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196화 (197/270)

196화

거칠게 토해지는 목소리 안에 가득 담긴 분노.

천금상단의 상단주 안대관의 앞에서 호위무사들은 머리를 숙였다.

“내 네놈들의 실력을 믿었는데 이런 꼴이 되었다. 너희들은 내 몸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한단 말이냐!”

“죄송합니다.”

곁에 있던 세 명의 호위무사들은 천금상단의 인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호된 소리를 들으면서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화를 가라앉히지 못한 안대관의 괴성에 가까운 목소리가 상단 안에서 계속 울리자.

호위무사를 책임지고 있는 도하승이 입을 열었다.

“이제 화를 푸시지요. 제가 책임지고 이놈들을 벌주겠습니다.”

“하아, 하아. 도하승인가. 내 이대로는 혈압이 올라 더는 못 견디겠군. 모두 그대에게 맡길 테니 제대로 일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그런데 상단주님.”

“말하게.”

서늘하게 눈을 빛내는 도하승이 일을 망친 세 명의 호위무사를 노려보다가.

입술을 손으로 가리고 작은 목소리로 안대관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아무리 이놈들이 쓸데없는 놈들이라 해도 쉽사리 당할 정도는 아닙니다. 상대의 무공이 제법인 것 같으니 인질을 옮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자네가 절정 고수인데 꼭 그래야만 하는가.”

“상대가 가진 실력을 모를 때에는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먼저 상대의 실력이 가늠될 때까지만이라도 백 소저를 숨기지요. 놈들이 오늘 밤에 찾아올 가능성이 큽니다.”

맞는 말이다.

그저 사람 하나 옮기는 작은 수고로 위험에 대처할 수 있다.

“알았다. 수하 다섯에게 백 소저를 옮기도록 명해라.”

“맡겨 주십시오.”

도하승이 몸을 돌려.

자신이 믿는 수하 다섯에게 조용히 귓속말하는 것을 안대관은 유심히 보았다.

이 도하승이라는 사람을 거둔 지 한 달하고 보름.

무공이 절정 고수인 것뿐 아니라 머리까지 비상해서 벌써 총애하고 있었다.

‘원래는 거두지 않을 사람이지만 녹림십팔채 출신이라고 솔직하게 말했기에 밑에 두기로 했었지.’

도하승은 녹림십팔채 중 열 번째 산채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녹림 본문의 채주가 바뀌더니, 무공이 강한 자들이 하나씩 산채로 배치를 받아 들어오고.

어느 날 무공에서 밀려 결국 열 번째 산채의 채주 자리를 빼앗겼다고 했다.

‘산적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대단한 자다. 그런데도 오갈 데 없이 쫓겨난 자신을 따라 나온 수하들을 굶길 수가 없어서 고용해 달라고 사정했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도하승을 거둔 것은 잘한 일이다.’

검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에 백강천이 말을 듣지 않자 딸을 납치한 것이 바로 도하승이었다.

그뿐인가.

수완이 좋고 눈치가 빨라서 상대 상단을 몰래 덮쳐 물건을 빼앗거나.

빠르게 경쟁해서 물건을 납품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경쟁 상단의 밥에 죽지 않을 만큼의 독약을 풀어 거래를 독식하는 등.

그가 온 이후로 천금상단은 흑룡강성에서 떠오르는 신흥 상단 중에서도 가장 잘나가는 곳이 되었다.

“상단주님, 백 소저를 산속 별채로 옮기라 했습니다. 그리고 근방에 나가 있던 무인들도 지금 모두 모였습니다.”

“역시 일이 빠르구나. 이번 일이 끝나면 내 두둑이 돈을 챙겨 주마.”

“감사합니다.”

안대관이 천금상단의 마당을 바라보니.

사십 명의 무인들이 검을 든 채 안광을 빛내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아무리 적이 고수라 할지라도 당해 내지 못할 터.

