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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219화 (220/270)

219화

새벽녘.

잠을 이루지 못하던 천일영은 작은 바위에 앉아서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요한 밤의 정적이 복잡한 머릿속을 안정시켜 줄 법도 했지만, 여전히 머리와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조금 전 무진은 정말로 청강이 심부름을 시켜 사 온 닭을 두 마리 모두 해치웠다.

사슬처럼 몸을 옥죄고 있던 금제는 풀렸지만, 아직 건강까지 되찾지는 못했기에 무진은 몇 년 만에 제대로 된 식사 후 죽은 듯 잠이 들었었다.

그 때문에, 더는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천일영은 잠든 백유화를 두고 밖으로 나온 지 두 시진쯤이 지나서야 바라보던 별에서 눈을 떼고 중얼거렸다.

“채홍이가 태고의 신선이 피를 나눠 준 사람이라서 희망이 보인다고 무진이 말했던가.”

피를 나눠 받은 자는 무공을 배워서는 안 된다.

그게 태고의 신선과의 약속이니까.

하지만 무진은 금채홍이 무공을 수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기뻐했다.

“분명 채홍이를 이용해서 혈천회의 계를 죽일 생각이겠지.”

맹꽁이같이 순진한 표정으로 웃는 금채홍은, 무진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계를 죽이라고 하면 바보처럼 기꺼이 검을 들 것이었다.

그만큼 백성들이 죽고 중원에 피바람이 몰아치는 것을 막고 싶어 할 터다.

바로 그런 금채홍의 성격이 천일영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

“채홍이가 살육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마땅치 않구나. 내가 죽는다고 해도 그 아이만큼은 지키고 싶었거늘.”

고개를 숙이고 내려다본 손아귀에 힘을 꽉 쥐어 봤다.

분명 탈마의 경지에 오르고 난 이후 마공의 기운은 몸에서 사라졌다.

또한 음과 양의 기운을 모두 사용할 수도 있었다.

다만 음과 양을 한데 섞어서 사용하는 것만은 할 수 없었다.

“만약에 음과 양의 기운을 같이 사용할 수만 있다면…….”

하지만 결국은 그게 생사경의 경지다.

탈마의 경지이기 때문에 들어설 수 없는 경지.

탈마의 경지는 지금 천일영에게는 금제와 마찬가지였다.

후우.

벌써 몇 번의 한숨을 내쉬는지 모른다.

천일영은 다시 고개를 들어 별을 보며 머릿속으로 이치를 찾아 무공의 결합과 해체를 그리기 시작했다.

실마리만 찾는다면.

“채홍이에게 살인을 시키지 않아도 되지.”

한참 동안 천일영이 별을 보고 있을 때.

스르륵.

풀이 흔들리는 것 같은 작은 공기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천일영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유화야, 어째서 이렇게나 일찍 일어났느냐.”

“어라? 화경의 경지에 들어서서 혹시 들키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아직은 공자님의 손바닥 위네요. 공자님을 덮치려고 일어났는데 안 계시길래 나와 봤습니다.”

“나를 덮치다니 백 년은 이르구나.”

“화경의 경지면 어느 정도 가능할까 했는데 이렇게나 쉽게 들킬 정도면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네요.”

“하하하. 네놈의 실없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는구나.”

백유화가 천일영의 곁에 앉았다.

평소 눈치 빠르고 머리도 좋은 백유화가 천일영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종남파에 숨긴 것이 무엇인지 알겠네요. 분명 하우와 하계의 심장이겠지요.”

“남궁천이 사천당문을 이용해서 종남파를 멸문시키려 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니 나도 조금은 놀랐던 참이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무력이 있으면서도 혈천회의 계가 직접 움직이지 않고 남궁천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신중하고 조용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그들이 계획하고 있는 일이 곧 시작된다는 것을 뜻했다.

숨을 죽이고 사냥감을 노리는 호랑이는 자신의 존재와 위치를 철저하게 지운다.

심지어 바람을 등지고 냄새조차 사냥감이 맡지 못하도록 한다.

그래야 사냥감이 안심하고 경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딱 지금의 혈천회가 그런 모양새였고, 그것이 그들의 무서움이었다.

백유화가 천일영의 시선을 따라 별을 보며 말했다.

“그냥 도망갈까요? 북해빙궁처럼 먼 곳으로 가면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별유천지의 가족들만이라면 객잔을 하든 사냥꾼으로 살든 평안하게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도 처음에는 그럴까 생각했다. 이 싸움은 처음부터 나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었으니, 평안하게 사는 것을 꿈꾸는 나에게 그보다 좋은 방법이 없긴 하지.”

천일영의 눈이 아련하게 과거를 더듬었다.

어째서 천마를 그만둔 지금에 와서까지 피가 튀는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천살성(天殺星)이라도 타고난 것일까.

