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194화 (195/270)

194화

커다란 덩치.

근처에 있기만 해도 숨쉬기조차 어려울 듯한 압력이 쏟아져 나왔다.

육십이 넘어 노쇠해져야 했음에도.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의 앞에서 제정신을 유지하지도 힘들 만큼의 기백이 넘쳤다.

후웁.

백강천은 천일영의 앞에서 눈을 부릅뜨고 거친 숨을 들이켰다.

“무극지검이 부러졌다고?”

“사실은 가루가 되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말이겠지.”

천일영은 어용지천참대검에 대해서 백강천에게 말했다.

한동안 놀란 눈빛을 하던 백강천은.

이내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검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구전되는 전설쯤으로 치부하는 이야기였건만, 실존했을 줄이야.”

“전설 속의 검?”

납득하지 못할 이야기가 천하제일의 대장장이 입에서 나올 줄이야.

천일영은 백강천이 이어 가는 이야기를 마저 듣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모른다. 다만 삼황오제(三皇五帝) 시절보다는 뒤이고 주(周)나라보다는 전이라고 들었다. 그때 왕실의 사람 중 하나가 검에 영혼을 집어넣는 것을 시도했다고 한다.”

“너무 지나치게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냐. 허황한 이야기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다니.”

“꿈같은 이야기이기는 한데 이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나름 이름 있다는 대장장이들에게 지금까지 구전된 이유가 있다. 그 검을 만든 사람은 십만 명의 목숨을 바쳐서 검을 제련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끔찍한 이야기가 하나 더 나오는데, 십만 명을 죽인 것도 모자라서 그들을 죽기 전까지 오 년에 걸쳐 온갖 고문을 하여 원한을 품도록 했다고 하지.”

“고문에 의미가 있는 것인가?”

“원한이 피를 원하게 되고, 죽음의 억울함이 계속 살아가고 싶은 힘이 되는 것이지. 그렇게 검 스스로가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불쾌한 이야기다.”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었다는 듯.

찌푸린 얼굴로 의자에 기대어 술잔을 바라보던 천일영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데 주나라 이전이면 철을 다루던 시절이 아니라 청동을 만졌던 때다. 그 시절에 철로 검을 만들었다는 것부터 거짓말이라 생각하지는 않느냐.”

“전설에 따르면 그 검은 청동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내가 보았을 때는 분명 철이었다. 만년한철하고도 조금 다른……. 기묘한 느낌의 철이었지.”

백강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일영의 말에 웃음을 지었다.

아직도 눈치채지 못했냐는 듯이.

순간 천일영의 눈이 커졌다.

“잠깐! 그럼 피를 빨아먹는 이유가!”

“너라면 수없는 사람을 죽였으니 알겠지. 사람을 베면 역한 피 냄새 뒤에 숨어 있는 쇳내를.”

“스스로 검이 성분을 바꿔 왔다는 것인가. 청동에서 철로!”

“그래서 대장장이들에게는 전설의 이야기인 것이다. 철을 다루지 못했던 시절에 청동을 사용하여 철을 대체하는 검을 만들었으니까. 가히 천재적인 발상이었지. 그 이야기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그래서 무엇이든 자르고 부러지지 않는 검인가. 아무리 검날이 상해도 사람을 죽이면 그 피로 흠집이 메워지니까.”

백강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피를 먹으면 먹을수록 단단해진다. 절대 부러지지 않을 만큼.”

“무엇을 위해 그 시대에 그만한 검이 필요했던 것인지 모르겠군.”

“왕가의 상징이기도 했을 테지만, 전설에는 신선을 죽이려 했다고 하더군. 태고의 신선이라던가?”

여기까지 말하고 백강천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태고의 신선 따위 책에서도 나오지 않을 법한 우스갯소리 같은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천일영은 웃을 수 없었다.

‘문목화가 말한 태고의 신선이 대장장이 사이에서도 구전되고 있을 줄이야.’

