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사흘 동안.
겹겹이 포개진 각 세력은 직접적인 충돌을 크게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눈이 벌게질 정도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푸더더덕.
피잇. 피잇. 피잉!
전서구로 날린 새가, 견제하던 세력이 날린 화살에 의해서 끝도 없이 추락하고.
쐐애애액. 푸드드득.
보통의 새로 안 되기 시작하자 길들인 맹금류가 하늘을 장악하며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하나라도 더 전서구를 날려 보내기 위해 끝도 없이 새를 날리고, 실패를 우려하여 같은 편지를 쓴 참매가 수십 마리씩 허공에서 땅으로 내리꽂히듯 내려앉았다.
푸드드드득.
손대법은 마지막으로 날아든 참매의 다리에서 편지를 빼 읽던 도중 희미하지만 야비함이 섞인 웃음을 지었다.
‘이걸로 준비는 끝났다.’
무림 삼 대 군사답게 손대법은 이미 금채홍의 뒤를 칠 계획을 진행 중이었다.
이미 곤륜파가 차단한 협곡 입구를 거칠 것도 없이 바로 영약 밭 위의 산을 타고 사혈련의 살수 이백이 내려올 계획이 짜인 것이었다.
‘이 망할 미친년. 잡아서 괴롭히다가 사지를 오백 조각으로 잘라 죽여 주마.’
과거 천마신교 무명암살대의 위력을 실감했었기 때문에 사혈련에서도 살수 단체의 육성에 힘을 썼었다.
천파멸약대(天破滅約隊).
칠백에 달하는 인재를 육성하여 무명암살대에 밀리지 않는 조직으로 만들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실력이 좋은 이백 명을 따로 불러들였다.
손대법의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밤이 오길 바라지 마라. 어둠이 찾아오면 우리는 너희의 피를 갉아먹고 태어난 이래 가장 끔찍한 날로 만들어 줄 테니.’
푸드드드득.
손대법이 책략을 실행하라는 편지를 전서구에 날려 보냈다.
파닥. 파닥.
하늘로 날아가는 새의 모습을 보며 손대법은 기분이 좋았어야 할 표정을 구겼다.
새가 날아오르는 소리가 분명 ‘푸드드득’이어야 하는데, 왜 ‘파닥파닥’이라는 소리가 들리는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손대법은 이를 빠득 갈았다.
‘이 망할 년이 진짜!’
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부채 소리.
미친년과 천량도사, 그리고 도철용이 무림맹 무인 이백오십 명과 먹을 말고기를 굽는 동안, 연기와 냄새를 사혈련 무인이 있는 방향으로 날려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삼 일이나 굶어서 온통 사기가 떨어진 판국에!’
손대법이 찢어진 눈으로 매섭게 바라보자, 금채홍이 눈을 마주치고는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 소리는 내지 않은 채로 입만 빵긋거리며 말하기를.
[말고기가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네요. 배고프시면 뼈라도 던져 드릴까요? 우리면 국물이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한 자씩 또박또박 벌려 말하는 금채홍의 입 모양에 손대법은 뒷목을 부여잡았다.
“아아악, 혈압 올라!”
“왜 그러십니까?”
“아니다. 저 미친년이 약을 올리는 바람에…….”
손대법은 자신에게 말을 걸어 준 무인의 얼굴을 보고는 입을 멈췄다.
그도 그럴 것이 무인의 입에서 침이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주르륵.
말고기를 굽는 냄새에, 한껏 입에 고인 침이 이제는 입 밖으로 흘러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굶주려 있었다.
‘젠장, 흥분할 때가 아니다. 저 미친년은 아무 생각 없어 보이지만 모두 계산된 행동을 하는 것. 이미 우리가 움직일 힘도 없는 것을 아는 것이니 그나마 남은 사기마저 꺾으려는 것이다.’
손대법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해가 지려면 한 시진 정도면 충분했다.
‘이따 밤에 내 네년만큼은 말뼈로 대가리를 찍어 죽이마.’
손대법은 미친년의 상대 방법을 오백 조각으로 잘라 죽이는 것에서 말뼈를 사용해 때려죽이는 것으로 변경했다.
* * *
편지를 실어 나르는 새를 수십 마리나 잃어 가며 겨우 받은 편지.
문호창은 적혀 있는 내용을 읽고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지원을 요청했는데 고작 이십 명만 보낸다고?’
오백의 기마대 중 이제 겨우 이백 정도만 남았는데, 무림맹에서 혹시 편지의 내용을 착각하여 소수의 인원을 보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사혈련 무인들이 굶주려 있으니까 이십 명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걸까?’
그럴 리가 없다.
게다가 오늘 낮에 도착할 것이라니, 해가 지는 무렵이라고 하더라도 당당하게 지원 병력을 모두에게 보인다는 것은 뭔가 방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
‘무림맹이…… 아니, 맹주 남궁천이 선택한 일이니, 나중에 불똥이 튈 일은 없겠지.’
