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197화 (198/270)

197화

피를 털어 낸 화극여월.

천일영은 막상 써 보니 이 검이 마음에 쏙 들었다.

‘무극지검을 쓸 때보다 검속이 삼 할은 빨라지는군.’

무인이라면 반 할 검속이 빨라지는 것만으로도 그 무슨 짓이든 한다.

그러한데 삼 할.

‘쓸 줄만 안다면 이 검만 한 위력을 내는 물건은 없을 터. 확실히 백강천은 검을 만드는 데 천재다.’

천일영은 여전히 머리에 불이 붙은 채 굴러다니는 안대관에게서 눈을 떼고.

“마무리해야겠군.”

화극여월을 들어 올려 검무를 추듯 사방으로 검날을 뻗었다.

휘이잉. 휘이이잉!

빠악. 뻐억.

상단을 지키던 무인 중 서 있던 자들이 날아올랐다.

얇고 두꺼운 검면으로 때리니.

우드드득.

뼈가 가루가 될 지경으로 부러져 나가고.

콰가가각.

맞은 곳의 살이 움푹 파였다.

“아아아악.”

“누가 저 사람을 말려 줘. 으아아아악.”

같은 힘으로 때렸는데 무극지검으로 맞은 사람들보다 더 큰 고통에 몸부림친다.

그때.

천일영은 슬그머니 몸을 빼는 도하승을 보았다.

상당한 기운을 뿜으며 압력을 내보이는데도.

놈은 절정 고수쯤 되는 실력으로 제법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파앙!

천일영은 신형을 날려.

뻐악!

검 손잡이로 단전을 부수고.

휘이잉. 촤아아악!

몸을 낮춰 돌리며 발목 뒤의 근육을 잘라 냈다.

철퍼덕.

도하승이 바닥에 패대기쳐지며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악. 네놈!”

“아무래도 무인 중에서 제일 높은 사람인 것 같군. 그런데 전부 버리고 네 한 몸만 도망가는 것이냐.”

“크악. 네놈을 어찌 감당한단 말이냐. 이 썩을 빌어먹을 놈의 새끼가 단전까지 부수다니! 진즉에 도망갔어야 했는데! 크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도하승은 모르는 듯했다.

단전도 중요하지만 베어진 발목 뒤의 근육은.

여간해서는 평생 낫지 않는다.

쩔뚝거리며 제대로 걸음을 걷는 것도 힘들어지니.

‘더는 나쁜 짓을 못 하겠지.’

천일영은 마무리를 하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바닥을 기는 자 중에서는.

죽음에 이르렀거나, 죽음의 직전까지 몰린 사람은 없었다.

다만 죽을 지경으로 굴러다니는 사람은 있어도.

‘나쁜 짓을 못 하게 하는 정도로 괜찮겠지. 제갈현은 여전히 무르다고 하겠지만.’

그때.

끼이이익.

천금상단의 문이 열리고.

남궁무애가 백강천의 딸을 데리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백강천의 딸은 잠시 상단에서 벌어진 피 냄새와 지독한 광경에 눈을 돌리려 했지만.

눈앞에 서 있는 공자의 모습을 보며 잠시 눈을 끔뻑였다.

자신을 보고 부드럽게 웃는 모습.

‘더 젊어지고 모습이 변하기는 했는데, 저 웃음은…… 설마 일영이 삼촌?’

확신하지 못해 잠시 망설이는데.

표정만큼이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서야, 오랜만이구나.”

“삼촌? 정말로 삼촌이에요?”

“그래.”

타다다닷.

와락.

백예서는 정신없이 뛰어 천일영의 품에 안겼다.

워낙에 자신을 예뻐해 주었기에 항상 삼촌이라고 불러왔었다.

그 삼촌의 품은 정말로 따스하고 안심이 되었기에.

백예서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흑흑, 삼촌이었구나. 저를 구해 주러 여기까지 오신 건가요. 이 은혜를 어찌 갚을까요.”

