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귀주성의 귀천명.
거대한 천마신교의 정문이 멀리에서 보이는 귀천명의 한구석에서 주장학은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현청에서 만들어 놓은 현판.
자신의 얼굴이 현판 위에 그려져서 걸릴 것은 꿈에도 생각 못 한 주장학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쓸데없이 섬세하게 잘 그려진 얼굴 밑에 쓰인 글자는 ‘반역’.
게다가 현상금이 금화 열 냥이나 된다.
온 중원에 표적이 된 주장학은 누가 볼까 봐 한숨도 내뱉지 못하고 얼굴을 가렸다.
망할.
‘터무니없는 공자의 생각 때문에 죽게 생겼구나. 무공이 초절정 고수에 이르니 버티기는 하겠지만, 현상금을 노린 추적자들의 공격이 만만치 않겠군.’
빠르게 현판 앞을 떠나려는데, 같이 서 있던 양호제가 용모파기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보국장군님의 실제 얼굴보다 잘 그렸네요. 실제 보국장군님은 이것보다 많이 못생겼다고 황실에 말해 줘야겠습니다.”
“…….”
시끄러워, 이 새끼야.
“수염도 더 많이 그렸군요. 이래서는 보국장군인지 알아보기 힘들 텐데요.”
좀 닥치라고, 이 망할 놈아.
“수염을 깎은 얼굴도 같이 붙여야지, 수염을 밀면 이래서는 어찌 알아볼지…….”
아예 잡혀서 처형당하라고 빌어라, 이 우라질 새끼야.
덥석.
주장학은 양호제의 목덜미를 잡고 현판에서 끌어내어 천마신교의 정문 앞으로 걸어갔다.
어제 늦은 밤에 귀천명으로 와서 하오문 귀주성 지회에 하룻밤 신세를 졌다.
회주 윤의강은 미리 천마신교와의 약속을 잡아 놓았고, 지금 천마신교의 정문 앞에 선 세 명의 남자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힘들었다.
노병천, 양호제, 그리고 주장학.
그들은 청해성에서 맡았던 임무가 끝나서 다시 정문을 지키는 원래의 일로 복귀한 강환수에게 찾아온 연유를 설명했다.
이미 새로운 상단이 찾아온다는 언질이 있었기에 강환수는 정문을 열라는 명령을 내렸다.
드르르르르륵. 쿠웅.
천마신교로 들어가는 거대한 문이 열리자 양호제와 주장학, 그리고 노병천은 침을 꿀꺽 삼켰다.
‘살아생전에 천마신교 안에 들어가게 될 줄은.’
하지만 긴장과는 달리 그들은 넓게 펼쳐진 평야에 눈을 끔뻑였다.
강환수가 천마신교에 처음 들어온 세 명에게 말했다.
“상상과는 달라서 실망했나? 정문의 뒤쪽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과 상단에 관련된 사람들이 있다. 천마신교의 본문은 이곳에서 평야를 거쳐 십만대산까지 지나야 있지. 당신들이 거기까지 갈 일은 없고, 요 앞에 보이는 전각으로 가면 된다.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은 감시에서 벗어나면 죽게 될 것이다.”
“그리하겠습니다.”
감시를 목적으로 한 젊은 남자 하나가 따라붙었다.
주장학의 경지가 초절정 고수인데도 하오문의 회주인 윤의강이 뭐라고 언질을 넣었는지 천마신교에서는 별반 말이 없었다.
세 명은 전각으로 가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과 늘어져 있는 상단의 사람들까지. 보통의 중원과 다를 게 없는 풍경이군.’
이 생각은 주장학뿐만이 아니라 양호제와 노병천도 똑같이 하는 모양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표정에, 감시로 붙은 남자가 익숙하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천마신교도 다른 곳과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몇 년 전에 자리에 오르신 천마님이 인자하신 분이라 저희의 사정을 많이 봐주셨지요.”
“천마님이라면…….”
“천씨 성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저희는 모두 그분께 은혜를 입었다고 해도 좋겠지요. 그분이 없었다면 저희는 무척이나 힘들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구먼. 천마라고 하면 항간에는 무섭다는 생각만 퍼져 있거늘.”
“전에 계셨던 천마 중에서는 그런 분들도 계셨죠.”
감시를 맡은 남자가 안내해 주는 대로 전각의 이 층으로 올라간 세 명은 제법 고급스러운 방에 앉아서 내오는 차를 마셨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오십 정도에 이르는 남자가 들어왔다.
“천마신교와 거래하시려고 찾아오셨다 들었습니다. 하오문의 귀주성 회주에게는 신세를 진 것이 많아서 일단 만나 뵙겠다고는 했으나 부족한 것이 없어서 거래할 것이 있을지 걱정입니다만.”
