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금채홍은 부드럽지만.
강한 어조의 목소리로 심라경에게 말했다.
“스승님, 방금 식사를 가져오신 분을 보셨는지요. 그분이 제가 지금 모시고 있는 분입니다. 주제도 모르고 아미파에서 뛰쳐나와 돌이킬 수 없이 죽을 지경으로 몰린 저를 살려 주신 분이시고, 또한 제 원한을 풀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억울하게 죽은 제 가족들이 편안히 눈을 감도록 해 주셨습니다. 저는 저분을 평생 모시기로 했습니다.”
“채홍아! 네가 아미파에서 수련을 마치고 이곳으로 돌아와도 되지 않느냐. 일류 고수의 끝자락에 있었던 네 무공이 정체되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최소한 절정 고수가 될 때까지 삼 년 정도 수련을 하고 난 후에도 이곳을 고집한다면 그때는 말리지 않으마.”
“스승님, 저는 이미 절정 고수입니다. 스승님의 말씀대로라면 저는 아마파로 돌아가서 수련을 계속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누구인데 망언을 입에 담느냐! 아미파의 주지이자 네 스승이다. 그런데 감히 얕은 거짓말로 스승을 속이려고 해! 네 몸에서 풍기는 기운이 절정 고수가 아니거늘, 어찌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되는대로 말하는 것이냐. 아무래도 이곳에서 나쁜 짓만 배운 모양이구나! 지금 당장 너를 데리고 나가야겠다.”
아끼는 제자에 대한 실망이었는지 심라경의 노한 목소리가 객잔 안에서 메아리치듯 울렸다.
금채홍은 인자한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지는 스승 앞에서 마음이 찢기듯 갈라져 나갔다.
심라경은 금채홍에게도 특별한 사람이었으니까.
‘부모와 다를 것이 없는 분인데 노하게 만들어 버렸네. 걱정하시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입술을 꾹 깨물고.
이대로 오해가 쌓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잠시 마음속에서 생각을 정리한 금채홍이 말했다.
“제가 일류 고수로 보이는 것은 기운을 죽이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저희 공자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고 절대 거짓말이 아닙니다.”
“기운을 죽여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 강한 기운을 보여야 불필요한 싸움에 휘말리지 않는 법이다. 강한 자는 약한 자가 알아서 피하는 법. 절정 고수 정도는 되어야 한 수를 숨기기 위해서 기운을 죽이지만, 그들조차도 너처럼 완전하게 일류 고수처럼 보이게는 못한다. 그러니 네가 절정 고수가 아니라 일류 고수인데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스승님, 저는 정말로 절정 고수입니다.”
“여전히 그 거짓말을 계속하는 것이냐! 하물며 실전에는 익숙하지도 않은 네가 기운을 죽여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 너는 지금 저 공자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이미 수백의 목숨을 거둔 몸입니다. 기운을 죽이는 것은 상대를 방심하게 만드는 책략. 공자님의 가르침에서 불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미 수백의 목숨을 거뒀다고? 어찌 그런 일이! 채홍아! 저 옆에서 마공의 기운을 풍기는 사람과 공자가 너를 이용하는 것이다. 순진한 너를 데리고 살인 같은 짓을 시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냐!”
“아닙니다! 스승님!”
금채홍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비수같이 날카롭고 송곳처럼 뾰족한 금채홍의 목소리는 심라경의 심장을 찌르듯 파고들었다.
그만큼 강한 말이었다.
“공자님은 저에게 절대로 살인 같은 것을 시키지 않습니다. 사람의 목숨으로 돈을 벌게 하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스승님이시라고 할지라도 그 말씀만은 절대로 참을 수 없습니다.”
“이…… 이제는 대들기까지……!”
금채홍이 어린 시절부터 가르쳤던 심라경이었다.
유순하고 조금은 바보 같을 정도로 순진했던 금채홍이 날 선 표정을 짓자, 불과 일 년이 조금 넘는 세월 동안 얼마큼이나 변모했는지 느껴졌다.
지금 바라보는 금채홍은 예전에 심라경이 아는 그 사람이 아니었다.
“후우, 머리를 식히고 내일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내일은 네 눈을 가리는 거짓으로부터 진실을 보이게 하고 깨닫게 하여 반드시 아미파로 데리고 갈 것이다.”
“스승님이 그 어떠한 말씀을 하셔도 제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있을 곳은 바로 이곳입니다.”
“하아……. 내일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소란을 떨어서 이 객잔에서 묵는 것은 미안한 일이니, 다른 곳에서 하루를 묵고 오마.”
심라경이 몸을 일으키자.
끝까지 믿어 주지 않는 스승님의 앞에서 금채홍은 숨겼던 기운을 풀어내고 날카로운 기운을 사방으로 뿜어냈다.
직접 그 눈으로 확인하라는 듯.
“채홍아!”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일 이야기하자.”
