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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86화 (187/270)

186화

나른한 듯 기울어지는 몸이 순간 위로 치솟았다.

휘이이익!

천일영의 무극지검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자 남궁세강의 검이 그것을 한 번에 막아 냈다.

카앙!

언뜻 남궁세강이 여유 있게 검을 막은 것처럼 보였지만.

‘분명 나도 공격을 한 것인데 어느새 검로가 막혔다. 고작 놈의 검날을 튕긴 게 전부인가.’

일그러져 주름이 생긴 얼굴 틈 사이에 땀방울이 스며들었다.

타닷.

남궁세강은 경계의 눈빛을 빛내며, 신법 천리호정(千里戶庭)으로 신형을 뒤로 물렀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강한 놈이었기에.

“혼자 몸으로 남궁세가에 쳐들어올 만큼의 실력은 되는 모양이군.”

“겨우 남궁세가 하나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이 필요할 리 없지 않으냐.”

“어리석을 정도의 자만이군.”

스윽.

남궁세강이 고혼일검(孤魂一劍)의 자세를 취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남궁세가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분가까지 하면 남궁의 무인은 사백에 육박한다. 그것도 지회에 나간 자와 돈으로 고용된 무인들을 제외한 순수 남궁의 핏줄만으로도 그만한 숫자다.”

“분가는 이미 세상에서 지워 버렸다.”

“하하하. 거짓말도 적당히 해라. 분가가 없어졌으면 내가 모를 리가 있겠느냐.”

“…….”

나른한 표정 그대로인 채 딱히 대답하지 않는 적의 모습.

시큰둥하기도 하고 무심해 보이기까지 하는 얼굴이 검날에 비친다.

다른 적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위화감.

뿌득.

남궁세강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자세를 취해라. 방심하고 있는 적의 목 따위 날려 버려도 복수가 되지 않을 것 같으니.”

“이것이 내 자세다.”

검을 늘어트린 채 여전히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에 남궁세강의 신형이 튀어 나갔다.

“자세를 취하란 말이다! 개 같은 놈아!”

“불필요다.”

휘이잉.

남궁세강의 신형이 날아가듯 천일영에게 뻗어 가는 동시에.

내공이 30갑자로 순식간에 올라갔다.

순간.

‘이 망할 놈이.’

남궁세강의 검날이 천일영에게 닿기 직전.

분명히 보였다.

팔을 내린 채 무형(無形)의 자세를 취하고 있던 놈.

그런데 그것이 순식간에 변했다.

‘검로를 보고 나서 어떤 검술을 쓸 것인지 결정하고, 그때서야 자세를 취하는 것인가.’

믿기지 않았지만.

분명 놈은 남궁세가의 검법인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의 자세를 취했다.

카가가가가강.

검이 공기를 찢으며 공간마저 요동치게 하고.

쿠우우웅웅.

지축을 울리며 내공이 터졌다.

‘크윽, 이 무슨 개 같은!’

남궁세강의 웃음기 사라진 얼굴에 고통과도 같은 일그러짐이 떠올랐다.

30갑자의 내공을 검에 실어 날렸지만, 눈앞에서 일검에 막혀 버렸으니까.

눈동자가 흔들리며 밀리는 검날을 쫓았다.

‘이걸 막는다고? 이 내공으로 밀린다고?’

그때.

적의 검날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후우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눈앞에서 사라진 검날이 어느새 빛을 집어삼키고 죽음을 내뱉으며.

생각지도 못한 검로를 그린 채 자신의 머리로 날아들고 있었다.

보고도 믿지 못할 신위였다.

‘젠장. 막지도, 피하지도 못한다.’

이미 눈앞에 있는 검.

다급하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시간 낭비다.

천리호정(千里戶庭)으로 급히 몸을 빼내려 했지만.

까아아아앙!

남궁세강은 자신의 팔이 순식간에 떠오르며 검날을 튕겨 내는 것을 보자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팔이! 내공과 외공을 넘어선 속도로 움직여서 터져 나간 것인가.’

슈우우욱.

남궁세강의 팔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며 다친 근육이 서서히 아물어 갔다.

흰 연기가 시선을 가리자.

천일영은 다시 무형의 자세로 돌아가며 입을 열었다.

“재미있군.”

“재미? 이 무공의 강함에 무서운 것은 아니고? 상처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았으니 이제 살려 달라고 빌기라도 할 셈인가.”

