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176화 (177/270)

176화

휘이이잉!

보이지 않았다.

사실은 검이 날아오는지도 몰랐다.

금채홍은 단지 소리만으로 검이 날아든다고 생각하며, 본능적으로 한 걸음을 뒤로 빼고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채애애앵!

역시 검이 날아오고 있었다.

‘막았다.’

아니, 막았다고 생각했다.

파캉! 파사사사삭.

은자 삼십 냥짜리 검이 사방으로 비산하고, 쇳조각이 된 검의 흔적은 사방으로 퍼져 다른 사람들의 몸에 박혀 들었다.

피비비빗. 콰악!

“으악.”

“아야!”

검과 검이 맞닿아 부서졌을 뿐인데 주변에 있는 무인들의 신형이 무너져 내렸다.

죽지는 않았지만, 사지가 꿰뚫린 채.

“오호? 이걸 막으려 해?”

“크윽!”

금채홍은 지금 검을 막은 충격으로 부러진 팔 때문에 신음을 흘렸다.

그것도 그냥 부러진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부러진 뼈가 충격 때문에 살 밖으로 튀어나왔다.

주르르륵. 툭.툭.툭.

팔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그것을 본 키 큰 남자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내 검을 막은 것은 네가 처음이다. 너에게는 자격이 있으니, 상으로 이름을 알려 주지. 나는 비천운이라고 한다.”

“크윽, 이름 따위.”

“저승길 선물치고는 괜찮지 않았나?”

비천운은 그대로 금채홍의 가슴에 장권을 때려 박았다.

퍼어어억. 콰직!

순간 금채홍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왔다.

“꺼억!”

“이걸 맞고도 산다면 다른 사람의 이름도 가르쳐 주지.”

휘이이잉!

장권의 충격으로 금채홍의 신형이 뒤로 날아간다.

갈비뼈 대부분이 부러져 폐부를 파고들고, 심장도 방금의 충격으로 잠시 멈춘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방금 남자의 장권이 몸속으로 절반 이상 밀려 들어온 것 같았다.

콰아아아앙!

금채홍의 신형이 평야를 한 번 튕기고 그대로 날아가 문목화의 집 담벼락에 처박혔다.

“커헉!”

가슴속 깊은 곳에서 피가 올라와 입으로 튀어나왔다.

“하악, 하악. 아파! 죽을 정도로 아파…… 컥!”

장권이 틀어박힐 때.

금채홍은 본능적으로 왼팔에 숨겨져 있던 강선을 꺼내서 비천운의 힘을 한 번 깎아 냈다.

거기에 더해 검사를 강선에 흘려 최대한 막아 보려 했다.

‘그렇게나 노력했어도 지금 피를 토하고 있지만.’

남자가 잠시 금채홍을 바라보는 사이에, 얼이 빠져 있던 손대법이 고함을 질렀다.

“이대로 육화진을 밀집형으로 만들어 이놈을 가둬라. 창을 사용하라!”

“네!”

명령 한마디에 수백의 무인들이 목숨도 아끼지 않고 비천운을 감싸기 시작했다.

천량도사와 도철용도 비천운에게 검을 날렸다.

그러나.

파캉!

또 한 번 산산이 부서져 비산하는 검.

천량도사와 도철용의 눈에 공포가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네…… 네놈은 뭐냐. 어찌하여 이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

“쉿, 영감들은 조용히 해라. 내가 저 소저와 이야기를 하고 있던 도중이다. 아직 죽지 않았으니 다른 사람의 이름을 알려 주러 가야겠다.”

“네놈! 그런 핑계로 아가를 죽이려 하는 것이 아니냐. 못 간다!”

천량도사가 부서진 검을 대신해 옥수십이식(玉手十二式)의 자세를 취하며 비천운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비천운은 그런 천량도사를 벌레 보듯 바라보았다.

“네 상대는 내가 아니다. 뒤에 있는 열아홉 명이지.”

“……!”

금채홍을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잠시 정신이 나갔던 천량도사의 귀에 이제야 사방으로 살점이 튀는 소리가 들려왔다.

촤아아악! 촤아악!

“으아악!”

“커헉!”