도망갈수록 피의 늪은 한번 잡은 발목을 절대로 놓아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하린이가 죽을 뻔한 것을 계기로 앞에 나설 결심을 했다. 내 가족에게 해를 끼치는 자를 용서할 수 없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구나. 나는 너무도 많은 사람을 죽이면서 살아왔다. 살육으로 경지에 오르고 높은 자리에도 올랐다. 그랬던 내가 모든 것을 모른 척하고 도망간다는 게 용서가 안 되는구나. 적어도 사람을 구하겠다는 일념이 아니라, 나 같은 자가 편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을! 공자님……. 역시 사고 치실래요? 오늘이라면 마음이 약해지셔서 조금만 걸면 넘어갈 것 같은데……. 하악. 하악.”

빠악!

백유화는 눈앞에서 번개 불빛이 튀기는가 싶더니, 이내 극심한 통증에 머리를 붙잡고 땅바닥을 기었다.

화경의 경지에 올라서 덜 아플 거로 생각했지만 어림도 없는 일.

탈마에 오른 천일영의 주먹은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끄아아악. 내 두개골! 쪼개질 것 같아요. 어째서 이렇게 아픈 거야!”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구나. 하여간에 네 녀석은!”

“꺄으으으윽. 설마 제 머리가 반으로 쪼개진 건 아니죠?”

“지금부터 반으로 쪼갤까 생각 중이다.”

천일영은 언제나 하던 것처럼 백유화의 뒷덜미를 잡아서 들어 올렸다.

대롱대롱 매달린 백유화가 투덜거렸다.

“머리를 쪼개면 얼른 합쳐 주세요. 강선으로 꿰매게요.”

“하하하. 하여간에 자르고 합치는 걸 왜 이리 좋아하는지…….”

순간 천일영의 말이 느려졌다.

‘쪼개고 합쳐?’

뭔가로 머리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어서 천일영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몸을 가로로 쪼갠다고 생각하고 기운을 따로 운용하는 것은 어떠한가. 단전을 비워 그 기운을 혈도로 옮기고 음기를 채운다. 그리고 중단전으로 양의 기운을 몰아넣는다. 그리하면 두 가지의 기운을 한 몸에 담는 것이 가능해진다.’

문제는 이 기운을 한데 모으는 방법이 아직 떠오르지 않았을 뿐.

무공의 이론만으로 생각했을 때는 완벽한 방법이었다.

천일영은 백유화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 통증을 거두었다.

“공자님? 갑자기 손길이 다정해지셨습니다만?”

“네 녀석이 해 대는 엉뚱한 말이 실마리가 될 줄이야.”

“어라? 그럼 오늘 밤은 안아 주시는 건가요?”

“내 베개를 주마. 그거라도 안고 자라.”

“쳇. 조금만 더 하면 넘어올 줄 알았는데.”

천일영은 삐죽거리는 백유화와 함께 방으로 들어섰다.

무진을 살린 환단을 시험할 만한 큰 공간의 방이 하나밖에 없었기에 백유화와 한방을 썼는데, 백유화의 바보스러운 생각 때문에 무공의 길이 보일 줄 몰랐다.

천일영은 자신이 베던 베개를 백유화에게 넘겨주었고.

천일영의 냄새로 가득한 베개를 백유화는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 꼭 껴안은 채 깊이 잠들었다.

* * *

이틀 후.

빠르게 몸을 회복하고 있는 무진은 십여 년이나 누워만 있었던 것이 원통했는지 기어이 청강을 앞세우고 객잔으로 들어섰다.

천일영과 백유화도 청강과 무진의 앞에 앉았다.

침을 흘리며 객잔의 음식 냄새를 맡던 무진이 말했다.

“산니백육, 장우육, 회과육, 고노육, 철판우육, 경장육사. 빨리 시켜라.”

“아니! 이름에 죄다 고기 육(肉) 자가 들어간 음식만 시키시면 어떻게 합니까. 종남의 도복을 입었는데 고기만 먹으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냐는 말입니다.”

“요즘에는 중도 숨겨 놓고 고기를 먹는데 도복이 무슨 대수라고.”

잔소리가 시끄럽다는 듯이 눈을 흘긴 무진이 덧붙였다.

“죽엽청(竹葉靑)도 시켜라.”

“술까지 드시려고요?”

“오래 누워 있었더니 달달한 게 당긴다. 다섯 병이다.”

“헉! 한 병도 아니고 다섯 병이나 드시려고요!”

달아서 여자들이 좋아하는 술인 죽엽청을 강요하는 무진의 뻔뻔한 모습에 청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어쩔 수 있는가.

종남파의 어르신이 시키라면 시켜야지.

잠시 후 음식이 나오자 회과육을 입 안 가득 넣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무진이 술을 따르며 말했다.

“공자는 오늘 돌아간다고 했는가.”

