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184화 (185/270)

184화

삼 일 후 이른 아침.

오늘도 천일영은 남궁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예서란의 충고대로 방법은 결정을 지었지만.

‘세부적인 것까지 함부로 할 수는 없으니.’

제법 잔학한 방법이 될 터다.

그러니 피를 흘리는 자가 적도록 해야 한다.

떠오른 해를 바라보며 머리를 잠시 식히고.

“이제 시작인가.”

천일영은 요즘 아침 객잔에서 일어나는 일정한 흐름을 떠올렸다.

첫 번째 흐름.

끼익.

건청이 단옥과 객잔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요즘은 아예 밖에 집을 하나 얻어 같이 사는 터라.

단옥은 천일영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조금 쑥스러운 듯 빨개진 얼굴로 웃었다.

두 번째 흐름.

월영과 금채홍, 그리고 예서란이 객잔에 들어선다.

월영과 금채홍은 객잔의 개점을 돕고.

예서란은 식자재의 발주와 매출, 그리고 이윤을 계산한다.

세 번째 흐름.

천일영은 매일같이 화려한 꽃을 들고 와서 천이영 앞에 무릎을 꿇는 차경철을 보자 한숨이 나왔다.

“사랑합니다. 저와 혼례를!”

“오라버니, 이분 아직도 유화 님에게 안 보이셨나요? 날이 갈수록 상태가 안 좋아지네요.”

엄청나게 높은 사람이다.

이상해 보이지만 천마신교 총관이란다.

‘하지만 이 말을 하면 이영이가 나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어떻게 이런 사람이 총관이냐면서. 아니? 그러고 보니 내가 저놈을 총관 자리에 앉히기는 했는데. 이 말을 하면 나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일 테니 입 다물어야겠군.’

이 생각이 끝날 때쯤엔 천이영이 차경철을 벌레보다 아래로 보고는 주방으로 들어간다.

대충 구더기를 보는 눈빛?

차일 것은 예상했지만.

어째서인지 이 흐름은 이대로 고정이 될 것 같다.

네 번째 흐름.

백유화와 타진표가 화영, 애영을 데리고 아침을 먹으러 온다.

어릴 때 부모가 끔찍하게 살해당한 백유화.

사랑하고 예뻐했던 아내와 딸을 허무하게 잃은 타진표.

서로가 아픈 마음을 품고 부녀가 되어 오순도순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편해진다.

‘차경철을 보다 이 장면을 보니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군.’

뭐가 저렇게 즐거울까.

천일영은 이야기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건청이 관리하는 산적들이 다른 나쁜 놈들을 때려잡아서 이 근처에는 이제 힘들겠네요.”

“그럼 내가 애영이와 화영이 대신 조금 멀리 나가도록 하지. 대충 나쁜 놈들 몇을 잡아 오면 약재의 시험이 끝나겠느냐.”

“아마도 열 명쯤 아닐까요. 일단 껍데기를 벗겨 놓은 놈이 둘 있지만, 사지를 잘라 새로운 약재를 넣고 어찌 반응하는지 알아볼 인간이 추가로 필요하네요.”

“허허, 멀리 나가면 위험하다. 유화야, 내가 같이 가마.”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나가는 김에 공동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산적 본거지나 몇 개 부술까요. 놈들도 두고두고 산 재료로 쓰면 될 것 같은데.”

“알았다. 주문한 새 창도 시험해 볼 겸 놀러 나가자.”

“네.”

사람을 죽이는 게 놀러 나가는 거라니.

‘아침을 먹는 자리에서 저렇게 피 튀기는 이야기를 행복한 얼굴로 화기애애하게 말하는 게…….’

괜히 들었다.

천일영이 고개를 가로젓는 사이에.

다섯 번째 흐름이 시작되었다.

“야! 공자 놈아! 승부다!”

“나타났나, 요소령.”

휘이익!

콰직!

오늘도 단 한 수만에 끝났다.

천일영은 항주로 돌아오고 사흘 동안 아침마다 요소령의 뒷덜미를 잡아서.

“잘 가라.”

객잔의 앞에 휙 던진다.

요소령은 오늘도 한 수만에 제압당한 것이 억울할 터.

밖에서 일각쯤 지난 후.

창피함이 조금 누그러들면 요소령은 언제나처럼 객잔으로 슬그머니 들어와 앉고는 주문을 한다.

“동파육이랑 소면.”

“아직 개점하지 않았다.”

“공자 권한으로 동파육이랑 소면.”

“됐다. 그냥 내가 먹는 아침으로 같이 먹자.”

“감사.”

요소령 앞으로 내준 음식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하는 사람이 왜 이리 밖에 나와 있는 것이냐.”

