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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224화 (225/270)

224화

흑룡강성.

오늘도 바닷가에 누워 있는 남궁무애는 문득 항주에서 받은 비단옷이 떠올랐다.

조개가 있던 이곳으로 돌아온 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나는 여전히 같은 옷을 입고 있네. 게다가 집에는 한 번도 돌아가지 않아서 갈아입지 않았으니 냄새도 나고.’

남궁무애는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얼마나 같은 자세로 누워만 있었는지 온몸에서 ‘우두둑’ 하며 뼈가 맞춰지는 소리가 들렸다.

‘슬슬 옷을 갈아입을까. 새 옷이라니 얼마 만일까.’

천일영에게 받은 화극여월에 행여 바닷가의 모래라도 닿을까 싶어 소중하게 안고 몸을 일으켰다.

비척거리는 발걸음으로 도착한 장원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깨끗한 집이 오랜만에 돌아온 주인을 반겼다.

빨래며 청소를 해 주는 아낙에게 선금을 넉넉히 챙겨 준 덕분에 먼지 하나 보이지 않는 집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나는 이렇게나 더러운데.

남궁무애는 천일영에게 받은 봇짐과 화극여월을 툇마루에 곱게 내려놓고 옷을 훌렁 벗었다.

다행히도 우물이 있는 집을 얻은 덕에 씻는 것은 걱정 없었으니까.

슬픔은 아직도 그대로지만 물을 길어 머리부터 쏟아부으니 마음이 조금은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몸에서 시커먼 땟국물이 흐르자, 오랜만에 씻는다는 사실을 떠올린 남궁무애는 구석구석 오랜 시간 묵은 때를 벗겨 냈다.

한바탕 흐르던 구정물이 깨끗하게 바뀌고, 이제는 깨끗해졌다고 생각한 남궁무애가 머리카락에서 뚝뚝 물을 흘리는 채로 비단옷을 들어 올렸다.

‘저번에도 생각했지만 정말로 예쁜 옷이네.’

물기를 닦을 것이 없어서 바람에 몸이 마를 때까지 기다릴까 하고 생각하던 남궁무애가 입으려던 비단옷을 돌연 내려놓았다.

심각한 얼굴로 한동안 생각에 잠기기를 일각.

남궁무애는 비단옷 대신 그동안 입고 있던 냄새나는 옷을 집어 들었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지금쯤이구나. 극도태마신공의 효과가 생기는 것이.’

하은월이 말하기를, 책을 읽고 수련한 사람 중에서 극양이나 극음의 기운을 갖게 되는 자는 삼천 명에 한 사람꼴.

나머지는 죽는다.

이제 수천, 수만의 사람이 죽게 될 터다.

사람들을 굳이 미쳐서 죽게 만든 이유는 기운을 갖게 된 사람을 납치할 때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제 곧이다. 사람들이 미쳐서 날뛰기 시작하는 때가. 검은 피를 가지게 된 사람들이 검을 들고 사람을 덮치기 시작할 거야.’

남궁무애는 물기가 마르지 않은 몸에 냄새나는 옷을 꾸역꾸역 끼워 넣고는 비단옷을 들어 올렸다.

“너는 조금 나중에 입어 줄게. 피라도 튀면 곤란하니까.”

다시금 봇짐으로 곱게 접어 넣은 비단옷은 남궁무애의 등에 걸쳐졌다.

“항주로 돌아간다.”

책에는 읽는 것만으로 알 수 없는 한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사람들은 거의 동시에 미쳐서 날뛰게 된다.

개인차는 조금 있을지 몰라도 혈천회가 정한 시간에 혈도가 썩어들어 가는 것이었다.

아마도 내일쯤.

온 중원과 항주는 수천 명의 검은 피를 가진 자들이 죽음을 뿜어내며 수만 명의 죄 없는 사람들을 도륙하기 시작할 터였다.

* * *

다음 날 아침.

백유화가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 의실에서 나와 천일영에게 갔다.

피곤함에 지친 얼굴을 보지 않아도, 밤새도록 송여악을 괴롭혔다는 것은 옷에 묻은 피만으로도 알겠다는 표정을 지은 천일영이 말했다.

“결과는 어떠하냐.”

“이상합니다. 분명 송여악의 몸은 양기와 음기가 한데 뒤섞여 부푼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뭔가 수상한 것이 있었습니다.”

“설마 혈도가 정해진 시간에 열리면서 사람들이 일제히 한꺼번에 미친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겠지?”

백유화의 입이 쩍 벌어지는 것과 동시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아신 것입니까? 또 제 마음을 읽으신 건가요?”

“송여악같이 몸이 부푼 자를 어찌 몰래 빼돌리겠느냐. 혼란을 일으키면 되는 일이다. 놈들이 어찌 행동할까 예상해 본 것뿐이다.”

“겨우 송여악 같은 사람을 찾겠다고 혈천회에서 벌인 일로 항주에서만 수천 명, 수만 명이 죽게 될 것입니다.”