놀란 심라경의 시선이 과거보다 많이 커진 금채홍의 가슴을 보고 이내 단전과 온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지 잠시 망설이는 심라경이었지만, 이내 몸을 돌려 객잔의 문을 벌컥 열고 나가자 금채홍은 곤란한 얼굴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하아, 이게 아닌데. 어째서 스승님께서는 저렇게 실례가 되는 말을 함부로 하신 것일까. 경철 님, 죄송해요. 저희 스승님께서 기분이 상하실 만한 이야기를 하셨네요. 부디 제가 빌 테니까 용서해 주세요.”
“응? 뭐라고 했어?”
입 안 가득 동파육을 물고 있던 차경철이 고개를 들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표정으로 금채홍을 바라봤다.
여전히 동파육에 담긴 정성을 온몸으로 느끼며 열심히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심라경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은 모양이다.
“아니에요. 그런데 혹시 공자님 혹시 못 보셨어요? 방금까지 여기 계셨었는데.”
“말 시키지 마라. 먹느라 바쁘다. 고깃결에 스며든 정성 한 가닥마저도 마음에 품으며 먹고 있는데 한눈을 팔 틈이 있겠느냐.”
“아……. 맛있게 드세요. 근데 진짜 그 많은 걸 거의 다 드셨네요. 보고도 믿기지 않는…….”
원래 차경철은 소식하는 편이어서 금채홍보다도 적게 먹었다.
‘아니지, 이게 아니라 공자님! 사과해야 하는데! 스승님께서 말이 너무 심하셨어.’
간절한 얼굴로 천일영을 찾는 금채홍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조금 전까지 계셨는데 어딜 가신 것이지? 화가 많이 나셔서 방으로 돌아가셨나? 어떡해. 큰일이네.”
천일영을 찾기 위해서 객잔을 뒤지는 동안, 어째서인지 드물게 공자님의 화난 얼굴이 상상됐다.
다른 일은 몰라도.
‘나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은 싫어. 실망하는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금채홍의 발걸음에 간절함이 배어들었다.
* * *
심라경은 밤길을 경공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아미파의 주지에 걸맞은 잠자리를 찾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자 조금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어째서 채홍이가 있는 객잔을 제외하고 다른 곳은 씨가 마른 것처럼 하나도 없는 것이지?’
별유천지에 밀려서 전부 망해 버리고, 객잔을 했던 사람조차 전부 별유천지에서 일한다는 것을 모르는 심라경은 불쾌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다시 채홍이가 있는 객잔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이를 어쩐다. 홧김에 나왔는데 난감하게 되었구나.”
“어차피 별유천지는 만실이라 빈 객실은 없다. 네가 자고 간다고 했어도 내줄 방은 없었으니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말아라.”
“뭐…… 뭣?”
심라경은 느닷없이 어둠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심장이 튀어나올 만큼이나 놀랐다.
‘기감으로도 주변에는 아무도 없어야 할 텐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봤지만, 완벽한 정적처럼 고요함만이 있을 뿐.
여전히 사람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심라경은 침을 삼키며 말했다.
“누구냐! 모습을 드러내라. 나는 아미파의 주지 심라경이다. 감히 내 앞에서 요상한 사도의 무공으로 숨은 것이라면 소용없는 짓. 찾아내서 사지를 갈라 죽이기 전에 알아서 나오거라!”
“그냥 앉아서 별을 보며 기다린 것뿐인데 꽤 살벌한 말을 하는구나. 그나저나 꽤 늦게 왔군.”
심라경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드러나는 신형은 정말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 당신은!”
“알아차리는 게 그렇게 늦어서야 아미파의 주지라는 이름이 아깝다. 무공 수련은 채홍이가 할 게 아니라 주지에게 더 필요할 것 같군.”
“감히 그런 개만도 못한 말을 입에 담다니! 지금 보니 그 요상한 무공으로 채홍이를 속이고 있는 것이구나. 두 번 생각해 볼 것도 없다. 지금 당장 채홍이를 강제로라도 끌고 가겠다.”
“그건 조금 곤란하군.”
“곤란하겠지. 채홍이를 교묘하게 속여서 살인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을 테니. 천하의 못돼 먹은 놈 같으니!”
“내가 못돼 먹은 놈인 것은 인정하마. 다만 아미파의 주지께서는 나보다 더 못되지 않은가.”
“나는 아미파의 주지다. 내가 나쁜 짓을 할 리가 없지 않으냐! 정파란 말이다!”
“정말로 그럴까.”
천일영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오자 심라경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을 뒤로 물렀다.
‘이 무슨 불길한 기운이!’
심라경이 잔뜩 긴장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검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든 말든 천일영은 심라경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지만.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다. 직계 제자도 아니고 일개 속가제자에게 돌아오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주지가 직접 나설 리가 없을 텐데. 그것도 귀한 물건을 되찾으려는 것처럼 다급하게 왔더구나.”
“제자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빨리 온 것이 이상하다는 말이냐. 참으로 희한한 말을 하는구나.”
“아미파에 고수가 많은데 주지가 직접 채홍이에게 무공을 가르쳤다는 것도 이상하고.”
