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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234화 (235/270)

234화

명천마왕 소초련은 옆구리가 한 움큼 도려져 나간 도현의 부축을 받으며 다리를 끌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더는 걷거나 뛰는 것도 불가능했다.

“쿨럭. 쿨럭!”

배 속 깊은 곳부터 올라오는 핏물이 입에서 나오며 도현의 얼굴에 튀었다.

“명천마왕님! 괜찮으십니까!”

“전혀 안 괜찮구나. 나를 버리고 도망가거라. 너도 많이 다쳤다. 쿨럭. 쿨럭!”

“버리고 가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십시오. 일단 하오문 귀주성 회주 윤의강에게 전서구를 날리겠습니다. 조금만 버티세요.”

이를 악물고 전서구를 날리는 도현의 단호한 얼굴에 소초련은 굳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말도 더럽게 안 듣는 새끼.

천마하고 항상 붙어 있더니 나쁜 것만 배워서 고집이 센 놈이다.

조금 전만 해도 끼어들지 말라는 명령을 듣지 않고 기어이 자신을 구해 냈다.

‘나는 지금 폐를 관통당한 부상도 크지만, 내상을 입은 것이 문제다. 이래서는 달리지도 못하고 마치 산공독(散功毒)에 당한 것처럼 내공조차 흩어지지 않나. 파천마왕 패범휘, 이놈이 결국은 그런 짓을!’

팔도 꺾이고 무릎도 나간 소초련은 꼼짝없이 도현에게 의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소초련은 찢긴 동공 사이로 머리 위를 비추는 햇살을 바라봤다.

아직도 마왕들이 그런 짓을 하고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분명 어제까지 파천마왕 패범휘는 초절정 고수였다.

그런데 오늘은 탈마의 경지가 되었다.

그 비밀을 알아차린 대가가 바로 이것이었다.

소초련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더는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었으니까.

멀어지는 의식에서 느껴지는 것은 단 하나.

도현이 자신의 몸을 붙잡고 흔들며 외치는 다급한 목소리뿐이었다.

소초련의 머리가 땅을 향해 툭 떨궈졌다.

* * *

그동안 소초련은 천마가 풀지 못한 마왕들의 비밀을 캐내고 있었다.

반년 만에 마왕들의 비밀스러운 동향을 알아낼 수 있었고, 흑뇌마왕 마염지의 집에 지하로 파 놓은 비밀 장소가 있다는 것도 파악했다.

삼 일에 한 번.

마왕들은 단 한 번도 예외를 두지 않고 정확한 날짜에 흑뇌마왕의 집으로 모였다.

다만 그곳에 소초련이 초대되는 일은 없었다.

그들이 흑뇌마왕 집에 모이는 날에는 영약이 쓰인 곳을 찾기 위해서 몰래 돌아다녔다.

삼 일에 한 번 마왕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그 시간이야말로 소초련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다 증거를 찾아냈다.

독천마왕 서가흔이 죽게 된 연유도 알아냈다.

영약을 빼돌려서 사용한 것은 물론, 천마신교에서 그동안 일어났던 비밀의 내용도 알 것 같았다.

무공을 상승시키기 위해서 이상한 실험을 해 온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을 알아낸 것이 어제의 일이었다.

‘이 일은 도현에게 비밀로 해야겠다. 알게 되면 나를 따라서 올 테니까.’

천마에게 전달할 내용을 편지로 써서 잠든 도현의 곁에 둔 소초련은 혈도를 짚었다.

파바바밧.

대략 반 시진 정도는 깨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혈도다.

이 정도 시간이면 마왕들의 잘못을 되돌리는 시간으로는 충분할 터다.

도현을 잠시 안쓰럽다는 듯이 바라본 소초련의 눈길에 아련함이 묻어났다.

그동안 자신과 함께 마왕들의 뒷조사를 하느라 죽을 만큼이나 고생한 그다.

그러니까 도현은 살아야 했다.

“마왕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은 마왕끼리 해결해야 한다. 그러니 너는 잠이나 푹 자라.”

도현에게도 편지 한 장을 남겼다.

