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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229화 (230/270)

229화

삼 일 후.

하은월에게서 항주의 조사 임무를 받은 조상백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지역보다 피해가 적다고 해도, 극도태마신공으로 생긴 미친 자들의 영향을 받아 항주도 혼란 상태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항주를 둘러싼 성곽의 정문을 통과하는 것조차 힘들었지.’

금군들과 포졸들이 왜 항주를 왔는지 일일이 캐물었다.

항주에 거주하는 자들은 호적을 통해서 확인이 끝난 이후에야 들여보내 줬다.

호적도 없고, 미리 준비한 것도 없었기에 정문을 통과할 리 없었다.

결국 정문에서 항주의 출입을 금지당해서 몰래 외곽의 성벽을 넘어 숨어들었다.

성벽을 넘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지만, 그나마도 하마터면 들킬 뻔했다.

금군들이 열 보 간격으로 성벽의 순찰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임무 수행이 급선무라 조상백은 짜증을 내면서도 성벽 위에서 몸을 날렸다.

이십 장 정도의 거리를 날았고, 겨우 사람이 없는 곳에 발을 디딘 이후에야 항주가 다른 곳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래서는 쥐새끼들은 들어오지도 못하겠군.’

어찌 되었든 항주로 잠입했으니 객잔을 찾았다.

귀동냥이라도 할 생각으로 천천히 걷는데 번잡스럽게 사람이 버글거리는 곳이 눈에 보였다.

혼란 상태일 항주에서 한곳에 많은 사람이 몰린 것이 수상했기에 빠르게 달려가서 사람들이 하는 말을 엿들었다.

“하이고. 항주에 이렇게 거대한 상단이 들어서는구먼.”

“상단이 들어서는 것은 좋은 일이기는 한데, 이 장원에서 살고 있던 사람의 막내아들이 망할 놈의 무공 책을 보고 수련하다가 미쳐서 부모와 형제를 다 죽이지 않았는가. 안쓰러운 일이지.”

“그래도 폐가가 되어서 흉흉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상단에서 이 장원을 쓰는 게 낫네. 주인이 죽어서 싸게 샀다고 하더구먼. 에잉, 빌어먹을 놈의 무공 책 같으니.”

대부분은 극도태마신공의 욕과 장원의 전 주인에 대한 말이었지만 유독 상단이라는 말이 귀에 박혔다.

다들 몸을 사려야 할 이때 상단이 생긴다?

머리 좋고 수단도 좋은 천일영이라면 이때를 맞춰 상단을 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상백은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가린 채 자리를 떠났다.

이제부터 객잔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정보를 얻으려면 그곳만큼 좋은 곳은 없지.’

객잔까지 찾아가는 길에 군항을 살펴보았다.

해적과 왜구들을 시켜서 공격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미 전부 복구되어 있었다.

새롭게 높이 세운 담벼락부터 그러했고, 안에서는 이미 군함을 만드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항주까지 온 김에 구석구석 확인한 조상백은 객잔에 도착했다.

‘이게 객잔?’

외지인이라고 의심을 살까 해서 귀동냥만으로 찾은 객잔은 엄청난 호화로움을 자랑했다.

이런 규모라면 제법 떠도는 소문이 모여 있을 터다.

객잔에 자리를 잡고 앉은 조상백은 주문을 받으러 온 점소이에게 주문을 하며 손을 뻗었다.

“화화작(和花雀) 하나. 우육면(牛肉麵) 하나. 그리고…….”

뻗은 손에 들린 동전 삼십 냥.

건청은 돈을 받아 들면서 웃음을 지었다.

“큰돈입니다. 뭐가 그리 알고 싶으십니까?”

“이곳에서 다섯 리 떨어진 곳에 새로 생기는 상단에 대한 정보다.”

“희한한 것을 알고 싶어 하십니다. 그곳에 상단을 여는 사람은 젊은데도 주색잡기에 빠져 돈을 탕진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높은 관직에 있었던 터라 황태자와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고 하더군요. 황태자의 뒷배를 이용해서 돈을 빌려 상단을 만드는 것으로 압니다.”

“주색잡기? 그런 자가 황태자의 신용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소문에는 상단주가 황태자에게 여색을 가르치고 여자를 대 준다고 하더군요. 인간 말종이라고 들었습니다. 뭐 그런 사람이 상단을 해 봤자 얼마나 가겠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군.”

짐짓 경쟁 상단에서 나온 것처럼 안심하는 표정을 꾸민 조상백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내 외지에서 왔네만, 항주가 두 번의 큰 난리에도 피해가 적었다고 들었네. 어찌하여 그렇게 난리를 피했는지 한 수 배우고 싶구먼.”

“그건 은자 정도는 주셔야 대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커흠. 너무 비싸게 받는 게 아닌가?”

