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180화 (181/270)

180화

하필이면 근처에 있었던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일 것이었다.

천마신교에서 급히 날아온 전서구를 받아 들고.

천마신교에서 몰래 숨겨 놓은 지회의 무인 이백을 데리고 곤륜산맥을 오르는 길이다.

천마신교의 무인들을 이끄는 지휘관을 해야 할 정도로 낮은 지위는 아니지만.

차경철은 어슬렁거리는 듯한 나른한 발걸음으로 산자락을 바라봤다.

‘이 정도로 강한 무인이 이백이나 지회에 나와 있다는 게 처음엔 놀라웠지.’

왜 그런가 했더니 무인들을 풀어 고작 영약이나 찾고 있었다.

‘이따위 것이 제일 시급한 일인가.’

천마가 사라지고 나니 아주 제멋대로 돌아간다.

‘극히 일부만 아는 사실이지만 내 위치라면 모르고 싶어도 알게 되어 버리지.’

보고 싶지 않아도 자꾸 보이는 것은, 불안함을 머금은 미래의 일까지임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천마신교는 지금 무너지고 있다. 조금씩이지만. 도대체 천마님은 다 버리고 어딜 가신 것인가.’

하다못해 따라오라 했으면 따라갔을 텐데.

천마가 사라진 이후.

차경철은 손에서 일을 떼고 한량처럼 돌아다니며 여색과 술에 빠져 지냈다.

마왕 영감탱이들은 뒷구멍에서 뭔가 속닥거리며 일을 진행하고 있고.

또한 온통 영약을 찾아 미쳐 돌아다니니.

“칵, 퉤! 아주 개판이다.”

조금 전 새로 날아든 전서구를 보며 생각했었다.

‘하오문에서 사 온 정보라 했나? 보란 듯이 영약이 있는 위치까지 딱 짚어 줄 정도로 수상한 정보를 어떻게 믿어? 게다가 무림맹과 사혈련이 먼저 주둔하고 있다고?’

차경철은 곤륜산맥의 중턱에 서서 입을 열었다.

“전진 후 대기다.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보고 온다.”

“수하들이 있습니다. 직접 하실 일은 아니십니다.”

“가서 상황을 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철수할 거니까 조용히 해라.”

“네? 명이 내려왔는데 철수라니요?”

큰 소리로 부관이 되묻는다.

무공은 강할지 몰라도 눈치는 더럽게 없는 놈.

‘아예 뒤에서 다 듣게 큰 소리로 떠들지?’

속이 터진다.

“적이 만일 천 명 단위로 있고, 지리적인 이점까지 차지하고 있으면 어쩔 것이냐.”

“당연히 싸워야죠?”

“그러다가 전멸해도?”

“싸워야죠.”

벽에 대고 말하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귀찮다.

더럽게 귀찮다.

“아무튼 협곡이 시작되는 지점까지 수하들을 이끌고 가서 대기해라. 명령이다.”

“알겠습니다.”

차경철은 뚱해 있는 얼굴의 부관을 뒤로하고 몸을 날렸다.

타다다닷.

협곡의 시작 지점의 옆으로 높은 산줄기와 거친 지형이 발아래로 스치듯 지나갔다.

타닷.

후우웅!

산자락의 높은 지형을 발로 박차고 몸을 날렸다.

발아래에 커다랗게 펼쳐진 평야와 지형들이 보인다.

‘여기까지인가.’

평야의 양옆은 아래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

협곡이 끝나는 지점부터도 절벽이지만 반대로 위로 솟아 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볼 수 있다.’

기운을 죽인 채 경공으로 올라왔으니, 여간한 고수가 있지 않은 한, 자신의 정체가 들킬 일은 없을 터.

차경철이 눈을 빛내며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저 사람은 뭐지?’

생각보다 많은 무인이 있는 것에 꽤 긴장했지만, 차경철의 눈에는 이내 오직 한 사람만 보였다.

‘혼자만 두건을 쓰고 있어? 그런 것치고는 무공은 거의 익히지 않은 사람 같은데?’

혹시 화상 자국이 있나?

아니면 엄청나게 못생겼다거나.

별것 아닌 듯 보이는 두건 쓴 남자의 신형에 유독 신경이 쓰인다.

‘이상하게 눈에 익은 모습인데.’

가슴속에 뭔가가 와닿았다.

뭐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기이한 느낌이 속에서 꿈틀댄다.

‘검 한번 휘두르지 않고 돌아가면 마왕 영감탱이들이 난리 칠 테니, 적당히 싸우는 ‘척’하고 두건 쓴 수상한 놈의 정체를 흘리면 대충 넘어가겠지.’

놈의 정체를 파악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결과가 딱히 대단한 인물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그냥 핑계를 만드는 것뿐이니까.

