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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207화 (208/270)

207화

당과를 들고.

해적이 쏜 포탄에 무너진 집을 공사하려고 쌓아 놓은 자재 위에 걸터앉자.

금채홍은 남궁무애를 멀뚱히 바라봤다.

존재감 없이 흐린 기운.

뭔가 가녀리고 파리 한 마리 죽이지 못할 것 같은 인상.

걸터앉은 곳에서 다리를 달랑거리며 맛있게 당과를 먹고 있는 모습은 아이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런 사람이 온몸에서 피 냄새가 난다고?’

어리숙해서 봉변이나 당하지 않고 살면 다행일 것 같은데.

“저기…… 그, 소저도 사람을 죽여 본 경험이 있으신 건가요?”

“이거 맛있다. 확실히 흑룡강성처럼 외진 곳보다는 대도시인 항주가 더 맛있게 당과를 만드네. 잠깐? 뭐라고 물어봤어? 당과가 너무 맛있어서 정신이 팔려 못 들었네.”

“소저도 사람을 죽여 본 경험이 있냐고…… 물었어요.”

다시 한번 질문을 하면서도 괜히 물었나 싶다.

‘이런 맹해 보이는 소저가 사람을 죽여 봤을 리가.’

남궁무애는 막대에 끼워진 당과를 쏙 빼 오물거리며 대답했다.

“사람을 죽여 본 경험이 있냐고? 있기는 하지. 만 번 정도?”

“네에? 만 번이요?”

“적게 잡아서…… 만 번.”

휘둥그레지는 눈으로 남궁무애를 바라보니.

그녀는 당과에 정신이 팔려서 당황스러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이런 바보 같은 사람의 말을 믿느니 예랑이 말을 할 줄 안다고 하는 게 더 사실 같겠네.’

허탈한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이 사람을 왜 따라 나왔을까 싶다.

부우우웅.

금채홍이 당과를 먹지 않은 채 들고만 있었기 때문일까.

달콤한 냄새를 맡은 말벌 두 마리가 금채홍의 당과 곁으로 다가왔다.

제법 공격적인 소리를 내며 주변을 붕붕거리는 말벌이 신경 쓰였는지.

남궁무애가 금채홍의 손을 잡았다.

“당과 하나 더 먹을래. 같이 가자.”

“그냥 제 거 드세요. 저는 먹지도 못하는걸요.”

금채홍이 자신의 당과를 내밀려다가.

순간 급히 움직이면 놀란 말벌이, 맹꽁이 같은 표정으로 당과 막대기를 핥고 있는 소저를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리는 순간.

스사사삭.

당과 주위를 돌고 있던 말벌 두 마리가 깨끗하게 반으로 갈라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툭.

조금도 베인 면의 결이 상하지 않고.

벌의 몸속이 깨끗하게 보이는 상태로 잘려 나간 채였다.

금채홍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헉! 보이지 않았다. 검집에서 검이 빠져나오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어. 아니! 그 전에 이 사람이 움직이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는데?! 이게 초절정 고수라 할지도 가능한 경지인가?’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금채홍의 모습에.

남궁무애는 씨익 웃으며 대답이라도 하는 듯 말했다.

“이젠 믿어?”

“네, 미…… 믿어요.”

순간 이해가 갔다.

왜 공자님이 이 사람을 곁에 두는지.

울렁거리는 마음이 금채홍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금채홍은 실례인 줄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남궁무애의 소매 끝을 잡아 세웠다.

“고…… 공자님과는 어떤 사이세요?”

“흐음? 그게 궁금해?”

“아니…… 궁금하지는 않은데……. 조금 궁금하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하지만…….”

“당과.”

“네?”

“그 당과 먹으면 말해 줄게.”

“하지만 토할 텐데요. 길거리를 더럽히느니 안 먹는 게…….”

“길이 더러워질 것을 걱정한다면 토사물을 내 손으로 받아 줄게. 그럼 되지?”

“어떻게 손으로 받아 달라고 해요!”

“그렇구나. 내가 공자와 무슨 관계인지 궁금하지 않구나. 겨우 그 정도의 궁금증이었나 보네.”

“에엣?”

남궁무애가 등을 돌려 또다시 당과를 사러 가려 하자.

금채홍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막대기까지 절반을 씹어서 당과를 베어 물었다.

콰작.

오물오물.

너무 급해서 금채홍은 막대기째 당과를 삼켰다.

꿀꺽.

“머…… 먹었어요.”

“막대기까지 먹을 줄은 몰랐네. 그 정도로 궁금했어?”

“아니에요. 이건 그냥 어쩌다가…… 그래요! 막대기가 얇아서 당과를 베어 먹는 동안 나도 모르게 입속으로 들어간 거……예요.”

궁색한 변명을 하자니, 온몸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지만.

남궁무애는 그와는 별개로 금채홍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어. 이번에는 안 토했네.”

“엣? 저…… 정말로 그러네요.”

“이제 내 대답을 들으려면 남은 당과를 다 먹어야지.”

“꼭 대답해 주셔야 해요?”

쩍.