“채홍이의 무공 상승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늦었기 때문에 그리 한 것이다.”
“채홍이가 이미 절정 고수의 경지에 도달한 지 오래인데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구나. 주지의 말대로라면 채홍이가 절정 고수의 경지에 올랐으니 자신의 뜻대로 있을 곳을 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네놈같이 요상하고 기괴한 무공으로 절정 고수가 된 것이라면 당연히 데리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 현재 채홍이의 무공은 사도의 방법으로 절정 고수가 된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리 만든 것이 바로 네놈이고!”
악을 쓰는 것에 가까운 심라경의 말을 전부 들은 천일영의 입술이 비틀리듯 일그러졌다.
“게다가 당신, 조금 전 채홍이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가슴을 보고 흠칫 놀라더군. 자신은 아무렇지 않은 척했더라도 흔들리는 동공만은 어찌할 수 없었겠지. 그만큼 크게 놀랐을 테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그…… 가슴이 없던 아이가 갑자기 그렇게 커지면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
“그게 동공이 떨릴 만큼이나 놀랄 만한 일인가.”
“……!”
순간 심라경이 손에 쥐고 있던 검 손잡이를 들어 올렸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던 모양이군. 분명 너는 채홍이가 과거 극양의 기운에 온몸이 잠식당하고 기도와 혈도가 뒤틀렸던 이유를 아는 것 같구나.”
“네놈!”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검속으로 심라경은 검을 발도했다.
휘이잉!
거리상으로도 일 장이 떨어져 있었기에 신행미종보(神行迷踪步)로 한 걸음을 내디디면 공자의 목이 날아가는 것이 심라경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러나.
타악!
심라경은 목이 잘리는 소리가 아니라 발도되던 검이 다시 검집으로 들어가는 소리에 심장이 떨어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공자가 어느새 검 손잡이의 위를 손으로 눌러 뽑던 검을 되돌린 것이었다.
“무슨!”
“검은 나중이다. 그것보다 우리는 제법 나눌 말이 많을 것 같구나. 밤을 새워도 모자랄 만큼.”
“닥치거라!”
검을 뽑지 못하도록 검 손잡이를 위에서 찍어 누르고 있는 손 때문에, 심라경은 장법 절수장(切手掌)을 천일영의 손목으로 날렸다.
절수장의 뜻과 같이 손목을 잘라 버리기 위함이었다.
휘이이이잉!
심라경의 펼쳐진 손이 내공을 가득 품고 손잡이를 누르는 손목을 터트리기 직전.
스르르르릉.
천일영은 누르고 있던 검 손잡이의 끝을 잡아 순식간에 잡아당겼다.
촤아아아악!
천일영의 손길에 검집에서 뽑힌 날카로운 검날이.
날리던 장권을 멈추지 못한 심라경의 손으로 처박혔다.
촤아아악.
손은 반으로 잘려 나가 피를 뿜어냈다.
“아아아아아악!”
“형편없군. 이게 아미파 주지의 실력인가.”
“이 개 같은 놈이! 처음부터 네놈의 손목을 노릴 것을 알고 검 손잡이를 누른 것이냐!”
“이런 뻔한 수작에 속는 사람은 참 오랜만에 본다. 역시 너는 채홍이를 가르칠 인재가 아닌 모양이다.”
심라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빠르기가 뻔한 수작이라고? 이 신위가?’
절반으로 갈라진 손아귀를 잡고 흐르는 피를 막는 동안, 천일영은 반쯤만 검집에서 빠진 심라경의 검을 모두 뽑아냈다.
그 검은 서늘하게 빛을 발하며 심라경의 목살을 파고 들어갔고.
이내 심라경의 반쯤 포기한 눈빛에 공포가 스며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구나.”
“아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모르면 안 되지 않겠느냐.”
심라경의 목을 누르고 있던 검날이 오른쪽으로 기울며 살을 파냈다.
“아직 모르는 모양인데 목이란 건 뼈와 성대만 남아 있으면 말을 하는 데 지장이 없다. 그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말하려면 제법 바쁘게 입을 놀려야 할 거다.”
“모른다고 하지 않았느냐!”
스아아악. 툭.
심라경의 오른쪽 목살의 일부가 땅으로 떨어졌다.
“끄아아아악!”
“다음은 왼쪽 목살이다. 채홍이를 탐내는 이유와 어떻게 가슴이 커지지 않을 정도로 극양의 기운이 돌게 했는지, 그리고 혈도와 기도가 뒤틀리게 만든 방법까지 모두 말해라.”
스아아악. 툭.
대답도 하기 전 천일영은 왼쪽 목살을 베어 버렸다.
극악무도.
공포와 고통에 질려 버린 눈동자가 번들거리며 심라경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입을 벌렸다.
“끄아아악!”
“비명 말고 대답.”
“혈천회! 혈천회에서 의뢰받은 것이다.”
“혈천회?”
지천번회라는 대답을 예상했지만, 혈천회라는 낯선 이름에 천일영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그것도 지천번회처럼 천마의 자리에 있던 천일영조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