한껏 찡그려진 인상으로 천일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혈천회 놈들은 일부러 해적과 왜구들로 해안가를 공격한 이후에 책을 뿌렸다.

무공 책이 유행할 것이라고 이미 예측한 것이다.

‘계라는 놈이 생각보다 머리가 좋구나. 하긴, 수십 년 동안 계획을 해 왔을 테니 그만큼 빈틈도 없다는 것인가.’

천일영은 말없이 몸을 일으켜 백유화의 뒷덜미를 잡아 올렸다.

그러고는 우물가로 가서 물을 뜬 다음 백유화의 머리부터 몸까지 부었다.

“으악. 에퉤퉤! 공자님, 뭐 하시는 건가요!”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없으니까 핏물은 이걸로 대충 없애는 게 좋겠구나.”

“으! 찜찜해요.”

훅.

천일영의 신형이 백유화를 손에 든 채 우물가에서 사라졌다.

빠르게 지나는 풍경에 정신이 아득해진 백유화가 정신을 차린 것은 승선포정사사 유의선의 앞.

얼마나 빠르게 왔는지 바람이 옷의 물기를 이미 날려 버린 채였다.

“으악!”

유의선이 갑자기 집무실에 나타난 천일영과 백유화의 신형에 놀라서 뒤로 자빠졌다.

‘뭘 이런 거로 놀래.’

천일영의 생각을 대략 눈치챈 백유화는 뒤로 넘어진 유의선의 몸 위를 흙발로 밟고 올라서서 사악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부터 정말로 놀라야 할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백유화 나름의 배려였다.

“뭐! 뭡니까. 당장 제 몸 위에서 내려오시지요.”

“시끄럽고 내놔라. 당장.”

“뭘 말입니까?”

“도지휘사에게 연락해서 금군을 내놓으라고 해라. 그리고 포졸도 전부 내놔. 단 한 명도 빼놓지 말고.”

“예? 그게 무슨…….”

백유화의 생각이 맞았다.

몸에 올라탈 때의 충격 때문인지 유의선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배려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 같으니라고.

대신 혼이 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알 게 무엇인가.

받을 것만 받으면 되는 것을.

배려는 몸 위에 올라탈 때까지.

딱 거기까지만이었다.

* * *

별유천지의 식구들과 금군, 그리고 포졸들과 자경단까지.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총동원되어 극도태마신공을 읽으며 수련했던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금채홍이 유의선에게 상을 받았던 바로 그 거대한 공터였다.

공터의 가운데에는 이미 수거한 극도태마신공 책이 이천 권가량 쌓여 있었고, 수련한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그곳에서 서로를 둘러보며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금군과 포졸들이 둘러싸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우리를 부른 거여.”

“현청에서 읽지 말라고 한 책으로 수련했다고 벌이라도 주는 것인가?”

“흥! 이 많은 사람을 어찌 벌주겠는가. 경고 정도로 끝나겠지.”

투덜거림과 걱정이 교차하는 사람들의 틈에서 작은 불씨 하나가 타올랐다.

쌓아 놓은 극도태마신공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화르르르륵.

기름을 부어 놓았는지 가뜩이나 잘 타는 종이는 한순간에 거대한 불덩이가 되어 매캐한 연기를 뿜어냈다.

그 모습을 멀리에서 보고 있던 남궁무애가 다소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공터에 모인 사람이 약 이천 명인가. 공자가 제법 좋은 생각을 떠올렸구나.’

남궁무애가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이었다.

“끄으으으으으.”

“끄아아아아아.”

공터에 모인 사람 중에서 일부가 침을 흘리며 정신이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기점으로 점점 하나씩 침을 흘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불과 눈 열 번 깜박일 시간 후에는 모인 사람 중에서 삼 할이 미쳐 갔다.

휘이이잉! 콰직.

“으아아악. 이놈들, 왜 이래. 갑자기 미쳐서 검을 휘두르다니!”

“여보게. 피하는 게 좋겠네. 빨리 따라오게.”

“…….”

“왜 말이 없는가! 빨리 따라오라니까…….”

콰직. 뚜두두둑.

잠시 눈을 돌리기만 해도 옆에 있는 사람들이 미쳐 갔다.

이후에는 어김없이 옆에 서 있던 자들이 죽어 갔다.

그들은 서로에게 검을 휘두르며 미친 자들끼리 살육을 벌이기 시작했다.

살육을 바라보는 남궁무애의 시선은 이 책을 만들어서 뿌리라고 한 것이 자신이었기에 싸늘하게 식어 갔다.

‘공자의 계략 덕에 책을 읽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죽일 테니 한고비는 넘겼다. 문제는…….’

공터의 반대 방향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꺄아아아악!”

남궁무애는 화극여월을 뽑아 들었다.

“아직 이 자리에 없는 사람들이 문제지.”

몇 권이나 필사가 되었을까.

오늘 이 검 끝에 목이 걸린 사람들의 숫자만큼일 터다.

