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대명국에서 장군의 호칭을 가지는 것은 황족.
즉, 황태자를 제외한 황자(皇子)가 정1품 친왕(親王)으로 책봉되고, 친왕을 세습하지 못하는 황손이 종1품 군왕(郡王)으로 책봉된다.
그리고 군왕을 세습하지 못하는 황족은 항렬에 따라 종1품 진국장군(鎭國將軍), 종2품 보국장군(輔國將軍), 종3품 봉국장군(奉國將軍)의 순서대로 종 6품까지 직위를 하사받는다.
주장학은 비록 황위 계승과는 인연이 없는 인물이지만, 종2품 보국장군이라는 이름대로 황제와는 무척이나 가까운 혈통이었다.
또한 편히 살 수 있는 황족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곤륜파에 들어간 기인이기도 했다.
포권을 취한 주장학이 예를 갖추며 천일영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대가 소문의 공자로군요. 저는 주장학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상단의 호위와 안전을 책임지는 임무를 명받아 왔습니다.”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저는 천무탁이라고 합니다.”
포권의 자세를 취하는 주먹 사이로 보이는 천일영의 모습에 주장학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공자의 모습은 딱 기생오라비.
‘듣기로는 무공이 고강하다고 했는데?’
곤륜파에서 이십오 년을 수행했고, 오십 대 중반에 초절정 고수가 된 주장학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절로 입가가 씰룩여지며 조소와도 같은 웃음이 지어졌다.
“비록 황제의 명으로 공자를 보필한다고는 하나, 이빨을 숨길 생각도 없고 고개를 숙일 마음은 더더욱 없습니다. 이를 인정 못 하시겠다면 저에게 한 수 가르쳐 주시지요.”
“보국장군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걸렸군.
‘초절정 고수인 내가 도발했다고 바로 응수하는 것인가. 겁을 먹지 않는 것만큼은 합격이다.’
주장학은 윤룡십삼검(雲龍十三劍)의 자세를 취하는 동안에도 검을 뽑지 않는 공자의 모습에 고개를 기울였다.
“공자는 검을 뽑지 않는 것입니까? 어떤 초식을 사용하는지 보고 싶었습니다만…… 헉!”
주장학은 심장이 덜컥 떨어져 내리는 것 같은 심정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말을 하는 동안 어느새 목에서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뭐지? 움직이는 것이 보이지도 않았는데. 아니, 그냥 어느 순간 내 목에 검이 닿아 있다.’
검만 목에 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공자는 신법으로 몇 걸음만큼의 거리까지 좁혔다.
천일영의 싸늘한 목소리가 주장학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방금 한 번 죽으셨습니다. 두 번째는 땅에 떨어진 머리로 흙바닥을 보게 될 것입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허허! 아닙니다. 이래서는 시험을 해 보려고 했던 저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게 느껴지는군요.”
“그래서 저는 보국장군이 생각하시기에 합격인지요.”
“제가 감히 합격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는 제 주인이 되실 분이시니 말씀도 편하게 하시지요.”
“그러지.”
검날이 거두어지자, 서늘한 감각 때문에 목을 잠시 만지던 주장학은 황족임에도 고개를 숙였다.
“제가 아끼는 수하 사십 명과 같이 왔습니다. 절정 고수 한 명에 모두 일류 고수입니다.”
“상단에 온 것을 환영한다.”
빙긋 웃음을 짓는 천일영의 모습을 보니, 뒤에서 쑥덕거리는 놈들뿐인 황실보다는 여기가 훨씬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황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반란을 일으킬 불순한 사람 취급을 받는 데 넌더리가 나던 참이었다.
‘남들은 황제가 나를 버렸다고 했지만, 의외로 괜찮은 곳에 온 듯하군. 항주는 해산물이 싱싱해서 북경보다 안주가 좋다고 했던가. 공자와 함께 마실 술이 기대되는구나.’
그때였다.
햇살이 강했기에 손으로 열기를 가리는데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주장학은 입가를 어루만지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빨을 숨길 생각이 없다고 말했기에 공자가 입술에 남긴 흔적이었다.
‘이빨부터 뽑아 버린다는 경고로군. 검은 검집을 떠나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허공을 가른 것인가. 정말로 대단하구나.’
주장학은 항주의 맛있는 해산물을 먹으려면 입조심부터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별미라고 불리는 오징어는 이가 없으면 먹기 힘드니까.