“그 연놈들이 강하다 해도 결국은 흑하라는 시골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네놈들이 오늘 자시(子時)까지 나타나지 않으면 이쪽에서 친히 찾아가도록 하지. 공자 놈은 목을 치고, 계집은 감금한 채 노리개로 삼아 죽을 때까지 괴롭혀 주겠다.”

“상단주님의 뜻대로!”

음심이 가득 묻어나는 눈으로 안대관은 웃음을 지었다.

도하승의 무공이 있으니 걱정할 것은 없었다.

수하들의 무력도 흑하에서 가장 강력하다.

현령에게는 오늘 밤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 아침까지 일어나지 말라고 은자 오십 냥을 주었다.

이제는 피만 보면 되는 일.

안대관은 마음 놓고 술병을 꺼내 도하승과 잔을 나누었다.

* * *

천금상단에서 다른 곳으로 백강천의 딸이 이동하는 것을 기감으로 느끼자.

천일영은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여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백강천의 딸을 옮긴 것은 적이지만 제법 머리를 잘 굴린 일이었고, 천일영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으니.

그들은 숨길 생각으로 이동시킨 것이겠지만.

천일영에게는 거칠 것 없이 검을 휘두를 환경이 만들어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적이 적절한 상책을 꺼낸 것 같지만 그 이면은 조금 달랐다.

‘머리가 좋다는 놈들이 생각할 법한 실수지. 싸움에서 졌을 때 인질을 방패로 도망갈 수 있는데 마지막 살길을 스스로 버리다니.’

안대관의 밑에는 머리가 좋은 놈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싸움에서 졌을 때 빼돌려 놓은 백강천의 딸을 데리고 숨을 생각이겠지. 상단주는 만약을 대비해 숨겨 놓자는 말에 속아 넘어간 것이고.’

머리 좀 돌아간다는 놈들이 하는 짓거리는 무림이든 상단이든 다 비슷했다.

저벅. 저벅.

천일영은 고갯길 하나만 넘으면 나오는 천금상단의 앞에서.

커다란 나무 아래에 멍하니 서 있는 여인을 발견했다.

기감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음이 분명한 여인의 모습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바로 남궁무애였다.

“혹 내 걱정이 되어서 나온 것인가.”

“뭐 꼭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다치기라도 하면 안 될 거 같아서 나와 봤어.”

“내가 언제 이곳을 지나갈 줄 알고. 이미 제법 오래 기다린 듯하다만.”

“얼마 안 기다렸어. 날벌레 소리나, 짐승들이 지나가는 소리 같은 걸 듣고 있으면 심심하지는 않으니까. 오래 기다린다고 해도 상관없었고.”

남궁무애의 어깨는 밤의 습기 때문에 눅눅하게 젖어 있었다.

꽤 오래 기다린 것이 분명한 듯.

하지만 남궁무애는 상관없다는 듯 눈웃음을 지으며 천일영의 옷깃을 당겼다.

“검 만드는 남자의 딸은 다른 곳으로 이동했어. 내가 그 소저를 구할 테니 너는 천금상단을 처리해라. 물론 혼자도 전부 가능했을 테지만…….”

“아니다. 정말로 고맙구나.”

“뭘…… 고맙기까지.”

천일영과 남궁무애는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을 뽑아 들었다.

날빛 아래에서 서슬 퍼런 광채가 주변을 밝게 만들었다.

어째서인지 오래전부터 같이 지내 왔던 것처럼.

익숙한 느낌을 느끼며 두 사람은 각각의 방향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 * *

안대관과 도하승은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천금상단의 정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문을 두드리거나.

혹은 검으로 문을 베는 순간.

일제히 사십 명의 무인들이 신형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하승은 안대관의 술잔을 채운 후 하늘을 바라보았다.

달이 떠오른 이후.

반원을 그리며 흘러간 길이가 이제 조금만 있으면 자시(子時)가 되어 간다고 알려 주었다.