한숨과 함께 문호창이 편지에 불을 붙여 하늘로 재를 날릴 때.
협곡의 입구를 지키는 무인을 향한 목소리가, 기분 나쁠 정도로 걸걸하고 낮게 들려왔다.
“무림맹의 지원이다. 길을 비켜 주겠나.”
“지원이라고?”
“여기 무림맹에서 발행한 문서다. 맹주의 인장이 찍혀 있는.”
곤륜파의 무인이 편지를 받아서 오자, 청유원은 맹주의 인장이 찍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협조 고맙군.”
“무림맹의 명이라면야…….”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만 한 번 까딱이고 들어서는 이십 명의 무인들을 바라보며 청유원은 기이한 마음을 품었다.
‘뭔가 이상한데. 단 이십 명이 지원을 나올 정도라면 이름값이 높은 무인이어야 하거늘,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자들이로군.’
또 한 가지.
이십의 무인들이 정파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떤 문파인지가 확실하지 않았다.
딱 짚어 말하기 애매하다.
‘도대체 무림맹에서는 무슨 짓을 하는 것이란 말인가. 진정 패도를 넘어 패악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아니겠지.’
청유원이 영문을 알기 힘든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사이.
이십 명의 무인들은 문호창에게 다가가 한쪽 입꼬리만 올리고는 비웃음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사혈련의 뒤쪽에 있는 게 영약 밭?”
“그렇습니다.”
“천량도사와 도철용은 누구인가.”
“저들입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계집도 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린 이십 명의 남자 중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 많았군. 이런 지형이었다면 기마대가 힘을 쓰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지.”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쉬고 있어라. 반 각이면 끝난다.”
“반 각이요? 그것밖에 안 걸린다는 말입니까?”
사혈련 사백 명이 조금 안 되는 숫자. 무림맹 이백오십 명, 그리고 천량도사와 도철용.
그들을 반 각에 끝낸다는 말에 문호창은 입을 쩍 벌렸다. 그러나.
“넉넉잡아 반 각이다.”
“……!”
키 큰 남자가 손가락을 풀며 앞서 걷자 그 뒤로 열아홉의 남자들이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어쩌시겠습니까?”
“어쩌긴 뭘 어째.”
키 큰 남자는 뒤에서 걷고 있던 사람의 말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우리의 힘을 보이는 자리다. 당연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제거. 그것으로 목격자를 없애 버린다.”
“곤륜파의 장문인까지 말입니까?”
“아니다. 그들은 당연히 죽는 것이고, 기마대의 대주까지 멸살(滅殺)한다.”
“알겠습니다.”
스르르릉.
키 큰 남자가 검을 뽑으며 말했다.
“기운을 끌어 올려라. 10갑자부터 시작하면 되겠지.”
“네.”
쿠웅.
이십 명으로부터 기운이 퍼지기 시작하자 땅에 서 있던 풀들이 일제히 눕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뿌리까지 뽑혀 날아갔다.
그들의 내공이 땅을 울리기 시작했다.
* * *
툭.
입에 한껏 물고 있던 말고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금채홍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천량도사님, 방주님, 지금 즉시 피하세요. 나머지 무인에게도 마찬가지 말을 해 주시고요.”
“왜 그러느냐.”
“이 무슨 악의에 찬 기운이!”
턱이 덜덜 떨리며 이가 부딪혔다.
영기를 느끼는 힘을 넓게 펼치고 있지 않았기에 이제 막 느낀 것이지만, 순간 주변의 영기가 사방으로 도망치듯 퍼지고 일부는 어둠에 잡아먹혔다.
금채홍이 식은땀을 흘리며 고함을 질렀다.
“거기 겉멋 든 사혈련 아저씨! 빨리 도망가요!”
“뭐라고? 이 미친년이 진짜 날이 갈수록 개소리가 늘어나는구나!”
“그게 아니라 앞을 보라고요!”
“앞?”
손대법은 무의식중에 금채홍이 시키는 대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이 무슨 개 같은 기운이!”
온몸이 떨렸다.
바로 지척까지 와 있는데 느끼지 못했다.
기운이 갈무리되어 숨겨진 것도 아니었다.
사방으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데도 그것이 워낙에 비현실적이고 이질감이 지나쳐서 오히려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손대법은 덜덜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잡아 고정하고, 큰 목소리로 궁수대에 명령을 내렸다.
“지원 화살을 쏴라!”
“아직 해가 떠 있는데요?”
“쏘라고, 이 멍충아. 눈앞에 서 있는 놈들의 기운이 안 느껴지더냐!”
“네? 넵!”
피이잉. 피이이잉. 피이이이잉.
세 개의 불화살이 하늘 높이 떴다.
