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휘이이잉.
콰직!
주루 밖 길거리에서 춘삼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검에 여러 사람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잘린 팔다리가 길에서 뒹굴고, 개중에는 두개골이 속이 훤히 보이는데도 숨을 헐떡이며 바닥을 기는 사람까지 있었다.
처참한 광경이었다.
사람들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뛰었다.
“도망가!”
“누가 현청에서 포졸 좀 불러오시오!”
“꺄악. 사람 살려요! 제발 부탁드려요…… 컥!”
무고한 또 한 명의 여인이 춘삼의 손에 잡혀 목이 꿰뚫려 죽었다.
이제 겨우 십 세 후반이나 되었을 법한 앳된 얼굴의 여인.
허망한 손이 허공을 가르며 뿜어지는 피를 막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한 듯 이내 눈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딱 열 명째의 죽음.
여인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을 때 늦게나마 월영이 자경단 단원 다섯과 함께 뛰어왔다.
“이게 무슨 일이냐! 사정을 아는 사람은 빨리 말하거라.”
“저놈이 갑자기 미쳐서 검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말을 걸어도 대답도 안 하고 조금 전부터 계속 저 상태입니다.”
춘삼과 술을 마시던 친구 중에서 한 명은 현청으로 뛰어갔고, 또 한 명은 끊임없이 춘삼을 말리면서 말을 걸고 있었다.
무서우니까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이 장쯤 떨어진 곳에서 눈만 내민 채 말을 걸던 친구가 연이어 대답했다.
“술을 마시다가 멍해지더니 갑자기 검을 빼서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친구 중에서 제일 착한 놈이었는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정신이 나가서 날뛰고 있다고? 이유도 없이?”
정말로 정신이 나간 것일까?
미친 사람치고는 목숨만을 집요하게 노리고 있었다.
피와 살점이 흐르는 광경에 월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너무 늦게 왔다.
항주가 안전하다는 소문 때문에 외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게 문제였다.
질이 나쁜 놈들도 같이 몰려들고 있으니까.
방금도 도적단 하나를 박살 내고 현청에 넘기지 않았는가.
월영은 검을 뽑은 채 일단 춘삼에게 말을 걸어 보기로 했다.
“검을 버려라. 그리하면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이야기 정도는 들어 주마.”
“끄으으으…….”
침이 흐르는 춘삼의 입에서 괴상한 소리가 흘렀다.
“빌어먹을, 말까지 통하지 않는 것인가.”
눈앞의 참극을 보고 더는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월영은 급히 오행검(五行劍)의 초식을 춘삼에게 날렸다.
휘이이잉! 카앙!
막혔다.
월영의 눈 밑 살이 떨렸다.
‘이걸 막아? 분명 내공의 기운은 느껴지는데, 삼류 무인을 넘어서지 못한다. 잠깐만! 어째서 저 남자의 기운이!’
우웁.
춘삼의 기운을 느끼는 순간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더럽고 추악한 느낌의 기운에 입을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월영은 뒤틀리는 속을 부여잡으며 청운검(淸雲劍)의 자세를 취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속이 울렁거리고, 머릿속이 어지러워지니.
‘빨리 끝낸다.’
휘이이잉. 파앙.
월영의 신형이 검과 함께 춘삼의 머리로 날아갔다.
카아앙.
‘이번에도 막았어?’
간단한 초식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월영은 즉시 몸을 낮춰 몸을 한 바퀴 돌리며 검을 들어 올려 쳤다.
촤아아악!
검을 든 춘삼의 오른팔이 날아갔다.
‘한 번 더!’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낸 검이 춘삼의 남은 왼팔마저 날렸다.
툭!.
팔은 악취 가득한 피를 뿌리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당장 이놈을 지혈하고 묶어라.”
“월영 형님? 이대로 살려서 데리고 가시게요?”