“사람 살…… 꺼억.”

천량도사는 그들의 신음이.

그들의 목숨이.

수백에 달하는 무인들의 생명이 금채홍 한 명보다 중요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전에도 같은 생각으로, 사혈련의 무리가 납치한 처녀의 목숨을 무게로 재다가 놓치지 않았던가.

“같은 일을 반복할 수는 없지.”

“무슨 알아듣지 못할 개소리를…….”

휘이이잉!

비천운의 장권이 천량도사의 가슴으로 날아갔다.

천량도사는 급히 팔을 들어 올려 비천운의 장권을 막았다.

하지만 천량도사는 너무 늦게 눈치챘다.

‘잠깐! 어째서 놈의 장권이 보이는가!’

비천운의 입가에 비웃음이 지어졌다.

“눈치가 느리군.”

비천운의 장권이 천량도사의 팔에 닿는 순간.

퍼펑!

내공이 천량도사의 팔 안에서 터졌다.

천량도사는 호신강기를 두르고 있었기에 더욱 큰 충격을 받았다.

‘놈, 일부러 호신강기를 두른 것을 이용해서!’

안에서 터지는 충격이 밖으로 퍼지지 못하고 고스란히 남아 버리니까.

“커헉!”

“다음부터는 말 걸지 말도록, 늙은이.”

천량도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비천운이 주변을 도륙하며 금채홍에게 걸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비록 팔에서 터진 내공이라 할지라도 충격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으니.

“아가야…….”

천량도사는 다 터져 나간 팔을 덜렁거리며 망연한 눈으로 금채홍을 바라보았다.

저벅. 저벅.

바닥을 겨우 기는 금채홍의 모습이 비천운의 눈동자에 비치자, 그는 긴 혀로 입술 주변까지 핥았다.

“약속대로 또 한 명의 이름을 알려 주지.”

“그런 약속 따위 한 기억이…… 허억, 허억.”

“또 한 명의 이름은 비천운이다.”

“……?”

말도 안 되는 소리.

질 나쁜 농담보다도 더한 말에, 금채홍은 격통이 온몸을 찌르듯 파고드는 와중에도 고개를 들어 올렸다.

개 같은 소리 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하지만 끝내 비천운의 입이 열렸다.

“우리는 모두 비천운이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가.”

“아…… 알 게 뭐야. 하악, 허억.”

“비천운이 아닌 자는 모두 죽는다는 의미다.”

비천운의 검이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금채홍은 지는 노을이 반사되는 검날의 붉은빛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노을의 색은 공자님이 계시는 항주의 그 바닷가와 같은 색일까.

“돌아가지 못할 것 같네요. 죄송해요, 공자님. 쿨럭, 쿨럭.”

“비천운이 아닌 자, 지옥의 문을 열어 주마.”

휘이잉!

검날이 내려온다.

춤을 추듯.

검 끝이 떨리면서.

조금은 흐릿한 시선의 끝에.

나풀거리며 검이 흔들린다.

순간.

카아아아앙!

금채홍의 눈이 커졌다.

‘무슨 일?!’

비천운의 검이 쪼개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스으으윽.

검고 불길한 기운이 세상을 뒤덮듯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기운은 금채홍의 폐부를 찌를 듯 따끔거리며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마치 해가 사라진 것만 같은 느낌.

노을도 지워지고.

별도 보이지 않는 칠흑의 어두움이 찾아온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어둠을 뚫고 하얀색의 손이 어느새 금채홍의 눈앞으로 나타났다.

흰색의 손은 빛처럼 광채를 발하며 금채홍의 머리 위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늦어서 미안하구나.”

“공자님?”

“어찌 이리도 많이 다친 것이냐. 바보같이…….”

“공자님이 어째서 여기에……. 쿨럭, 쿨럭.”

피가 한 움큼 튀는 기침 속에 눈물이 같이 튀어 나갔다.

금채홍의 눈에 망울망울 눈물이 흘러내렸다.

“공자님은 여기에 계시면 안 되잖아요. 바보 같은 저를 위해 오실 길이 아니잖아요.”

“너이기 때문에 왔다. 너 같은 바보를 내가 아니면 누가 챙기겠느냐.”

