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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223화 (224/270)

223화

어쩐지 외견상으로는 게을러 보이는 고자 송여악은 의외로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오랜 세월 산적을 한 그였지만, 전에는 평범한 화전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과거 화전민이었기 때문에 불행했다.

농사를 지어 푼돈이라도 손에 쥐면 귀신같이 산적이며 도적들이 약탈하러 오는 바람에 그는 매일같이 무일푼에 가까운 가난뱅이였다.

빼앗기기만 하는 인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산적에게 가진 것을 모두 약탈당한 송여악은 무엇인가 머릿속에서 뚝 끊어지는 느낌과 함께 일구던 화전을 모두 태워 버렸다.

집도 태워 버리고 가진 것을 모두 지워 버린 그는 그날로 도끼 한 자루만 덜렁 들고 산적이 되었다.

이후로 빼앗기던 인생에서 빼앗는 인생으로 바뀌어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여자와 놀았지만 화전민의 생활이 몸에 밴 탓일까.

오늘도 습관처럼 일찍 일어난 그는 신체에서 유일하게 봐 줄 만한 멋들어진 수염이 얼마나 자랐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손을 뻗었다.

“……?”

희한하게도 손이 수염에 닿지 않았다.

손이 마비라도 된 것인지 움직이지 않고 힘도 들어가지 않자, 송여악은 몸을 일으켜 동경을 보려고 했다.

“……?”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려고 몸을 일으키려 했는데 허리는 물론 다리에도 감각이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감각이 없는 것뿐만이 아니라 다리 자체가 사라진 듯한 느낌도 들었으니까.

뭔가 큰일이라도 생긴 것 같은 불길한 마음에, 송여악은 급히 부하를 부르기 위해 입을 열려 했다.

와장창.

입을 벌리려는데, 때마침 무엇인가 밖에서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숨을 죽이고 가만히 소리를 들어 보니 누군가가 날뛰는 소리였다.

한두 명이 아닌.

구체적으로 대충 열 명은 될 법한 놈들이 검을 휘두르고 사람을 죽이는 소리였다.

“으아아악!”

“누가 순식이 좀 말려!”

“이게 무슨 난리야!”

느닷없는 비명이 터지자 답답한 마음이 가슴을 짓눌렀다.

아무래도 들려오는 이름이 수하들의 짓인 것 같았다.

감히 두목인 내가 있는데 행패를 부려?

술에 취해서 사지 분간을 못 하는 것이라면 목을 척추째 뽑아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지금, 부하 놈을 불렀다가는 적이 대신 듣고 방문을 열까 봐 소리도 내지 못하겠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방문이 열렸다.

극도태마신공의 책을 가져다준 화문식이었다.

“큰일 났소, 형님! 빨리 밖에 좀 나와 보셔야 겠……? 엉?”

“뭔 난리길래 그런 표정이야! 그나저나 문식아, 마침 잘 왔다. 내 몸이 움직이지를 않는다. 손으로 잡아서 좀 일으켜 봐라.”

“형님? 형님 맞소? 속옷은 분명 형님 옷인데…….”

“넌 내 얼굴도 몰라보는 거냐? 갑자기 왜 그래!”

“목소리도 아름답고 고운 것이 분명 형님인데……. 헉!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이오? 몸이 왜……!?”

“자꾸 뭐라는 거냐. 내 몸이 뭐가 어떻길래!”

“혀…… 형님, 몸이 마치 공 같지 않소!”

휘둥그레진 눈으로 뒷걸음질 치는 화문식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얼굴까지 포함해서 팔다리가 전부 사라지고 복부가 팽창하여 하나의 완벽한 구를 그리고 있었다.

말 그대로 공이었다.

화문식은 놀라는 와중에도 문득 궁금증이 들어 송여악을 툭 건드렸다.

데구루루.

그랬더니 정말로 공처럼 굴렀다.

“야! 뭐 하는 거야!”

“풉!”

화문식은 순간 뿜을 뻔했지만,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리저리 송여악을 굴려서 얼굴을 찾기 위해 애썼다.

당최 온통 동그라니 얼굴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겨우 송여악의 얼굴을 찾은 화문식이 말했다.

“형님, 갑자기 애들이 미쳐서 날뛰고 있습니다.”

“애들이 날뛰어? 아니! 그것보다 내 몸이 왜 이래!”

자신의 몸과 수하가 날뛰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급한지 구별이 안 되는 송여악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말했다.

“일단 내가 꼼짝도 못 하니 나부터 숨기고 날뛰는 놈들을 제압해라. 말을 듣지 않으면 팔다리를 잘라 버리든가. 그리고 의원을 불러와라.”

“형님! 몸이 너무 부풀어 올라서 숨기는 건 힘들겠소. 이걸 어찌하나.”

“그럼 일단 날뛰는 놈부터 제압해. 현청으로 사람도 보내고.”

“내 금방 처리하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소. 문을 걸어 잠그고 나갈 테니.”