“거래할 물건이 문제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가격이지요.”
“허허. 이야기가 통하는 분이시군요. 저는 천마신교에서 상단과의 거래를 담당하는 가희승이라고 합니다.”
가희승은 여우답게 가격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자리에 앉았다.
가격도 맞추지 못할 거라면 나가라는 것을 양호제가 알아들은 것이었다.
양호제도 능구렁이답게 천마신교와 거래하는 다른 상단을 조사하여 만들어 온 가격표를 가희승에게 넘겼다.
종이를 한두 장 넘기던 가희승은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살짝 떨리는 눈꼬리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이것 봐라? 만금상단에서 거래하는 가격보다도 전부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했군. 이것은 가격뿐만 아니라 상대 상단의 정보 정도는 얼마든지 알 수 있다는 것을 보이려고 만든 것인가.’
딱 일 할.
만금상단보다 정확하게 일 할 싼 가격으로 품목 수백 개를 만들어 왔다.
가희승은 여기에서 더 깎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입을 열었다.
“거래하지요.”
“좋습니다. 다만 만호상단, 금은상단, 호남상단, 악양상단, 매화상단에서 거래하는 물건을 저희 쪽으로 전부 몰아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이윤이 남습니다.”
“호오? 그 다섯 개의 상단과 거래하는 금액이 금화 칠천 냥은 됩니다만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양호제는 입을 다물고, 역할을 이어받은 노병천이 상행패를 탁자 위에 올렸다.
어디의 어떤 상단인지 증명해 주는 패다.
가희승은 패에 적힌 두 글자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채 침을 삼켰다.
천룡.
용이라는 글자는 황실에서만 사용하는 글자다.
무공 이름에야 심심하면 들어가는 것이지만, 상단이나 전장, 혹은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곳에 들어가면 곤란한 글자였다.
노병천은 가희승이 침을 삼켰다는 것을 눈치채고 입을 열었다.
“황실과 연줄이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황태자와 연관이 있는 곳입니다만.”
“황태자?”
“이야기가 깁니다. 말을 아끼자면 황태자가 아버지처럼 따르는 분을 위해서 만든 상단입니다. 그래서 상단주는 황태자가 이용할 목적으로 주색잡기에 빠진 바보를 내세웠습니다. 실제 상단주는 곁에 계신 바로 이분이시지요.”
가희승의 눈길이 주장학으로 향했다.
“이분이 상단주?”
“종2품 보국장군 주장학이라는 분이십니다.”
“보국장군!”
하지만 떨리는 눈길로 주장학을 바라보는 가희승의 눈빛은 놀라기는 했지만 냉정함은 여전했다.
“보국장군이라는 것은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상단의 운영에 도움이 될 것이 있겠습니까.”
“있습니다. 보국장군께서는 대업을 이루려고 하다가 잘못되어 현상금이 걸린 몸. 그때 보국장군을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있던 황태자가 상단을 만들어서 숨긴 것이지요. 허나 그 때문에 거래할 것이 따로 있습니다. 저희가 이윤도 거의 남기지 못하면서 이곳에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가희승의 눈이 허공을 향해서 몇 바퀴를 돌았다.
도대체 따로 거래할 것이라는 게 무엇인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보이는 가희승을 향해 노병천이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지었다.
“황실에 줄이 있고 아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상단이 취급하지 못하는 물건은 하나뿐입니다. 바로 화약이지요!”
“뭐라고! 화약!”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크게 나온 목소리를 누가 들었나 싶었던 가희승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저희는 무공으로 세상을 밝히는 천마신교입니다. 화약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만.”
“정말로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저희는 무림맹이나 사혈련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벽력탄을 들고 덤비는 무림맹이나 사혈련을 상대하고 싶으신 모양이군요.”
노병천이 벌떡 일어나자 주장학과 양호제도 몸을 일으켰다.
아쉬울 것이 없다는 행동이었다.
가희승은 침을 삼키고는 급히 노병천의 손을 잡았다.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오. 조금 기다리시오.”
“내 천마신교의 본문이 멀다고 들었소이다. 그러니 사 일. 딱 그 기간만 기다리겠소.”
멍한 눈으로 가희승은 노병천을 바라봤다.
‘이런 망할 새끼.’
삼십 년이 넘도록 상단의 상대를 해 오며 온갖 능구렁이들을 다 겪어 봤지만, 천마신교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는 놈은 처음 봤다.
마음속에서 연거푸 욕이 이어졌다.
* * *
하은월이 천마신교 흑뇌마왕 마염지에게서 날아온 전서구를 보고 생각에 잠긴 지 꼬박 하루가 지났다.
