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177화 (178/270)

177화

“이…… 이것이 어찌 된 일인지…….”

도철용은 믿기지 않았다.

솔직히 믿을 수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할 터였다.

그렇게 타구봉법으로 타격해도 충격 하나 받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반으로 갈라지다니.’

믿기지 않을 만큼 강한 호신강기로 온몸을 두르고 있던 자들이 어찌하여 이렇게 조각났는가.

아니.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누가 저놈을 반으로 갈라 버렸는가.

그때,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어 왔다.

“개방 영감탱이, 뒤로 빠져.”

“너…… 너는 백유화! 어째서 네가! 아니 그것보다도 도망가라. 괜한 싸움에 끼어서 죽지 말고!”

“살다 보니 정파 놈한테 목숨 걱정을 다 받아 보네.”

백유화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고개를 들어 손대법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손대법은 백유화를 바라보며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야, 무인들, 뒤로 물러.”

“아니, 하지만…….”

“예전처럼 토 달고 대들다가 맞고 싶어?”

“아니!”

거친 고함이 터졌다.

“다들 뒤로 물러서라! 평야 반까지 들어서 오방방원진을 짠다!”

“네!”

백유화는 자신을 스쳐 평야로 달리는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죽을 지경이 될 때까지 싸웠군.’

역시 무림 삼 대 군사 손대법이다.

그는 죽을 위기에 몰려 있는데도 무인들의 사기가 꺾이지 않게 하면서도 여기까지 끌고 왔다.

‘다만 상대가 지나치게 안 좋았지.’

무인들이 모두 물러서자 오롯이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열여덟 명의 무인들이 보인다.

압도적인 내공의 소유자.

그들은 두 명의 비천운이 죽은 것을 알고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내공 20갑자.”

뚱뚱한 남자의 입에서 돌을 가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쿠웅.

내공에 밀린 흙먼지가 퍼지며 그들의 주변을 뿌옇게 만들었다.

마치 현황우가 열여덟 명이 있는 것 같은 모습.

“물러나라.”

천일영이 백유화의 앞으로 나섰다.

그때 무인들이 모두 철수할 때까지 뒤에 남아 있던 손대법이 천일영의 뒷모습을 보며 떨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뒷모습.

손이 떨리고 오금이 저렸다.

“서…… 설마 천…….”

천일영은 비천운을 앞에 두고 고개만 돌린 채 말을 더듬는 손대법에게 나직한 목소리를 흘렸다.

“손대법! 입 다물어!”

“넵!”

스으으윽.

천일영이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가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사방의 풀이 누웠고 나무는 떨었다.

저벅. 저벅.

사악하고 숨도 쉬기 어려운 기운이 대지를 죽이고 대기를 떨리게 했다.

뚱뚱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혼자 온 것인가?”

“충분하기에.”

열여덟 명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분명 엄청난 기운이기는 했다.

그래도 웃음이 나왔다.

“네놈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이 숫자를 이길 수는 없을 텐데. 수는 폭력이고 정의라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군.”

“일 대 다수의 싸움에는 그 나름의 방법이 있는 법.”

천일영이 무극지검을 들어 올렸다.

“알려 주지.”

“뭣?”

파앙!

천일영의 신형이 쏘아지듯 튀어 나갔다.

뚱뚱한 남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았으니까.

순간.

촤아아악!

뚱뚱한 남자의 손목이 날아갔다.

허공으로 거칠게 떠서 날아가는 손에는 검을 그대로 잡고.

“내공 30갑자!”

새파랗게 안색이 질린 뚱뚱한 남자의 입에서 포효와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툭.

뚱뚱한 남자의 손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촤아악. 촤악. 촤악. 촤아아악!

열일곱 개의 손목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크아아악!”

“이런 미친!”

“손목만 골라서…… 으아아아악.”

천마삼검 삼식 파천황이 허공을 가르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뚱뚱한 남자는 즉시 잘린 손에 쥐어진 검을 빼내어 왼손에 쥐었다.

“다음 공격이 올 것이다. 빨리 검을 들고…… 서…….”

말이 느려졌다.

눈앞에 어둠을 품은 그림자가 있었으니까.

덜덜덜덜.

뚱뚱한 남자의 턱이 떨리며 이가 부딪혔다.

빠르다.

지나치게 빠르다.

‘이 속도라면 내공이 50갑자가 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뚱뚱한 남자는 이를 악물었다.

“괴물이 되어 버린 악귀인가.”

“아무리 악귀라 해도 사람을 죽이며 네놈들처럼 웃지는 않는다.”

“개X끼.”

콰아아앙!

천마 장법인 회선무류강(回旋無流剛)이 뚱뚱한 남자의 가슴으로 처박히듯 들어갔다.

“끄아아아악!”

내공을 끌어 올리면 무슨 소용인가.

죽을 때는 죽는다.

‘이것이 마지막 생각이 될 줄이야.’

퍼거걱! 촤아아악.

뚱뚱한 남자의 신형이 터졌다.

