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흘끔.
안찰사는 감옥의 문이었던 공간으로 눈만 내밀었다.
감옥 안에서 탈출했을 그 망할 공자 놈이 없을 거로 생각하여 용기를 낸 것이지만.
“히익. 왜…… 왜 아직도 감옥 안에 있는 것이냐. 그 여인이 너를 구하려고 온 것 아니냐!”
“안찰사인가. 당신에게 빌릴 것이 있어서 잠시 기다리고 있었다.”
“빌릴 것? 그…… 그게 무엇이냐.”
“내가 알아서 빌리지.”
천일영은 몸을 벌떡 일으켜 감옥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안찰사가 보는 앞에서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반 각쯤 지난 후에 다시 나와 감옥 안으로 들어왔다.
안찰사는 그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뭐…… 뭘 한 것이냐.”
“알 거 없다. 그리고 빌렸던 물건은 제자리에 두었으니 신경 쓰지 말아라.”
“뭐라? 도무지 뭘 빌렸길래? 아니다. 너는 지금 당장 여기에서 나가거라. 석방이다.”
“나는 죄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나가라니.”
“네놈이 온 지 하루도 안 지났다. 그런데 감옥에서 판결을 기다리던 죄수들이 전부 중상을 입었다. 그뿐이냐. 일류 고수 다섯은 팔다리가 부러져서 실려서 갔고, 포졸 중에서도 성한 자가 없다. 네놈이 하루라도 더 여기에 있다가는 더 큰 일이 날 것 같구나. 관무불가침으로 놓아줄 테니 당장 나가라.”
“싫다.”
“뭐?”
“싫다고 했다. 당분간은 여기에 있기로 하지.”
“…….”
안찰사의 눈이 의아함으로 동그래졌다.
놓아준다고 해도 감옥에 있겠다는 사람은 처음 봤다.
아니, 애초에 놓아준 놈도 없긴 한데.
“도대체 왜…….”
“아예 눌러앉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때가 되면 나갈 테니.”
공자 놈의 이상한 소리에 안찰사는 눈을 감고.
자신의 가슴을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이미 이곳은 마비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냥 문을 열고 나가도 잡을 사람 하나 없는데.’
그런데도 여기에 남겠다고?
영문을 알 수 없지만, 불길함만은 고스란히 가슴에 남았다.
꿀꺽.
안찰사는 천일영과 눈이 마주치자 침을 삼켰다.
‘온몸을 저리게 만드는 이 불안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구나.’
안찰사는 천일영이 무엇을 빌려 썼다는 것인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집무실로 미친 듯이 뛰어갔다.
* * *
삼 일 후.
아침부터 퀭한 눈으로 집무실에 앉아 있던 안찰사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 안대관입니다. 부르셨다고 들어 빠르게 왔습니다.”
“상단주로군. 들어오게.”
안대관은 얼굴을 가리고 눈만 내민 채 집무실로 들어왔다.
머리카락은 물론이고.
두피와 얼굴, 그리고 목까지 전부 화상을 입어 아파 죽을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안찰사가 부르는데, 어찌 오지 않으랴.
마침 따질 것도 있었고.
그는 의자에 앉으며 눈살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오는 길에 감옥 안을 보니 아직도 저 공자 놈이 살아 있더군요. 약속에는 목을 치기로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흠……. 내 사실은 그것 때문에 상단주를 오라 한 것이네. 나는 이 일에서 손을 떼겠네.”
“손을 떼신다고요? 그것이 진심이십니까?”
“중원 제일의 대장장이가 만드는 검을 한 자루에 금화 천 냥, 한 자루가 팔릴 때마다 그것의 일 할인 백 냥씩 자네에게 받기로 했었지. 그래서 그동안 자네의 뒤를 봐주고 다소의 잡음이 일어나도 묵인했었는데, 관무불가침을 어겨 가면서까지 손을 댄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던 모양이네.”
안찰사의 어두운 눈 밑 그림자가 씰룩거렸다.
도대체 잡아 온 공자 놈이 뭔가를 빌려 썼다는데 알 수가 없다.