크게 입을 벌리고 당과를 넣으려는데.

누군가가 금채홍의 팔을 덥석 잡았다.

“소저! 그동안 한참 찾았는데 이제야 뵙게 되네요!”

“네? 누구시지요?”

“저예요. 몰라보시겠어요?”

잠시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금채홍은 말을 건 소저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보았다.

“전에 해적들한테 인질로 잡혀 있을 때 소저가 구해 주셨잖아요. 그때는 너무 놀라서 소저를 밀치고 제가 도망을 갔었는데 이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 정신을 차리고 나서 한참을 찾았는데 이제야 만났네요.”

“찾을 것까지야. 그냥 당연한 일을 했는데요.”

“아니에요. 저희 부모님들도 소저를 얼마나 찾았는지 몰라요. 저는 강예소라고 해요. 여기에서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집으로 가요. 우리 집은 항주에서 상단과 비단 가게를 하고 있어요. 부디 제 목숨을 구해 주신 은혜를 갚도록 해 주세요.”

“괘…… 괜찮은데.”

그러고 보니 전에 인질로 잡혔을 때는 온갖 핏물과 더러운 것이 묻어 있어서 몰랐는데.

‘엄청 고운 비단옷을 입고 있네. 상단과 비단 가게를 한다더니 잘사는 집 소저였구나.’

깨끗하고 뽀얀 얼굴까지 더하니 존재 자체가 화려했다.

그 덕에 해적의 표적이 된 것이겠지만.

“빨리 우리 집으로 가요. 어머니와 아버지도 소저를 찾고 있단 말이에요.”

“그…… 그렇게 말해도…….”

강예소는 제법 큰 목소리를 내며 금채홍의 팔을 끌어당겼다.

그 모습이 지나다니던 사람들의 이목을 쏠리게 했는지.

눈 두 번 깜박일 시간이 지난 후에 보니 금채홍과 남궁무애, 그리고 강예소 사이에 제법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그중에서 한 사람이 말했다.

“앗. 저 소저, 말쑥해져서 못 알아볼 뻔했네. 그때 피 칠갑하고 검을 든 채 해적들을 베어 내던 사람 아닌가!”

“오! 소저, 한참 찾았습니다. 제가 해적에게 쫓길 때 구해 주셨었지요. 은혜를 입었는데 부디 갚을 수 있도록 해 주시지요.”

“어머, 어머. 전에 나하고 아이를 구해 주신 분이시잖아요. 저도 한참 찾았답니다. 소저! 정말로 고마워요.”

순식간에 구름처럼 사람들이 에워쌌다.

금채홍에게 목숨이 구해진 사람.

쫓기고 있을 때 도움을 받은 사람.

또한 단순히 금채홍이 해적들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혈투를 벌였다는 데 감동한 사람들까지.

수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금채홍을 에워싸고 한마디라도 더 말을 걸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소저가 항주를 구했소!”

“다른 지역보다 항주의 피해가 훨씬 적다더니 소저 덕분이었구먼.”

“목숨을 걸고 해적들과 싸우다니 대단하네!”

몰려든 사람들의 함성이 계속 커지자.

시장 한편에서 망치질하던 대장장이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나왔다.

도대체 뭔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서 고함을 질러 대는지.

대장간 주인이 까치발을 들고 바라본 순간.

‘히익! 저 소저는 전에 검을 사러 왔던 사람 아닌가! 너무 무서워서 지렸었고, 이후 집사람한테 끌려가서 다음 날 아침까지 죽도록 맞았는데!’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

그때 집사람에게 맞았던 것을 생각하면 식은땀이 난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집사람이 치켜든 주먹의 기억과 금채홍의 행동이 겹쳐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날카로운 검날을 혀로 핥던 미친년 아닌가!”

대장장이의 말이 비명처럼 울리자.

금채홍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닫았다.

싸악.

정적이 흐름과 동시에 수백의 사람이 대장장이를 바라봤다.

그중에서 한 사람이 물어봤다.

“검날을 핥아?”

“저 소저가 거…… 검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알아본다고 혀로…….”

“역시!”

“역시?”

질문을 했던 사람이 금채홍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항주를 구한 영웅은 검날을 보는 방법도 다르구먼! 혀로 핥아서 알아본다니!”

“그게 아니라 미친년이라니까!”

대장간 주인은 이를 악물고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미친년이면 어때! 그 미친년이 몇 명의 사람을 구한 줄 아는가? 저 소저는 항주의 은인이란 말일세!”

“항주의 은인?”

대장장이가 되묻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목청 높여 환호성을 질렀다.

“미친년이 항주를 구했다!”

“미친년 만세! 미친년이 있는 이상 항주는 안전하다!”

“미친년이 사람들을 구했어!”

“미친년! 미친년! 미친년!”

와아아아아.

또 한 번 함성이 터지자 금채홍은 죽고 싶었다.

‘히힝. 항주 제일의 미친년이 되고 싶다고 말은 했어도 이런 걸 원한 게 아니란 말이야!’

뭔가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은 기분이었다.

