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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226화 (227/270)

226화

공자보다 경공이 빠르기를 다행이다.

천일영에게 전부 다 들켰지만, 적어도 남궁무애는 잘 속이고 도망쳤다고 생각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후하, 후하. 심장 벌렁거려. 하여간에 공자는 눈치가 빨라서 속이기가 힘들다니까.”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놀란 마음에 잠시 앉아서 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남궁무애는 빠르게 흑룡강성을 향하기로 했다.

파앙!

눈 세 번 깜빡일 정도만 숨을 돌린 다음 다시 경공으로 빠르게 항주를 벗어나는 동안 불안감이 마음 한편을 채워 갔다.

‘항주에서 혈천회의 간부가 죽고 간자들이 도륙당했다는 것을 하은월이 곧 눈치챌 테지. 게다가 해적 사건 이후 극도태마신공의 난리 통에도 항주만 피해가 적다는 것을 수상하게 여길 거야.’

문제는 혈천회의 간부를 죽일 정도의 실력자가 항주에 있다는 것을 하은월이 모른다는 것이다.

혈천회의 신하 중에서도 천지제(天支劑)로 불리는 열다섯 명은 중원에서 상대할 자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공자가 쓰러트린 류규강도 다름 아닌 천지제의 일원.

‘그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면 중원에서 거의 유일하게 천지제를 죽일 수 있는 내가 의심을 받게 된다.’

즉, 하은월은 자신이 흑룡강성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찾아올 것이다.

‘그 전에 돌아가야 해. 내가 흑룡강성에서 자리를 비웠다는 것을 들키면 안 돼.’

일백 년 가까이 함께했던 하은월은 적에 가까워져 버렸다.

딱히 그를 배신할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공자가 혈천회와 얽히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공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해.’

남궁무애는 항주로 갈 때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흑룡강성을 향했다.

그 발걸음은 무겁고 신중했지만, 전에 없이 빠르고 가벼웠다.

* * *

다음 날.

하은월은 자신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천지제를 향해 나직한 목소리를 내었다.

“이번에도 항주만 문제인가.”

“그렇사옵니다. 오직 항주에서만 극양이나 극음의 기운을 가진 자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간자들도 모두 실종 상태이옵니다.”

“류규강은?”

“역시나 연락이 닿지 않고 있사옵니다.”

톡. 톡.

손가락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건드리며 생각에 잠긴 하은월은 무려 반 시진이나 입을 열지 않았다.

무섭도록 조용한 침묵이 이어지자 천지제도 머리를 땅에 대고 있기를 반 시진.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천자의 분노를 느낀 천지제가 눈만 끔벅이며 식은땀을 줄줄 흘릴 지경이 되었을 즈음, 하은월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항주를 제외한 다른 곳에서의 수확은 어떠하냐.”

“책이 뿌려진 곳에서 모두 찾아내기를, 극양의 기운을 가진 자 이십팔 명, 극음의 기운을 가진 자 서른한 명, 극양과 극음의 기운 모두를 가진 자 두 명을 데려왔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군. 그들은 둘로 나눠서 사혈련과 천마신교로 각각 보내거라. 비밀리에 옮기는 것은 물론 실력 있는 자를 호위로 붙여야 할 것이다. 그들을 보냄으로써 우리의 첫 번째 계획이 완성된다.”

“알겠사옵니다.”

열네 명의 천지제는 한숨을 몰아쉬었다.

조금 미간이 찌푸려져 있기는 하지만 평소의 천자다.

분위기가 풀어진 틈을 타고 천지제에서 맏형 역할을 하는 부항윤이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천자님, 바로 두 번째 계획을 진행할 수 있사옵니다. 모든 준비는 이미 끝나 있고 시기가 적절하다고 판단되는바, 명령만 내려 주시면 바로 실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말대로 확실히 지금이 적절한 때다. 그러나 잠시 보류하도록 하지.”

“천자님! 지금이 아니면 다른 계획들도 차질이 생길지 모르옵니다. 진정 나중으로 미루시겠나이까?”

“적절한 때라는 것은 시간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니 이만 물러가도록 하여라.”

“모든 것은 천자님의 뜻대로 하겠나이다.”

천지제 열네 명이 몸을 일으키고 고개를 숙인 채 물러섰다.

하은월은 그중에서 한 사람을 불러 세웠다.

“조상백은 남아라.”

“명하신 대로.”

선이 굵고 뚜렷한 인상의 사십 대 남자가 홀로 하은월 앞에 고개를 숙였다.

“하나 묻지. 류규강이 중원 어디에 가서 딸리는 실력인가?”

“아니옵니다. 류규강은 중원 오십 대 고수조차 일 초식에서 이 초식이면 없애 버릴 수 있는 실력입니다.”

