀어나온 곤륜파의 무인들이 마구잡이로 섞여 드는 바람에 움직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서로 뒤엉켜 곤륜파와 기마대가 섞여 버리니 말로 뒤를 쫓아 후미를 강타할 생각이었던 문호창은 이를 갈며 눈을 부릅떴다.

‘지금의 가장 큰 문제는 전황을 진두지휘할 사람이 없다는 것인가!’

사혈련이 불리하면서도 목숨을 걸고 위기를 탈출한 것은 손대법이라는 걸출한 군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압도적으로 유리했을 자신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으니.

‘망할, 이래서야 진짜 개싸움 아닌가. 무인도 뭣도 아닌…….’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치는 심정이란 것이 이런 것일까.

문호창은 허망한 눈길로 사혈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촤촤촤촤촥.

문호창이 곤륜파의 무인들에게 섞여 마음대로 말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 손대법은 빠르게 금채홍이 있는 평야 끝자락의 앞에서 고함을 질렀다.

“삼형방어진을 펼친다. 고수들이 첫 줄로, 궁수대가 두 번째 줄로, 세 번째 줄은 창을 든 자가 후방 평야 방향을 향해 겨눈 채로 대기!”

“네.”

무인들은 사방으로 퍼져 세 줄씩 길게 늘어섰다.

그것은 무림맹의 무인들이 평야 앞에서 서 있는 방어 진형과 똑같은 모습.

‘이거라면 버틸 수 있다.’

길게 늘어선 방어진은 허약하기 그지없지만, 앞에서 기마대와 곤륜파가 공격하면 아까 무림맹의 무인이 했던 것처럼 길을 열어 주면 된다.

뒤에 있는 무림맹, 천량도사, 그리고 도철용과 싸우도록.

‘그리고 미친년과 무림맹 무인들이 공격하면 뒤로 돌기만 하면 되지.’

순식간에 진형을 갖추자 손대법의 입에서 한껏 숨이 몰아치며 터진다.

이것으로 위기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앞에서 기마대와 곤륜파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숨이라도 돌릴 수 있으니까.

그때.

“이 멍청한 것들! 지금 뭐 하는 것이냐!”

곤륜파의 뒤편에서 거대한 내력을 실은 목소리가 울렸다.

“내, 너희에게 맡긴 것이 잘못이구나. 어찌 이리 절도 없이 움직이느냐. 이래서야 마치 산적 같지 않은가!”

“죄…… 죄송합니다.”

일갈에 곤륜파의 무인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거대한 목소리를 낸 사람은 다름 아닌 곤륜파의 장문인인 청유원.

그는 경멸 섞인 눈길로 한심하다는 듯이 개 싸움판을 바라봤다.

실로 이러려고 그동안 그 고생을 하면서 이놈들을 가르쳤나 하는 눈빛이다.

“허어, 이런 망할 놈의 개씨부럴 놈들을 봤나.”

“헉!”

곤륜파의 무인들은 몸을 움찔거렸다.

곤륜의 장문인 청유원이 욕쟁이로 유명하기는 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마구 천박하게 욕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정말로 화가 났을 때.

자신도 그 분노를 가눌 길이 없을 때.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을 전부 다 뒤집고 싶을 때.

그럴 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욕을 퍼붓는 사람이었다.

“…….”

그런데 지금 그 욕이 터져 나왔다.

곤륜파의 무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청유원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반 각 주마. 진형을 만들어라.”

“알겠습니다. 헌데 어떤 진형을…….”

“이런, 거꾸로 매달아 사타구니를 쪼개 버릴 놈 같으니. 그것을 말로 해야 하는 것이냐. 전황과 지리를 보면 퇴로를 막는 것밖에 더 있느냐! 똥을 한 바가지 퍼서 아가리에 처집어넣기 전에 빨리 안 움직이느냐!”

“죄…… 죄송합니다.”

청유원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자 곤륜파의 무인들은 기겁하며 일제히 진형을 만들기 위하여 뛰었다.

타다다다닷.

청유원이 이야기했던 반 각의 반도 안 되는 사이 삼형방어진과 길게 늘인 사각방어진, 그리고 후미의 협곡의 작은 입구는 원형방어진으로 아예 막아 버린 곤륜파의 무인들이 한숨을 몰아쉬었다.

‘장문인이 더 화나기 전에 방어진을 만들어서 다행이다.’

실제로 장문인의 욕을 경험해 본 고참 무인은 생각했다.

방금 한 욕은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진정으로 욕이 터지면 정신적 충격으로 사흘은 누워서 못 일어날 정도다.

곤륜의 무인들이 새파래진 얼굴로 다음 욕이 날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사이.

“음…….”

청유원은 지금의 상황을 가늠하고 있었다.

‘사혈련이 가운데 있고, 무림맹이 평야 앞쪽과 기마대 둘로 나뉘어 있는데 공격은 하지 않는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분명 내력을 모아 평야 앞에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천량도사와 도철용이 있다.