모든 물건도 제자리에 있었고 없어진 것도 없는데.
‘그런데도 이 불안함을 어찌하지 못하겠군. 또한 저번에 찾아와서 난리를 쳤던 여인이 또 오기라도 한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도지휘사사나 승선포정사사까지 말려들지 몰랐다.
초고수라면 하나의 성을 초토화할 수도 있다고 흔히 이야기하는데.
‘흑룡강성처럼 외진 곳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 다른 이들까지 말려들기 전에 손을 떼는 것이 좋다.’
정3품에 녹봉(祿俸)이 35섬.
여기까지가 자신이 움켜쥘 수 있는 돈임을 다시 한번 실감하며 깨끗하게 금화를 포기한 안찰사가 말했다.
“이제는 원리 원칙대로 처리하겠다. 뒤를 봐주는 것은 끝이다.”
“호오? 그런가요? 그것참 곤란하군요.”
안대관이 천으로 가린 밑으로 입술을 씰룩이자.
안찰사는 그것이 웃음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엉뚱한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안찰사라는 직위가 어떠한지는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으냐. 너 하나쯤 옥에 가두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다.”
“잘 알지요. 그래서 이런 것을 준비했습니다.”
안대관이 종이를 탁자 위에 올렸다.
그것은 바로 전장의 전표 기록.
정확하게 금화 일백 냥이라고 적힌 글씨가 안찰사의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 돈을 받은 적도 없고, 전장의 근처에 가 본 적도 없다. 이깟 종이 하나로 나를 어찌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냐.”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고 돈은 제가 찾아왔습니다.”
“돈을 찾아와?”
안대관이 밖을 향해 입을 열었다.
“가지고 들어오거라.”
“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쇠로 만든 상자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렸다.
안대관이 히죽거렸다.
“혹시 이럴 일이 있을까 해서 미리 준비했지요. 이미 안찰사의 이름으로 돈을 찾았습니다. 그 기록도 전부 준비되어 있지요.”
“이놈! 네 멋대로 돈을 넣고 찾아오다니! 그런 허술한 수가 먹힐 거로 생각했느냐!”
“허술해도 기록은 있으니까 위에서는 달리 생각하겠지요. 가령 금의친군도지휘사사(錦衣親軍都指揮使司)라던가.”
“네놈이 감히!”
금의친군도지휘사사.
줄여서 금의위다.
황제와 황궁을 지키는 곳이라 알려졌지만.
사실은 동창(東廠)하고 서창(西廠).
그리고 대내행창(大內行廠)과 함께 관직에 올라 있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역할도 한다.
일종의 사찰 기관의 역할도 하는 것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이 문서가 들어가는 날에는.
‘죽는 정도로 안 끝난다. 일가와 친족까지 모두 참수형을 당하게 될 터!’
안찰사는 이를 뿌득 갈았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저 공자 놈의 목입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도 잘 부탁드리지요. 하하하.”
자신도 구렁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단주 이놈은 독사였다.
안찰사는 상단주에게 물린 자리의 독이 온몸으로 퍼져 죽기 전에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놈의 무공이 생각보다 강하다. 이미 웬 여인 하나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날렸으니, 공자 놈을 죽일 수 있는 자를 도지휘사에게 빌리도록 하지.”
“그럴 필요 없습니다. 안찰사께서 처리하실 거라고 믿었는데 소식이 없길래 혹시 해서 준비해 둔 것이 있지요.”
안대관은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자그마치 금화 이십 냥을 들여 중원에서도 이름 높은 실력자를 고용했다.
수하를 모두 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또한 자신을 이렇게 만든 놈을 죽여 버리기 위해서.
“저놈의 목은 제가 치겠습니다. 안찰사님은 그저 눈만 감아 주시면 됩니다.”
“후우, 알겠다. 이것으로 후환이 없어진다면.”
안찰사가 감옥으로 가기 위해 방문을 여니.
흉흉한 인상의 남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뿜어져 나오는 살기만으로도 숨조차 쉬기 힘들 지경.