“흑…….”

가슴이 저민다.

비천운에게 맞아서 아픈 게 아니라 천일영의 말 한마디에 그대로 가슴이 도려져 나가는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다.

다정한 말이 이렇게나 마음이 아픈 것이었던가.

“잠시만 기다리거라. 죽어 나가는 놈들이 많으니 거기부터 다녀오마.”

“네, 그래 주세요. 쿨럭, 쿨럭.”

“말은 이제 그만하거라.”

천일영의 손길이 금채홍의 가슴에 닿았다.

스으으윽.

진기가 몰려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방금 본 어두운 기운과는 달리 따스하기만 했다.

‘비천운의 검날이 춤추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공자님의 기운에 검 끝이 밀린 것이었구나. 검날이 닫지도 않았는데.’

금채홍은 천일영의 신위를 생각하며 웃음을 지었다.

“부디 저들을 살려 주세요.”

“맡기거라.”

천일영이 몸을 일으킬 때.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도 금채홍이 걱정되어 문 뒤에 숨어 눈만 내밀고 있는 문목화가 보였다.

“채홍이를 부탁하지.”

“네? 네.”

천일영은 금채홍에게 검날을 날리던 비천운을 바라보았다.

비천운은 몸을 떨었다.

‘뭐지. 이, 내가 떨고 있다고? 저런 기생오라비 같은 놈을 상대로?’

마치 햇빛이 닿지 않아 검은색만이 존재하는 심해와도 같은 눈빛.

텅 빈 동공.

비천운은 검이 쪼개질 때의 충격으로 나가 버린 팔을 움켜쥐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기에, 천일영은 웃었다.

조용하고 다정한 말투로 비천운에게 천일영은 말했다.

“당한 건 일만 배로 갚아 준다. 그것이 내가 살아온 방식이다.”

“뭐라고? 일만 배? 이런 미친…….”

“하지만 너는 예외로 하지. 너는 백만 배로 갚아 주겠다.”

“개소리도 작작…… 커헉!”

휘이이이잉. 피빗. 피빗. 피빗!

무극지검이 눈 한 번 깜박일 사이에 수만 번을 비천운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처음에는 온몸의 삼백육십오 개의 혈도를 도려냈다.

다음에는 단전을 찌르고, 이후에는 기도를 파냈다.

마지막에는 온몸의 근육을 전부 자르고, 하나라도 이어진 신경이란 신경은 모두 박살 냈다.

“끄아아아아악!”

비천운은 비명을 질렀다.

바닥으로 주저앉고, 주저앉는 것도 하지 못해 이내 신형이 땅바닥으로 패대기쳐졌다.

비천운은 그럼에도 이상하기만 했다.

‘죽지 않는다니.’

손가락 끝 하나.

눈꺼풀 하나까지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죽지 않는다.

“앞으로는 그렇게 살거라. 그대로 굶어 죽어도 괜찮겠지.”

스산한 검은 안개 같은 목소리가 귓가를 뒤덮자 비천운은 정신이 반 정도 나갔다.

‘어째서 이런 신위가! 어째서 저런 무공이! 어째서 저런…….’

공포가 뇌수를 짓누르고 미치기 시작한다.

“괴물이…….”

입에서 침이 흐르고, 광인의 눈빛이 스며드는 눈에는 눈물만 고였다.

첫 번째 비천운이 쓰러졌다.

저벅. 저벅.

천일영이 몸을 돌려 남은 비천운에게 발걸음을 옮기자, 곁에서 백유화와 서하린이 보폭을 맞추기 시작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습니다.”

“채홍이가 죽었으면 나도 미쳤을지도 모르겠구나.”

“꺄하하학, 제가 죽어도 그러실 겁니까?”

“그럼.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

“에엑?”

백유화가 의외라는 듯 천일영을 바라보았다.

진짜?

두근거림이 심장에서 시작되어 온몸으로 퍼진다.

눈길의 끝에 걸리는 천일영의 표정.

그것은 진짜다.

‘하긴 거짓말을 하지 않는 분이니까.’

백유화는 편안한 웃음을 퍼트렸다.

그때.

“야! 너 무공 하는 거 맞잖아! 이 망할 놈아!”