잠에서 깨어나면 빨리 떠나라는.

소초련은 도현과 작별하고 마염지의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명천마왕님, 이 늦은 시간에 여기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아무리 마왕님이시라고 해도 약속 없이 찾아오시는 것은 곤란합니다.”

“너에게는 볼일 없다.”

슈아아악. 촤아아악!

흑뇌마왕 마염지의 집 앞을 지키던 무인의 목이 날아갔다.

손에 의해서 날아간 목이지만 잘린 면이 날카로운 검에 베인 것보다 더 깨끗하다.

소초련은 피 묻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나도 바보가 아닌 이상 무턱대고 이곳으로 찾아오지는 않는다.’

그간 게을리하지 않았던 소수마공의 수련.

이제는 음기를 넘어 극음의 기운을 끌어내게 된 소초련의 손은 검보다도 예리하게 적을 도륙할 수 있었다.

‘최소한 마왕 몇은 데리고 지옥으로 간다. 저 마왕들 때문에 천마가 되고, 또한 마왕들로 인해 천마를 그만둔 천일영에 대한 내 나름의 속죄다.’

천일영이 어릴 때 팔려 온 것의 미안함까지 더해진 손길로 소초련은 마염지의 지하에 있는 두꺼운 철문을 손으로 찢어발겼다.

뚜두두둑. 슈아아악. 쿠웅.

철문이 가리고 있던 지하실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지만 소초련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기괴한 풍경에 침을 삼켰다.

푸르스름한 연기가 방 안을 가득 메우고, 다른 마왕들이 패범휘 옆에서 무릎을 꿇은 채 있었다.

‘이건 무슨 광경? 마치 패범휘를 천마 모시듯 하지 않은가! 게다가 저 시체들은 뭐지?’

이십여 구의 시신이 뼈와 가죽만을 남긴 채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말라비틀어진 것이 마치 흡성대법으로 기운을 빨아 마신 것 같았다.

소초련의 눈길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방 안을 다시 한번 살피는 동안, 처음 보는 여인 하나가 패범휘의 몸을 관찰하더니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이내 여인의 눈길이 느른하게 소초련을 향하며 빛났다.

소초련의 몸이 탐난다는 듯.

노송하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패범휘에게 말했다.

“환단으로 중단전을 열고 극음과 극양의 기운을 모두 몸 안으로 흡수했습니다. 하지만 기운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저 여인의 몸에 있는 극음의 기운을 빨아들이십시오. 감로의 맛과도 같은 극상의 기운이랍니다?”

“크흐흐흐. 드디어 저년의 맛을 보게 되는 것인가. 명천마왕께서는 오시는 게 너무 늦었군. 나는 좀 더 빨리 올 줄 알았는데 사람을 이렇게나 기다리게 하다니.”

“뭐라고? 그것이 무슨 말이냐!”

당황의 빛이 소초련의 얼굴에 드리워지자, 패범휘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직도 모르겠는가. 네년이 이곳으로 찾아오게 하려고 증거를 흘려 줬는데. 애초에 우리가 이곳에 모일 때마다 네가 뒤를 캐고 다녔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여기에 오도록 일부러 꾸몄다는 것이냐.”

“때를 맞춰서 네년이 갈 만한 곳에 증거를 놓아둔 것뿐이지.”

뿌드득.

소초련의 입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이 무슨 어리석은 짓을 한 것인가.’

하지만 이내 소초련은 소수마공으로 하얀 도자기처럼 빛나는 손을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어지는 패범휘의 말 때문이다.

“천일영이 천마신교를 버렸는데도 그동안 너를 살려 둔 이유는 하나뿐이다. 기운을 빨아들이려고 그동안 풀어 둔 것뿐이지.”

“네놈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네놈의 먹잇감이 되느니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지!”

바뀐 것은 없었다.

그저 전력으로 저들을 죽일 뿐.

파앙!

소초련의 신형이 튀어 나갔다.

이제 막 기운을 빨아들인 패범휘라면 아직은 이 모든 것을 되돌릴 가능성이 있었다.