“은혜라니, 겨우 이런 걸 가지고. 그리고 너를 구한 사람은 뒤에 서 있는 소저가 아니냐.”

“처음엔 모르는 분이라 놀랐지만, 삼촌과 함께하시는 분이었군요. 다들 감사해요.”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백예서를 다정하게 안아 주는 손길.

남궁무애는 그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주변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데 공자는 사람을 한 명도 안 죽였네. 나도 그냥 팔다리 정도만 날릴 걸 그랬나 봐.”

“전부 죽인 것인가.”

“응. 살아 있어 봐야 쓸모도 없는 쓰레기라서 나도 모르게 전부 베어 버렸어. 근데 어쩐지 실수한 느낌이네.”

“인질을 구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이놈들을 살려 둔 건 현청으로 넘기기 위해서니 신경 쓰지 말아라.”

“그럼 다행이야. 그럼 나는 공자가 무사한 걸 확인했으니까 집으로 갈게.”

“많이 고생했는데 그냥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구나.”

“괜찮아. 내일 만나기로 했으니까.”

“알았다. 내일 보여 준다는 바닷가를 기대하마.”

“응.”

남궁무애는 웃음을 짓고.

고개를 한 번 까딱하고는 등을 돌려 밖으로 나섰다.

사방에 잘린 팔다리며 신음이 난무하는데도 별것 아니라는 듯.

“끄으으으.”

“으으으. 사람 살려…….”

천일영은 백예서가 천금상단의 광경을 보지 못하도록 얼굴을 가슴에 품은 채 발길을 돌렸다.

이곳에 쓰러진 놈 중에서 움직일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여전히 머리에서 불이 꺼지지 않는 놈도 있고.

‘나머지는 현청에서 해결할 일이지. 납치는 중죄이니. 아침이면 모두 해결되겠군.’

천금상단의 밖으로 나오자.

아직도 달은 하늘 가운데서.

여전히 어둠을 흐릿한 빛으로 밝히고 있었다.

아침이 되어야 저들을 누군가가 발견하겠지만.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들에게.

해가 뜰 때까지는 아직도 멀기만 했다.

* * *

끼익.

백강천이 사는 집의 문을 열자.

퀭한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던 백강천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예서야! 무사히 돌아왔구나, 우리 딸!”

“아버지, 아버지! 삼촌이 구해 주셨어요.”

“그래, 어디 다친 곳은 없고? 우리 예쁜 딸,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야.”

한걸음에 달려 나와 백강천이 백예서를 껴안았다.

백예서도 아버지의 품에 안긴 체 눈을 질끈 감았다.

“아버지, 얼굴이 많이 상하셨어요.”

“너도 눈 밑에 그림자가 짙구나.”

한눈에도 마음고생이 심했던 두 사람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잠시 자리를 피해 줄까.’

백강천의 집 툇마루에 앉아 달을 보고 있으니 문득 마음에 허전함이 몰려온다.

남궁천을 제거하기 전.

혼자 일을 떠맡을 생각에.

마음에도 없는 강한 목소리로 거둔 사람들에게 모진 소리를 했다.

그것이 마음 아프고.

가슴 한쪽에 자꾸만 걸렸다.

그러한데.

백강천과 백예서가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을 보니.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

천일영은 별유천지의 가족이 너무도 보고 싶어졌다.

* * *

“으아아아악!”

백강천은 커다란 탁자 뒤에 숨어서 눈만 내민 채 천일영을 향해 비명을 질렀다.

“그…… 그만 다가오고 내 말을 마저 들어 봐라!”

“호오? 분명 네 입으로 어용지천참대검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검을 만든다고 하지 않았나? 그것도 젊은 시절 전설을 들었을 때부터 생각해 둔 것이 있다고 분명 들었는데.”

“아니! 아무리 내가 중원 제일의 대장장이라 해도 어떻게 전설의 검을 이길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 그건 말 그대로 전설이란 말이다.”

백강천이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나 했다.

백예서를 데려오고 난 이후.