그런데 무림맹의 기마대로 보이는 사람들과 전혀 협력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기마대의 대주로 보이는 사람은 심지어 곤륜파의 장문인인 자신을 흘끔거리며 눈치까지 보고 있으니, 청유원은 눈치 빠르게 자신이 모르는 어떤 일이 있음을 알아챘다.

“기마대의 대주께서는 천량도사와 합류하지 않으시는지?”

“아니…… 그게……. 저희는 따로 명을 받아서 서로 얽히지 않으려 하는 것으로…….”

“…….”

청유원은 문호창과 더는 말을 섞지 않고 조용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때 문호창이 다급한 목소리로 청유원을 불러 세웠다.

“장문인! 어찌하여 그리로 가십니까?”

“내가 가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는가!”

“그게……. 천량도사와 도철용은 맹주의 명을 거절하고…….”

“그래서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건가?”

“네?”

“도리에 합당하지 않은 명이라면 거절하는 게 본디 무림맹의 정신이 아니던가.”

“……!”

“그것을 확인하러 가는 것일 뿐, 더는 내게 말을 걸지 말게나.”

지금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무림맹의 정신을 거론하자 문호창은 입을 다물었다.

개 같은 고루한 늙은이 같으니.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말이지만, 마음이 급해진 문호창은 급히 전서구를 날렸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지.’

앞으로 이틀, 늦어도 삼 일.

그 안에 무림맹의 지원을 받는다면.

‘피를 많이 보게 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것이 곤륜파의 장문인을 죽이게 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무림맹의 소속이니 지금은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채도 청유원이 자신을 어찌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문호창은, 이내 진형을 가다듬고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을 선택했다.

* * *

천량도사와 도철용의 이야기를 전부 들은 청유원의 미간이 구겨졌다.

이래서는 영약을 둘러싼 전쟁의 한복판에 뛰어든 것이나 마찬가지.

한쪽은 지키려는 무림맹.

또 한 세력은 빼앗으려는 무림맹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사혈련이 끼어 있는 것이고.

살아생전 이렇게 더러운 상황은 처음 본다.

청유원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자 천량도사는 이내 안심시키려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네는 빠지게. 아마 우리도 이 일 이후에는 무사하지 못할 만큼 위험하네.”

“천량도사님! 어찌 무림맹이 패도의 무리와 다를 것이 없는 짓을 하는데, 빠지라 하십니까.”

“그동안 그 패도의 무리를 지탱해 온 것이 바로 나일세. 개방의 방주도 마찬가지고. 자네의 눈에는 나도 저들과 다를 것이 없어야 하네.”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씀 하지 마십시오.”

“말이 된다네. 나는 내가 그동안 패도의 무리를 감싸고 돌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무림맹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저 아가를 외면할 수 없었지. 이것이 원래 무림맹의 본질인 것을.”

청유원은 천량도사가 가리키는 여인을 보며 숨을 들이켰다.

나이 어린 소저.

저 사람이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이라는 것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냥 발을 뺄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래도 되네.”

강인한 눈빛을 하고는 있지만 떨리는 눈길을 피할 수는 없는 법.

그것을 알아차린 천량도사가 청유원의 손을 잡았다.

“곤륜파가 피를 흘릴 필요는 없는 일. 그것으로 내 대답은 다 했네.”

“천량도사님!”

천량도사가 몸을 일으키자 청유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한숨만 내리쉬었다.

하지만 심란한 사람이 또 있었으니.

도철용이 평야 아래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서로가 대치한 채 소모전으로 돌입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거 큰일이군. 앞으로 어찌 될지.”

“뭐가 걱정이세요?”

걱정이 한가득한 도철용의 말에 금채홍이 곁에 서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일단은 식량이다. 언제까지 대치할지 모르는데, 이백오십의 무인들을 거두지 않았더냐. 저들을 어찌 먹일지 걱정이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걱정이 아닌데요. 오히려 걱정은 각기 세력이 지금부터 보낼 전서구예요. 곧 지원이 오겠죠. 앞으로 이틀에서 삼 일 정도일까요.”

“흐음, 네 말대로다. 그러니 그때까지 어찌 버텨야 할지 더 걱정이구나.”

“그러니까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니까요?”

“……?”

도철용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금채홍은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혹시 말고기 좋아하세요?”

“응? 말고기?”

순간 도철용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러고 보니 평야의 절반을 뒤덮고 있는 것이 말의 시신이었다.

이 정도의 양이라면 사흘이 아니라 열흘도 버틸 만큼의 숫자.

“진짜 걱정해야 할 것은 저희가 아니라 사혈련이겠죠.”

“그렇구나. 크하하핫.”

금채홍의 사악한 웃음과 도철용의 개운한 웃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지자, 이내 눈이 마주신 손대법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들의 말이 맞았다.

자신들은 지원이 올 때까지 꼼짝없이 굶게 생겼으니까.

‘개 같은 것들, 아무리 그래도 꼭 그렇게 웃어야 했냐!’

그러나 손대법이 이렇게 당하고 끝날 인물인가.

그는 이미 다음의 일을 생각해 놓고 있었으니, 피를 부르는 악독한 책략이 머릿속에 가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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