소초련의 신형이 튀어 나가자 무릎을 꿇고 있던 마왕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키고 소초련을 막아서려는 순간.

패범휘의 손이 그들을 막아섰다.

“됐다. 내가 처리하지. 기운도 시험하고 싶고.”

“다른 사람의 기운으로 경지에 오른 주제에!”

소초련의 소수마공이 일직선으로 패범휘의 목으로 날아갔다.

곧 찌를 듯이 목 앞까지 와 있던 서늘한 손날에 패범휘는 당황할 법도 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웃음만이 남아 있는 채로 이죽거리는 말이 나왔다.

“다 보인다. 이래서는 너무 느리군.”

“개소리!”

이를 악문 소초련의 일격이 패범휘의 목에 닿는 순간이었다.

휘이이잉. 콰앙!

순간 패범휘의 장권이 소초련의 가슴에 박혀 들었다.

“커헉!”

주르르르륵. 콰앙.

소초련의 신형이 뒤로 밀려나며 벽에 처박히자 지하실 전체가 흔들렸다.

그만큼이나 거대한 충격에 소초련의 입에서는 주체하지 못할 만큼의 피가 토해졌다.

“쿨럭. 쿨럭. 쿠웨에에에에엑!”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분명 자신의 공격이 훨씬 빨랐는데.

어느새 피를 토하고 있는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맞은 곳을 만져 보았다.

“쿨럭. 쿨럭. 어째서 가슴에 구멍이!”

“후하하하하핫. 이것이 천일영이 보던 세상이로군. 이 힘은 정말로 대단하다.”

성큼성큼 걸어온 패범휘가 소초련의 목을 잡아 들어 올렸다.

뚜둑! 뚜두두둑! 뚜두둑!

아직 기운을 조절하지 못하는지 거친 기운과 손길이 소초련의 팔과 다리를 부러트렸다.

“끄아아아아아악!”

“마치 새가 지저귀는 소리 같군. 좀 더 세게 부러트리면 더 좋은 소리가 날 것 같은걸.”

“아아아아아아악.”

뼈마디가 가루가 될 지경으로 비틀어 버린 패범휘의 잔악한 얼굴이 소초련의 입가로 다가왔다.

쩌억!

잔뜩 입을 벌린 패범휘의 입이 소초련의 입술을 가득 덮었다.

슈아아아악!

극음의 기운이 패범휘의 입을 통해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낀 소초련은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팔다리가 전부 부러진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 기운에 점차 정신도 혼미해졌다.

휘이이잉! 콰지지직!

그때 패범휘의 손이 거칠게 소초련의 단전을 때리고 온몸의 혈도와 기도를 쥐어짰다.

몸이 엉망으로 망가지고 뒤틀리는 소리가 울렸다.

뚜두두둑.

마지막 하나까지 쥐어짜려는 패범휘의 손길은 더욱 거칠어지고, 그럴 때마다 몸 안의 내상은 심해졌다.

급기야 피부까지 주름이 생기고 몸이 안으로 꺼져 들어가는 느낌이 들 때였다.

퍼엉! 슈아아아악!

지하실을 울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새하얀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패범휘가 기운을 빨아내던 소초련을 거칠게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도현인가. 도망이라도 쳤으면 며칠은 더 살았을 텐데 멍청하게 이곳엘 왔구나. 연막 정도로 도망갈 생각을 한다니.”

“흔한 연막을 들고 여기를 올 리가 있나.”

“뭐?!”

노송하와 마왕들이 급히 코를 가렸다.

지하실 사이로 도현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울렸다.

“산공독이다. 최대한 가만히 있는 것이 좋을 거다. 지하이니만큼 독이 빠져나갈 데가 없으니까.”

“쓸데없는 짓을. 나는 이제 만독불침의 경지에 오른 것을 진정 네가 눈치채지 못했구나!”

기감으로 느껴지는 도현을 향해서 패범휘의 신형이 튀어 나갔다.

피이잉. 피이이이잉.

달려오는 패범휘를 향해 도현의 손에서 암기가 쏘아졌다.

티잉! 티이잉!