전설이란 것은 별개로 떠도는 이야기일 뿐.

그런데 하나로 연결이 되기 시작하면 더는 전설이 아니게 된다.

‘그 이상한 검. 설마 신선의 피까지도?!’

피를 빨아먹는 검이 태고의 신선을 찌른다면.

아마도 그 피 때문에 더욱 강해지고 단단해질 터다.

‘분명 피와 기운을 빨아먹는 검의 용도는 신선의 모든 것을 빼앗는다는 의미도 있겠지.’

금채홍의 능력을 생각해 볼 때.

어용지천참대검을 가져간 사람에게 정체를 발각당하는 것은 좋지 못했다.

신선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검이라면.

‘채홍이의 피에도 반응할지 모른다.’

천일영은 고개를 들어 정면으로 백강천을 바라보았다.

“어용지천참대검을 상대할 수 있는 검이 필요하다. 만들 수 있겠는가.”

“으하하핫.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내가 젊은 시절 전설을 들은 이후 생각해 둔 게 있지. 절대 밀리지 않고 부러지지 않는 검을 만들어 주마.”

“다행이군. 역시 중원 제일의 대장장이인가.”

“다만 조건이 있다.”

백강천은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고 진지한 얼굴을 했다.

“내 딸을 구해 다오.”

“딸? 딸이 어찌 되었기에 구해 달라는 말을 하는 것인가.”

“납치당했다.”

천일영은 순간 미친놈을 바라보는 눈으로 백강천을 노려보았다.

“딸이 납치당했는데 여기에서 나하고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냐? 당장 구하러 가도 모자랄 판국에.”

“납치는 당했는데 안전하기도 하다.”

철을 만지는 동안 두꺼워진 손마디가 조금씩 떨리면서.

백강천은 술잔을 입에 털어 넣고는 입을 열었다.

“검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너무 많아서 도망친 곳이 이곳이었었는데 상상도 못 한 엉뚱한 놈이 있더군. 이곳 흑하에서 영향력이 강한 놈인데 여러 가지 장사도 크게 성공하여 돈도 많은 놈이 나를 알아보았다.”

“검을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거절했군.”

“뭐, 그렇지. 뱀 같은 놈이라 대장간에 들어오기도 전에 밖으로 집어 던졌다. 놈은 억울했는지 처음에는 쇠를 녹일 때 사용할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하고, 이후에는 뒤에서 손을 써서 돈 주고 나무를 사들이는 것까지 막았다. 철도 구매할 수 없도록 만들고.”

한숨이 천일영의 입에서 토해졌다.

‘불같은 백강천의 성격도 한몫했을 테지. 집어 던지기만 했겠는가. 욕도 한바탕 퍼부었겠지.’

하지만 아무리 백강천이 그랬다 한들, 납치는 꽤 치사하고 치졸한 방법이었다.

백강천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문제는 이젠 놈이 검 한 자루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거다. 딸을 인질로 삼아 나에게 많은 검을 만들게 하고 그것으로 장사하려는 생각이 한가득이더군.”

“제법 돈 냄새를 맡을 줄 아는 놈인가.”

“머리가 좋은 놈이니만큼 딸아이를 납치는 했으나 딱히 해를 끼치지는 않고 있다. 며칠 전에 보니 딸아이는 살도 피둥피둥 쪄 있더군. 얼마나 편하게 지내는지.”

“안전하다는 의미가 그것이었나. 하긴, 딸에게 해를 끼쳐 네가 불량품이라도 만들면 상인으로서의 신용도 바닥으로 떨어지겠지. 알겠다. 검을 만드는 비용은 딸을 구해 내는 것으로 하지.”

“고맙다.”

“밥이라도 먹자. 급히 왔더니 배가 고프구나.”

“딸이 없어서 밥도 없다.”

“…….”

순간 백강천의 딸이 살찐 이유가 천일영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오히려 납치당한 게 좋은 거 아냐?’

천일영은 어쩔 수 없이 객잔을 찾아 백강천과 함께 밖으로 나섰다.