사방에 피 안개를 뿌리고, 뼈 한 줌도 남기지 못한 채 가루가 되어 퍼져 나갔다.

“……!”

손목이 잘려 고통 속에 신음을 흘리던 중에도, 열일곱의 비천운은 눈이 반쯤 뒤집혀 눈앞에서 터져 나가는 신형을 바라보았다.

꿀꺽.

침이 넘어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뒷걸음이 쳐진다.

내리깔리는 저승사자 같은 목소리에도.

“어딜 가는 것이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미…… 미친!”

휘이이잉!

촤아아악!

뭔가 잘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어느새 몸이 허공으로 뜨는 느낌이 들어 비천운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몸이 기운 것 같기도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기괴한 느낌에 피가 튀어 알려 주는 방향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내 입에서는 비명에 가까운 악에 받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이런 X발! 개놈이!”

몸에 마땅히 있어야 할 다리가 사라졌다.

그것도 허벅지를 잘라 내어 무릎 관절 위쪽부터 완전히 도려냈다.

“끄아아악!”

털썩.

비명과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런데 어찌하여 맑고 청명한 하늘이 보여야 하거늘, 이리도 어둡단 말인가.

콰직!

천일영의 발이 비천운의 머리로 박혀 들어갔다.

퍼억!

깨진 머리로 골수가 흘러나왔다.

“남은 것은 열여섯인가.”

“히익!”

파앙!

무극지검이 다시 한번 땅 위를 가르고, 비천운은 모두 다리가 날아간 채 바닥으로 떨어졌다.

촤아아악!

검을 든 왼쪽 손목도 날아올랐다.

‘망할, 다리를 날리는 것과 동시에 손목도 날려 버린 것인가.’

신속이라는 말로도 부족.

그들은 전율할 틈도 없이 땅바닥으로 내리꽂혔다.

“커억.”

땅바닥에 패대기쳐진 열여섯의 비천운은 양 손목과 다리가 전부 잘린 채 바닥을 기었다.

아니, 길 수도 없었다.

그저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것밖에는 할 수 없는, 그 어떠한 것도 허락되지 않은 몸.

“끄아아악, 차라리 죽여라.”

“죽이지 않는다고 하지는 않았다.”

“이놈! 그게 무슨 말…….”

“죽이기 전까지 네놈들이 해야 할 말이 많다는 것이지.”

순간 천일영의 발이 얼굴로 날아들었다.

빠각!

충격에 이빨이 날아갔다.

“혹시 자살할 때 쓰는 독약이라도 물고 있으면 안 되겠지. 일단 이빨부터 시작할까.”

“크악!”

비천운은 사람의 속도라고 할 수 없는 발차기에 이빨이 날아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비천운의 이름으로 죽지 않을 자가 없다 하였으나, 이날이야말로 비천운보다 더욱 지독한 피에 절은 악귀를 만나게 되었으니.

그들은 벌벌 떨며 죽게 되는 오늘.

비천운이 모두 사라지게 됨을 느꼈다.

* * *

피를 뿜으며 벌레처럼 기는 비천운을 뒤로하고 평야로 돌아온 천일영에게 말을 거는 자는 없었다.

텅 빈 동공을 하고 죽음의 살기를 뿜어내는 사람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때 입을 다문 채 눈알을 굴리며 바라보던 손대법과 눈이 마주친 천일영은 피식 웃었다.

“손대법, 입 열어.”

“후하, 후하.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숨 쉬는 것도 잊었었나?

손대법과는 익숙한 사이였다.

과거 천마로 있을 때 사혈련과 충돌을 피하고자 여러 번 회의를 거쳤었다.

‘물론 겉으로는 화평을 약속하고 뒤로는 서로 할 짓 다 했지만.’

그때 사혈련의 대표로 온 것이 군사이자 책사인 손대법과 채주란이었다.

“손대법, 이야기는 나중이다. 유화야, 저놈들을 고문해서 정보를 알아내거라.”

“네, 맡겨만 주세요. 전문이니까요. 꺄하하학.”

“잠깐, 나도 같이 가겠네.”

백유화가 살벌한 웃음을 지으며 비천운에게 다가갈 때.

도철용이 앞을 가로막았다.

“거지 영감탱이는 왜 같이 가려고 하는 거야? 같은 무림맹이라고 편들어 주려고?”

“아니……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 정말로 저들이 무림맹에서 보낸 자들인지, 그리고 어째서 저렇게 강한 것인지 알아야겠다.”

백유화는 천일영을 바라보았다.

허락을 받으려는 듯이.

“괜찮다. 이제는 개방의 방주도 알아야 할 때가 됐지.”

“너는 뭔가를 알고 있는 것이냐.”

“조금 엮인 일이 있다 보니 우연히 알게 된 것이 조금 있다.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지.”

“알았다. 꼭 이야기해 다오.”

도철용은 천일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먼저 구해 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부터 하지. 큰 신세를 졌다.”

“별거 아닌 일이다. 마음에 담아 두지 말아라.”

“허허……. 이게 별거 아닌 일이라니.”