“삼류 무인도 안 되는데 내 검을 두 번이나 막았다. 또한 몸에서 이상한 기운이 흐르는구나. 조사를 위해 죽이지 않고 현청으로 데리고 간다.”
“알겠습니다.”
자경단 다섯이 달려들어 일제히 춘삼을 묶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춘삼은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반항도 하지 않고 여전히 침을 흘리는 채로 어기적거리는 몸짓만 했을 뿐.
반면 팔은 아직도 검을 들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지 자경단의 목을 향해 내리치는 동작만을 무의미하게 반복했다.
그러던 춘삼이 느닷없이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악!”
비명에 가까운 날카로운 목소리가 입에서 터지는 순간, 춘삼의 몸에서 무엇인가 변화가 시작했다.
느닷없이 눈이 뒤집히며 흰자만 보이기 시작했고, 미친 듯이 극심하게 떠는 몸에서 더욱 강한 악취가 흘러나왔다.
‘뭐지? 기운이 역류하는 것 같은데!’
월영은 속을 뒤집는 기운이 더욱 강해지는 것을 느끼며 빠르게 소리쳤다.
“그놈에게서 떨어져! 뭔가 이상하다!”
“네?”
자경단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슈아아아악.
춘삼의 몸에서 무엇인가가 끓어오르는 듯한 소리가 났다.
월영이 언뜻 느끼기에도 그것은 주전자에서 끓는 물이 내는 소리와 비슷했다.
그랬다.
그것은 바로 체내의 수분이 끓어오르는 소리였다.
월영이 다시 한번 급히 피하라는 말을 하려 할 때.
퍼어어어어억!
춘삼의 몸이 굉음과 함께 터지면서 사방으로 육신의 조각을 흩었다.
촤아아악.
자경단의 다섯은 끔찍한 악취를 풍기는 춘삼의 피를 뒤집어쓴 채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서 굳었다.
악취도 악취지만, 자경단원과 월영도 지금에서야 눈치챈 사실.
‘분명히 피의 색은 붉은색이어야 하건만.’
춘삼의 피는 검은색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월영이 춘삼의 팔을 날릴 때부터도 선명한 검은색.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월영은 떨리는 팔로 검을 늘어트리고, 허망한 눈으로 춘삼이 뿌린 피를 바라보았다.
춘삼은 그냥 미친 게 아니라 다른 연유로 인해 정신이 나간 것이라는 게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 * *
백유화와 함께 항주로 돌아온 천일영은 별유천지의 문을 열자마자 멈춰 섰다.
무진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에 복잡해진 머리가 육신의 피곤함으로 이어져서 오늘은 빠르게 잠자리에 들고 싶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 저것들이 찾아와 있었나.’
객잔 안에서 반갑지 않은 얼굴들이 대략 두 명 보였다.
‘유의선하고 황태자. 그리고 월영?’
좀처럼 조합되기 힘든 세 사람이 천일영을 보자, 먹이를 받아먹는 새끼 새처럼 고개를 들고 입을 벌린 채 뚫어지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쿵.
천일영은 별유천지의 문을 다시 닫았다.
백유화의 집에서 잠을 잘까 하는 생각으로 몸을 돌리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던 천일영이 걸음을 멈췄다.
종남파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같은 방을 사용했지만, 어쩐지 집으로 가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덮쳐 올 것 같았다.
그냥 산속에서 노숙이나 할까 하고 망설이는 사이 별유천지의 문이 벌컥 열렸다.
“왜 우리 얼굴을 보시자마자 나가시는 겁니까. 한참을 기다렸습니다만.”
“젠장, 빠르게 백유화의 집으로 갈 것을 그랬나. 저 얼굴을 보느니 그게 나았을 것을.”
피곤해서 기감을 펼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부터 피했으면 되었을 것을.
천일영은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늦은 시간이다. 여태까지 나를 기다린 이유가 무엇이냐.”