‘협곡의 입구에는 곤륜파. 중간에는 기마대. 끝에는 사혈련과 무림맹인가. 수도 불리, 지형도 불리하군. 철수가 답이지만 초입까지는 들어가 줘야겠지.’

모든 계획이 머리에서 정리가 되었다.

이제 그럴듯한 연기만 하면 되지만.

차경철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이 미친놈의 부관이 왜 협곡 입구에서 여기로 들어오는 것이지?’

충직하지만 무식하기만 한 부관이 끝내 명령을 듣지 않고 몰려 들어온다.

‘아니! 아니다. 뒤에 새로운 세력이 등장했다.’

기감이 어지러울 정도로 수많은 사람에 의해 엉켜 든다.

느닷없이 웬 이상한 놈들 삼백 명쯤이 천마신교의 무인들을 밀어 버리고 있었다.

‘젠장, 대충 일 처리하고 기루에 처박히려고 했는데!’

차경철이 급히 신형을 날렸다.

그런데.

기괴한 것이 눈에 보인다.

‘왜지? 갑자기 협곡의 입구를 막고 있던 곤륜파가 길을 열어?’

함정인가.

차경철은 잠시 지켜보다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아니, 함정보다 더 악질적인 짓이다.’

정교했다.

지나칠 정도로.

중원에 과연 누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제갈현?

아니다.

채주란? 손대법? 천마신교의 마염지?

절대 아니다.

시간을 재고, 그 안에 적절하게 안심을 시킨 후 뒤를 때린다.

한번 걸리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방법.

너무도 눈에 익은 책략이다.

‘설마?’

차경철의 눈이 황망하게 두건을 쓴 사람을 뒤쫓았다.

“이런 곳에 있었을 줄이야!”

어째서 눈치채지 못했을까.

천마신교 파천마왕의 조카인 그가.

한때 거만하고 오만하여 귀주성 전투에서 천일영을 죽이게 할 뻔했고.

수많은 방계 혈족과 천마신교의 무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개망나니 차경철은 다리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 * *

문호창은 갑자기 곤륜파가 길을 열자, 빠르게 고함을 질렀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길이 열린 지금이 기회였으니까.

“모두 전진. 뒤도 돌아보지 말고 일점돌파다!”

“네!”

천운이 따른 것 같다.

아니면 날린 전서구에 누군가가 응답을 해 준 것 같기도 하다.

협곡의 절벽이 워낙에 구부러져서 기감이 자꾸만 막히기에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누군가가 엉켜서 싸우는 것만은 알겠군.’

두두두두두두.

문호창은 가장 마지막까지 적을 경계하다가 이내 그 자신도 빠르게 협곡을 향해서 떠났다.

그때.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금채홍이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하며 천일영에게 말했다.

“지금일까요?”

“조금만 더 기다리거라.”

“알겠습니다.”

문호창의 말이 협곡의 어두운 그림자 사이로 사라지고.

눈 한번 감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천일영의 입이 벌어졌다.

“딱 좋을 때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금채홍의 손가락이 튕기듯 여러 번 까딱거렸다.

쩌저저적.

폭포 아래에 고인 물을 담아 놓은 토벽이 비명을 지르듯 갈라지는 소리를 냈다.

어제 목욕을 한 곳이었다.

‘하지만 저것은 속임수지.’

천량도사와 도철용. 그리고 금채홍은 토벽으로 물은 모아 놓은 그 뒤로.

언뜻 분리되어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작은 저수지라 할만한 크기의 거대한 물웅덩이가 있었다.

‘땅을 파서 커다란 물웅덩이를 만들어 폭포와 연결했다.’

며칠 동안 내린 비와 폭포에서 흐른 물들이 모여 엄청난 양의 물이 고여 있었고.

‘저 웅덩이를 보이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작은 토벽을 세워 가렸지. 거기에서 목욕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때 금채홍이 뭔가를 잡아 끌어내듯 손을 끌어당기자.

쿠우우우우웅.

연결된 강선이 당겨지고.

토벽이 터지며, 웅덩이를 가로막는 또 하나의 흙으로 만든 경계선이 부서져 나갔다.

쏴아아아아!

고여 있던 거대한 물줄기는 평야 옆에 파 놓은 수로를 따라 넓은 곳으로 이동하더니, 이내 문호창이 서 있던 평지를 거쳐 곤륜파가 길을 막고 있던 협곡의 입구로 거칠게 흘러 들어갔다.

‘깊이 3장에 이를 정도로 땅을 팠으니 물살이 생각보다도 더 거치네. 이걸로 정말로 다행이야.’

금채홍은 자신의 책략이 무사히 성공한 것에 한숨을 내쉬었다.

‘목욕한 물로 무림 삼 대 군사에게 말 뼈를 우려 먹였다는 증거가 사라졌어. 이걸로 영원한 비밀이 완성되었네.’

