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200화 (201/270)

200화

“으아아아악! 아는 것은 전부 말했다! 이제 제발 그만! 끄아아악!”

“웃기는 소리. 아직 한참 멀었다. 이놈들 털어도 계속 나오는 것을 보니 저지른 악행이 끝이 없구나!”

“아아아아아악!”

손가락이 마디마디가 잘려 나가며 피를 튀었다.

고문의 시작은 손톱 밑을 대바늘로 파고.

너덜너덜해지면 손톱을 통째로 뽑았다.

그리고 열 개의 손톱이 모두 빠져 버리자.

이후에는 손가락의 한 마디씩을 자르고 있었다.

안찰사와 안대관의 비명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원래는 수하를 시켜서 고문하던 제형안찰사사의 고문실 의자에서.

이제는 그 스스로가 앉아 세 번에 나뉘어 손가락이 잘려 나가니.

이제는 사라져 버린 검지에 안찰사는 정신을 잃었다.

그러나.

촤아아악!

“푸하학!”

동창 소속의 남자가 차가운 물을 뿌리자 다시 정신이 든 안대관은 또다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악. 살려 줘. 제발! 아니, 차라리 죽여 줘!”

기나긴 복도를 타고 울리는 비명에 남자가 천일영에게 고개를 숙였다.

“조금 시끄러운 점,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괜찮다.”

창의 중에서 가장 높아 보이는 사람이 천일영 앞에 차를 놓았다.

“저는 금의위 지휘사(指揮使 - 금의위를 총괄하는 사람.) 직속 수하 표진봉이라고 합니다. 공자께서 절강성의 승선포정사사를 통해 황태자님께 보내신 편지가 즉시 황제께 전달이 되어서 이번 일을 빠르게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크게 고생한 일까지는 아니다. 다만…….”

“알고 있습니다. 관무불가침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을 것입니다. 안찰사가 공자님께 먼저 손을 대기도 했고 말입니다.”

“또 하나.”

“그것도 이미 처리 중입니다. 백강천이 있는 곳을 숨기고 금의위에서 호위를 붙이는 중입니다. 그리고 제형안찰사사를 급습했던 여인에 대해서도 문제 삼지 않을 것입니다.”

일 처리가 일사천리라는 말도 부족할 정도로 빠르다.

이것만으로도 이 표진봉이라는 사람이 얼마만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인지 가늠되었다.

“사혈련의 귀문살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할 것입니다. 공자님의 행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황태자님께서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라 하셨습니다.”

“여러 가지로 고맙군.”

“다만, 백강천에게는 황실에서 검 의뢰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보호를 받는 처지가 되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성의를 보여야 하는 것을.”

표진봉은 다행이라는 듯 웃음을 지었다.

황실에서 그토록 찾던 백강천을 공식적으로 보호하게 되었고.

안찰사의 비리까지 잡아내어 관리들의 기강을 확실하게 세웠다.

장사로 치면 거액의 이득을 얻은 셈.

“황제께서 언제고 뵙고 싶다 하셨습니다. 상을 내리고 싶다 하셨습니다만.”

“상은 괜찮다. 그리고 나는 황제께서 만날 만한 그릇의 남자가 아니라는 말도 전해 드리면 좋겠군.”

“공자께서 아마 거절하실 거라고 황제께서도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앞으로 이런 일은 황태자를 통하지 말고 직접 연락하라 하셨습니다. 황제께 직통으로 날아가는 참매가 공자님께 날아올 것입니다. 그 녀석은 오른팔이 아니라 왼팔을 들면 날아들 것입니다.”

“황제께서도 별난 것을 생각하시는군. 참매는 돌려보낼 수 없으니 결국은 데리고 있으라는 것인가.”

“그런 셈이지요.”

표진봉이 입술을 비스듬히 기울여 웃으며.

탐난다는 듯 천일영을 훑어보았다.

‘황제가 보고 싶다 한 이유를 알겠군. 황실 주변에서 알짱거리는 인간들과는 격이 다르다.’