남궁무애는 허리춤 아래를 찢어 만든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비명이 들린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극도태마신공으로 인해 미친 사람들은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죽이게 그냥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촤아아악!

천일영의 검 끝에 또 한 명의 미친 자가 죽었다.

죄가 없지만, 앞으로 죄가 생기게 될 자.

혈천회에서 뿌린 책으로 무공을 수련했다는 게 유일한 죄인 그들의 목숨은 허망하게 사라져 갔다.

백유화와 금채홍이 송여악을 지키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항주에 퍼져서 차례로 나오는 미친 사람들을 상대했다.

이미 밤도 절반이 한참 넘어가는 인시(寅時).

아직도 간자들은 송여악을 데리러 올 기미가 없었다.

“이상한 일이군. 분명 오늘이 아니면 송여악을 납치하지 못할 텐데.”

천일영은 최대한으로 기감을 펼친 채 항주를 가로질렀다.

그때.

미친 자들이 뿜어내는 악취 섞인 검은 피의 냄새가 아닌 생피 냄새가 코끝을 스치자 천일영은 경공을 멈췄다.

한두 명에게서 흘러내린 것이 아닌 제법 많은 양의 피에서 날 법한 강렬한 냄새였다.

천일영은 냄새가 피어오르는 곳으로 향했다.

기감으로 느껴지는 생명의 기운이 없기에 단숨에 도착한 곳에는 아홉 명의 신형이 온몸이 잘린 채 흩뿌려져 있었다.

눈살을 찌푸린 천일영이 잘린 시체의 단면을 살폈다.

‘검속이 극에 달한 자의 솜씨다. 잘린 면이 지나칠 정도로 예리해서 조직이 하나도 상하지 않았군.’

초절정 고수로도 할 수 없는 신위다.

게다가 상처에 남아 있는 특징적인 단면.

‘화극여월? 어째서 남가은에게 선물한 검의 흔적이 여기에 남았는가.’

천일영은 고개를 기울였다.

검의 흔적도 그렇지만 아홉 명의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천일영 자신은 알지 못했다.

기감을 펼치고 있었는데 말이다.

‘같은 경지의 사람은 기감을 어지럽힐 수 있고 속이기까지 한다. 게다가 발자국이 제법 신기하군.’

아홉 명이 잘려져 있었지만, 원래는 열 명이었다.

남은 한 명이 도망간 흔적이 있으니까.

그리고 남가은은 그것을 쫓아서 갔고.

천일영은 혀를 찼다.

‘발자국의 방향이 안 좋군.’

송여악이 있는 방향이었다.

비록 잘리기는 했지만, 흔적으로 보아 죽은 아홉 명은 분명히 간자.

그들이 송여악을 데리러 가다가 남가은에게 발각당한 것이 분명했다.

‘또한 발자국의 모양이 보통을 넘어서는군.’

간자가 남긴 발길의 흔적은 무공의 수위가 초절정 고수를 넘어서는 것 같았다.

아주 흐린 발자국.

남가은이 공격할 때 급한 마음이 실수로 남긴 발자국이리라.

이후로는 발자국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까.

‘왜인지 불안하다. 아무래도 기척을 죽이는 데 특화된 자인 것 같은데.’

남가은이 놓쳤을 정도의 실력자다.

백유화가 지키고 있다 한들 이제 막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

그러한데 이러한 실력을 갖춘 자가 기습한다면.

훅.

천일영은 백유화가 있는 곳으로 급히 몸을 돌렸다.

* * *

거세게 얼굴에 맞닿는 바람 때문에 눈은 시린 느낌으로 가득했다.

가장 빠르게 백유화와 금채홍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은 일직선.

천일영이 공중으로 떠올라 지붕 기와를 밟자 집 전체가 내려앉을 듯한 충격을 받았다.

콰아아앙!

신형이 별유천지를 향해 쏘아지듯 날아갔다.

‘제발 늦지 말기를!’

단 한 번의 발디딤으로 눈 다섯 번 깜박일 시간 만에 백유화의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금채홍은 집 안에서 송여악을 지키고 있었고, 백유화는 밖에서 주변을 경계하며 미쳐 버린 자가 나타나면 강선으로 도륙하고 있었으니, 이미 시신이 열 구가 넘게 쌓여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독이 될 줄이야.

시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악취와 더러운 기운은 분명 화경에 도달한 무인의 기감이라도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것을 간자는 정확히 알고 있었던 듯.

온몸에 검은 피를 바르고 기척을 죽인 남자가 백유화의 등 뒤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는 숨을 죽인 채 조용히 검을 들어 올리고, 백유화의 등을 향해서 빠르게 내질렀다.

“유화야!”

천일영의 외마디 외침이 울려 퍼지는 순간.

백유화가 허공에서 날아오는 천일영을 바라봤다.

허공에서 날아오는 공자님의 얼굴이 반갑다는 듯 웃음까지 지으면서.

그 순간.

간자가 찌른 검날이 백유화의 앞가슴으로 튀어나왔다.

외마디 비명이 백유화의 집 앞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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