화문식이 발길질 한 번이면 부서질 얇은 문을 애써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갔다.

송여악은 어찌 된 영문인지 알기 위해 몸을 움직여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 자력으로 굴러갈 수도 없었다.

단 하룻밤 만에 생긴 일.

몸이 변한 연유가 궁금했지만, 그보다도 송여악은 밖에서 들리는 살육의 소리에 덜컥 겁부터 났다.

이미 알 두 개를 잃었는데 다른 것까지 잃으면 어찌 살까.

눈을 질끈 감고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생각에 잠기고 있는데.

덜컹. 덜컹.

갑자기 누군가가 거칠게 문손잡이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덜컹. 덜컹. 덜컹. 드드드드득.

잡아 뜯을 듯이 문을 흔들어 대는 소리가 점점 무섭게 송여악의 귀를 파고들었다.

‘화문식, 이놈은 대체 어딜 갔길래!’

안에서 제대로 걸어 잠근 것이 아니라 밖에서 대충 막대기 같은 걸로 막아 놓은 문은 금방이라도 열릴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콰아아앙!

얇은 문이 반쯤 부서지며 꺾여 나가고, 검을 든 신형 하나가 비척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끄으으으으…….”

“너는 봉태가 아니냐! 나야, 인마! 검 좀 저리 치우고? 응?”

언제나 실실 웃으며 호구 잡히는 일이 많았던 봉태의 별명은 봉이었다.

그런 봉태가 피 칠갑을 한 채 입에서 거품이 쏟아 내고 있었다.

송여악은 일이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봉태야, 나 송여악이라고. 내가 모습이 이상해서 못 알아보는 거냐? 너 왜 그래, 인마!”

“끄으으으으…….”

봉태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들고 멍하니 서 있다가, 자세를 베는 검에서 찌르기로 바꾸었다.

정신이 나간 와중에도 공 같은 송여악의 몸이 베기로는 죽이기 힘들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휘이이잉!

봉태의 검이 송여악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방향이 그곳이었다.

“야! 거기는 안 돼. 전부 다 안 되지만 거기는 특별히 안 된단 말이다!”

“끄으으으.”

푸욱.

봉태의 검이 알이 있던 자리에 박혀 들었다.

“끄아아아악. 아파. 아프다고, 이놈아!”

“끄으으으.”

검을 송여악의 몸에서 빼낸 봉태는 다시 한번 비슷한 자리로 찌르기를 시도했다.

푸우우욱,

“아아아악. 이놈아! 왜 거기만 공격해! 아무리 사람이 일관성이 있어야 해도 그렇지! 집요하게 왜 거기만 찌르는 거냐고?”

“끄으으으.”

아무리 내가 너를 봉으로 삼기는 했어도 이러면 안 되지.

뒤끝이 작렬하는 새끼 같으니라고.

거기로부터 딱 일 치 정도만 떨어진 곳에 검날이 박히자 송여악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알도 없는데 거기도 없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봉태는 다시 한번 같은 자리를 노렸다.

푸우우우우욱.

“아아아아아아아악.”

“끄흐흐흐.”

어라? 지금 저 새끼 신음이 조금 바뀌지 않았어?

‘뭔가 웃음소리 같았는데?’

송여악이 미묘하게 이상한 느낌을 받는 동안에도, 봉태는 거품 침을 흘리면서도 그곳만 바라봤다.

이번에는 절대로 실수하지 않겠다는 듯, 봉태의 검날이 다시 한번 날아왔다.

이번에는 분명 정확하게 그곳을 향해서였다.

휘이이잉.

“야, 하지 마. 하지 말라고!”

“끄으으. 끄흐흐흐.”

검 끝이 중요한 곳으로부터 일 치 정도 떨어지는 곳까지 날아들자 송여악은 눈을 질끈 감았다.

차마 귀중한 것이 날아가는 것을 볼 용기가 없었다.

서늘한 검날이 닿는 것을 느낀 송여악이 이를 꽉 악무는 순간이었다.

촤아아아악!

무엇인가가 잘려 나가는 소리에 송여악은 있는 대로 얼굴을 찡그렸는데.

“……?”

통증이 없었다.

송여악은 슬그머니 눈을 떴다.

자신에게 검날을 날리던 봉태는 팔과 목이 잘린 채 쓰러져 있었다.

“후아아아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눈앞에는 건청이 피 묻은 검날을 털어 내고 있었다.

“건청 형님!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응? 너는 뭐냐. 공 같은 게 말을 하네?”

건청의 검날이 송여악의 목 아래로 들이밀어졌다.

사실 머리하고 목의 경계선은 없어졌지만.

살벌한 건청의 표정에 송여악이 고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저 송여악입니다. 건청 형님이 무공을 가르쳐 주신 바로 그 송여악이요.”

“곱고 여린 목소리는 분명 여악이의 것이 맞는데? 몸이 어찌 이렇게 된 것이냐.”