목욕을 한 곳은 다름 아닌 분리가 되어 목욕한 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오늘 좋은 생각을 떠올리지 않으면 내일 당장 죽는다는 것이 이런 뜻이구나.’

천일영이 들으면 기겁을 하고 아니라면서 가슴을 칠 만한 생각을 태연히 하고 있던 금채홍이 터진 토벽을 바라보았다.

담긴 물 양이 상당했기에.

‘원래는 수세에 몰리면 사혈련을 쓸어 버릴 때 쓸까도 했지만.’

개 싸움판으로 끌고 가기 위해 남겨 놓았었다.

곁에 서 있는 손대법의 눈치를 슬쩍 봤다.

목욕물로 우린 말 뼛국을 먹은 이후 얼굴이 핼쑥해져 있고.

이후 계속 토한 것도 같지만.

‘죽지 않은 게 어디야. 사혈련은 군사도 몸이 튼튼한가 보네.’

씻지 못하고 움직이는 동안 몸에서 흐른 땀과 땟국물의 위력을 새삼 느낀 금채홍은 다시 한번 손대법을 보며 계면쩍은 웃음을 배시시 지었다.

* * *

쿠콰콰콰콰콰!

거대한 절벽이 양옆으로 솟아 있는 협곡의 좁은 길목으로 들어선 물.

구불구불 꺾인 길 때문에 이리저리 부딪히는 동안 소용돌이가 생긴 거친 물살이 말들의 뒤를 덮쳤다.

히이이잉!

쿠당탕.

산의 중턱이라고 하지만, 내리막길에 속도가 더해진 물은 기마대를 전부 삼켰다.

“아아악!”

“사람 살려!”

“말은 둘째다. 뭔가 잡을 것을!”

비명이 울렸다.

콰직!

뚜둑.

퍼걱!

하지만 더 심한 피해는 물살에 떠밀려 나가다 협곡의 바위에 부딪혀 머리가 깨지고 팔이 부러지며 다리가 꺾이는 것이었다.

“손으로 머리를 가려라.”

“으아아아악.”

명령을 내리지만, 문호창도 그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이미 양팔이 부러졌으니까.

‘망할 놈들. 이것을 위해서 길을 열어 준 것인가.’

화가 났지만.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협곡의 끝자락이 멀지 않았음에 잠시 웃음도 나왔다.

‘도망가는 자가 이기는 거다. 이 승부는 우리의 승리다.’

비록 많은 수의 사람이 죽었지만.

그래도 탈출할 수 있었다.

언제 해가 떴는지 따스한 햇볕이 협곡의 출구 쪽으로 길로 인도하듯 내리비친다.

순간.

햇볕에 밝아진 협곡의 끝자락.

‘잠깐! 저게 뭐지?’

문호창은 협곡의 출구를 보며 아연실색했다.

벼랑처럼 깎아지른 돌이 높이 솟아 협곡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그 끝에 저런 것이 있었던가!’

나무를 기대어 물살을 거스르게 되어 있는 장치.

교묘하게 들어올 때는 안 보이도록 큰 돌 뒤로 숨겨 두었다.

‘나무를 두꺼운 판자처럼 만들어 물살이 닿으면 돌을 밀어내는 것인가?’

이미 두꺼운 나무판자가 거친 물살에 미친 듯 떤다.

그 이후에는?

‘그대로 협곡의 끝자락이 물의 힘으로…….’

물속에 있는데 땀이 흐른 것 같다.

쩌저저저적.

쿠우우우우우우웅.

금채홍이 만들어 놓은 장치 때문에 협곡 입구 위로 솟아오른 높이 1리에 달하는 거대한 돌산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궁.

“으아아아아악!”

“사람 살려! 커헉.”

“이런 미친 짓을!”

협곡을 빠져나가자 비명이 터진다.

물의 힘 때문에 협곡의 안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밖을 향해 돌들이 내리꽂힌다.

무려 수백 관.

수천 관.

그리고 수만 관에 달하는 돌덩이들이.

그때 문호창도 보았다.

협곡을 물에 떠밀려 튕기듯 나오자 따스한 햇볕이 눈을 비추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그림자가 지는 것을.

“이런 개 같은…….”

콰직!

바위 밑으로 피가 튀었다.

그리고 물에 쓸려나갔다.

물과 바위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풀 한 포기까지 쓸려나가며.

쏴아아아아.

무림맹의 기마대가 전멸했다.

그 시신조차 깔아 죽인 바위가 비석이 된 듯.

물이 전부 빠져나가면 비석과도 같은 바위 밑에서 꽃처럼 붉은 피만이 붉은 꽃을 피우듯 퍼질 것이었다.

* * *

“후하. 후하.”

물속에서 고개를 든 천마신교의 부관이 거친 숨을 토했다.