그러자 영약 밭 뒤에 있는 산꼭대기에서 땅을 파고 몸을 숨기고 있던 천파멸약대 이백이 고개를 들었다.
“왜 지금 지원 요청이 오는 것이지?”
“뭔가 급한 일이 생긴 모양이다. 군사 손대법이 실수할 리 없지. 가자!”
“네!”
살수들은 미리 준비한 동아줄을 절벽 아래로 던졌다.
‘젠장, 뭔가 느낌이 좋지 않은데. 산의 높이가 4리에 달할 정도로 높아서 무인들이 기감을 위로는 펼치지 않으니 들키지 않을 것을 알고 이곳으로 부른 것이다. 그런데 왜 다 성공한 계략을 지금 와서…….’
천파멸악대 대주 사광현은 그래도 몸을 날렸다.
임무를 거역할 수는 없으니까.
휘리리리릭.
그때 줄을 타고 내려오는 동안 이상한 느낌의 것이 보였다.
사광현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빌어먹게도 오늘 관짝에 실려 돌아가겠군.”
이상한 기운을 풍기는 이십의 무인.
그들을 보는 순간, 사광현은 줄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몸을 멈추고, 하마터면 다시 절벽 위를 기어오를 뻔했다.
* * *
콰아아아앙!
단 한 번.
숨조차 들이켜지 않고 휘두른 검에 무인 이십이 날아갔다.
사지가 찢긴 채로.
“삼형방어진을 포기하고 호접진(蝴蝶陣)을 만들어라.”
다급하게 숨이 넘어갈 듯 명령을 내리는 손대법이 뒤를 돌아보았다.
땅에 조금만 더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기를 바라면서.
그때.
“겉멋 아저씨, 빨리 이리 와요. 합류해야 합니다.”
“……!”
손대법은 작은 희망을 본 듯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후퇴. 무림맹의 무인들과 합류한다.”
“네? 무림맹하고요?”
“이 멍충아, 당장 안 뛰어!”
“넵!”
빠르게 후퇴하며 진을 유지하는 가운데, 영약 밭 뒤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군사님,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왔나.”
순간 살수대의 목소리에 손대법은 금채홍의 뒤통수를 치려 했던 계략이 들통나자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금채홍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알고 있었어요.”
“응?”
“이백 명.”
“헛!”
“비가 와서 진흙에 몸을 담그고 기운을 죽이고 있던.”
“풋.”
손대법의 입에서 터무니없다는 듯 실소가 터졌다.
이 여우 같은 미친년.
“평야에는 발목까지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샛길이 있으니 그쪽을 통해 오라 하시면 될 것입니다.”
“고맙다, 말뼈…….”
손대법은 하마터면 말뼈로 때려죽이는 것은 하지 않겠다고 말할 뻔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드시고 싶었나요. 나중에 말뼈 챙겨 드릴게요.”
“…….”
미치겠다.
하지만 어찌 아니라고 말할 틈이 있으랴.
있는 힘껏 기운을 실은 목소리가 손대법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호접진에서 육화진(六花陣)으로 변경. 그리고 살수대는 후미에서 오방방원진으로 지원한다. 비침을 날려라.”
“네!”
손대법은 정말로 천재였다.
그것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생각하는 것이었다.
“진형의 좌를 비워라.”
“네!”
“비워진 좌에 살수대, 궁수대가 들어간다. 비침과 화살을 날려라.”
“네!”
마치 거대한 용이 움직이는 것처럼 이십 명의 기괴한 무인들을 막아서는 것이 흡사 제갈공명이 다시 환생한 것처럼 보였다.
무려 사혈련과 무림맹, 그리고 살수까지 섞인 무림 역사상 가장 기괴한 무인 집합체다.
그러한데도 손대법은 그것을 자신이 생각한 대로 정확하게 이끌었다.
콰아아앙!
다만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그것이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뿌득.
날아가는 무인을 바라보며 손대법은 이를 악다물었다.
그리고 이십 명의 무림맹 무인들과 눈이 마주친 순간.
이십 명의 무인 중에서 째진 눈을 한 사람이 입가를 삐죽거리며 키 큰 남자를 바라봤다.
“가운데서 명령을 내리는 놈. 그리고 옆에 있는 여자. 저것들부터 손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길을 터라.”
“네.”
순간 째진 눈의 남자가 튀어 나갔다.
그 속도가 사혈련과 무림맹 무인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콰아앙! 촤아아아아악!
검 한 번에 세로로 길게 땅이 파이며 무인 사십 명이 날아갔다.
파바바방.
눈 깜짝할 사이에 키 큰 남자가 그 사이를 뚫고 신형을 날려 손대법과 금채홍의 앞에 섰다.
“어떻게…….”
“그냥 너희와는 격이 다를 뿐이다.”
순간 키 큰 남자의 손에 들린 검이 금채홍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