“단전이 부서지지 않았으니 함부로 말릴 사람이 없는지 밖에 나가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감옥쯤 쉽게 부수고 나오니까 아예 잠그지도 않는다는 것인가.”

“응.”

고분고분한 요소령이 천일영 앞에 있는 차를 자기 앞으로 당기고 슬쩍 쳐다본다.

“마셔라.”

“감사.”

호로록.

요소령이 조금 처량하게 차를 마신다.

“밖에 마음대로 나올 수 있는데 도망갈 생각은 안 하는 것이냐.”

“도망을 가기는 쉬운데 평생 쫓기는 인생은 싫구나.”

“장강으로 돌아가면 될 터인데.”

“음……. 아마 지금 돌아가도 소용없겠지. 황실에서는 이미 내 자리에 무슨 짓을 했을 것이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장강수로채의 이인자가 채주의 자리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도 없으니까.”

“이미 잡혔다는 정보를 들었을 테니 이인자가 요소령의 자리를 차지했다?”

“응, 욕심 많은 놈이다. 빠르게 움직이고도 남았을 테지.”

차를 다 마신 요소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래 자리를 비우면 시끄러우니까 감옥으로 돌아간다. 내일 또 보자.”

“밥 정도는 주지.”

“감사.”

요소령이 감옥으로 돌아가면.

그때부터 도철용과 천량도사가 객잔으로 들어서며 여섯 번째 흐름이 시작된다.

“후욱, 후욱. 오늘도 땀을 흘리니 무척이나 기분 좋습니다.”

“허허, 이리도 좋은 연무장을 만들어 놓았다니.”

천량도사와 도철용은 새벽 해가 뜨기 전부터 비무와 검무를 반복하다 천일영에게 시끄럽다는 잔소리를 한바탕 들은 이후.

조금 늦게 일어나 한동안 무공을 가다듬고 밥을 먹으러 온다.

그리고.

“공자님! 저랑 혼례 올려요!”

서하린이 나타나서 혼례를 올리자고 한바탕 떠들며 일곱 번째 흐름이 시작되고.

“언니, 삼촌은 나랑 혼례를 올리기로 했어요. 손가락 걸고 약속도 한걸요?”

혜령이 나타나서 여덟 번째 흐름을 이어 간다.

“하린이는 혜령부터 이기고 오거라. 나는 혜령이랑 혼례를 올리기로 했으니.”

“크윽, 그건 너무 높은 벽이잖아요.”

부들부들.

매일 아침 억울함을 드러내며 온몸을 떨어 댄다.

“오늘도 승자는 혜령이군.”

“에헤헤. 오늘도 이겼네요.”

기분 좋아진 혜령이 우울한 서하린과 밥을 먹는다.

마지막 수저가 혜령의 입에서 나올 때쯤에는.

“아빠랑 학당에 갈까?”

“네.”

차경철이 혜령을 안아 들고 예서란의 손을 잡는다.

그때쯤이면 귀신같이 소리를 알아듣고 천이영이 주방에서 나와 소리를 지르고.

“누가 혜령이의 아빠라는 거예요!”

“앞으로는 그렇게 되니까 미리…….”

“절대 안 돼요! 애한테 이상한 지식 심지 마세요!”

천이영이 차경철을 노려보고 주방으로 들어가며 아홉 번째로 흐름이 완성된다.

“킥킥.”

“오늘도 한 소리 들었네.”

혜령과 차경철이 서로 입을 가리고 키득거리며 학당으로 나설 때면.

천일영의 얼굴에는 언제나 웃음이 피어 있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군.”

오랜 시간 꿈꿔 왔던 모습이다.

‘하지만 잠시 미뤄야 하나.’

천일영이 웃음을 지우고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천일영의 머릿속에서 남궁천을 상대할 모든 계략이 완성되었다.

* * *

그날 오후.

천량도사와 도철용, 그리고 백유화와 타진표. 서하린과 금채홍, 월영과 건청, 차경철까지 모인 자리에서.

먼저 천일영이 차경철을 통해 호남성과 동정호에서 앞으로 십 개월 후에 벌어질 일에 대해 알리자.

천량도사는 차경철의 말에 미묘한 목소리로 답했다.

“흐음.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안 믿을 수도 없는 일이고.”

“믿기 싫으면 믿지 마시지요.”

“흐음?”

과거 어지간히 원수 사이였던 차경철과 천량도사, 그리고 도철용은 일단 이야기할 때 기본적으로 이마에 혈관을 부풀린 채였다.

‘뭐, 서로 다리를 걸고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으니까.’

처음부터 친하게 지내면 그것도 조금 이상한 일 일터다.

“믿으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허나 적어도 대응하도록 해야 하지 않나 싶은데, 그것도 못 하겠으면 정보라도 찾든지.”