터무니없게도 초절정 고수인 도현이 날린 암기는 패범휘의 몸에 닿자마자 튕겨 나갔다.

‘젠장.’

그때 사그라져 들 것만 같은 목소리가 도현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도…… 도망가라, 도……현.”

“거기에 계셨군요.”

소초련의 기운이 너무도 미약해서 연막에 가린 시선에 위치를 찾지 못하던 터였다.

죽어 가는 기운은 기감으로도 잡히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시간을 끌고 있었다.

파바바밧.

도현은 급히 달려들어 소초련을 안아 들었다.

순간 눈앞을 가리는 거대한 신형.

어느새 패범휘가 자신을 가로막고 있었다.

속도라면 자신이 있었던 도현은 자신을 수배나 능가하는 패범휘의 무공에 침을 삼켰다.

‘어떻게 하지? 일단 방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도망갈 방도는 있다. 하지만 방을 빠져나갈 데까지가 문제로군.’

적어도 팔이나 다리 하나는 내줘야 할 것 같다.

파앙!

도현의 신형이 쏘아져 나갔다.

패범휘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도현을 가로막았다.

“나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말아라!”

쩌렁거리는 패범휘의 고함이 기운과 함께 터지자, 도현은 밀려나는 신형을 간신히 견디며 손에 들고 있던 것을 패범휘의 얼굴로 쏘아 보냈다.

쏴아아아악! 퍼엉!

“이 미친놈이 무슨 짓을!”

“무명암살대에서 퇴각의 신호를 보낼 때 쓰는 신호탄이다. 이거나 처먹어라!”

다섯 개의 빛무리가 덩어리져서 패범휘의 눈앞에서 퍼지자, 지하는 이내 눈을 뜨지도 못할 만큼 밝아졌다.

패범휘가 신호탄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눈을 뜨지 못한 채 비틀거리는 사이, 도현의 신형이 바닥을 차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때.

후우우우웅. 콰직!

패범휘가 마구잡이로 날리는 기운이 도현의 허리에 박혀 들었다.

“컥!”

“이놈! 놓치지 않겠다!”

한 움큼의 살이 떨어져 나갔다.

도현은 하마터면 소초련을 떨어트릴 뻔했지만, 기어이 균형을 잡고 방을 나와서 밖과 연결되는 복도에 섰다.

주르르륵.

옆구리 틈으로 흐르는 피와 함께 장기가 보일 지경으로 당했다.

도현은 떨리는 팔로 방 옆의 벽을 짚었다.

정신이 혼미해져 오고 있었지만, 기운을 쥐어짜서 손끝에 터트렸다.

쩌저저저적.

지하실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도현은 급히 밖으로 몸을 날렸다.

“너희 마왕 놈들 덕분에 이런 싸움은 이골이 나서 말이지. 쿨럭. 쿨럭!”

마왕 놈들이 죽지는 않겠지만, 시간을 벌어 주는 정도로는 충분했다.

도현이 밖으로 빠져나온 순간.

쿠르르르르르릉.

지하실이 무너져 내렸다.

기감으로 느끼기에 패범휘는 눈이 안 보이면서도 도현의 바로 뒤까지 따라왔다가 파묻힌 모양이었다.

섬뜩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올랐다.

하지만 거대한 장원 밑에 파 놓은 지하이니만큼 건물의 무게만큼이나 패범휘도 당장은 움직이지 못할 터다.

도현은 다시 한번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번에도 퇴각을 알리는 신호탄.

무명암살대가 해체된 지 몇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도현은 문을 열라는 신호로 쏘아 올렸다.

쿠웅. 번쩍.

그 신호를 기점으로 무명암살대였던 무인들이 문을 열었다.

무명암살대에 속했던 자들은 죽을 때까지 무명암살대였으니, 그들은 도현이 나가는 길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중 한 명이 소초련을 데리고 나가는 도현을 보며 읊조렸다.

“너는 이제야 천마신교를 떠나며 진정한 퇴각을 하는구나.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라, 도현.”

쿠웅.

그는 철문을 닫고 하늘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다섯 개의 불빛을 아련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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