* * *
삼백 명 정도를 능히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장원에는 황실에서 나온 사람들이 상단의 구색을 갖추고 있었고, 이미 거래할 물건까지 속속 들어왔다.
새롭게 시작하는 상단에서 각자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보국장군이 오기를 같이하여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부상단주를 맡은 양호제라고 합니다.”
“저는 회계를 총괄하는 안하주라고 합니다.”
“나는 보국장군 주장학이다. 상단의 안전과 산적들로부터 상행을 보호하는 역할이다.”
“적대시하게 될 상단과 경쟁 상단, 그리고 협조할 상단을 각각 나누고 조정을 하는 노병천이요.”
“부상단주님과 같이 일할 단옥입니다.”
“저는 예서란. 황실과의 소통을 맡고 있습니다.”
인사가 끝나자 얼굴을 마주 보며 뻘쭘한 웃음을 짓는 가운데, 안하주만이 의아한 눈빛을 보였다.
“상단주님? 벌써 저희가 일을 시작하고 거래 준비도 끝나 가는데 상단의 이름이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같이 이름을 지어 줬으면 해서 그냥 두었다. 좋은 이름이 생각나면 말해 보아라.”
예서란이 손을 번쩍 들었다.
천일영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자님, 상단의 이름은 벌써 정해져 있습니다.”
“상단주인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다만?”
“그게…… 이름은 황실에서만 쓸 수 있는 용(龍)자를 붙여서 천룡(天龍)으로 하라고……. 황제 폐하의 명입니다.”
“황실에서 보증해 주는 상단이라는 말이냐.”
“네. 황실과 거래하고 황실에서 보증도 해 주는 상단이라고 하셔서, 제가 황실과의 거래를 만들기 위해서 금군의 비품을 넣겠다고 했습니다.”
양호제와 안하주, 그리고 주장학은 입을 쩍 벌린 채 예서란을 바라봤다.
금군의 비품은 모든 상단이 탐을 내는 노다지 같은 것이니만큼, 이런 돈 잘 버는 기특한 녀석 같으니 같은 표정이었다.
“그럼 상단의 이름은 천룡으로 결정되었군. 다음은 상단의 일인데 조금 의외의 일을 할 것이다.”
“의외의 일이요? 상단에 그런 일이 있습니까?”
안하주가 기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천마신교와 거래를 할 것이다.”
“쿨럭. 쿨럭. 캑캑. 천마신교요? 아니, 왜! 하고 많은 데서 천마신교입니까? 악질적이고 개 같은 놈들이 있는 곳 아닙니까. 천마라는 인간은 눈만 마주쳐도 사람을 찢어 죽인다고 들었습니다. 교주 이름이 천일영인가? 그런 쓰레기하고 거래한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
“큼큼. 아니, 뭐……. 그렇게까지 쓰레기인 놈은 아닐 건데…….”
눈 마주쳤다고 찢어 죽인 적 없는데.
슬그머니 귀밑머리를 긁은 천일영이 조금 붉어진 얼굴로 이어서 말했다.
“상단이 만들어진 이유다. 황실을 적대시하고 세상에 혼란을 일으키려는 혈천회라는 곳이 천마신교와 줄을 대고 있다. 그래서 천마신교를 통해 놈들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천마 같은 쓰레기 놈과 딱 어울리는 놈들인 모양이네요. 하긴, 천마 같은 놈하고 어울리는 놈이라면야 그놈도 개 같은 놈이겠지요.”
“그…… 아마 혈천회가 천마보다는 나쁜 놈이지 않을까?”
“하! 나쁜 놈들끼리 누가 덜 나쁜지 경쟁해 봐야 그놈이 그놈입니다.”
안하주의 독살스러운 표정이 천일영의 심장을 찌를 것만 같은 한기를 풍겼다.
그녀의 입술은 분노를 참으려는 듯 잠시 달싹이다가 이내 한숨과 함께 다시 한번 열렸다.
“죄송합니다. 말이 험했네요. 황실에서 세수를 관리했던 저로서는 한 푼이라도 덜 내고 더 뜯어내려는 부패한 지방 관리들과 싸우는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나쁜 놈들은 이야기만 들어도 화가 치밉니다.”
“괜찮다. 하고 싶은 말은 참지 말고 하여라.”
정의감이 투철한 안하주의 성격이 한눈에도 보였다.