“참 자주 만나는군.”

바닥에 주저앉은 천량도사가 억울하다는 듯 천일영을 노려보았다.

‘고수 중에서도 고수. 게다가 기운을 완전히 갈무리할 정도라니.’

나쁜 놈인지도 모른다.

살육에 즐거워하고 피에 취한 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천량도사의 얼굴에 간절함이 떠올랐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이다.

“이보게, 부디 개방의 방주를 살려 주지 않겠나. 이제 곧 죽을지도 모른다네. 다른 사람들도…….”

“알았다.”

“진짜인가?”

천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 각.”

“정말인가? 정말로 반 각인가.”

“의 반 각.”

“……!”

순간 천일영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 * *

도철용은 반쯤 정신이 나간 채 말 뼈다귀로 삼십육로타구봉법(三十六路打狗棒法)과 타구봉법의 마지막 초식인 천하무구(天下無狗)를 이어 붙이며 열아홉 명의 비천운에게 지속해서 타격을 가했다.

‘이놈들, 이상하게 무공에 밝아서 타구봉법이 아니라 삼십육로타구봉법과 초식을 섞는데도!’

타격을 하는 것은 겨우 열 번에 한 번 정도.

나머지는 전부 피하고 있었다.

‘이건 분명히 우리를 가지고 노는 것이지.’

도철용은 자신이 적을 타격하기 위해 접근할 때마다 길을 만들기 위해.

손대법은 이를 악물고 진형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한번 다가갈 때마다 무림맹 무인과 사혈련 무인들이 열댓 명씩 죽어 나간다는 거다.’

잠시의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병력의 3할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것은 도철용뿐만 아니라 사혈련의 초절정 고수 타진표도 똑같이 느끼는 것이었다.

쐐애애액!

내공을 가득 실은 채 날리는 창.

이것으로 이기지 못한 적은 거의 없었다.

이기지 못한 사람은 백유화 정도일까.

사혈련의 천주하고.

‘심지어 사귀진도 이겼는데. 그런데도 이놈들, 창을 맞고도 튕겨 내 버린다.’

갈리는 이빨 사이로 악다문 입술이 비틀린다.

타진표는 더욱 빨리 창을 날렸다.

쐐애애액.

그 순간.

휘이잉.

열아홉의 무인 중 뚱뚱한 자가 날아오는 창을 허공에서 잡아냈다.

텁.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려 타진표에게 창을 돌려보냈다.

쐐애애애애애애액! 콰아아아아!

꿀꺽.

소리가 다르다.

굉음을 내뿜으며 날아오지 않는가.

‘이건 못 피해!’

콰지지지직.

타진표의 오른쪽 어깨가 뚫리며 신형이 뒤로 날아갔다.

“크아아아악!”

타진표는 수십 바퀴나 바닥을 뒹군 후 급히 자신의 어깨에 생긴 상처를 더듬었다.

‘미친, 이런 구멍이.’

창의 굵기보다 다섯 배는 될 법한 구멍.

주르르륵.

피가 쏟아진다.

“커헉!”

타진표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 누운 채 일어서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 도철용도 마찬가지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었다.

퍼각!

말 뼈다귀가 부러지며 날아갔다.

방금 한 놈의 허리 급소를 타격했었다.

그런데 허리만 때렸을 뿐인데도 어이없게 강기로 둘러싼 말뼈가 부러졌다.

씨익.

얻어맞아도 가만히 있던 놈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며 웃음을 짓는다.

도철용의 관자놀이로 땀이 흘러내렸다.

‘저놈이 지은 웃음의 끝이 이 지경이군.’

쐐애애액.

눈앞으로 날아오는 검.

도철용은 눈을 부릅떴다.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죽어도 눈만은 감지 않겠다는 결의가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점점 다가오는 검날이 흔들리고.

‘무슨?!’

갑자기 검은 기운이 하늘과 사방을 뒤덮었다.

마치 죽음이 내려지는 것과 같은 기운이다.

순간 도철용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 헛바람을 들이켰다.

촤아아아악!

자신에게 검을 날리던 사람이 어느새 반으로 갈라져 피를 뿜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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