지독한 피 냄새가 뿜어져 나오는 것도 같았다.
“이…… 이분인가 보군.”
“그렇습니다. 제 원한을 풀어 줄 분이시지요.”
안대관이 앞장서서 앞으로 걸어가는 동안.
고용된 남자의 수하인 듯한 무인들이 하나씩 나타나더니 안찰사의 곁으로 모여들어 감쌌다.
‘삼 일 전에 포졸들과 다른 사람들이 전부 다쳐서 제형안찰사사가 비어 있기에 망정이지. 무인들이 태연하게 있을 곳이 아닌데 큰일 날 뻔했군. 하긴, 이놈들도 그것을 알고 이곳에 발을 들이민 것이겠지만.’
안찰사가 주변을 흘끔 보며 누군가 의심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동안.
안대관은 당당하게 감옥으로 들어서며 소리쳤다.
“크하하하하. 이 망할 새끼! 네놈의 목을 가지러 왔다.”
“화상이 제법 아플 텐데 이곳까지 직접 온 것인가.”
“네놈을 죽이면 이 화상의 고통도 사라질 것 같더군.”
안대관이 크게 웃으며 말을 하는 동안.
반대로 얼굴은 점점 굳었다.
감옥에서 제법 빈궁하게 있을 줄 알았는데.
이 공자 놈이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밥을 처먹고 있었다.
백강천과 백예서가 면회를 올 때마다 쌓아 둔 음식이다.
안대관은 팔자 좋게 닭 다리를 입에 물고 있는 천일영의 모습에.
시뻘게진 얼굴로 고용한 남자에게 소리쳤다.
“당장 이놈을 죽여 주시오! 갈기갈기 찢어서! 내 마음이 시원하게 풀릴 정도로 잔악하게 죽이면 금화 열 냥을 더 줄 테니!”
“원하는 대로 해 줄 테니 금화나 미리 준비해라.”
흉흉한 인상의 남자가 감옥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천일영을 본 순간.
“어? 공자님? 왜 여기에 계십니까?”
“응? 귀진이구나. 너야말로 여기에 웬일이냐.”
“응? 공자님?”
감옥 밖에서 천일영의 목소리를 들은 유향설이 얼른 안으로 들어섰다.
“공자님! 공자님이 왜 감옥에 계신 건가요? 도대체 어떤 미친 개놈의 새끼가 감히 공자님을 여기에 넣은 거죠? 말씀만 하세요. 만 갈래로 찢어 죽여 맷돌로 갈아 버리려니까요.”
열이 뻗쳐 길길이 날뛰는 유향설 뒤로 귀문살의 세 명도 들어와 땅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귀문살이 공자를 깍듯하게 대하자.
안대관과 안찰사는 영문을 모르겠으면서도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생각했다.
‘뭐지? 서로 잘 아는 사이? 저 공자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단 말인가! 우린 다 죽었다. 그것도 갈기갈기 찢겨 죽겠지. 게다가 맷돌로 갈리겠고. 도대체 우리는 누구한테 손을 댄 것인가.’
온몸이 떨렸다.
엄청나게 화가 난 귀문살이 뿜어내는 압력에.
단 한 걸음을 걷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스으윽.
귀문살의 사귀진이 고개를 돌려 안대관을 향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너 건드리면 안 될 분에게 손을 댔구나. 앞으로 네놈이 어찌 될지는 잘 알겠지?”
“아니…… 그게 아니라…….”
“뭐 그렇다고는 해도 너는 이미 금화를 이십 냥이나 준 고용주니, 걱정하지는 말아라. 너에게 큰 고통을 주지는 않을 것이니까.”
“정말입니까?”
얼굴에 화색이 돈 안대관이 다급히 입을 열자.
사귀진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러겠지만 향설이는 맷돌로 갈겠지. 일의 경위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설마 네놈이 공자님에게 누명이라도 씌워 감옥에 넣은 것이라면 산 채 갈아 버릴 거다. 나는 그것을 지켜보며 즐겁게 웃을 것이고.”
“끄아악!”
안대관이 새파랗게 질려 소리를 지르자.