“저도 모릅니다. 형님, 제발 저 좀 의원에게 보여 주십시오.”

“혹시 너, 극도태마신공이라는 책으로 무공을 수련했느냐?”

“네? 그게…….”

“했구먼. 하여간에 이놈들, 말은 더럽게 안 들어요. 분명히 하지 말라고 현청에서 말을 했을 텐데! 공자님이 혹시 모르니 가 보라고 했으니까 망정이지.”

“면목 없습니다.”

건청이 송여악의 뒤로 돌아 들어갔다.

그리고 감정을 가득 실은 발길질로 송여악의 등같이 보이는 부분을 걷어찼다.

퍼억.

속이 터진다는 듯한 건청의 표정과 함께 송여악이 구르기 시작했다.

“곱게 데려가 줄 거라는 생각은 말아라.”

“끄헙. 꾸악. 헙!”

땅바닥을 구르는 동안 입이 땅바닥을 훑는 바람에 송여악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건청은 제법 재미가 들렸는지 백유화가 있는 곳까지 계속 송여악을 걷어차며 굴려서 데리고 갔다.

미묘한 곳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건청은 모른 척하고 열심히 발길질만 해 댔다.

* * *

천일영은 수련을 중지시켰다.

극도태마신공을 회수해야 하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수련을 하던 사람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책을 회수해 댔다.

그동안 학대라고 생각할 만큼 지독한 수련에 지친 원한을 풀어낼 기세였다.

그리고 건청이 이상한 것을 가지고 왔다.

“이것이 진정으로 송여악이라는 말이냐.”

“네. 화문식이라는 뺀질거리는 놈이 있는데, 그놈의 말하고도 일치합니다.”

속옷 한 장만 입은 채 공처럼 변한 몸을 보니 신기함을 넘어서 괴상한 느낌까지 들었다.

‘어째서 몸이 저렇게 부풀었는데 속옷이 찢어지지 않은 것이지?’

이놈이 전에 금화를 주었더니 비싼 속옷을 사서 입은 모양이다.

알도 없는데.

“유화야, 네가 보기에는 어떠하냐.”

“일단 실험을 해 봐야 정확한 것을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공자님도 이미 눈치를 채셨듯이 송여악의 몸은 극양의 기운과 극음의 기운이 뒤섞인 것 같습니다.”

“사천당문 문주 당강용의 아들과 같은 증세군.”

“일단 이것저것 잘라 보고 속을 들여다봐야겠습니다.”

송여악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것저것 뭘 잘라?

“공자님! 이 요상한 여 의원에게 저를 맡기셔도 되는 것입니까? 저 공자님의 충복 송여악입니다. 아무래도 미친 의원 같은데 이대로 끌려가면 저 죽는 것 아닙니까?”

“유화는 중원 제일의 의원이다. 이 사람보다 실력이 좋은 사람은 없구나.”

“확실한 것입니까? 중원 제일의 의원이라면 저 낫는 거 맞지요? 살아서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이지요? 대답 좀 해주세요, 공자님!”

절박한 송여악의 말이 절절하게 울려 퍼졌다.

천일영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아마도.”

“네? 아마도라니요? 아니, 그 전에 들인 뜸은 무엇입니까!”

백유화가 송여악의 등 뒤로 다가갔다.

“거참, 말 많네. 잘 드는 칼로 자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히익! 공자님, 살려 주세요. 여 의원이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도대체 뭡니까! 잘 드는 칼로 자르면 아프지 않답니까!”

“죽지는 않을 거다. 죽을 만큼 아프기는 하겠지만. 아. 마. 도.”

“아아악. 공자님!”

송여악의 몸쯤 고치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천일영은 시침을 뚝 뗐다.

몸을 열어 보고 원인을 규명하는 게 급선무다.

서럽게 눈물을 터트리는 송여악을 굴려서 백유화가 의실로 들어갔다.

건청도 송여악이 백유화에게 맡겨진 것을 확인하고는 검을 어깨에 걸치고 다시금 책을 수거하러 나가려고 했다.

한시가 급하니 빠른 발걸음을 하려는데 등 뒤로 천일영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건청아, 너는 오늘부터 소문을 흘리거라.”

“혹시 항주에 숨어든 간자를 찾으시려는 것입니까?”

“놈들은 극양이나 극음의 기운을 가진 자가 나타나면 바로 납치할 것이다. 그러니 송여악의 존재를 알리거라.”

“알겠습니다.”

훅.

건청의 신형이 사라졌다.

수련의 효과가 있었던 모양인지 건청의 무공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해 있었다.

천일영은 눈을 감고 기감을 펼쳤다.

‘이제부터 찾는다.’

약 일백 리.

그 안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자를 모두 찾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피가 검게 변하여 미치는 사람들도 찾을 것이었다.

그들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백유화가 말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 주는 것이 마지막 배려가 될 터였다.

천일영은 연무장에서 굴러다니는 동전 이십 냥짜리 검을 들고 항주를 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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