* * *

천일영은 객잔으로 가는 길에 우는 아이를 달래 주는 여인이 유독 눈에 띄었다.

“으아아앙.”

“저런, 엄마를 잃어버린 것이니? 내가 같이 찾아 줄게.”

“흑흑. 그게 아니라 매일 같이 놀던 고양이가 있었는데……. 죽었어요. 이제 더는 야옹이라고 말하면서 따라오질 않아요.”

아이의 곁에.

더는 숨을 쉬지 않는 검은색의 고양이가 보였다.

스윽.

여인은 고양이를 쓰다듬어 보았다.

아무리 털로 덮여 있어도.

이제는 체온이 사라져 차가워진 몸.

하지만 얼굴만큼은 평온해 보였다.

“이 아이는 오래 살았구나. 원래 살았어야 할 나이보다 더 많이 살았어.”

“그래도 죽었잖아요. 흑흑.”

“사실은 훨씬 전에 죽었어야 했지만, 너하고 노는 게 재미있어서 오래도록 힘을 냈을 거야. 네 곁에 더 있고 싶었으니까.”

“정말요?”

“응, 노쇠해져도 네가 찾아오기만 기다리다가 평온하게 죽었을 거야. 아마 어제 너하고 놀던 꿈을 꾸고 있었을걸.”

“으아아앙. 오늘 조금만 더 빨리 올걸. 심부름하러 다녀오는 바람에 늦었어요. 아아아앙.”

“언니랑 같이 무덤을 만들어 주자. 언제나 마지막 인사는 무덤을 만들어 주고 난 이후에 하는 거거든.”

“무덤을 만들어 주고 나서요?”

“어제는 ‘내일 또 보자.’라는 인사를 했지만, 이제는 ‘잘 있어, 잘 자.’라고 인사하는 거야. 또 오래도록 같이 있어 줘서 고맙다고 말해 주면 고양이도 네 걱정을 하지 않고 마음 편히 떠나겠지.”

“알았어요.”

애써 터지는 울음을 참는 아이의 손을 잡고.

여인은 또 한 손에 고양이의 시신을 소중하게 들었다.

한눈에도 길에서 사는 고양이라 많이 지저분했지만, 여인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비싼 옷은 아니지만 정갈하게 입고 있군. 게다가 검이…….’

딱히 무인의 기운을 강하게 풍기지는 않았는데.

도무지 얼마인지도 모를 만큼 비싼 검을 가지고 있었다.

‘절정 고수? 살수? 지나칠 정도로 기운을 죽이는 데 익숙하군.’

백강천도 여인의 검을 유심히 보는 천일영의 눈길을 따라 한동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저건 오래된 검이다. 백 년도 더 되었을지도.”

“백 년? 알아보겠는가.”

“검집과 검 자루의 형태가 오래된 거다. 검날은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분명 엄청난 물건인 듯하군.”

천하제일의 대장장이답게 백강천은 여인의 검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하지만 천일영은 그보다.

우는 아이와 땅을 파는 여인의 모습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와닿았다.

천일영은 잠시 여인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고 객잔으로 들어섰다.

* * *

“규화계(叫花鷄) 하나. 소총반두부(小蔥拌豆腐) 하나.”

“알겠습니다요.”

점소이가 주문을 받고 가자 백강천이 손을 덥석 잡아 왔다.

“배고파 죽겠다. 어향육사(魚香肉絲)와 매채구육(梅采拘肉)도 시켜 줘라.”

“딸이 없어 밥이 없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굶는 것까지는 이해가 안 가는구나.”

“전장을 딸 이름으로 거래해서 돈을 못 찾는다.”

“놈들이 딸을 납치한 이유를 알겠군.”

천일영은 백강천이 원하는 음식을 주문했다.

오랜만의 음식 때문인지 침을 흘릴 법한 얼굴을 하는 백강천의 뒤로.

드르륵.

