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187화 (188/270)

187화

“나 좀 도와줘!”

하오문 문주 세하월이 비명에 가까운 애절한 목소리로 매달리자, 안과 혜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무슨 일이신데 이렇게 다급하세요.”

“금화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세하월은 정신없이 이야기했고.

모든 경위를 알게 된 안과 혜도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건 꽤 지독한 방법이네.”

“이런 방법 오랜만에 봐.”

안과 혜는 영문도 모른 채 쌓인 금화를 어찌하지 못하고 바들바들 떠는 세하월을 진정시켰다.

‘하긴 놀랄 만도 하지.’

이번에 공자님이 사용한 방법은 남궁세가를 멸문시키기 전에 미리 언질을 준 것이 아니었다.

“남궁세가가 멸문한 것도 놀랄 일인데, 일을 벌이시고 난 후에야 지천번회의 정보를 풀라 하시니, 이런 거친 방법은 처음이야. 어지간히 빨리 움직이신 모양이네.”

“지천번회의 정보라고 해 봐야 풀 것도 없는데…… 으아아악.”

세하월의 말에 혜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안은 의자에 몸을 기대며 붓 손잡이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정보를 있는 그대로 세상에 꺼내지 말고 가짜로 만들라는 의미 같은데. 아무래도 공자님께서는 우리가 마음대로 일을 처리해도 누군가 막아 줄 사람을 구한 모양이야.”

“설마 황실? 이건 또 더 거친 방법을 쓰라는 말이군.”

“남궁천을 몰아세우면서 지천번회라는 이름도 세상에 알리는 겸사겸사. 지천번회가 절대 악이라는 것을 알리고, 남궁천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만 공표해도…….”

깊이 정보를 캐내고 팔 필요까지는 없다.

안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미 큰돈이 쌓이고 있어. 적당한 정도로는 안 되고 지천번회의 역사부터 만들어 볼까.”

“재미있겠네. 있는 정보에 살을 붙여 그럴싸하게 만드는 거야 우리가 전문이기는 하지. 있는 정보가 거의 없어서 거의 전부 새로 만들 지경이기는 하지만.”

안과 혜가 히죽거리며 웃자 이미 쌓인 금화 이천 냥을 떠올리며 세하월은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삼천 냥 정도 금화가 더 쌓일 테지만.

세하월은 주먹을 꽉 쥐었다.

“정보는 있어. 나는 지천번회가 과거 하오문의 문주를 죽였다고 알려 볼까.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지천번회 놈들의 뒤통수에 칼을 꽂을 절호의 기회야.”

“위험하지 않겠어요? 놈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괜찮아. 언제까지고 그놈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세하월은 숙인 고개를 들고 결심을 굳힌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의 수를 꺼내 들어 안과 혜의 이야기에 살을 붙이기 시작했다.

* * *

그 시각.

천일영은 악양의 기루에 있었다.

“호호호. 공자님도 생긴 것답지 않게 능글맞기는.”

“싫으면 싫다고 해도 좋다.”

“싫기는요. 공자님이 여인을 다루는 게 능숙해서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가슴 아래로 두른 손이 복부 밑으로 내려가며 몸을 훑는다.

기녀 전이화는 그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술잔을 채웠다.

“그런데 처음 보는 얼굴이십니다.”

“사람의 얼굴을 제법 많이 기억하고 있는 듯하구나. 이곳에서 산 지 오래되었는가.”

“태어날 때부터 악양에 살고 있습니다. 얼굴이 못생긴 기녀가 기루에서 일하려면 악양처럼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야 가능하지요.”

“못생기지 않았는데?”

“기분 좋아지라고 하시는 말씀인 줄은 알지만, 거짓인 것이 뻔하기에 오히려 마음이 상합니다.”

전이화는 삐쳤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리고 술잔을 들이켰다.

“거짓말 아니다. 나에게는 예뻐 보이니 말이다.”

달래듯 허리춤을 감싸고 안자 전이화가 손에 ‘뿅’ 하는 소리가 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꽃을 꺼내 들었다.

“예쁘다고 하는 것은, 이것과 같은 꽃에나 쓰는 말입니다.”

“놀라운 재주구나.”

“얼굴이 못생겼으니 재주라도 있어야 밥을 먹고 살지요.”

“나는 수수하지만 좋은 향기가 나는 꽃이 좋구나. 딱 네가 그러한 듯해서 놓치고 싶지 않다.”

“이 좋은 언변으로 몇 명의 여인을 울렸을지. 호호호.”

기분 좋은 높은 울림의 웃음이 방 안을 채웠다.

툭.

데구르르.

웃음을 짓다 말고 전이화는 발치에 차이는 술병을 내려다보았다.

어젯밤 늦게 찾아와 술을 마시기 시작한 손님은 무려 삼십 병이나 되는 술을 마셨다.

‘내가 같이 마셨다고는 하지만 기껏 다섯 병 정도가 전부이니.’

손님은 스물다섯 병이나 되는 술을 마셨다.

그렇지만 취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분이 가라앉은 듯 보인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못 견디겠다는 듯이.

게다가.