“그것이 아니라 손님께서 외지에서 오셨다는 것에 대한 입막음 비용입니다. 외지인은 지금 항주에 들어올 수 없으니까 말입니다.”

“젠장.”

조상백은 은자라는 말에 억지로 한 냥을 건넸다.

완전 날강도 수준이었으니까.

건청이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기 앞에 있는 여인이 보이십니까?”

“응?”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웬 미모의 여인이 화려한 검을 안고 있었다.

“저 여인이 왜?”

“항주를 구한 여인입니다. 황제에게 금화를 백 냥이나 하사받았지요.”

“그게 말이 되는가!”

일류 고수 정도의 여인이 항주를 구했다는 게 말이 되냐고 하마터면 소리칠 뻔했다.

무인을 알아보면 자신의 경지가 탄로 날 것을 머리에 떠올린 조상백이 억지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내 무공은 잘 모르지만, 저 여인 혼자서 항주를 구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네!”

“그야 그렇겠지요. 사실 저 여인은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객잔에서 난동을 부리는 사람을 내쫓는 역할을 하는 사람에 불과하지요. 다만 이 객잔에 자주 오는 도지휘사 척계광과 안면이 있다 보니 우연히 해적 소동 때 그를 구한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도지휘사를 구한 것이 와전되어 항주를 구한 것이 되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럼 항주를 구한 사람은 누구인가!”

조상백의 말에 건청은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돈을 더 내놓으라는 말이다.

인상을 확 구긴 조상백이 동전 삼십 냥을 더 건넸다.

건청은 두둑해진 주머니에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조상백의 귓가에 속삭였다.

“사실 항주를 구한 것은 화산파의 천량도사와 개방의 방주 도철용입니다.”

“뭐라? 그게 사실인가?”

“지금 저희 객잔에 묵고 계시지요. 그 두 분이 없었다면 항주는 끝장났을 겁니다. 정파인답게 항주를 구한 것을 입에 담지 않고 계시지만 제가 직접 보았습니다.”

“허허!”

듣고 보니 이해가 가기는 했다.

정파의 초고수가 두 명이 있고, 도지휘사가 살아남아서 지휘했으면 해적과 왜구들이 당할 만했다.

그것을 저 사기꾼 같은 여인이 홀랑 공을 집어먹었고, 정파의 초고수는 쓸데없이 공을 자랑하지 않고 있다.

후기지수를 위해 초고수 두 명이 공을 양보했을 수도 있고.

대략 모든 것이 이해가 간 조상백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혹 항주에 천일영이라는 사람이 있지는 않은가. 이름은 모르더라도 젊은 외모에 무공이 강한 사람이 있으면 알려 주게.”

“천일영? 천마신교의 교주 말입니까? 교주가 지금 폐관 수련 중인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항주에서 그를 찾습니까?”

“뭐 소문에 그가 천마신교를 나왔다는 말이 있네. 실은 상단을 하고 있는데 힘이 필요해서 그분을 모셔 볼까 생각 중이라네. 그래서 찾는 중이지.”

“제가 여기에서 십 년이 넘도록 점소이를 하고 있지만, 교주는커녕 그 비슷한 사람도 못 봤습니다. 젊어 보이는데 무공이 고강한 사람도 본 적이 없고요.”

순간 조상백은 무공이 고강한 사람을 본 적이 없는 점소이의 말에 위화감을 느꼈다.

점소이가 무인의 경지를 어찌 알아본다는 말인가.

잠시 뚫어지게 바라보니 일류 고수의 기운이 점소이에게서 느껴졌다.

‘일류 고수나 되는 사람이 왜 점소이를 하고 있지?’

생각해 보니 검을 안고 있는 여인이 도지휘사 척계광을 구할 때 모든 것을 봤다고 했던 말이 거슬렸다.

조상백은 건청을 슬쩍 떠봤다.

“자네 귀도 밝고 무인도 알아보는 듯하군. 혹 우리 상단에서 일해 볼 생각이 없나? 딱 자네 같은 사람이 필요하네.”

“하하하. 저는 무공을 수련했는데도 점소이를 하고 있습니다. 왜 점소이를 하냐 하면요.”

건청은 조상백이 건넨 은자와 동전을 손에서 펼쳐 보였다.

“덕분에 이렇게나 돈을 버는데 굳이 상단에서 일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무공으로 일 년 동안 벌 돈을 이곳에서는 열흘 만에 법니다.”

“그렇구먼. 자네 수완이 탐나서 해 본 말이네.”

“많은 돈을 주셨으니 하나 알려 드리지요. 사 일 후에는 항주 거주민이라는 증명으로 철패가 지급됩니다. 철패가 없는 자는 바로 현청으로 끌려가서 감옥행이니 그 전에 항주를 나가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점소이는 그 말을 끝으로 가 버렸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기감을 펼쳐 보니 화산파와 개방의 초고수 기운이 느껴졌고, 점소이가 무공을 수련했는데도 객잔에서 일하는 이유 역시 타당했기에 딱히 의심할 부분이 없었다.