“그런 그가 사라졌다. 어찌 생각하느냐.”

조상백은 냉담한 표정을 짓고, 그와 비슷할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를 냈다.

“혈천회에서 천지제의 이름을 짊어지고 있는 자라면 무공은 극상의 실력. 또한 책략 역시 최고라 할 만하옵니다. 그런 그를 죽일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자는 지천번회의 주인 정도. 허나 지천번회의 주인이 배신할 리는 없으니, 그는 천자께서 주신 육십 일이라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도망을 간 것이 아닐까 하옵니다.”

“도망이라……. 원체 가진 직위에 비해서 간이 작기는 했다만 정말로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몸을 숨겼다고 생각하느냐.”

“아홉의 간자들까지 소식이 두절된 것이 그 증거가 아닐까 하옵니다. 류규강이 그들을 죽이고 자신의 흔적도 지운 것이 아닐는지요.”

조상백의 말은 충분히 동의할 만한 구석이 있었다.

천지제가 누군가에게 당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일.

‘그런데도 불길한 마음이 드는군. 천지제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남궁무애 말고도 천일영이 있다.’

천일영은 분명 숨어서 지내고 있었고, 그 덕에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주목받을 일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반대로 류규강이 배신을 했다는 것도 좀처럼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조상백, 너는 지금부터 모든 일을 후계에 넘기고 항주로 가거라. 그곳에서 그동안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모조리 알아내야 한다. 특히 천마신교의 전 천마 천일영이 있는지 알아보거라.”

“천일영 말이옵니까? 그는 천마신교를 버리고 도망간 겁쟁이가 아니 옵니까! 놈이 그곳에 있다면 제가 그 목을 가지고 오겠사옵니다.”

“됐다. 네가 감당할 만한 남자가 아니다. 혹시라도 그를 찾는다면 절대로 손대지 말아라.”

“알겠사옵니다. 충심으로 맡기신 일을 해낼 것이옵니다.”

조상백이 고개를 들고 큰절을 올린 다음 밖으로 나갔다.

불만이 가득한 얼굴을 숨기고 내색하지 않는 그를 하은월은 다른 천지제보다도 유독 아꼈다.

과연 천지제 최고의 신중함이었다.

드르륵. 탁.

조상백이 문을 닫자 홀로 남은 하은월이 조금 전과 같이 의자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고심은 깊어져만 갔다.

‘꼭 천일영이 아니더라도 항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은 분명하다. 류규강보다 무공의 경지가 높고 머리가 비상한 조상백이라면 작은 실마리라도 알아 오겠지.’

이 껄끄러운 마음을 털어 버려야 다음 계획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두 번째 계획을 미뤘다.

하은월은 자신이 악인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수하들의 목숨을 함부로 다루지는 않았다.

무협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악인이라고 해서 기분 나쁘다고 찢어 죽이고, 일에 실패했다고 가죽을 벗겨 매달지도 않는다.

쓸 만한 사람은 드물고, 충성된 부하라면 더더욱 귀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가만두지 않겠다고 겁박은 줘도 실제로 죽이기까지 하는 일은 거의 없지. 기껏해야 벌을 주는 정도다.’

조금은 엄한 벌을 내릴 때도 있긴 하다.

하지만 하은월이 천지제를 아낀다는 것은 그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

류규강에게 항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 오라고 육십 일이라는 시간을 주었었다.

촉박하지 않은 넉넉한 시간이다.

그런데도 도망갔다?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군. 남궁무애가 갑자기 일을 그만둔다고 했던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용지천참대검을 든 하은월은 남궁무애가 그곳에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만약에 그 넓기만 하고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장원에 남궁무애마저 없다면.

‘온 중원을 뒤져서라고 찾아낸다. 그리고 진짜 악인이 무엇인지 보여 주지.’

악인이라는 것은 잔악한 성품을 가졌다고 가질 수 있는 이름이 아니다.

수만, 수십만 명을 죽여도 언제나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의 명령에 끝없이 사람이 죽어 나가도 풍류를 즐기며 웃는 자다.

만약 남궁무애가 배신이라도 한 것이라면.

하은월은 몇백 년 동안 남궁무애를 살려 두면서도, 매일같이 끊임없는 고통을 줄 생각이었다.

진정한 악인답게 누군가를 고문할 것이라면 적어도 백 년 단위 정도는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남궁무애가 수백 년 동안 괴로워하는 것은 분명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이 될 터였다.

* * *

하은월이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는 심한 바람이 불고 해무(海霧)가 극심해서 코앞도 보이지 않는 날이었다.

어용지천참대검의 예기를 숨기고 조용히 찾아간 바닷가.

오늘도 썩은 생선 같은 눈빛으로 누워서 바다를 바라보는 남궁무애의 얼굴을 보자니 하은월은 마음 한편에서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여전히 이곳에 있는 것이냐. 이제는 슬슬 움직일 때도 되었다만.”