당당하게 앞으로 만들 검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백강천의 말이 너무도 어이없어서 노려봤더니.

백강천은 겁먹은 얼굴로 탁자 뒤에 숨어서 눈만 내민 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천일영은 백강천이 숨어 있는 탁자를 향해 갈라진 목소리를 내었다.

“그럼, 왜 나한테 거짓말을 한 것이냐.”

“전설의 검을 이길 수 있는 검은 절대 못 만든다고 하면 내 딸을 구해 주지 않을지도 모르잖냐!”

“하아. 그래서 결국은 한다는 이야기가 어용지천참대검을 상대하다가 검이 부러지면, 또 다른 한 자루로 싸워라? 검을 두 자루 만드는 게 해결책이었냐.”

“일단 때리지 말고. 화내지 말고 대화로 풀자. 나 진짜 무섭단 말이다.”

백강천은 평소 뿜어내던 압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진땀을 흘리고.

정말로 목숨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며 사정했다.

‘내가 아무리 간이 부어도 천마한테 당당하게 그런 검을 못 만든다고 하겠냐.’

딸 아이를 구하기 위해 천마한테 사기는 쳤지만.

“일단 나를 살려 주면 어용거시기 검은 못 당해 내도 중원 제일이라 부를 만한 것을 만들어 주마. 두 자루로 부족하면 세 자루 만들어 줄게! 세 자루로 싸우다 보면 언젠가는 이기지 않겠냐.”

“이젠 두 자루에서 세 자루이냐. 그보다 나는 네가 거짓말을 해야 딸을 구해 줬을 거로 생각했다는 게 더 화가 난다. 내가 예전에 예서를 얼마나 귀여워했는데. 이 망할 놈의 영감탱이가!”

“사람 살려. 화내지 마라!”

그때.

저벅. 저벅.

백예서가 방 안으로 들어와 백강천의 뒷덜미를 잡고 끌어냈다.

“삼촌, 일단 이 모양이라도 아버지라서요.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용서해 주시면 안 될까요.”

“딸아……. 역시 이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것은 너밖에 없구나.”

“이번 일은 아버지가 잘못한 거예요. 일영 삼촌이 사사로운 이득에 움직이는 분이 아닌데 어찌 그런 바보 같은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도……. 그때는 내 머릿속에 네 생각뿐이어서…….”

백예서가 머리 양옆을 꾹꾹 눌렀다.

머리가 아픈 모양인 듯.

“일영 삼촌, 맛있는 걸 만들었으니 잠시 식사라도 하시면서 머리를 식히시는 것은 어떤가요?”

“예서가 만든 음식은 처음 먹어 보는구나.”

“예전에 뵈었을 때는 어렸을 때니까요.”

백예서는 천일영의 손만 잡고 밖으로 이끌었다.

바보 같은 아버지는 잠시 머리 좀 식히라는 뜻.

총명하게 행동하는 백예서의 모습에.

천일영은 결국 마지못한 척을 하며 탁자가 있는 곳으로 걸어 나갔다.

* * *

한참 밥을 먹던 도중.

백강천이 쭈뼛거리며 탁자 위에 무엇인가를 올려놓았다.

천일영은 그것을 흘끔 바라보고는 모른 척하고.

이내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스윽.

힘줘 밀어 천일영이 보이도록 눈앞에 무엇인가를 둔 백강천은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극지검을 만든 이후에 더 좋은 검을 만들 욕심으로 담금질한 만년한철이다. 운 좋게도 무극지검에 쓰인 만년한철보다 질 좋은 것을 구했는데 그것을 이십만 번 망치질했지.”

“…….”

검의 형태만 잡아 놓은 철 덩어리.

마음에 드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도록 틀만 잡아 놓은 것이다.

조금 자세히 바라보니.

무극지검이 가지고 있던 오묘한 색보다도 한층 진한 것이, 보통의 만년한철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정도.

아마 중원에서 이것을 넘어서는 철은 없을 터다.

