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신귀환기-210화 (211/270)

210화

다음 날 늦은 밤.

오랜만에 개점한 별유천지에는 소나기구름같이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아이고, 아무리 익숙한 일이라지만 이만큼의 손님은 감당하기 어렵네.”

주방에서는 곡소리가 날 만큼 힘들었던 숙수들이 너무 힘든 탓인지 꼼짝도 못 하고 쓰러져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을 정도.

피난민들을 돕는 동안 문을 닫은 별유천지의 음식이 그리웠던 사람이 많은 탓도 있었겠지만.

항주를 구한 금채홍이 별유천지에 있었기에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고 온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

느닷없이 별유천지 앞에서 ‘미친년’ 함성이 터지는가 하면, 남자 손님 중에서는 금채홍과 악수한 손을 보물처럼 바라보기까지 했으니.

“채홍이가 복덩이네.”

천이영이 특히 신경 쓴 음식을 금채홍 앞에 쌓았다.

“많이 먹어. 모자라면 더 가져올 테니까.”

“이것도 너무 많아요. 그나저나 가은 언니는 왜 말도 안 하고 간 걸까요. 같이 먹으면 좋았을 텐데.”

“사정이 있는 거겠지. 그래도 오라버니와는 인사를 제대로 했다고 하고, 선물로 준 옷도 기뻐했다니까 그걸로 된 거 아니겠니.”

“그래도 서운하네요. 언니 덕분에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제는 거리낌 없이 음식을 씹어 삼키는 금채홍의 얼굴에 아쉬운 빛이 감돌았지만.

혜령을 재우고 객잔으로 들어선 차경철은 금채홍의 말에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그 소저가 무섭더군.”

“왜요? 가은 언니 좋은 분이세요.”

“그 소저 나이가 스물다섯쯤으로 보이는데 솔직히 서로 싸우게 되면 내가 이길 거라는 느낌이 안 든다. 밤에 혼자 그 소저와 초식을 나누는 걸 상상해 봤는데 일 초식이 끝나기 전에 내 목이 잘리는 것밖에는 다른 길이 안 보이더군.”

“…….”

분명 두 마리의 벌을 자르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했지.

‘언니가 보통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중원 오십 대 고수인 차경철 총관님이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했는데 차경철은 본능적으로 위험한 냄새를 맡았던 모양이었다.

짐승 같은 감각을 가진 남자 같으니라고.

천이영은 음식을 가지고 나오다가 차경철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러길래 무공 연습을 평소에 하면 좋았잖아요. 뭐, 무뢰배들을 쓰러트릴 만큼의 실력은 있지만…… 그래도 스물다섯 먹은 소저에게 질 정도라면 앞으로 수련에 힘 좀 쓰세요.”

“끄응.”

차경철이 중원 오십 대 고수라는 것을 모르는 천이영이 조금은 타박하듯 말하자.

마치 비에 젖고 오래도록 굶은 강아지 같은 슬픈 눈빛으로 차경철이 고개를 숙였다.

‘끄응’ 하는 소리도 강아지가 내는 ‘끼잉’ 소리로 들린 것은 착각일까.

천이영이 급히 입을 열었다.

“아…… 아니 그냥 한 말인데 그렇게 풀이 죽을 것까지는 없잖아요. 그냥 앞으로도 제가 시장에 가거나 볼일을 볼 때 지켜 주려면 무공 실력을 더 늘려야 하지 않을까 해서…… 한 말인데…….”

“앞으로도? 그럼 계속 내가 지켜도 된다는 말인가요?”

“그냥 거…… 건청도 바쁘고 하니까 매일같이 노는 그쪽이 따라오라는 거죠.”

“그 앞으로가 언제까지입니까? 계속 쭈욱?”

“모…… 몰라요. 암튼 무공 수련이나 더 하세요. 그리고…….”

천이영이 차경철 앞에 동파육을 내려놓았다.

“그…… 열네 시진 동안 푹 삶은 동파육이에요. 어제 구해 줘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만든 거니까……. 분명 다시 말하지만, 그냥 고마워서 만든 거예요. 다른 이유는 없고요!”