명성을 얻은 것 같은데 바로 땅바닥에 떨어져 진창을 구르는 느낌.

금채홍이 끊이지 않는 ‘미친년’ 함성에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사이.

사람들은 금채홍을 둘러싸고 손에 든 것을 하나씩 건넸다.

은혜를 갚고 싶었던 듯.

금채홍은 처음에는 거절하려고 했지만 뭔가를 주려는 사람들의 까마득한 줄을 보니 포기하고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최소한 ‘미친년’ 함성이라도 빨리 끝나게 만들고 싶었다.

“성의네. 받아 주게.”

“고마워요. 가진 게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해요.”

“귀한걸세. 꼭 이걸 먹고 몸도 튼튼해지게.”

“가진 건 없지만 악수라도……. 미친년님의 손을 한번 잡아 보는 게 소원이에요.”

수많은 사람이 오갔다.

그중에는 적잖게 큰돈을 준 사람도 있었고, 가진 게 적은 사람들은 음식을 손에 가득 쥐여 줬다.

금채홍은 그것들을 받다 못해 남궁무애를 바라봤다.

“도와줘요! 손이 모자라요.”

“도와줄게. 근데 먹던 당과는 어디 갔어?”

“네?”

금채홍이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자 손에 들고 있던 당과는 어디론가 사라진 이후였다.

남궁무애가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과를 다 먹지 못했으니 공자님과의 관계는 알려 주지 못하겠는데?”

“아아악. 안 돼요. 당과!”

금채홍이 주변을 미친 듯이 둘러보는 사이.

남궁무애는 아무도 모르게 입 안에서 오물오물 씹던 것을 목 안으로 삼켰다.

금채홍이 정신없이 물건을 받는 동안에 몰래 손에서 슬쩍 당과를 빼내어 먹어 버렸다.

모든 증거가 사라지자 남궁무애는 시침을 뚝 떼고.

금채홍과 함께 당과를 찾는 시늉을 했다.

* * *

한동안 인파에 시달리고 결국은 수백 명이 주는 물건을 받은 것도 모자라.

비단 가게 딸 강예소가 별유천지에 금채홍이 살고 있다는 언질을 강제로 받아 간 이후.

강예소의 부모가 찾아와서 한가득 선물까지 주고서야 금채홍은 한숨을 돌렸다.

지금까지도 귓가에는 ‘미친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꼬르륵.

얼마나 시달렸는지 배에서 소리까지 난다.

그러고 보니 당과 반을 삼킨 것이 며칠 동안 먹은 것의 전부.

객잔 식구들이 다들 그 소리가 반가운지 웃었다.

“밥 먹을래? 뭐든지 만들어 줄게.”

“정말요?”

아직 먹는 것은 자신이 없었지만.

‘한 입만이라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객잔 식구들도 걱정하고 있으니까 먹는 척이라도 하자.’

금채홍이 주문을 하려고 입을 벌렸다.

그런데 엉뚱하게 대답은 남궁무애에게 나왔다.

“탕초리척. 경장육사. 마파두부. 동파육. 고노육.”

“그 많은 걸 드시게요?”

“응, 그리고 주문한 건 각각 두 개씩. 채홍이와 나한테 똑같이 줘.”

“네에?”

영 수상쩍은 주문이었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건청이 주방으로 들어서고 일각이 지나자.

하나씩 음식들이 나왔다.

똑같은 상차림으로 나란히 앉아 있는 남궁무애와 금채홍의 앞으로 음식이 나오자.

금채홍이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저 아직 음식을 먹을 자신이 없는데, 이렇게나 많이 주문하셨어요? 남기면 아까운데…….”

“나는 내 앞에 있는 걸 다 먹을게. 너는 네 앞에 있는 것을 다 먹어. 그럼 공자님과 무슨 관계인지 알려 줄 테니.”

“정말요?”

“응, 내가 내 음식을 다 못 먹어도 알려 줄게.”

“약속 어기면 안 돼요?”

금채홍의 눈이 빛났다.

조금 전 당과를 잃어버리고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는지.

그때 객잔으로 들어선 백유화와 천일영도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금채홍이 밥을 먹는다는 게 이렇게나 반가운 일일 줄 몰랐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나도 잘 먹겠습니다.”

와구와구.

금채홍은 오직 남궁무애에게 대답을 듣겠다는 일념으로 음식을 마구 먹었다.

비릿하게 피 냄새가 느껴졌지만.

‘대답만 들을 수 있다면 흙이든 철이든 다 먹어 줄 거야.’

정신없이 음식을 넘겼다.

다만 남궁무애는 금채홍과 다르게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먹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오물오물 씹어 넘기는 것을 본 금채홍이 웃음을 지었다.

‘분명 다 못 먹을 거야. 이미 배가 불러 보이는걸?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 먹을 거고.’

남궁무애는 금채홍이 자신을 보는 시선을 느끼며 남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한 수를 감추어 꿍꿍이가 한가득한 음흉한 웃음이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금채홍은 오늘 안에 기어이 공자님과의 관계를 파헤치겠다는 일념으로 음식을 먹는 데에만 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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