“흰 연기는 많이 보았다. 내가 말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현황우와 비천운을 상대하면서 상처가 아무는 것은 이제 익숙했다.

급작스럽게 오르는 내공도 처음 봤을 때는 당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여유 있게 상대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아무렇지 않은 마음이다.

그렇지만.

그것과는 별개인 것이 또 있었으니.

“네가 방금 검을 막아 낸 것은 네 의지가 아니었을 터다. 몸이 혼자서 스스로 움직인 것 같은데.”

“…….”

남궁세강은 방금의 일검으로 죽었어야 했다.

그러한데 현황우 때처럼 이상한 반응 속도를 보였다.

‘근육이 터져 나갈 정도로 한계를 넘어선 움직임이었지.’

방금의 움직임은 50갑자도 넘어야 했을 터다.

“남궁세가에는 비밀이 많은 모양이군. 그동안 채기법으로 생각해 왔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구나.”

“채기법? 사혈련이나 쓰는 그런 잡스러운 방법을 감히 남궁세가에서 사용할 것으로 생각했다니!”

쿠궁.

남궁세강의 내공이 40갑자에 이르렀다.

‘현황우의 몸을 봤을 때는 내공이 타들어 가고 있었는데.’

그와 달리 비천운도 그랬지만 남궁세강도 안정된 내공을 유지하고 있다.

남궁세강의 본래 내공은 3갑자.

대단한 내공이지만 40갑자와의 격차는 크다.

혈도에 자리 잡은 기운이 비천운이나 현황우와 비교할 때 훨씬 더 많았다.

스윽.

천일영은 무형의 자세를 그만뒀다.

천마삼검(天魔三劍) 제일식(第一式) 천마현신(天魔現身) 섬(閃).

새로이 자세를 취한 천일영의 입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렀다.

“끝내지.”

“내공 40갑자를 상대로?”

“내공을 내공으로 상대하는 것은 하수나 하는 짓이라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로 하지.”

“무슨 개소리를…….”

쿠웅.

천일영의 몸에서 무엇인가가 흘러나오고.

끔찍한 어둠이 남궁세가의 본문을 뒤덮었다.

새까맣고.

짙다 못해 어둠까지 집어삼킬 듯한 그 무엇인가가.

죽은 자의 시신을 밀어내고 남궁세가를 파먹으며.

남궁세강의 마음속까지 잠식시키고 짓눌렀다.

“꺼헉! 이게 무슨!”

“힘만 믿은 채 무공의 고수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너에게는 아무래도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무리겠지.”

어둠?

마기?

아니었다.

남궁세강의 눈이 떨리고.

이내 오롯이 하나의 답에 도달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압도적인 힘 그 자체다.’

그것이 공포에 질려 어둠으로 보이는 것이다.

“네놈은 도대체!”

휘이이잉!

쏴악. 쏴악. 쏴아아악!

무극지검이 남궁세강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적어도 남궁세강은 그렇게 생각했다.

소리는 나지만 딱히 베이는 느낌은 없었으니까.

“이 무슨 되지도 않는 짓거리냐!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냐!”

“검날이라면 이미 네 몸을 통과하여 지나갔다.”

“뭐라…….”

남궁세강은 더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이게 무슨!’

툭.

바닥에 떨어지는 알 수 없는 그 무엇.

말이 왜 나오지 않는지 그 이유가 행여 바닥에 떨어진 것 때문인가 하는 마음에 바라보니.

‘어째서!’

자신의 턱이 땅바닥을 뒹군다.

그뿐인가.

혀도 그 옆에 떨어져 꿈틀거리고 있다.

미처 하지 못한 말을 마저 하듯이.

‘어느새 잘려 나간…….’

그때.

핏방울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이 남궁세강의 눈에 보였다.

촤촤좌좌좌좌좍!

이제야 바람이 분다.

너무 빠른 검속에 바람이 이제야 따라오며 남궁세강의 몸을 흩날리기 시작했다.

촤아아악!

사지가 수백.

아니, 수천 조각으로 잘려 나가며.

피가 뒤늦게 불어온 바람에 사방으로 퍼지고.

이내 살점이 된 육신의 조각들이 흩날렸다.

‘검이 한 번이 아니라 수천 번을 내 몸을 자르는 동안,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했단 말인가.’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남궁세강의 몸이 분해되어 남궁세가 곳곳으로 뿌려졌다.

촤악. 투둑. 투둑. 투두둑.

남궁세강의 살점이.