“허허, 기녀가 한 이야기에 개방이든 하오문이든 나서야 한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요.”

“그 웃기는 일에 천마님께서는 안과 혜, 그리고 하오문에 정보를 찾으라고 이미 전서구를 보냈습니다.”

“커흠…….”

천량도사가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총관을 오래 했다 보니 차경철이 이런 일은 잘한다.

그리고 잘하는 김에.

“서후량이 무림맹을 드나들고 있었는데 그것도 모르는 분께서 감히 천마님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일에 다리를 걸다니요.”

“그런 의미는 아닐세. 다만 믿기 힘든 기녀의 이야기를 어찌 그리 쉽게 받아들이냐는 말이지.”

“세상의 모든 정보가 기루에 모입니다. 술에 취한 자들이 떠들어 대기 때문이죠. 하오문이 알아내는 정보의 사 할 정도가 기루에서 나오는 것을 모르시는 건 아니겠죠?”

“커험!”

확실히 말 몇 마디로 입을 다물게 하다니 대단하다.

“서후량은 남궁천이 총애하는 사람입니다. 저도 지천번회를 알게 되었는데, 하물며 남궁천이 총애하는 서후량이 지천번회에 대해서 모를 리는 없을 터.”

“그럴 수도 있지만…….”

천량도사가 꼬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지천번회가 엮인 일인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십 개월이나 있는데 그냥 무시하느니, 아무 일이 안 생긴다고 하더라도 대처를 하는 게 뭐가 잘못된 것입니까. 그러니 뒤통수 맞고! 배신당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 하나 없이 떠돌게 되는 것 아닙니까!”

“이런 망할 놈이!”

아니 이건 너무 나갔는데.

‘차경철이 쌓인 게 많았나 보군.’

천일영이 중재하려는 순간.

“그 말이 맞다. 천마신교 총관의 말 중에서 틀린 건 하나도 없군.”

“방주!”

도철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경철을 마주 봤다.

“칼을 들고 뛰어가는 놈을 보고 ‘급하게 고기를 자르러 가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책 중에서도 하책. 식도(食刀)라 할지라도 사람에게 들이밀지 않는가 살펴보는 게 중요하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하군요.”

“그동안 내가 생각을 잘못해서 이 지경까지 왔다. 그대의 말이 옳다.”

도철용의 말에 천량도사가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이 없었기에.

천량도사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총관의 말에 동의하겠네. 그런데 이전에 남궁천을 어찌할 것인가. 우리가 뒤를 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가만히 있지는 않을걸세.”

그때.

차경철 대신 천일영의 입이 열렸다.

“남궁천은 일단 가만히 내버려 둔다.”

“뭐라고?”

뜻밖의 대답이었기에 방 안에 있는 사람의 시선이 천일영에게 모두 쏠렸다.

“남궁천을 치는 것이 아니었나?”

“치지 않는다.”

“어째서?”

답답하다는 듯 천량도사가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천일영은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이내 찻잔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칠 것인가? 무림맹으로 쳐들어가서? 가능하지만 커다란 전쟁으로 번지게 되겠지. 나는 천마의 자리에 있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전쟁에 이용할 자가 얼마나 많겠는가. 또한 무림맹에 쳐들어가는 순간 전면전을 의미한다.”

“크흠.”

“남궁천을 밖으로 나오게 유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쉽게 나올 리도 없을뿐더러 수많은 호위를 거느린다. 하나의 문파 전체가 호위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설사 밖으로 나온 남궁천을 많은 무고한 목숨을 희생하여 친다 해도 역시 전쟁으로 번질 터. 무림 맹주의 자리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암살은 어떠한가.”

천량도사가 뜻밖에도 암살이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그만큼 다급하다는 것이겠지.’

천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누가 할 것인가. 수천의 무인이 깔린 무림맹에 몰래 들어가서 맹주의 목을 가져올 자가 무림, 아니 중원에 몇이나 되겠는가. 오직 나 하나뿐일 것이다. 잘하면 사혈련의 천주도 포함되겠지. 좋은 방법인데도 무림 삼대 세력이 절대 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말은…….”

“암살이 자행되는 순간 전쟁이라는 말이다. 범인이 뻔히 보이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않으냐.”

“답답하구먼.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방법이 있단 말인가!”

천량도사가 가슴을 쿵쿵 내리친다.

그럼에도.

천일영은 대답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할 이야기는 그만큼 잔혹하다.

‘하지만 서란이의 말이 옳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한 목소리로 천일영은 대답했다.

“남궁천은 그대로 둘 수밖에 없음을 이제는 이해하겠지. 대신에!”

“대신에?”

“남궁세가를 멸살한다.”

“……!”

순간.

이 자리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이 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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