“계속 누워만 있지는 않았어. 잠시 옷을 사러 나갔다가 왔거든.”

“옷?”

그러고 보니 남궁무애는 몇 년 동안 입고 있던 낡은 옷 대신 깨끗한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한 번도 옷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남궁무애의 모습에 작은 의심이 피어오르는 순간이었다.

흐리멍덩한 눈을 하고 있던 남궁무애가 하은월의 표정을 보더니 귀찮다는 목소리로 내뱉듯 말했다.

“옷을 빨자니 귀찮아서 그냥 샀어.”

“너답군.”

“네 것도 있어. 사는 김에 같이 샀지.”

남궁무애가 비단에 싸인 것을 내밀었다.

펼쳐 보니 짙은 남색의 최고급 비단으로 만든 옷이 들어 있었다.

도무지 옷을 건네는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하은월이 고개를 기울이자, 남궁무애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별 선물이야. 자꾸 네가 찾아오니까 그거라도 줘서 쫓아 버리려고.”

“하하하. 친구를 찾아오는 게 뭐가 잘못이냐. 우리가 한두 해 알아 온 사이도 아닌데.”

“지천번회도 너에게 주고 서후량도 돌려줬어. 그러니 그만 찾아와. 자꾸 찾아오면 말도 안 하고 집 옮겨 버릴 거야.”

“…….”

표정과 눈빛은 여전히 멍했지만, 하은월은 즉시 알 수 있었다.

남궁무애는 진심이었다.

백 년 가까이 알고 지냈는데 마치 처음 보는 사람과도 같은 느낌.

그동안 알고 있던 남궁무애는 더는 없었다.

하은월은 진실이 알고 싶어졌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이냐. 네가 갑자기 변모한 것이 믿기지 않는다. 연유만이라도 알려 주면 다시 찾아오지 않겠다고 약속하마.”

“너는 백 년 전에 나에게 평온한 세상을 약속했어.”

“그랬지. 그 약속은 지금도 변치 않았다.”

“들어 버렸거든. 아이가 우는 소리를.”

“아이가 우는 소리? 겨우 그런 거로 모든 것을 내팽개치겠다는 거냐! 대업을 이루려면 작은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남궁무애는 여전히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미 들어 버린 것은 어쩔 수가 없어. 그냥 그것뿐이야.”

“그런가. 그런 것이라면 어쩔 수 없지. 여전히 마음이 여리구나.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는군.”

하은월은 몸을 일으키며 남궁무애가 백 년 전과 똑같다고 생각했다.

지금으로서는 남궁무애가 항주에 갔을 리가 없다는 확신도 들었다.

“이별이구나.”

“나는 너와 이미 이별했다. 이별 못 한 것은 너뿐이야.”

“끝까지 나에게는 차갑게 구는구나. 백 년 동안 만나 왔는데 단 한 번도 곁을 주지 않는다니.”

“부모 형제도 죽인 년이야. 바랄 걸 바라야지.”

“알았다. 잘 지내라.”

“너도.”

하은월이 몸을 돌리고 한 걸음을 내딛다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네가 준 옷이 마음에 든다. 혹시 어디에서 산 것이지?”

“흑룡강성 화남(樺南). 그곳에 만금상단이 운영하는 비단옷 가게가 있어.”

“만금상단이 취급하는 옷이라면 품질은 확실하겠군. 고맙다.”

하은월이 더는 미련 없다는 듯이 빠르게 사라졌다.

남아 있는 미련을 숨기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후우.’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뱉은 남궁무애는 여전히 그 자리에 꼼짝없이 누워 있었다.

분명 하은월이라면 여전히 자신을 감시할 테니까.

‘오는 길에 옷을 사 오길 잘했다. 입고 있던 옷은 검은 피 때문에 악취가 나서 항주에 갔다 온 것을 금방 들켰을 거야.’

공자가 준 옷을 입어도 됐지만, 그 모습을 하은월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화남에서 옷을 사고 공자에게 줄 것까지 샀다.

긴장하고 있었던 탓일까.

하은월의 평온한 얼굴에서 위험한 냄새를 맡고 기지를 발휘하여 옷을 건넸다.

그것이 한 수가 될 줄이야.

‘설마 하은월이 내가 옷을 산 곳까지 조사할 생각을 했다니.’

그의 치밀한 성격을 잠시 잊고 있었다.

남궁무애는 이대로 며칠은 누워서 움직이지 않은 채 하은월의 눈을 속이기로 마음먹었다.

하은월이라면 하루 이틀 정도 감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터.

남궁무애는 아예 열흘쯤 일어나지 않고 누워만 있을 생각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백 년 만에 느낀 평온한 마음으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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