조금은 달아오른 얼굴로 천이영이 주방을 향해 후딱 들어갔다.

차경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이영이 가져온 동파육은 정말로 대단했으니까.

한눈에 보기에도 빛깔이 보통의 동파육과는 차원이 달랐기에 금채홍이 슬쩍 젓가락을 가져다 대자.

타악.

차경철이 자신이 든 젓가락으로 금채홍의 젓가락을 튕겨 냈다.

“이건 안 준다. 내 거다.”

“양이 엄청 많은데요? 다 드실 수 있으시겠어요? 그러지 말고 저 한 입만요.”

“저리 가라. 배가 터져 죽는 한이 있어도 내가 다 먹을 거다.”

“으아, 왕 치사.”

“치사하고 나쁜 놈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이것만큼은 절대로 못 준다.”

젓가락으로 동파육의 기름진 부분을 잘라 내자.

스르륵 풀리며 부드럽게 갈라져 잘 익은 속살이 드러났다.

후후 불어서 식힌 후 입 안에 넣고 씹으니.

“후아. 녹는다, 녹아. 신선이 먹는 음식도 이것보다 훌륭하지는 못할 거다.”

“쳇, 나도 꼭 먹어 보고 싶었는데.”

투덜거리면서 포기했다는 듯 금채홍이 고개를 돌렸다.

피잉! 슈아악.

금채홍은 순간 차경철의 경계가 줄어들자, 다시 젓가락을 날렸다.

“이때다!”

“어딜 감히!”

타닥. 타악. 타다다닥. 타다닥.

동파육을 가운데 두고 젓가락끼리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금채홍은 무공이 차경철보다 한참 아래다 보니 어느새 양손에 젓가락을 들고 공격을 하고 있었고.

차경철은 이를 악물고 금채홍의 젓가락을 튕겨 내기를 반복했다.

“한 입만 내놔요!”

“안 된다고 했다. 죽어도 못 준다.”

드르륵.

천일영이 예서란을 안고 들어오면서 차경철과 금채홍의 희한한 짓에 궁금한 듯 입을 열었다.

“뭐 하고 있느냐? 동파육을 가운데 두고.”

“그게, 천이영 여주인이 저에게 동파육을 열네 시진 동안 삶아서 줬는데 채홍이가 빼앗아 먹으려고 해서요.”

“아! 그 동파육이 너 주려고 만든 거구나. 타지 않도록 불 조절을 하면서 잠도 안 자고 만들길래 누굴 주나 했더니만.”

“잠도 안 자고 만들었다고요?”

천일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념을 넣고 간이 잘 배도록 오랫동안 삶는 것이 원래의 동파육이다. 그렇게 만들면 고기도 부드러워지고 정말로 맛이 좋지. 하지만 불 조절이 까다로워서 일반 객잔은 기껏 세 시진 삶으면 오래 조리한 거다. 제대로 만들려면 열 시진 이상 매달려서 불부터 양념 양까지 꼼꼼히 확인해야 하니 잠조차 잘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 그렇다면 이 동파육은…….”

감탄한 차경철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태어나서 이렇게나 정성이 가득한 음식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나 하나만을 위해서 이런 음식을…….’

감격에 겨워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을 때.

천일영이 차경철의 어깨에 손을 걸치고 은근한 표정을 지었다.

“나 하나만 줘라.”

“으힉!”

“주기 싫은 것이냐. 많이도 아니고 딱 하나만 달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크윽, 천마님께서 달라고 하시면 드려야 하는데…….”

“주기 싫으면 솔직하게 말하지 그러느냐. 뭐 이젠 천마도 아니니까 내 말을 들어야 할 이유도 없고.”

“그게 아니라…….”

차경철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이게 어떤 음식인데.

천이영이 자신을 생각하며 만든 음식인데.

‘천마님이 달라는데 안 드릴 수도 없고.’

눈을 질끈 감고.

차경철은 다른 접시에 동파육 한 덩이를 옮겼다.