남궁세가의 기둥과 마루.

그리고 남궁을 상징하는 짙은 남색의 깃발에 들러붙어 붉게 물들여졌다.

다만.

빙그르르르.

턱이 없는 남궁세강의 머리만은 바닥에서 뒹굴었다.

그가 남궁세강이였다는 흔적을 남기듯이.

“역시 처음에 말한 대로 남궁세강이라는 이름값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실력이었다.”

휘잉.

무극지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자.

공중으로 떠오른 핏방울이 날아갔다.

콰각. 콰악.

“커헉.”

“끄악.”

기둥 뒤에서 눈만 내밀고 있던 남궁세가의 무인 둘이 핏방울에 목이 뚫려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털썩.

천일영의 입술이 비틀렸다.

“이것으로 남은 남궁세가의 무인은 없는 것인가.”

비릿한 시선 안에 슬픔을 담고 주변을 바라보니.

이제 더는 산 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문파를 없애는 것.

그것은 천일영으로서도 처음 해 보는 일이었다.

‘마음이 죽어 버려서 그런지 죄책감이 생각보다 덜하군. 나도 이제는 사람이 아닌 모양이니.’

덜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려 바라보았지만.

애써 외면하고 자신은 괜찮다 생각했다.

저벅. 저벅.

남궁세가의 정문으로 걸어 나갔다.

오래된 세가의 문을 상징하듯.

세월이 스며든 나무 기둥.

그곳에 천일영은 준비해 온 종이를 붙였다.

[남궁세가의 악함이 하늘을 찌르니, 지천번회에서 남궁세가를 멸살하여 중원을 구하노라.]

이것은 분가에도 이미 붙인 종이.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앞으로는 숨기 쉽지 않을 것이다. 지천번회.’

숨어 있는 자를 억지로 찾으려면 어려운 법.

그러니 제 발로 걸어 나오게 해야 하거나.

아니면 더욱 깊은 곳으로 숨어 더는 움직이지 못하게 하거나.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군.’

천일영은 어둠을 몸에 감은 채.

암흑보다 더 짙은 검은 그 무엇인가로 빨려 들어가듯 이내 모습을 감췄다.

* * *

다음 날 아침.

남궁천은 서류가 쌓인 자신의 책상에서 도장을 찍고 있었다.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인 이후.

그동안 밀린 일들이 각지에서 올라오기 시작하여 제법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때.

쿠당탕탕.

시끄러운 발소리가 남궁천의 이마를 찡그리게 했다.

“무슨 일이길래 이리 경망스럽게 뛰어다니는 것이냐.”

“맹주님! 큰일 났습니다.”

벌컥.

들어오라는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열리는 집무실.

남궁천은 노기 어린 목소리로 꾸짖으려 입을 벌리려고 했다.

그러나.

“남궁세가가!”

“남궁세가에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했다는 말이냐!”

“며…… 멸…….”

말을 잇지 못하는 무인의 얼굴에 떠오른 다급함.

불길한 마음이 남궁천의 심장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남궁세가에 큰일이 생길 리가. 고수들이 그렇게 많은데.’

뒤흔들리는 심장이 마구 날뛰지만, 한편으로는 생각만큼 나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남궁세가가 멸살당했다고 합니다.”

“며…… 멸살?”

“대략 십오 세 아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모두 어쨌다는 말이냐! 제대로 말하지 못할까!”

“모두 죽었다고 합니다.”

“…….”

남궁천은 잠시 멍한 눈빛으로 말을 전하는 무인을 바라봤다.

사실일까.

혹, 누군가가 못된 장난을 하는 것은 아닐까.

온통 현실을 부정하는 생각만 떠올랐다.

떨리는 목소리지만.

남궁천은 겨우 입을 열었다.

“나…… 남궁선영도 죽었느냐.”

“시신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세강이는……. 남궁세강은 어찌…….”

“…….”

말을 전하는 무인이 고개를 숙인다.

순간 남궁천의 눈에 광기가 서렸다.

“으아아아아아! 어떤 놈이냐! 누가 그런 개 같은 짓을 했단 말이냐!”

콰광. 쿠당탕. 와르르륵!

남궁천이 미친 듯 날뛰기 시작했다.

책상을 뒤집고.

탁자를 부숴 버렸다.

기운이 터져 나가며 창문이 날아가고.

튀어 오르는 혈관과 미쳐서 돌아가는 눈동자.