‘웃고는 있지만, 왠지 이 사람…….’

나이 먹어 퇴물 취급을 받는 못생긴 기녀지만 제법 많은 수의 손님을 받아 왔기에 안다.

웃는 척하는 손님과 정말로 즐거운 손님의 차이 정도는.

그때.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문밖에서 기루의 주인인 듯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륵.

서른 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화려한 여인이 남자 둘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와 곱게 앉았다.

“죄송하오나 제법 많은 술과 안주를 드셨기에 중간에 한 번 계산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지. 얼마인가.”

관광지라 먹고 튀는 사람들이 많은지 여주인은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애써 입을 뗐다.

“은자 삼십 냥입니다.”

“알았다.”

천일영은 금화 세 개를 바닥에 놓았다.

“며칠 거할 테니 준 돈이 떨어지면 다시 말하거라.”

“어머. 제가 큰손님인 것을 몰라뵈었네요.”

“큰손님까지는 아니다.”

천일영은 금화 두 개를 더 놓았다.

“너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나누어 가지거라.”

“세…… 세상에!”

거들먹거리며 동전 열 개, 많아야 이삼십 개 던져 주고 온갖 생색을 내는 인간들 천지인 세상에.

열흘은 먹고 마시며 놀 돈을 서슴없이 건네다니.

여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호의는 잘 받았습니다. 그러나 악양에서도 유명한 기루인 저희 화연여홍(花緣勴洪)의 이름에 먹칠을 할 수는 없으니 기녀 하나를 더 넣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을 대로 하여라.”

여주인이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나가자 전이화가 천일영 곁에 딱 달라붙었다.

“왜 그리도 많은 돈을 꺼내 주셨습니까? 너무 큰 돈입니다.”

“네가 마음에 들어서 준 돈이다. 이제 내가 하는 말을 믿겠느냐. 네가 못생기지 않았다는 말 말이다.”

“어휴……. 겨우 그 말을 믿게 하려고 거금을 쓰신 것입니까.”

“네가 믿어 주는 것에 비하면 싼 것이다.”

“이상한 분.”

한번 스치고 말아도 탓하는 일 없고.

평생 다시 만나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이 기녀다.

그저 하룻밤의 놀이 상대.

그러한데 내뱉은 말 하나 믿어 주지 않는다고 이런 돈을 쓰다니.

전이화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

와락.

거칠게 자신을 안아 드는 손길에 전이화는 놀라 비명을 질렀다.

“꺄악!”

“졸립구나. 해가 떠 있기는 하나 눈 좀 붙여야겠다. 너도 곁에서 같이 자는 것은 어떠하냐.”

“손만 잡고 자는 것이겠지요?”

“그냥 옆에만 있으면 된다.”

전이화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술을 마시는지.

‘견디기 힘든 일을 겪은 모양이지. 취하지도 않을 만큼이나.’

힘들 때는 혼자 있고 싶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천일영이 눕자 전이화도 곁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천일영의 손을 꼭 잡았다.

“이 정도는 해 드릴게요.”

“고맙구나. 잠에서 깨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다오.”

“재미있는 이야기요?”

“손님들이 남긴 재미있는 말이 떠도는 곳이 기루가 아니더냐.”

“그런 이야기는 많지만, 재미가 있을지는 모르지요.”

“동정호는 처음이다. 그러니까 동정호에 관련된 이야기면 좋겠구나.”

“동정호라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으니 꼭 해 드리지요. 하지만 지금은 눈 밑이 어둡고 퀭하시니, 먼저 잠부터 주무셔야 합니다.”

전이화의 말에 천일영은 눈을 감았다.

악양으로 오기 전까지 남궁세가의 지회조차 모두 박살 냈다.

자신이 죽인 망자들이 눈앞에서 원망하는 얼굴을 짓고 있었지만.

급하게 마신 술기운이 아주 조금 돌며 그들의 얼굴을 하나씩 지워 나갔다.

꼬옥.

전이화가 손에 조금 힘을 주었기에.

살아 있는 사람의 온기가 스며들어.

남궁세가의 얼굴들이 지워졌다.

천일영은 지친 눈꺼풀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오 일 만의 잠이었다.

* * *

열흘 뒤.

장례식이 끝나고 무림맹으로 돌아가는 길.

남궁천은 미간을 찌푸리며 우차에 타고 있었다.

아직은 업무에 복귀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강제로 내디딘 걸음이었다.

‘남궁세가를 이렇게 만든 자가 뻔히 두 눈을 뜨고 돌아다니는데 아직은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다니.’

말리는 자를 베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참고.

남궁천은 이후의 일을 생각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회에 있는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이다. 그들의 수가 약 일백오십. 그들만 있으면 멸문을 막을 수는 있겠지.’

또한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나이 십오 세 이하의 남궁세가 식구들을 적이 살려 놓은 것도 다행이었다.

‘나중에 그들이 커서 자신을 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것인가. 무슨 오만방자함인지. 어쨌든 후지기수로 이름을 올린 아이들도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터.’

아직 남궁세가는 끝이 아니라는 생각에 꽉 쥔 주먹이 터질 듯 떨렸다.