“간신히 세 자루 분량이 나온다. 이걸로 제발 용서해 다오.”

“하아, 알았다. 세 자루까지는 필요 없고 두 자루만 부탁하지.”

“고맙다. 내 딸을 구해 준 것도. 용서해 준 것도.”

천일영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검의 형태는 이 화극여월과 같은 것으로 해 주었으면 한다.”

“쌍검술이라도 쓸 생각이냐.”

“아마도 그것으로 유일한 승기를 잡을 수 있겠지. 백강천이라는 천하제일의 대장장이가 어용지천참대검을 검으로 당해 낼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검으로 상대는 하되, 정면으로 상대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사용하면 된다.”

“처음부터 네가 어용지천참대검을 상대로 하는 것을 전제로 만들지. 아마 십수 번 부딪히는 정도로는 부러지지 않을 거다.”

백강천은 자신이 담금질해 놓은 만년한철을 바라봤다.

“대장장이 인생을 통틀어도 이만한 철을 만져 본 적이 없다. 내 최고의 검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마.”

“부탁한다.”

백강천은 눈앞에 쌓인 음식을 쳐다보지도 않고.

만년한철을 들고는 대장간으로 들어가서 뜨겁게 불을 피우고.

혼신의 검을 만들기 위해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 * *

아침 해가 떠오르고 조금 시간이 지났을 때.

천일영은 피곤해하는 백예서가 방으로 들어가 눈을 감을 때까지 곁을 지키다 툇마루로 나왔다.

백예서는 그동안 무척이나 무서웠는지 잠이 들지 못했기에.

천일영이 곁에서 잠이 들 때까지 지켜 주었던 것이었다.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저렇게 떨며 잠이 들 줄 몰랐군.”

무극지검이 만든 사람의 마음을 알았던 듯.

부러지며 이곳으로 길을 인도한 것만 같아서 천일영은 차를 마시며 눈웃음을 지었다.

정말 좋은 검이었다고 생각하면서.

그때.

쾅. 쾅. 쾅. 쾅!

거칠게 장원의 정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누가 찾아온 것인지는 잘 알고 있다.

현청에서 어젯밤의 일을 조사하기 위해 나온 것일 터.

찻잔을 내려놓고 정문을 여니.

그곳에는 현령으로 보이는 자와 포졸 이십 명이 서 있었다.

천일영은 생각보다 현청에서 빨리 움직였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천금상단에서 저지른 죄를 조사하기 위해 온 것인가.”

“천금상단에서 죄를 저질러? 이놈이 진정 미쳤구나. 죄는 네놈이 저지르고 감히 천금상단에 뒤집어씌우는 것이냐!”

되레 현령이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천일영에게 호통을 쳤다.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네놈이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은 상단에 들어가 온통 팔다리를 잘랐구나!”

“이 장원의 주인 딸을 천금상단에서 납치했기 때문에 구하러 간 것뿐이다.”

“거짓말하지 말아라! 천금상단의 상단주는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 선량한 상단주에게 죄를 덮어씌우다니, 네놈이 사람인 것이냐!”

현령의 호통을 잠시 듣던 천일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어제 천금상단에서 벌어진 처참한 광경을 분명히 보았을 텐데 무공을 모르는 현령이 큰소리를 친다.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군.’

현령이 믿는 게 무엇일까 잠시 천일영이 궁금해하는 사이.

화를 내며 날뛰는 현령의 뒤편에서 남자 둘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한 명은 머리가 전부 타고 화상을 입어 진물이 흐르는 안대관과.

또 한 명은 화려한 관복을 입은 사람.

그 위세가 보통을 넘어선다.

‘옷의 모양을 보니 제형안찰사사(提刑按察使司)의 수장 안찰사(按察使)인가.’

흑룡강성에서 형과 옥을 담당하는 사법 기관.

그곳의 가장 높은 사람이 등장했다.

‘과연, 현령이 큰소리를 칠 만하군.’

천일영은 어이가 없는 이 상황에서도.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묶는 오라를 순순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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