차마 못 보겠다는 듯이 천일영에게 건네는 동파육에서 고개를 돌리고.

건네는 손은 부들거리며 떨렸다.

“크윽, 여…… 여기 있습니다.”

“하하하, 됐다. 그냥 네가 먹거라. 그냥 한번 해 본 말이다. 젓가락을 들고 싸울 정도라서 놀려 보려고 했다.”

“정말입니까. 천마님! 감사합니다. 영원히 따르겠습니다.”

동파육 한 덩이에 영원히 따른다니.

‘이 녀석, 정말로 이영이한테 진심인가 보네.’

신랑감으로는 차경철만 한 사람이 드물기는 했다.

‘잘생겼지. 돈 많지. 지위도 높지. 성격 좋지. 머리 좋지. 게다가 명문가의 자제다. 저음의 듣기 좋은 목소리에 무공도 나무랄 데 없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잘 챙기고 한 여자만 바라볼 사람이지.’

천일영이 입으로 동파육을 넣는 차경철에게 말했다.

“아픔이 많은 아이다. 내 동생 울리면 죽을 줄 알아라.”

“쿨럭, 쿨럭. 캑캑. 천마님! 안 울립니다. 여주인이 저를 울리면 울렸지요.”

“그래, 넌 좀 그만 울어야 할 것 같다.”

동파육을 집어 올리며.

눈물 한 바가지 흘리고.

동파육을 한 입 먹고.

눈물 두 바가지 흘리고.

천일영은 이런 성격으로 천마신교의 총관을 참 잘도 했다 싶어 고개를 가로저으며 예서란에게 말했다.

“오늘도 머리를 빌려 줘서 고맙구나.”

“괜찮습니다. 덕분에 머리카락이 전부 눌리기는 했네요. 오늘은 한 시진하고도 반이나 쓰다듬으셨으니.”

호선을 그리며 웃는 예서란의 눈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정을 찾던 천일영보다 더 만족한 눈빛이었다.

‘정말로 고양이가 될 것 같네.’

예서란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방으로 돌아가자 천일영도 몸을 일으키고 방으로 가려 하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문을 바라봤다.

“손님이구나.”

“네? 이 늦은 밤에요? 제 기감에는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요.”

“고수다.”

쿵. 쿵. 쿵.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객잔의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천일영이 말했다.

“채홍이, 네가 나가 보거라. 아무래도 너를 찾아온 사람 같구나.”

“네에? 이 시간에 저를 찾아올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금채홍이 몸을 일으켜 달려가 문을 열었다.

벌컥.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얼굴.

인자하고 온화해 보이는 그 모습에 금채홍이 반가운 듯 웃음을 지었다.

“스승님!”

“급하게 왔는데도 늦은 시각에야 도착했구나. 민폐가 아닌지.”

“아니에요. 어서 들어오세요.”

금채홍이 나이 많은 여승려의 손을 잡아 안으로 이끌었다.

그녀는 천일영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였다.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저는 아미파의 주지 심라경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채홍이를 데리고 있는 천무탁이라고 한다. 차라도 내오라 할 테니…… 아니, 아직 식사하지 않은 것 같으니 음식을 준비해 달라고 하지.”

“감사합니다.”

천일영이 주방에 있는 천이영에게 고기가 안 들어간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사이.

금채홍과 심라경은 탁자에 마주 앉아 웃음을 지었다.

“네가 갑자기 뛰쳐나간 후 걱정을 많이 했는데, 편지가 와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죄송해요. 제가 연락이 많이 늦었어요.”

천일영과 별유천지 가족 몰래 청해성으로 떠날 때 아미파로 가는 표국에 보낸 편지가 얼마 전에야 도착한 모양이었다.

‘사실은 답장 정도만 올 줄 알았는데 직접 찾아오시기까지 하다니.’

무공이 빠르게 늘지 않는 금채홍이 아미파의 동문들에게 무시를 당할 때.

언제나 항상 위로해 주며 무공을 가르쳐 주시던 상냥하신 분이다.