왜 황실에서 그녀를 보냈는지 이해한 천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혈천회라는 놈들은 아마도 상당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돈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내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얼마큼의 자금력이 있는지 대략 가늠하게 해 주실 수 있나요?”
안하주가 돈을 다루는 사람답게 깐깐함을 드러냈다.
천일영은 그간의 이야기를 했다.
해남도 때 들인 돈. 무림맹의 남궁천을 지원한 것. 해적과 왜구들을 수만 명이나 거두고 있다는 것과 전국에 진법을 깔고 통로를 만든 것까지.
해적과 왜구를 제외한 수만 명의 수하까지 데리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말이 나온 이후로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안하주와 양호제, 그리고 주장학의 얼굴이 점점 굳어 갔다.
무려 십만에서 이십만의 병력을 가진 집단.
이제야 황실에서 이곳으로 온 이유를 깨달은 까닭이다.
양호제가 처음 인사를 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상단주님, 이 정도의 자금력을 가지고 있다면 상단은 필수입니다. 전장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그 정도로는 이 모든 것을 충당하지 못합니다.”
“잠깐만요.”
양호제의 말이 끝나자 안하주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가로챘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안하주는 스스로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금광. 은광. 철광. 아마도 그중에서 하나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세 개 전부를 가지고 있던지요.”
“확실히 그렇겠지. 나도 그대의 생각과 비슷한 것을 떠올리고 있던 참이다.”
“그대니, 뭐니 그런 비효율적인 명칭은 필요 없습니다. 그냥 이름으로 부르십시오. 하주야. 이렇게 부르시면 됩니다.”
안하주는 퉁명스럽게 호칭을 정리해 버리고 이내 지도를 꺼내 왔다.
황실에서는 소유를 금지한 지도이나, 효율을 중시하는 안하주는 애초에 이곳으로 올 때부터 제일 먼저 챙긴 것이 정밀 지도였다.
세수를 확인할 때 지형과 토지를 조사하는 것은 기본이니까 이 지도를 통해 돈이 잘 흐르는 곳도 알 수 있었다.
그것을 탁자 위에 활짝 펼친 안하주가 한동안 미간을 찡그리며 입술을 물어뜯었다.
제법 오래전 기억까지 뒤지고 있던 안하주의 손가락이 마침내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키기까지는 무려 일각의 시간이 흐른 후다.
탁!
손가락이 가리킨 부분으로 시선이 몰렸다.
“산동성(山東省) 서하(栖霞). 이곳에 과거 세수가 이상했습니다. 주인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는 땅이 거대하게 펼쳐져 있고, 세수가 나쁘지만 반대로 사는 사람들의 생활 수준은 높은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고 수상한 곳이 중원에는 다섯 곳이나 더 있습니다. 아마 여기에 숨겨진 금광이나 은광이 있지 않을까요?”
“벌써 찾은 것이냐. 대단하구나.”
안하주의 입술이 비틀리며 올라갔다.
그렇지 않아도 희한한 지역이라 생각했지만, 어째서인지 그곳의 조사는 의뢰할 때마다 항상 무시되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서하를 탈탈 버릴 생각을 하자니,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계속 흘러나왔다.
“돈줄 찾았다. 이 천마만큼 나쁜 새끼야.”
“그곳은 하주가 조사하거라. 필요한 인력이 있으면 준비해 주마.”
“금광과 은광은 화폐의 주조에 쓰이고, 철광산은 무기를 만들 때 쓰이기에 황실 이외에는 가질 수 없는 곳입니다. 그것을 혈천회가 가지고 있다면 필시 황실에서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겠죠.”
“모조리 찾아라. 다음은 천마신교와 거래할 내용이다.”
천일영은 주장학에게 의미 모를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살기가 없는데도 기이할 만큼 모골이 송연해진 주장학이 침을 삼켰다.
“상단주님, 혹시 저에게 뭔가를 시키실 생각이십니까?”
“보국장군은 반란을 일으키는 반역자가 될 생각은 없는가? 아니, 일단은 무조건 반란을 일으켜 줘야겠군.”
“네? 반역자요? 제가 말입니까?”
주장학은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황실에서는 미래에 반역을 일으킬지도 모를 ‘못된 싹’ 취급을 받았는데 이제는 아예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라니.
주장학은 떨리는 입꼬리를 주체 못 하고 흔들리는 눈빛만을 천일영에게 쏘아 보냈다.
만난 지 하루 만에 반역자로 만들어 버리다니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하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