하지만 길들일 수 없고, 감당하지 못할 사람도 있다는 것을 잘 아는 표진봉은 이내 마음을 비웠다.

“나는 약속이 있어서 가야겠군. 늦으면 안 되는 약속이다.”

“공자께서 감옥에 가두어진 것에 대해서는 아직 사죄하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괜찮다. 내 존재도 잊고 오직 안찰사와 상단주에 대한 일만 기억하거라.”

“알겠습니다.”

표진봉은 고개를 숙였다.

재물과 명성에 관심이 없고.

미련조차 두지 않는 사람이 가장 무서운 법.

이럴 때는 물러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천일영을 배웅했다.

* * *

천일영은 바닷가로 향했다.

어느 바닷가에서 기다리겠다고 남궁무애는 딱히 말을 하지 않았지만.

기감을 펼치지 않아도 천일영은 남궁무애가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짙게 우거진 나무 사이를 걷고.

풀 밟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지는 수풀을 지나자.

쏴아아아.

모든 것을 투명하게 비칠 만큼이나 맑은 햇살이 내리쬐는 바닷가가 나타났다.

푸른 물살이 가득하고.

멀리에는 바다가 구름을 반사하듯 청명한 곳.

그리고 그곳에는.

정말로 남궁무애가 있었다.

첨벙. 첨벙.

바짓단을 걷고.

바닷물에서 맨발로 돌아다니는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남궁무애는 한참을 물속을 들여다보고.

혼자서 웃기도 하더니.

조개를 하나 들어서 몸을 일으키다가 천일영과 눈이 마주쳤다.

“약속대로 왔구나.”

“서둘렀는데도 조금 늦게 왔다.”

“괜찮아. 와 줬다는 게 무엇보다도 기쁘니까.”

남궁무애가 물살이 이는 바다에서 양팔을 벌리고는 꽃처럼 화사하게 웃었다.

“너도 들어와. 물이 시원해.”

“그럴까.”

천일영도 바짓단을 걷고 남궁무애가 있는 바닷물 속에 발을 담그자.

남궁무애가 뛰어오듯 다가왔다.

“전에 보여 주고 싶었다던 거야. 이 조개 말이야. 내가 제일 아끼는 아이거든.”

“뭔가 무늬가 독특하구나. 평소 보기 힘든 모양이로군.”

“알겠어? 알아보겠어? 역시 너라면 이해할 거로 생각했어.”

“여기에는 네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있는 곳인가. 이 조개처럼.”

“응. 이 조개들은 친구들이니까 이 장소를 아무에게나 알려 주지는 않아.”

“그렇게 소중한 곳인데도 나에게는 알려 주었다는 거구나.”

“너도 소중하니까 알려 주는 게 당연하지.”

환하게 웃는 남궁무애를 보며 천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알 것 같았다.

‘아이 같은 말투. 작은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도 또한 사람을 죽이는 데는 망설임이 없다. 게다가 항상 멍하게 있는 것도…….’

어딘가 망가지고 뒤틀려 버려서.

부서지고 엉망이 되어 되돌릴 수도 없게 되어 버린.

남궁무애는 바로 천일영의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사람들을 거두고 가족으로 만들었다. 그것으로 잠시나마 망가진 마음을 외면할 수 있으니. 그런데 이 소저는 주변에 사람을 두는 것조차 하지 않고 조개들을 가족으로 삼은 것인가.’

살아오며 무슨 일이 있어 이렇게 망가진 것인지는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던 감정은 너무도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서 동질감을 느낀 것인가. 이 소저도 나에게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고.’

딱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고, 이해받을 수 있는 사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이 사람 말고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일영은 미소를 지었다.

“이 조개의 이름이 무엇이냐. 친구라면 이름 정도는 있을 것 같구나.”

“아! 그거. 바로 그거야. 사실은 이젠 친구들이 너무 많아져서 이름을 지어 주려고 했는데 혼자는 힘들어서 말이야. 같이 해 줄래?”