그것도 속가제자였던 자신에게 주지인 그녀가 직접 가르친 것.

덕분에 금채홍은 내공이 쌓이지 않는 체질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동문보다 훨씬 빠르게 일류 고수의 경지에 들어설 수 있었다.

“스승님의 얼굴이 좋아 보이는 것이 그 무엇보다 다행입니다.”

“네 얼굴도 좋아 보이는구나.”

심라경은 금채홍의 손을 꼭 잡았다.

“돌아오거라. 네 동문도 너를 기다리고 있다. 또한 네가 무공의 성취가 빨랐었는데 더욱 열심히 수련하여 절정 고수의 경지에 들어서야 하지 않겠느냐. 아미파에서 무공을 배웠는데 남은 무공의 수련도 아미파에서 계속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다.”

“아…… 지금은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요. 스승님, 저는 여기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안 될 말이구나. 여태 배워 온 무공의 수련을 중단한다는 말이냐.”

“여기에서도 무공의 수련은 하고 있는걸요.”

금채홍이 애써 웃으며 말을 하자 심라경의 얼굴에서 인자함이 사라졌다.

“저 옆에 앉아서 동파육을 먹고 있는 사람의 몸에서는 분명 마공의 기운이 느껴진다. 저자가 너에게 무공을 알려 주는 사람이냐? 설사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파 중에서도 그 긍지가 높은 아미파의 주지로서 이런 환경에서 무공을 배우는 것은 허락 못 한다.”

“스승님!”

“너는 사기와 마공으로 수련을 하려는 것이냐. 그것이 너를 망치는 길임을 정녕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네가 따라오지 않겠다면 강제로라도 너를 데려가겠다.”

단호한 심라경의 말에 금채홍은 스승과 마주하던 시선을 외면했다.

‘이러려고 스승님께 편지를 보낸 것이 아닌데. 우리 공자님은 내 생명의 은인이고 정말로 좋은 분인데.’

하지만 아미파의 주지가 겨우 금채홍의 말 몇 마디에 물러서지는 않을 게 뻔했기에.

금채홍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일단 식사부터 하는 게 좋겠군.”

“아…… 감사합니다. 제가 흥분해서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부디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괜찮다. 말하다 보면 그런 일이야 흔하지 않더냐. 편하게 말하거라.”

“공자님!”

언뜻 천일영이 심라경의 편에 서서 말을 하는 것만 같아 금채홍의 얼굴이 빨개지며 높은 목소리가 튀어 나갔다.

“아 참, 채홍아. 가은이가 전해 달라고 하더구나. 나와 가은이가 무슨 관계인지 승부에서 이기면 알려 준다고 했다던데. 한 번도 네가 이긴 적이 없다면서 원한다면 나한테 대신 대답해 주라던데?”

“으엥? 정말요? 지금 당장 말해 주세요, 공자님!”

천일영은 벌떡 의자에서 일어나 커다란 눈이 끔뻑거리며 떴다가 감기는 게 재미있었는지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친구다.”

“친구요? 정말요? 그, 귀 잡고 뽀뽀하고 그러는 사이 아니죠?”

“뭐냐, 친구하고 귀를 잡고 뽀뽀를 왜 해. 기분 나쁘게.”

“하아! 그랬군요.”

금채홍이 털썩 의자에 주저앉자.

천일영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스승님하고 이야기 잘하거라.”

“……!”

순간 금채홍은 마주 앉은 심라경을 보며 얼굴이 새빨개졌다.

감히 아미파의 주지.

그것도 스승님의 앞인데 버릇없는 행동을 너무도 많이 해 버렸다.

사실은.

천일영이 가은 언니의 이야기를 할 때.

스승님에 대한 것은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날아갔었다.

불쾌한 표정이 한껏 드러나는 스승님의 얼굴을 마주하며 금채홍은 주먹을 꽉 쥐었다.

남가은이 전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을 이상.

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승님을 설득해야 했으니까.

눈이 전에 없이 총기를 띤 금채홍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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