남궁천은 우차에서 무림맹의 전각을 바라보았다.

언제나처럼 자신의 개인 소유처럼 느껴지는 무림맹.

이곳의 힘을 사용하면 남궁세가를 이렇게 만든 범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잠깐 우차를 세우거라.”

“맹주님? 이제 조금이면 도착입니다만…….”

“여기에서 내리지.”

“알겠습니다.”

남궁천은 우차가 서자마자 내려서서 무림맹의 정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오 일 전까지 장례식장에서 슬픔을 나눴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그리고 무림맹에 가입된 무림 문파들의 장문인과 문주들이 서 있었다.

급하게 떨어지는 발걸음.

크게 울리는 목소리로 남궁천이 말했다.

“여기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오?”

“맹주님, 드릴 말씀이 있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이 나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인가!”

“그러합니다.”

종남파의 장문인 청강이 대표로 나선 듯, 뻣뻣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무림맹의 맹주 남궁천께서는 자숙의 시간을 가지시길 바라는 바, 당분간 맹주로서의 업무는 물론이고 여러 가지 의혹이 풀리실 때까지 무림맹의 출입을 금할까 합니다.”

“뭐라고? 그것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남궁천의 몸에서 분노와 함께 뿜어져 나오는 내공이 일갈과 함께 청강의 몸을 밀어냈다.

그러나 청강은 밀려난 만큼 한 걸음을 앞으로 내밀어 남궁천과 다시 거리를 맞췄다.

“저 혼자의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구파일방과 남궁세가를 제외한 오대세가, 그리고 무림맹 전체의 뜻입니다.”

“이런 천인공노할 일을! 나는 가족과 가문을 잃었다. 그러한데 무림맹 맹주의 자리도 빼앗을 거라는 말이냐! 가문이 몰살하자 힘이 없어졌으니 무림맹에서 나가라는 말이냐!”

“그것과는 상관없습니다.”

청강은 담담하지만.

남궁천의 기세에 조금도 밀리지 않은 채 조용히 말을 이어 갔다.

“지천번회가 문제입니다.”

“지천번회?”

“지천번회가 남궁세가에 원한을 가질 일이 없는지 무림맹의 임무 기록을 전부 찾아봤습니다. 무림맹의 맹주로서 지천번회를 치거나 멸살했다면 원한이 남겠지요.”

“…….”

“기록에 의하면 무림맹에서 지천번회라는 곳과 싸우거나, 혹은 원한을 가질 만한 일이 없었습니다. 아니, 지천번회라는 이름 자체가 무림맹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이름이었지요.”

“그래서?”

“남궁세가와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근 십 년이 넘는 동안 남궁세가에서는 큰 사건에 휘말린 일이 없었지요.”

“그것을 어찌 아는가. 남궁세가에서 큰 사건이 있는지까지 자네들이 어찌 안단 말인가! 그것은 남궁세가 내부의 일인 것을!”

“그럴지도 모르지요.”

청강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나.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참고할 자료는 있습니다.”

“뭐라? 참고할 자료?”

“바로 무림맹의 무인들을 기록하는 자료입니다. 이것은 후기지수 관리와 함께 무림맹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하여 만든 자료입니다. 매년 각 문파의 무인들 숫자를 기록하고, 혹 자주 임무에 동원되어 많은 무인을 잃었을 때 다른 문파에 임무를 돌리는 등 공평성을 위해 쓰이는 자료이기도 합니다만, 의무적으로 무림맹에 제출하게 되어 있는지라 맹주께서도 잘 아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쨌다는 것이지?”

“재미있는 것은 남궁세가 무인의 수가 근 이십 년 동안 거의 일정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문파들은 무인의 수가 크게 요동치는 데 반해서 말입니다.”

남궁천은 입술을 꽉 물고 청강을 노려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남궁세가는 위험한 임무에 거의 투입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예외로 하겠습니다. 맹주님의 가문이니 위험한 일에 보내지 않았겠지요. 다만 무인의 수가 거의 일정하다는 것은 지천번회라는 곳과 전쟁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합니다.”

“지천번회는 나도 처음 듣는 곳이다. 누군가가 남궁세가에 누명을 씌우는 것이 뻔하지 않은가!”

“아니요. 오히려 그것이 문제입니다.”

청강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는 오히려 남궁세가가 지천번회와 싸워 온 것이 아니라고 판명된 이상, 반대로 지천번회와 협력 관계에 있다가 일이 틀어져 문제가 생긴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지천번회가 남궁세가를 멸살하여 악행의 증거를 지우려 했다는 편이 오히려 이치에 맞지 않겠습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지천번회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란 말이다. 그것을 어찌 모르는 것이냐!”

남궁천의 말에 청강의 눈이 빛을 발했다.

“그것을 어찌 맹주께서 아시는지요? 지천번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 연유가 궁금합니다.”

“그건…….”

“부정하셔도 지천번회는 있습니다. 하오문에서 증거를 찾았으니까요.”

“증거?”

순간 남궁천은 머리가 핑 도는 듯한 느낌에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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