“물론. 모두에게 이름을 지어 주도록 하지.”

천일영이 남궁무애에게 조개들을 소개받으려 할 때.

푸드드드득.

참매가 하늘에서 천일영을 향해 날아왔다.

흑룡강성에 천일영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하오문 귀주성 지회의 윤의강뿐.

‘뭔가 급한 일이 생긴 것인가.’

남궁무애와의 시간을 방해받은 천일영이 눈살을 찌푸리며 오른손을 들어 참매가 앉도록 했다.

그리고 편지를 펼쳐 보니.

급한 연락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의외로 딱 한 줄만 적혀 있었다.

[공자님 미워요!]

아.

차였네, 차였어.

‘송체란과 이어지지 못하고 지금쯤 피눈물을 흘리고 있나 보군.’

천일영은 피식 웃고.

편지를 대충 구겨서 소매에 쑤셔 박아 버렸다.

그리고 한껏 미소를 짓고 있는 남궁무애와 함께.

해가 질 때까지 조개에 이름을 붙였다.

* * *

다음 날 새벽.

쿠웅. 쿠웅.

멀리에서 들려오는 울림에 금채홍은 잠이 깨어 눈을 비볐다.

“으하아아아암.”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잠시 멍하니 앉아 잠이 깨기를 기다리다가.

금채홍은 화들짝 놀랐다.

‘잠깐. 방금 그 소리는 뭐고, 영기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흩어지는 건 또 뭐지?’

항상 바다에도 소량의 영기가 존재했는데.

그것이 수십.

아니 수백 방향으로 흩어진다.

‘바다에서 무슨 일이?’

금채홍은 빠르게 옷을 입고 금룡참월하검을 집었다.

그리고 객잔을 지나 바닷가로 나오자.

이미 백유화와 타진표, 그리고 차경철이 도철용과 천량도사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왜 바다에서 불길이!”

“채홍이 나왔구나. 아무래도 왜구들이 침입을 시도하는 모양이다. 그것을 군함이 막는 것이고.”

“이렇게 항주에 근접하도록 왜구들이 쳐들어온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해적과 왜구의 합동인 것 같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새벽에 기습한 것이라 군함이 왜구를 전부 막아 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 말은.

이제 곧 이곳이 전쟁터로 변한다는 뜻이다.

금채홍이 급히 말했다.

“건청 오라버니와 월영 오라버니, 그리고 하린 언니를 깨워야겠어요.”

“나는 일단 여주인과 혜령이, 그리고 서란이를 피신시키겠다. 예랑도.”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별유천지의 바로 앞 바닷가에 포탄이 떨어지며 폭발을 일으켰다.

백유화가 주변을 보며 큰 소리를 쳤다.

“누구 다친 사람 있냐!”

“저는 괜찮아요. 그런데 어째서 해적과 왜구가 함포를? 화약과 대포는 황실에서 관리하는 것이라 손에 넣을 방법이 없을 텐데! 잠깐…….”

순간 금채홍의 머리에서 떠오른 생각 하나.

해남도에서 도지휘사 오도문이 빼돌린 군함.

그것을 결국 끝까지 찾아내지 못했다고 유의선 승선포정사사가 말한 것이 기억났다.

해남도 사건 때.

해남파가 승리하자 왜구들과 해적의 침입이 일제히 멈췄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생각하니.

아마도 왜구들이 날리는 포는 해남도의 군함에 있었던 것이 분명한 것 같았다.

‘지천번회가 해남파의 일에 관여하면서 군함의 무기를 빼 간 것이구나. 그럼 이 해적과 왜구도 지천번회의 명을 듣는 것이란 말인가.’

그러나 금채홍은 일단 고개를 저었다.

지천번회의 일은 나중에 생각해도 될 일.