음식이 나오자 대충 몇 수저 음식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척을 하다가, 밖으로 나온 조상백은 미련 없이 새로 만들어지는 상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직접 상단주를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었다.

때마침 장원을 상단으로 바꾸는 공사가 진행되는 곳에서 젊은 공자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주변에 여인들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분명 상단주.

‘잘생겼군. 딱 기생오라비야. 게다가 주색잡기로 가산을 탕진했다면서도 아직 여자들하고 놀고 있구먼. 내공도, 무공의 흔적도 없는 것으로 봐서는 점소이의 말이 맞는 모양이군.’

멋으로 가지고 다니는 검 하나 없이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천일영을 본 조상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일영일 리가 없었다.

저런 놈이 천일영이라면 화가 날 것 같았다.

‘항주에서 철패가 없는 자를 감옥에 가두는 것이 나흘 후라고 했나. 대업을 앞두고 정체가 발각되어 소란을 일으키느니 류규강의 흔적이나 찾다가 내일쯤 항주를 떠나는 것이 낫겠군. 알아볼 것은 다 알아봤다.’

류규강은 도망간 것이 확실해 보였다.

천량도사와 도철용이 있고, 이 정도로 방비가 잘된 항주라면 정체를 드러내야만 천자가 내린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기에 그는 포기한 것이었다.

모든 정황이 한눈에 그려지자 조상백은 안심하는 마음으로 다시 항주의 거리를 걸으며 귀동냥을 시작했다.

* * *

조상백이 천일영을 인간 말종 쓰레기 호색한으로 바라볼 때.

천일영은 황실에서 보낸 상단 관련 인물들과 인사를 나누는 중이었다.

거대한 장원도 황실에서 매입한 것이었고, 숫자에 능통한 여인 다섯과 상단 운영에 밝은 남자 일곱도 보냈다.

이 중에서 회계를 도맡아서 할 여인들과 웃는 모습을 일부러 조상백에게 보여 줬었다.

기감으로도 지나치게 기운을 억누르고 있어서 수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건청이 객잔에 간자가 왔었다고 전서구를 보냈기에 혈천회라고 확신했다.

책략은 잘 먹혀들었다.

객잔으로 돌아온 천일영이 건청에게 말했다.

“미리 이야기해 둔 대로 혈천회의 간자에게 잘 말한 모양이구나.”

“근방에 객잔이 별유천지 하나뿐이어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런데 공자님, 천량도사와 방주 도철용을 그렇게 팔아먹어도 되겠습니까?”

“혈천회는 숨어서 숨을 죽이는 중이니 당장 손을 대지는 않을 것이다. 그 둘의 안위를 걱정하느니 간자가 혈천회까지 길을 안내해 줄지가 더 신경 쓰이는구나.”

기감으로 보고 있건대 늦은 밤인 지금도 간자는 무언인가의 흔적을 찾는 듯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간자가 건질 만한 것은 없었다.

모든 증거를 지웠으니, 아무것도 찾지 못한 간자가 항주를 떠나는 것은 내일이나 모레쯤일 터다.

“간자가 항주를 떠나면 뒤를 쫓겠다.”

“조심하십시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건청은 간자의 입에서 천일영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다. 이제 얼마 후면 천마신교든 혈천회든 나에게 신경 쓸 여유도 없을 정도로 바빠질 테니까. 그보다 오늘 간자에게서 제법 뜯어낸 모양이더구나.”

“은자를 한 냥. 동전을 육십 냥이나 받아 버렸습니다.”

그때 건청의 등 뒤로 머리 하나가 쑥 올라왔다.

단옥이었다.

“은자 한 냥에 동전을 육십 냥이나 받았다고요?”

“헉! 언제 등 뒤에 서 있던 거요?”

“공자님이 가르쳐 주신 동작을 매일같이 반복했더니 알아서 은밀하게 움직여지던데요. 그보다 오라버니?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은자와 동전을 삼키려고 하다니,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요?”

“아니! 주려고 했어요. 진짜로.”

“집 안에 비상금이 있는지 전부 뒤져 봐야겠네요.”

“헉!”

건청은 눈을 질끈 감고, 떨리는 손으로 은자를 단옥에게 건넸다.

건강해지라고 공자님께서 가르친 내공심법이 이렇게 쓰일 줄이야.

매일같이 천일영이 가르친 것을 빼먹지 않고 반복한 단옥은 날이 갈수록 비상금을 찾는 데 신출귀몰해졌다.

내공심법을 수련하면 돈 냄새를 잘 맡게 하는 능력이 생기던가?

건청은 혈천회보다, 솔직히 단옥이 훨씬 더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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