“상단주님, 아무래도 놈이 겁을 먹고는 오지 않는 모양입니다.”

“이만한 수의 무인들을 보면 고수라고 해도 오금을 지리고 도망가겠지. 놈도 기감인가 뭔가로 느끼고 문을 열 엄두도 못 낸 것이 아닌가. 하하하.”

“이 술잔을 마지막으로 이제 슬슬 놈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지요. 자시가 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기생오라비 같은 놈의 뼈마디를 으스러트리고, 그 시건방진 년을 품을 생각을 하니 온몸이 근질거리는군.”

“조금만 참으시면 원하시는 대로 모두 이루실 것입니다. 계집이 거칠다면 즐기시기 좋도록 팔다리를 잘라 대령하겠습니다.”

“그거 좋구먼.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우는 년을 품다니!”

안대관이 기분 좋게 웃었다.

순간.

콰아아앙!

느닷없는 굉음이 터졌다.

안대관과 도하승은 문을 바라봤다.

“……!?”

그런데 문은 닫힌 채 그대로였다.

“뭐지?”

도하승이 빠르게 눈을 돌리는 순간.

‘이런 미친놈이!’

터져 나간 것은 정문으로부터 2장 떨어진 담벼락.

처음부터 문 앞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한 행동이었다.

꿀꺽.

도하승은 침을 삼켰다.

아무래도 싸움에 익숙한 사람이나 생각할 법한 방법.

온갖 수라장을 겪은 자나 실행에 옮길 만한 것이었다.

“모두 공격해라! 놈은 고수다. 각기 덤비지 말고 감싸 안듯 포위를 해서 한 번에 죽인다.”

“네!”

무인들이 반달 같은 원형을 이루며 터져 나간 담벼락을 향해 포위진을 형성했다.

휘이이잉.

그때.

사십의 무인들은 무엇인가 번쩍이는 섬광 같은 것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희번덕거리는 빛무리가 한차례 사방으로 날아드는 듯한 순간.

촤아아악. 촤악. 촤아아아악.

반원의 가운데 서 있던 이십여 명의 무인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팔과 다리였다.

“끄아아악!”

“커어어억.”

“이런 놈이 온다는 소리는 못 들…… 까으으으윽!”

피가 튀어 오르고.

아직 멀쩡한 무인들은 반원의 가운데가 무너지는 것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아직 적이 보이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팔다리가 날아간다고?

안대관과 도하승도 동시에 입을 쩍 벌렸다.

“이 무슨 개 같을 정도의 고수가…….”

“젠장.”

도하승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수하에게 소리를 질렀다.

“불화살을 쏴라! 신호다.”

“알겠습니다.”

피이이잉. 쏴아아악!

허공으로 불화살이 높게 날아올랐다.

그 모습에 안대관이 다급히 물었다.

“무슨 불화살인가!”

“인질을 데리고 도망가라는 신호입니다.”

“뭐라고? 나는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없고, 너에게서 인질을 다시 옮긴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두 상정한 예정 내입니다. 인질만 있으면 저희의 승리입니다.”

도하승은 미리 인질을 옮겨 놓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저 정도의 고수라면 이 싸움은 이미 진 것과 마찬가지.

이류 무인과 삼류 무인이라고는 해도 한 번에 팔다리를 날려 버리는 놈을 어찌 상대한단 말인가.

‘상단주는 버리고 재빨리 튄다. 백강천의 딸을 데리고 있으면 거대한 돈줄을 움켜쥔 것과 마찬가지. 이대로 몸만 빼면 되는 일이다.’

도하승은 천천히 몸을 빼내었다.

그리고 바로 튀려고 할 때.

쓰러진 이십여 명의 사이로 몸을 드러내는 적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과 동시에 몸이 얼어붙었다.

마치 강제로 몸을 잡아 세운 것처럼.

자신을 한 번 보고는 피식 웃음을 짓는 것까지 보니 다리가 떨려서 서 있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휘이이잉.