“저건 분명 천자뇌포일 거예요. 군함의 함포 이외에도 갑판에서 사용하기 위해 천자뇌포를 실어 놓으니까요. 해남도에서 사십 척의 군함이 사라졌다고 했었으니까 천자뇌포가 수백 개에 달하는 양일 겁니다.”

“그 말은…….”

“왜구들이 쓰는 작은 배에서도 얼마든지 포탄을 날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영감으로 느끼건대 왜구의 수가 사백에서 오백 척쯤 되네요.”

“생각보다 빠르게 왜구들이 항주 땅을 밟겠구나.”

그때 애영과 화영, 건청과 월영이 급히 뛰어나왔다.

단옥도 그 뒤를 헐레벌떡 따라왔다.

백유화가 말했다.

“애영과 화영은 의실을 완벽하게 준비해라. 오늘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바쁠 테니까.”

“네.”

“그리고 단옥은 여주인을 모시고 혜령과 서란이와 함께 숨어라. 나는 타진표 님과 함께 별유천지와 손님들을 지키겠다.”

백유화의 말이 끝나자 금채홍이 말을 이어받았다.

“차경철 님과 건청 오라버니, 월영 오라버니와 하린 언니는 저와 함께 항주로 들어오는 왜구들을 막아요. 천량도사님과 방주님은 워낙에 강하시니, 알아서 움직이시면 될 겁니다.”

“그러지. 가자.”

그때.

예랑이 금채홍의 곁에 섰다.

금채홍은 예랑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도 얼른 피해.”

“컹. 컹.”

예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같이 가겠다고?”

“컹. 컹.”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짖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랑은 말을 알아듣는 것 같다.

금채홍은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여 결국은 예랑과 함께 몸을 날렸다.

* * *

도지휘사 척계광은 사방으로 몰려드는 왜구들과 해적들을 보며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원앙진으로 왜구들과 해적들을 막아서라. 여기에서 뚫리면 백성들이 왜구와 해적들의 손에 죽게 된다. 너희들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백성을 지켜라!”

“네!”

작은 배들로 덩치가 큰 군함 사이를 뚫고 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이미 군항의 옆으로 배를 대고 들어서는 왜구와 해적들이 수백 명.

척계광은 마음을 굳게 먹고 명을 내렸다.

“금군 이백을 군항 쪽으로!”

“도지휘사님, 그렇게 하시면 이곳이 뚫립니다. 도지휘사님의 목숨도 위험해진다는 말입니다.”

“내 목숨 따위 무슨 상관이더냐.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명을 그새 잊었느냐.”

“크윽, 알겠습니다.”

부관은 이를 악다물면서도 명에 따라 빠르게 병력을 이동했다.

척계광은 자신의 앞이 훤히 뚫리는데도.

상관없다는 듯 그 자리에서 또 다른 명을 내렸다.

“뒤에 있는 금군 삼백은 군항의 뒤편으로 방어진을 쳐라. 단 한 명이라도 왜구를 항주에 들이면 안 된다.”

“알겠습니다.”

이곳이 마지막 방어선이다.

바다에 나가 있는 군함을 불러들일 시간이 없었다.

그때.

쿠웅. 쿠웅. 쿠웅.

척계광이 서 있는 바로 앞으로 해적들의 배가 수십 척 도달했다.

배에서 내린 해적이 척계광의 옷을 보며 웃음을 짓고.

검을 어깨에 두르며 입을 열었다.

“도지휘사인가. 이거 처음부터 큰 물고기를 낚게 되었군.”

“젠장, 군항의 수문으로 몰려들던 놈들은 미끼인가. 아니, 양동 작전이었군. 이곳까지 빠르게 몰려들다니. 처음부터 내 목이 목적이었나.”

“뭐 그것까진 알 것 없고. 이제 죽어 주셔야겠군.”

척계광은 자신을 바라보며 누런 이를 드러내는 수백의 해적들을 보며.

그 자신도 이를 악물었다.

이제는 죽거나.

또 죽임을 당하는 일뿐.

살아 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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