“어제 있었던 일 때문에 공자님의 의견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유의선과 월영이 심각한 표정으로 춘삼의 검은 피에 관해서 설명했다.
천일영과 백유화는 미간을 찡그린 채 이야기를 듣고 나서 월영의 식은땀이 흐르는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기울였다.
“월영아, 그 사내가 검은 피를 가지게 되고 온몸이 터져서 죽은 연유에 대해서 짚이는 것은 없느냐.”
“마공하고도 다르고, 풍기는 기운이 설명하기 힘든 불쾌함으로 가득했습니다. 내공의 질 자체가 그랬으니 무공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스윽.
월영이 책 한 권을 밀어서 눈에 보이도록 두었다.
천일영은 책의 제목을 보자 기분 나쁜 것을 보았다는 듯 얼굴이 확 구겨졌다.
극도태마신공(劇道台魔新功).
천마신교의 전 천마를 살심으로 미치게 했고, 천일영 그 자신을 한때 죽음과도 같은 살인의 쾌락으로 이끌었던 극살태마신공(劇殺台魔新功)과 한 글자 차이.
‘대놓고 질 나쁜 책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 같은 제목이군.’
천일영이 책장을 넘기자 월영은 조심스레 말을 이어 갔다.
“저는 이 책 때문에 사내가 검은 피를 가지게 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평범한 무공 책이었으니까요. 다만, 미친 남자가 이 책으로 무공을 수련했다고 합니다.”
“현재로서는 유일한 단서인가.”
한 장씩 넘기는 책장을 따라 천일영의 표정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분명히 이 무공 책은 극살태마신공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다만 극살태마신공처럼 사람을 살심에 미치게 할 만한 부분이 없지는 않았으나, 극히 일부였다.
‘단기간에 무공의 상승을 노릴 수는 있겠으나 살심에 빠질 정도는 아니다.’
그러니 이 책으로 무공을 수련한 사내가 미쳐서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언뜻 납득이 되지 않아 천일영은 책을 덮으려고 했다.
내공심법에 대한 부분이 나오기 전까지는.
“잠깐. 월영아, 너도 내공심법에 대해서 보았느냐.”
“보긴 했지만 저는 이상한 것을 못 느꼈습니다.”
“그런가. 절정 고수 정도로는 눈치채지 못할지도 모르겠군. 유화야, 네가 읽어 보아라. 나하고 같은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하구나.”
백유화가 번들거리는 큰 눈알에 냉담함만을 담은 채 책을 읽어 내려갔다.
일각의 시간이 지난 후.
여전히 냉담한 눈빛을 띤 백유화가 책을 덮었다.
“혈천회군요.”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구나.”
“무공의 초식과 내공심법을 이용해서 극양과 극음의 기운을 모을 수 있는 자를 제외하면 모두 죽음에 이르게 되는 방법입니다. 설마 이걸로 영약을 대신하는 것인가요?”
“놀랍지만 그런 모양이다. 극살태마신공을 익히면 살심에 빠지게 된다. 이 책은 기운을 모으지 못하는 자가 극살태마신공의 약점으로 미치고 살심에 빠지게 되어 있다. 게다가 혈도와 기도가 모두 뒤바뀌고 몸을 썩게 만드는 기운이 강제로 활성화된 단전에서 만들어지는구나. 처음 내공심법을 배우면 몇 개월이 지나야 쌀알만 한 단전이 생긴다. 그것을 강제로 활성화하니.”
“그 때문에 피가 검어지고 악취를 풍기는 것이지요.”
천일영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극양이나 극음의 기운이 생기는 사람을 빼돌리려면 간자들도 항주에 숨어들었겠구나.”
“이제는 숨길 생각도 없는 것 같으니 이쪽에서 먼저 대처하는 게 낫겠습니다.”
천일영이 황태자와 유의선을 향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책이 얼마나 뿌려진 것인가.”