‘화약이라. 필요하기는 하다. 그것도 절실하게. 절강성과 강소성, 그리고 복건성을 공격할 때 천자뇌포를 쓰느라 사용한 화약의 양이 많았지.’
금군의 군함을 탈취하며 그 안에 담겨 있던 대량의 화약이 있었지만, 이제는 남은 양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항주에 새로 만들어진 상단이라. 또 항주인가?’
하은월은 마침 잘됐다 싶어서 얼마 전에 항주에 다녀온 조상백을 불렀다.
“혹시 이번에 항주에 갔을 때 상단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느냐.”
“있사옵니다. 주색잡기에 빠진 상단주가 황태자의 연줄로 거대한 상단을 연다고 했사옵니다. 상단주의 얼굴도 확인했사온데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헤실거리던 바보 놈이었사옵니다.”
“그런 것까지 알아보았더냐. 너를 항주에 보냈던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모양이군.”
마염지가 보낸 편지의 내용과 일치한다.
하은월은 조상백을 물리고 또 다른 천지제 중 한 명인 윤자환을 불렀다.
윤자환은 급히 명을 수행했는지 식은땀까지 흘려 가며 입을 열었다.
“천자님. 명하신 대로 알아본바, 보국장군 주장학은 용모파기에 이름을 올리고 전국에서 쫓기는 몸이 확실했사옵니다. 그리고 황실에서 저희 일을 돕는 자에게 알아보니 자금도 황태자를 통하여 항주의 상단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 맞사옵니다.”
“알았다. 물러가도 좋다.”
“예.”
보국장군의 신원도 편지와 일치했다.
‘하늘이 돕는 모양이군. 화약의 제조까지 손을 대기에는 무리였는데 잘됐구나.’
게다가 마염지가 보낸 전서구에 의하면 상당한 양의 화약을 융통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상당한 돈이 들어가겠지. 하지만 황실에서 경계하는 지금, 또 다른 금군의 군함을 탈취하는 것은 힘드니 거래를 하는 것이 맞다.’
황실에서 다루는 화약은 최고 품질이다.
거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은월은 마염지에게 거래 승낙의 전서구를 날리려고 붓을 들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나치게 확실하고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으니 오히려 마음에 걸리기라도 한 것일까.
‘아무래도 대업이 코앞이니 조심하는 것이 좋다. 이번 일은 반드시 성공해야 하니까.’
그러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천마신교를 통해서 진행하려던 세 번째 계획을 빠르게 진행하는 게 좋겠군. 이 방법을 쓰면 천룡상단도 나중에 딴소리를 못 할 것이다.’
붓을 내려놓고 하은월은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이번 기회는 딱 좋았다.
원래는 천일영을 잡기 위해서 마련해 놓은 세 번째 방편.
이것을 이용해서 천룡상단에도 압력을 집어넣기에 나쁘지는 않았다.
그야말로 일석이조(一石二鳥).
하은월은 혈천회 내부에서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노송하를 불렀다.
스윽.
그림자와 일체가 되어 보이지 않고 있던 여인의 신형이 스르륵 나타났다.
삼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인이 하은월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천자시여. 명령만 내리소서.”
“천일영을 끌어내려고 한다. 대업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거처야 할 일이다. 너는 천마신교로 가서 내가 시키는 일을 하여라. 이후 천룡상단의 상단주 보국장국과도 거래를 마무리 짓고.”
“명대로 하겠나이다. 허나 이 일은 중요한 일. 천자께서는 미물과 다름없는 저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시고 어떤 일을 하시렵니까.”
“나는 천일영을 직접 잡겠다. 내 손으로 죽여야 분이 풀릴 것 같으니.”
노송하는 하은월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자시여. 아니 될 말씀이옵니다. 먼저 심장을 찾고 천일영을 죽이소서.”
“소란을 먼저 일으킬 이유가 없다. 천일영을 죽이는 정도는 지금의 나로도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으니.”
“모든 것은 천자님의 뜻대로.”
노송하는 하은월에게 천마신교에서 해야 할 이야기를 듣고는.
스르르륵.
다시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 * *
다음 날.
온 중원이 발칵 뒤집혔다.
천마신교에서 나온 공표 때문이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폐관 수련을 하고 있던 천마 천일영은 주화입마로 인해 그 명을 달리했다. 다음 천마를 무림에 공표하는바 파천마왕 패범휘가 천마신교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으로 마왕들이 만장일치 결정을 하였다. 새로운 천마의 경지는 탈마. 전대 천마 천일영이 이룬 극마보다 더 높은 경지임을 알리는 바이다.]
그리고 파천마왕 패범휘가 천마로 발표가 되는 순간.
타다다다닷.
명천마왕 소초련과 도현이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추적을 피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