타오르는 분노와 함께 터지는 거친 말이 남궁천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범인이 누구냐! 당장 찾아내라. 안 그러면 너희들부터 죽을 것이다. 당장 찾아내거라!”

“네? 네…….”

순간.

남궁천의 눈동자에 스며든 광기가 사라지고.

어느새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다. 내가 직접 확인할 것이다. 남궁세가가 그렇게 무너질 리 없다. 뭔가 착각한 것 아니냐. 천하제일 무림 세가인 남궁세가란 말이다!”

전서구가 실어 나른 편지 한 장.

그따위 것을 어찌 믿겠는가.

“당장 안휘성으로 가겠다.”

“알겠습니다.”

남궁천은 떨리는 발걸음으로 무림맹의 집무실을 나섰다.

* * *

이틀 뒤.

남궁세가에서 피어오르는 향이 수백 개에 달했다.

죽은 사람의 수만큼.

꺼지지 않는 향의 끝에서는 흰색의 연기가 올라왔다.

마치 죽은 자들의 영혼이 날아가는 것처럼.

향의 연기가 영혼을 싣고 날아가는 그 자리에는 남궁천이 홀로 앉아 그것을 지켜보는 가운데.

소림의 방장 태사명진이 낮은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맹주님, 어찌 이런 일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

남궁천은 말없이 멍한 얼굴로 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입을 닫은 것은 남궁세가의 본문에 도착했을 때부터.

이후 벙어리가 된 듯 입을 열지 않았다.

멸문.

아니, 멸살이자 멸망 앞에서는 제아무리 남궁천이라 할지라도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어제.

남궁천은 바닥에서 뒹구는 턱 없는 아들을 보는 순간 신형이 무너졌었다.

아내가 죽어 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고 허망하기만 했다.

남궁세가의 핏줄들이 쌓인 시체 더미를 보았을 때는 꿈일 거라고 확신했다.

‘꿈인 것 같은데 왜 깨지 않는 것이지?’

하루빨리 이 꿈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꿈이 끝나지 않는다.

이틀이나 지나서야 드는 생각.

‘현실인가? 이 모든 것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인가.’

천천히 닫혔던 입이 벌어졌다.

사실인지 조심스레 확인하는 것처럼.

“세강아……. 여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꾹꾹 눌러 담았던 감정이 툭 하고 끊어졌다.

“으흑. 으흐흐흐흐흑. 으아아아아아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과 비명에 가까운 고통에 찬 신음.

만 갈래로 찢기는 마음속에서 남궁천은 다짐을 했다.

‘죽인다. 죽여 버리겠다. 나와 같은 고통을 느끼도록 네놈의 가족도 모두 도륙할 것이다.’

무림맹의 맹주다.

천하제일의 무공을 가지고 있다.

그 힘 앞에서는 복수 따위 오래 걸리지도 않을 터.

남궁천은 맹세하고 또 맹세했다.

십만 갈래.

천만 갈래.

수억 갈래로 찢어 죽이고.

죽인 이후에 또 죽이겠노라고.

하지만.

눈물을 흘리는 무림맹의 맹주 뒤로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떠돌았다.

가까운 곳에 있어 먼저 도착한 일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장문인.

그리고 문주들은 슬픔에 동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표정을 지었다.

‘일의 경위가 지나치게 이상하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며 남궁천 모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원한을 쌓지 않으면 도무지 벌이지 못할 지경의 살육.

지독한 분노가 적에게서 느껴졌다.

‘그리고 지천번회가 일을 저질렀다는 글귀. 범인은 자신을 스스로 밝혔다.’

함정일까?

누군가가 지천번회를 빙자하여 그들에게 누명을 씌우려는 것일까?

‘아니다. 지천번회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 곳. 누명을 씌울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은 아닐 터다.’

장문인들과 문주들은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 일은 그냥 넘어가기 힘들 것 같군.’

비록 무림맹의 맹주 가문이 몰락하는 천인공노한 사건이 벌어졌지만, 악취는 기묘하게도 지천번회가 아니라 남궁세가에서 나고 있었다.

‘남궁천이 업을 쌓았는지 알아보고 지천번회가 어떤 곳인지부터 찾는다.’

슬픔이 온통 떠도는 자리지만.

그들은 슬픔 대신 하오문과 개방에 금화를 쌓아 올리기 시작할 것이었으니.

‘일단 진실을 알아본다.’

그들의 눈가에서는 이미 눈물이 말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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