“제법 많은 사람이 이 책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추정하기로는 천 권이 넘지 않을까 합니다.”
“모두 찾아라. 이 책을 읽는 사람 중에서 구 할 이상. 아니, 천 명 중에서 천 명이 죽을 것이고, 잘해야 구백구십구 명 정도로 끝나겠지.”
“그 말은 읽은 사람이 모두 죽는다는 것이 아닙니까.”
유의선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보통 일은 아닐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요즘 심장에 안 좋은 일들만 생기는군. 겨우 책 한 권이 사람을 죽일 줄이야.’
유의선은 심장 위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공자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혈천회.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곳인데 공자와 백유화의 입에서 나왔다.
“공자, 혈천회는 무엇입니까. 이 책을 그들이 만들었다고 하셨지요?”
“어차피 알아야 할 일이기는 하군.”
꽤 긴 시간 동안 천일영이 혈천회에 관해서 설명하자, 유의선과 황태자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황태자가 안절부절못하고 몸을 들썩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영약 사건도 그들이 일으킨 것이냐!”
“이름은 지천번회였으나 혈천회가 한 일이다. 황태자께서는 금군을 동원해서 중원에 뿌려진 이 책을 모두 찾아내라. 그리고 창위를 통해서 중원을 모두 뒤져 혈천회를 찾아라.”
“황태자인 나한테 또 명령하는 것이냐. 진정으로 무엄하구나!”
황태자가 시퍼런 분노를 풍기며 날카로운 안광을 뿜어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천일영은 황태자를 비웃기라도 하듯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살벌한 목소리로 조용히 읊조렸다.
“나중에 황제가 되고 싶다면 시키는 대로 하여라. 지금 혈천회를 찾지 못하면 훗날 네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도 대명국은 이미 사라지고 없을 테니까.”
“대명국이 사라진다…… 고?”
섬뜩한 느낌이 황태자의 등골을 파고들었다.
이 공자라는 사람은 자신에게 막 대하고 반말을 일삼지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혈천회라고 했는가. 금방 찾아 주마. 그때 네놈은 내 앞에 엎드려서 잘못을 빌거라. 나를 무시한 것에 대한 사죄다.”
“일단 찾고 나서 말해라. 조금 전까지 이름조차 모르던 곳인데 그리 쉽게 찾아질 것 같은가.”
“큭!”
황태자가 천일영을 노려보기를 잠시.
그는 무엇인가를 말하려다가 이내 입술을 씹어 물고 밖으로 나섰다.
태어나서 이만큼의 분노는 처음 느끼는 모양이었다.
천일영은 사실 일부러 황태자를 막 대하고 있었다.
적당히 분노를 부채질했으니 이제부터는 악에 받쳐서 열심히 혈천회를 찾을 터다.
중원 전체에서 책도 수거할 테고.
해야 할 일의 대부분을 황태자에게 떠넘긴 천일영은 무공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책의 제목이 주는 의문은 이내 확신으로 바뀌어 있었다.
‘분명 다르기는 하지만 기반은 극살태마신공이 분명하다. 천마신교에서도 비급 중의 비급이라 천마나 마왕만이 아는 무공인데.’
비록 원래의 극살태마신공과는 거리가 멀다 해도 어째서 비급 무공이 세상 밖으로 나왔을까.
‘천마신교 안에 혈천회와 손을 잡은 배신자가 있다는 말이지. 마왕들이 영약을 빼돌린 것과 서가흔의 죽음. 이제야 꼬리가 보이는군.’
천일영의 입꼬리가 서늘하게 올라갔다.
황태자가 중원을 뒤지며 혈천회를 찾는다면.
‘나는 천마신교를 통해서 혈천회를 찾는다.’
혈천회의 하은월이 천일영을 걱정하여 서하린을 이용해 제거하려고 생각했듯.
천일영은 하은월의 뒤를 칠 기회를 잡고는 오랜만에 진심으로 살기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