명령대로 협곡의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에 의해서 공격받았다. 기운을 숨기는 정도로 보아하니 고수들인데.’

그런데 이후에 갑자기 물이 쏟아져 나오더니 한참을 산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부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친 사람! 죽은 사람이 있는지 즉시 확인하라.”

“네.”

명령을 받은 부하의 뒤로.

자신들을 공격했던 자들이 뒤엉켜 고개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잠시 휴전이오!”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오.”

쿨럭. 쿨럭.

부관은 한 움큼의 물을 토했다.

무공의 경지가 제법 높은 자신도 급작스럽게 튀어나온 거친 물살에 어쩌지를 못했는데.

‘부하들은 괜찮을지.’

바닥과 돌.

나무에 부딪히며 다친 몸이 아프지만, 몸을 일으켰다.

“다친 자가 다섯. 죽은 자 없습니다.”

휴전한 적 사이에서도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친 자가 열둘. 죽은 자 없습니다.”

기적일까.

‘그럴 리가 없지. 정확하게 잰 시간 안에 터트린 것이다.’

하나의 적만 온전히 죽였다.

‘말 탄 놈들만.’

그게 우연이겠는가.

부관은 적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천마신교의 강환수라고 합니다.”

“나는 소속은 밝힐 수 없지만, 민무영이라 하오.”

둘의 고개가 무너진 협곡의 입구로 향했다.

“어쩌시겠습니까.”

“아무래도 길을 만들어야 할 텐데.”

“당분간은 협력이군요.”

“마음에는 안 들지만, 임무를 완수하려면 저 돌무더기를 치워 길을 내야 하는데…….”

그때 차경철이 허공에서 날 듯 땅으로 내려앉았다.

“괜찮으냐?”

“다 끝나고 이제야 나타나십니다.”

“미안하다.”

민무영이 갑자기 나타난 차경철을 보며 긴장을 얼굴로 떠올렸다.

‘이런 초거물이 등장하다니. 휴전이 옳았군. 천마신교의 핵심 인물이자 중원 오십 대 고수 차경철이라니!’

하마터면 큰 피를 볼 뻔했다.

‘상부의 명이라 일단 영약 밭을 노리는 사람들을 처단하라고 들었지만.’

차경철 정도의 거물이 끼어 있다면 목이 두 개, 아니 다섯 개라도 부족하다.

싸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제가 앞장서지요.”

상황 판단이 끝난 민무영이 먼저 앞장섰다.

차경철도 부하들을 이끌고 옮길 수 있는 돌에 한정하여 힘을 쓰며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 * *

“나갈 길을 안 만들어도 된다고요?”

“우리 말고 알아서 만들어 줄 놈들이 있지 않으냐.”

누가?

모두 눈만 끔뻑거린다.

“아마 세 시진 정도겠지. 그동안 밥을 먹고 푹 쉬어라.”

“공자님의 말씀이라면요.”

손대법은 자리에 앉아서 구운 말고기를 입에 넣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을 수가.

‘이유는 모르지만, 갑자기 말 뼈 우린 물은 이제 됐다고 하며 고기를 주니 다행이군.’

조금 질기지만 기름기 적은 고기를 넘기니 세상 행복해야 하는데.

손대법은 한숨을 지었다.

‘이번 일은 완전히 실패다. 여기저기 휘둘리기만 했지. 그래도 적과 처음부터 손을 안 잡은 것은 잘 생각한 거다. 결과는 안 좋았지만, 이번 일에 한정된 것이지 다음에도 잘된다는 보장이 없는 최악의 짓임에는 분명하니까.’

배불리 먹고 손대법은 억지로 눈을 붙였다.

돌아가는 길이 멀 테니 체력을 비축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 시진 후.

손대법은 누군가가 흔들어 깨워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키고 기지개를 켜는데.

눈앞에 이상한 것이 보인다.

‘분명 천마신교하고…… 누구? 기운으로 봐서는 설마 금군? 아니 황실의 무인……. 저놈들이 길을 만든 것인가.’

희한했다.

서로 제법 사이가 좋아 보였으니까.

관무불가침이라 싸움을 하지 않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저렇게 화기애애하게 웃을 리가?’

서로 건들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웃음을 띄우는 것을 모르는 손대법은 뭔가 울컥했다.

‘분명 저놈들 싸웠다.’

분명 천마도 아까 입구에서 싸움이 벌어졌으니 시간을 봐서 물을 터트려 저들이 죽지 않게 한다 했었다.

근데 왜 웃어?

손대법은 적과 손을 잡는 것이.

자신이 군사로서 판단했던 것들이, 혹여 잘못된 판단들이었나 싶어 머리를 싸매고 말고기를 입에 물었다.

끝없는.

답이 없는 의문이 들었다.

무협 이야기를 버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의 고민이 손대법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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