도철용은 고개를 들고 눈앞의 사람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지금은 그저 인상 좋은 미공자로 보이지만, 방금 본 신위는 도대체…….’

방금 저 강한 놈들을 이십이나 도륙했는데 옷자락에는 피 한 방울 튄 것이 없다.

‘정체가 무엇일까.’

알고 싶다.

하지만 도철용은 몸을 돌려 백유화의 뒤를 따랐다.

바닥을 기는 놈들의 목숨은 이제 길어야 한 시진일까.

그 안에 놈들에게서 알아내야 할 것이 더욱 중요했다.

* * *

천일영이 손대법과 서하린을 데리고 금채홍이 있는 곳으로 갔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천일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천량도사가 다 터진 양팔을 하고서도 금채홍이 걱정되어 이미 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인지 둘이 제법 친해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금채홍과 눈이 마주쳤다.

“공자님…….”

금채홍이 기어서 들어가는 목소리를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인상을 쓰고 있는 것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천일영은 얼굴의 근육을 풀었다.

“너 때문에 화난 거 아니다.”

“그래도 제가…… 잘못했어요.”

“벌은 나중이다. 일단 치료부터 하자.”

“네…….”

천일영이 금채홍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진기를 넣는 순간.

얼굴이 조금 전보다 더 심하게 구겨졌다.

‘죽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군.’

갈비뼈는 모두 부러져 폐부에 박히고, 장기가 제자리에 있지 않고 뒤틀려 있었다.

‘게다가 팔뼈가 부러져 튀어나왔다니, 이 몸을 하고도 미안하다는 소리부터 나오는 것이냐.’

전에 금채홍의 몸을 손보았을 때 삼백 년 치의 진기가 담긴 실을 넣어 줬었다.

‘그 정도 진기의 실이 소용도 없을 정도인가.’

뭔가 알 수 없는 어두운 감정이 온몸을 감쌌다.

만약 금채홍이 죽었다면 자신은 어찌했을까.

미칠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무림을 박살 냈을지도 모른다.

슈우우우우욱.

거대한 양의 진기를 금채홍의 몸에 밀어 넣었다.

그런데 아마도 자신의 몸을 감싸는 어두운 감정에 마음이 휘둘려 생각보다 더 많은 양의 진기를 넣은 듯했다.

“허억!”

“……!”

급히 진기의 양을 줄였다.

‘실수다. 내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어쩌자는 것이냐.’

심장이 아프고 마음이 갈라진다.

천일영은 입술을 꾹 다물고 금채홍을 치료했다.

“어떠하냐.”

“다 나았어요. 하나도 안 아파요. 사실은 조금 전까지 죽고 싶을 정도로 아팠거든요.”

“그렇다면 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보아라.”

금채홍은 잠시 뜸을 들이듯 입술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내 있었던 모든 일을 전부 토해 내듯 이야기했다.

문목화, 영약 밭, 그리고 신체의 변화.

천량도사와 개방의 방주, 그리고 개싸움을 시작하게 된 연유까지.

한동안 이야기를 듣던 천일영이 고개를 돌려 곁에 있던 천량도사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채홍이가 신세를 진 모양이군.”

“대신 공자가 우리를 또 돕지 않았나. 신기한 인연이라 생각하던 중이라네.”

신기한 인연은 개뿔.

비틀린 입술에서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나왔다.

“제갈현에 이어서 천량도사와 도철용인가.”

“뭐라? 제갈현이 어디에 있는지 안단 말인가!”

“내가 거뒀다. 남궁천이 제갈현을 죽이려 했을 때.”

“제갈현을 죽이려 했다고? 우리에게는 실종이라 하였는데.”

“나중에 한꺼번에 몰아서 이야기하지.”

천일영은 아직도 몸에서 진기가 휘몰아쳐 어지러움을 느끼고 있는 금채홍을 안아 들었다.

그러기를 잠시.

천일영은 금채홍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너, 냄새 난다.”

“꺄악!”

“얼마나 안 씻은 거냐.”

“어버버버. 내려 주세요. 제발 부탁드려요.”

바둥거리는 금채홍을 천일영은 더욱 강하게 안았다.

“그건 안 될 말이다. 또 도망갈지 모르니까 안고 있을 거다.”

“흑흑, 냄새 많이 나요?”

“상관없는 일이다. 냄새가 나도, 무슨 일이 있어도 이제는 곁에서 떨어지지 마라.”

“네…….”

금채홍이 벌게진 얼굴로 숨을 몰아쉴 때.

서하린이 금채홍에게 손을 내밀었다.

“친구.”

“네? 친구요?”

“같은 부류의 동지라고도 할 수 있지.”

금채홍은 무슨 말인가 하여 큰 눈을 들어 올리고 눈알을 굴렸다.

순간.

“꺄악! 더러운 거로 친구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늦었어, 너는 이미 발 냄새 동지야.”

“아아악, 안 돼!”

금채홍은 양손으로 빨개진 얼굴을 가린 채 엉엉 울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