객잔의 문이 열리며 아까 고양이의 무덤을 만들던 여인이 들어섰다.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근처의 자리에 앉아서 턱을 손으로 괴었다.

그러다가 손에 묻은 흙에 깜짝 놀랐는지.

또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옷에 스윽 손을 닦았다.

“철판우육(鐵板牛肉) 하나.”

음식을 시키고는 여인은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객잔의 이 층에서 내려오는 계단.

그곳에서 이죽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잘 만들고 계시는지요? 많이 드시고 부디 그 이름에 걸맞은 검을 보내 주시길 바랍니다.”

“젠장, 여기에서 저 낯짝을 보게 되다니.”

천일영이 눈을 돌려 보니.

뱀하고 여우하고 섞어서 너구리 얼굴에 부어 놓은 듯한 남자가 히죽거리며 다가왔다.

그는 천일영을 흘끔 보고는 입맛을 한 번 다시고 입을 열었다.

“저희 천금상단(千金商團)에 검을 만들어 주시는 백 선생님께 손님이 오신 모양이군요. 주문하신 음식은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아! 저는 천금상단의 상단주 안대관이라고 합니다.”

“초면에 신세를 지고 싶지는 않군. 성의 정도만 받도록 하지.”

거의 무시에 가까운 표정으로 천일영이 말하자.

안대관의 등 뒤에 서 있던 세 명의 호위무사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네 이놈, 감히……!”

세 명의 무인 중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이 검을 뽑으려는 순간.

안대관이 손을 들어 올리며 무인에게 검을 물리도록 하고.

천일영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환한 웃음을 지었다.

“아니, 이 검은! 상당한 명검이로군요.”

탐욕스러운 눈빛이 스며들며.

뱀 같은 혀가 입술을 핥았다.

안대관은 천일영의 호리호리한 몸을 염두에 둔 듯 다소 무시하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공자께서는 무공을 잘 못 하시는 분 같은데 이 검을 저에게 파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제가 후하게 값을 지불하겠습니다.”

“팔지 않는다. 그리고 검을 보지도 않았으면서 어찌 좋은 검인지 알겠느냐.”

“검집만으로도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검입니다. 금화 오십 냥을 드릴 테니 당장 저에게 파십시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백강천이 만든 검 중에서도 최고의 품질인 검이 금화 오십 냥이라니.

천일영은 에둘러 좋게 안대관을 보내려고 입을 열려고 했다.

그때.

뜻밖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그 검이 금화 오십 냥이라니, 지나가던 개가 코웃음을 치겠네.”

“뭐라?”

천장을 멍하니 보고 있던 여인.

그녀가 말을 이어 갔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금화 천 냥짜리 검이다. 그리고 그 검은 가치가 높지만 팔리지 않는 검이기도 하지.”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안대관은 여인을 잘 안다는 듯 입을 열었다.

구겨진 얼굴을 잘 펴지 못한 채로.

“제가 몇 번 만나 달라고 사정을 해도 대꾸 한번을 안 하시던 분께서 말씀하시다니, 이 안대관 감격했습니다.”

“짧은 길이. 얇은 검면. 두꺼운 검날. 저건 쓸 줄 아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검이야. 그러니 팔릴 리가 없지.”

정확히는 검법에 통달한 무공의 초고수나 되어야 쓸 수 있는 검이지만.

딱히 알려 줄 이유는 없었기에 여인은 입을 다물고 다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크윽!’

안대관은 자신의 말을 무시한 채 하고 싶은 말만 하고는 입을 다물어 버린 여인에게 짜증이 치솟았다.

‘이년이! 얼굴만 예쁘면 다인 줄 아나. 어딜 시건방지게!’

안대관이 여인에게 창피를 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소저는 어찌 저 검을 그리 자세히 아시는지요? 여기 계신 공자가 조금 전 저에게 말한 것처럼 검날을 보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나는 쓸 줄 아는 검이니까.”

여인은 그 말만은 남긴 채 또다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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