또다시 검이 빛을 발하며 수십 갈래로 갈라진다.

도하승은 비록 정식으로 배운 무공이 아니고.

녹림의 어설픈 무공을 배워서 반쪽짜리 절정 고수였지만.

그래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미친! 저건 사람이 아니잖아!’

이대로라면 빠져나갈 수 없음을 직감한 도하승이 소리를 질렀다.

“불화살을 다섯 번, 연거푸 쏴라.”

“네!”

피이잉. 피이잉. 피이잉!

어두운 밤하늘을 찢을 듯 날아오르는 불화살.

사실 이것은 속임수였다.

인질을 죽이는 신호가 있다고 적이 믿게 할 생각이었다.

“네놈, 검을 멈추거라. 한 번만 더 움직이면 다른 불화살이 날아간다. 그 순간 인질은 죽게 될 것이다.”

“괜찮다. 마음껏 날려 보아라.”

“뭐?”

그때 안대관이 도하승의 말을 믿은 채 뛰쳐나오며 천일영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인질이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는 말이냐. 지금 곱게 돌아가면 내 인질을 풀어 주겠다. 아니면 바로 죽이라고 명령할 것이니 검을 거둬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괜찮다.”

“뭐? 왜 괜찮다는 말을…….”

왜일까 생각을 하는 사이.

번득 이유를 깨달은 안대관이 반쯤 눈을 뒤집었다.

“그러고 보니 그 미친년! 그년이 인질을 구하러 간 것인가!”

“이제야 눈치채었느냐.”

“이런 개 같은 놈이!”

“그보다 상단주는 다른 것을 걱정해야 할 텐데.”

“다른 것? 그게 무엇이냐.”

“좀 뜨거울 거다.”

“뭐?”

그 순간.

투욱. 주르르륵!

안대관은 자신의 머리에 무엇인가가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화르르륵!

“으아아아악! 이게 무엇이냐. 앗, 뜨거워!”

“있던 자리에 가만히 있을 것이지. 왜 튀어나와서 소리를 지르다 봉변을 당하는지.”

도하승이 산 중턱에서도 잘 보이라고 손수 기름을 잔뜩 묻힌 천을 감싸고.

수하를 시켜 불을 붙여 날린 불화살.

연거푸 하늘로 쏘아 올린 마지막 불화살이 안대관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천에 묻어 있던 기름은.

반질반질한 안대관의 대머리를 적시고 옆으로 흘러내려 아직 베이지 않은 머리카락에 옮겨붙었다.

“아아아악. 사람 살려! 앗, 뜨거워. 누가 물 좀 가져와라!”

“네!”

무인 중 하나가 평소의 버릇처럼 대답하는 순간.

촤아아악!

대답한 무인의 팔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천일영은 화극여월에 묻는 피를 털어 내며 싸늘한 목소리를 내었다.

“움직이면 벤다. 숨도 쉬지 말아라.”

“커헙!”

다들 뱀 앞에서 얼어붙은 개구리처럼 그 자리에 고정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으아아아아악!”

안대관이 머리에 붙은 불을 끄려고 땅바닥을 미친 듯이 뒹굴었다.

하지만 기름 범벅인 불이 꺼질 리는 없는 일.

안대관은 계속 바닥을 뒹굴었다.

* * *

한편.

백강천의 딸을 구해 낸 남궁무애는 산 중턱의 별채에서 천금상단을 내려다보았다.

무엇인가 불꽃이 사방팔방으로 미친 듯이 움직이는 것을 보자.

“공자 쪽도 벌써 끝난 모양이네. 아까 불화살은 인질을 옮기라는 신호였을 테고, 저거는 공자가 나한테 보이는 신호 맞지? 근데 무슨 신호가 저렇게 오두방정을 떨면서 움직여?”

안대관의 타오르는 머리가 내는 불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 한 채.

남궁무애는 별 희한한 신호도 다 있다고 생각하며 오랜만에 큰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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