안찰사가 다급한 목소리를 내었다.
“나는 안찰사요. 관무불가침으로 내게는 손을 대면 안 되오! 나는 상관없는 일이오!”
“흐음……. 어쩔까요? 공자님? 관무불가침이라 조금 껄끄럽기는 한데 명하시면 같이 갈아 버리겠습니다.”
“그냥 놔둬라. 상단주도 그냥 두고.”
“네에? 정말입니까?”
“손 더러워진다. 악취가 나는 것은 원래 만지는 법이 아니다.”
천일영이 웃으며 말하는 순간.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남궁무애가 제형안찰사사를 뒤집던 날 쉬었던 포졸 둘이 문짝도 없는 정문에 서 있다가 급히 뛰쳐 들어왔다.
“안찰사님! 안찰사님!”
“그만 부르고 말을 해라.”
“그…… 그…… 그…….”
“그?”
“그게 아니라! 금의위에서 나왔습니다.”
“뭐라고?!”
한 번 죽을 위기에 처하기도 힘든데.
연이어 두 번 죽게 생겼다.
안찰사는 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보이는 광경.
‘뭐…… 뭐가 어찌 된 일이냐. 금의위뿐만이 아니라 동창과 서창, 그리고 대내행창(大內行廠)에서도 나왔단 말이냐. 사이가 나빠서 네 가지의 옷 색깔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황실에서도 드문 일이라고 들었는데! 그런데 어째서!’
이미 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들이닥쳐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안찰사의 앞으로 다가온 사람이 종이를 펼쳐 눈앞에 보였다.
“흑룡강성의 안찰사 임부원이 악행을 저지르고 뇌물을 받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왔다. 사법 기관으로서 그 위상이 높아야 하고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어야 하거늘. 이 천인공노할 일에 황제께서 매우 노하셔서 직접 조사를 명하셨으니 이제부터 성실하게 협력하라.”
“네? 아…… 알겠습니다.”
파랗게 질려 벌벌 떠는 안찰사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동창으로 보이는 사람이 감옥 안에서 안대관을 끌고 나왔다.
“천금상단의 상단주가 감옥 안에 있었습니다. 무고한 백성을 납치하고 그것을 무마하기 위하여 뇌물을 건넨 것에 대해 심문을 하겠습니다.”
안대관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금의위로 보이는 사람이 집무실에서 돈괘까지 들고나왔다.
“집무실에 금화 백 냥이 있습니다.”
“전장의 전표 기록도 있습니다. 천금상단에서 발행한 것으로 보아 뇌물을 받았다는 편지의 정보와 일치합니다.”
“음, 모든 것이 편지에 쓰여 있는 대로군. 이제부터 딱 죽기 직전까지 이놈들을 고문하여 모든 정보를 캐내거라. 백성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데도 사사로운 이득을 취한 자, 절대 인정사정 봐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네.”
안찰사는 이제 알 것 같았다.
앞으로의 목숨 걱정보다 먼저 든 생각이 있었으니.
‘잠깐, 편지라니. 그렇다면 저 공자가 빌린 것이 바로!’
붓과 종이였다.
그것을 전서구로 날려 버린 것이었다.
항상 천일영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참매.
그것의 존재조차 몰랐던 안찰사는 이제야 왜 공자가 감옥에서 나가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이 누명을 쓴 그 장본인이니까.
게다가.
‘도대체 저 공자는 누구란 말인가! 편지 한 장 썼다고 황제가 사람을 보내? 그것도 사 대 사찰 기관인 창위(廠衛 - 동창, 서창, 대내행창을 창(廠)이라 불렀고 금의위를 위(衛)라고 불렀다. 이 모두를 합친 명칭이 창위.)를 전부?’
두려웠다.
천하에 누가 감히 편지 한 장으로 이들을 움직인단 말인가.
어떤 이가 황제에게 명을 내리게 한단 말인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정도가 아니었다.
안찰사와 안대관은 전부 다 끝났다고 생각하며.
눈물을 쏟아 내고.
자신의 몸에 감기는 오라를 순순히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