“그렇습니다. 무공을 가르치는 사람들도 걱정되고 하오문과 개방을 통해서 알아볼 것도 있습니다. 또한 말씀드렸던 금씨 가문의 아이도 걱정되고요.”

“흐음. 내 그 아이만은 직접 가르치고 싶었건만 언제 혈천회에서 이곳에 쳐들어올지 모르니 움직이지를 못하겠군. 가능하다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 아이를 종남파로 보내게.”

천일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음을 날렸다.

[가능하다면 그리해 보지요. 허나 그전에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말해 보게.]

[혈천회는 태고의 신선을 죽여서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신선이 거두어 간 힘을 다시 찾으려는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들은 태고의 신선을 죽이기 위해서 검을 만들었네. 원한이 쌓인 십만 명의 영혼을 검에 담았지. 그 괴물과도 같은 검은 피를 빨아들이네. 기운도 빨아들이고.]

[어용지천참대검 말씀입니까! 전에 직접 그 검을 상대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구먼. 그 검이 만들어진 이유가 태고의 신선을 찔러 피와 기운을 전부 뽑아내기 위해서였다. 그 검에 담긴 힘을 다시 하우나 하계가 몸에 받아들이면 그가 바로 태고의 신선이 되는 것이지.]

[……!]

천일영은 입가에 경련을 숨기지 못했다.

신선을 죽이기 위해서는 절대 부러지지 않는 검이 있어야 했기에 영혼을 담아 청동에서 철로 바뀌도록 만든 줄로만 알았다.

대장장이들 사이에서 흐르는 전설이 그러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신선의 힘을 빼앗기 위해서 만들어진 검이었군. 혈천회는 태고의 신선을 죽이기 위해서 분명 심장을 되찾으려 할 것이다. 그것도 그들이 계획했던 일이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지금 당장 필요하겠지.’

천일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종남파에 지원을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방비를 좀 더 철저히 해야 할 것 같군요.”

“반가운 소리구먼.”

온통 고기 천지인 음식을 혐오스럽게 바라보고 있던 청강이 문득 들려오는 말소리에 고개를 기울였다.

“지원? 공자가 무슨 지원을 늘린다고 하는 것이오? 사천당문에서 지원해 주기는 했지만 이번에 처음 본 공자가 마치 전부터 지원했던 것처럼 말을 하니 참으로 웃기는 일이오.”

“사천당문을 통해서 종남파에 지원해 온 것이 나다.”

“뭐라고? 공자가? 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말 같은지 아닌지는 열흘 후에 알게 되겠지.”

청강은 천일영의 대답에 얼굴이 벌게졌다.

전에도 무진이 천일영만 만나겠다고 했었고, 이후에는 닭고기를 사 오라며 자신을 내보냈다.

방금도 목울대가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전음을 나누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내가 바로 종남의 장문인인데! 어찌하여 나를 따돌리는 것인가.’

분명 무진을 살려 줘서 고맙기는 한데.

‘이 공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도 화가 난다. 어째서 데려온 여인이 화경의 경지에 오르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뒷바라지만 해야 하는가.’

게다가 지금 공자는 자신과 입씨름을 하는 것이 시간 낭비라는 듯 눈길조차 주지 않고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청강은 속으로 화를 꾹 눌렀고, 천일영은 가기 전 무진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무진께서도 빨리 건강을 되찾아 주셔야겠습니다. 사람을 통해 영약을 보내지요.”

“여러 가지로 신세를 지는군. 하지만 나는 여차하면 북해빙궁으로 튈 거네. 죽을 거 같으면 말이지.”

“좋으실 대로. 다만 북해빙궁으로 가실 때 잊지 말고 물건은 꼭 챙기시길 바랍니다.”

“하하핫. 그러도록 하지.”

무진은 머리가 좋았다.

하우와 하계의 심장을 지키려는 것보다는 찾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은 수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세상에서 도망가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지금보다 믿음직했을 때는 없었다.

천일영은 웃음을 짓고 백유화와 함께 사천당문으로 향했다.

산꼭대기를 밟으며 하늘을 날다시피 사천성으로 향하는 천일영의 왼쪽으로 처음 보는 참매가 한 마리 날아들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천일영과 같이 날고 있는 것이 보통의 참매가 아니었다.

‘황제가 참매를 보낸다고 한 것이 지금 도착한 것인가.’

흑룡강성에서 안찰사의 비리를 파헤쳤을 때 금의위 소속의 표진봉이 말했던 참매다.

분명히 이 참매를 쓰면 황제에게 바로 날아간다고 했다.

‘잘됐군.’

천일영의 눈이 반짝였다.

요소령이 동정호를 장악할 때 드는 비용은 황태자에게 받아 냈다.

그리고 이번에 종남파를 지원할 돈은 황제에게 긁어낼 참이었다.

‘돈뿐인가. 황실의 무인들도 받아 내야지.’

천일영은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백유화가 여전히 질러 대는 비명을 들으며 산을 뛰어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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