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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237화 (238/270)

237화

번쩍! 쩌저저저정!

쿠우우우웅.

하은월이 펼친 어둠의 공간을, 천일영의 번개가 찢어 버리기 시작했다.

눈 한 번 깜박일 시간에 한 번씩.

그때마다 내리치는 만 개의 번개가 어둠에 장악되었던 공간뿐만 아니라 몇백 장에 이르는 곳까지 모든 것을 파괴하고 무너트렸다.

소초련과 도현이 멍한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얼빠진 얼굴을 했다.

“이게 천마님의 진정한 무공 실력이었군요.”

“파천마왕 패범휘가 탈마의 경지에 들었다고 해도 이런 것은 절대 못 할 것 같구나.”

나무가 산산이 부서지고 거대한 물줄기를 퍼붓던 폭포조차 날려 버렸다.

천일영은 장악한 공간을 풀 한 포기 남기지 않고 절멸시켰다.

연속으로 내리치는 번개에, 눈이 멀 것만 같은 빛무리 속에서 하은월이 씹어뱉듯 말했다.

“내 어둠을 찢은 것은 네놈이 처음이군. 하지만 고작 탈마 따위가 이렇게 번개를 내리치는데 내공이 버티겠는가.”

“생사경의 경지에 들지 못하는 탈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내공 걱정은 없다. 천마심법(天魔心法)은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내공과는 달리 365개의 혈도를 종과 횡을 통하여 막힘이 없고, 그 힘이 서로 상승을 이룬다. 내공은 거의 무한이라 해도 좋을 터!”

번쩍!

어둠을 찢어 버린 만 개의 번개가 돌연 하은월을 향해 내리쳤다.

아무리 하은월이 빠르다고 해도 빛의 속도에는 이르지 못한다.

파지지지직.

하은월의 몸이 타들어 갔다.

피가 튀고 살이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탈제명부음을 사용하는 하은월의 몸은 흰색의 연기가 한번 뿜어지기만 하면 바로 상처가 나았다.

“놈!”

“이제 진짜 싸움의 시작이다. 혈천회의 주인!”

번개가 하은월에게 내리꽂히는 것과 동시에 어용지천참대검이 천일영을 향해서 날아갔다.

이번만큼은 하은월도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쐐애애애애애액!

천일영조차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공간을 찢었다.

“이 검은 막지 못할 것이다!”

설화여월과 화하여월을 들고 천일영은 검을 막는 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콰과과과광!

번개가 지축을 울렸다.

하은월의 얼굴이 굳었다.

번개가 내리꽂힌 것은 자신의 몸이 아닌 어용지천참대검.

기운과 피를 빨아들일수록 단단해지고 검게 변했던 날이 만 개의 번개를 맞고는 철의 색으로 바뀌었다.

‘놈! 조금 전에 백화뇌우를 검에 내리꽂았던 것은 번개가 어용지천참대검에 통하는지 알아보려는 수작이었던가!’

가진 힘을 모두 내뿜어 날리던 검이었기에 하은월은 어용지천참대검을 멈추지 못했다.

빛을 잃은 검이 설화여월과 화하여월하고 부딪히는 순간.

파캉!

천일영은 팔이 거의 부러져 나가면서, 어용지천참대검의 날을 파고 들어갔다.

하은월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한 걸음을 뒤로 물렀다.

그때였다.

번쩍.

콰르르르릉!

다시 한번 만 개의 번개가 어용지천참대검으로 떨어져 내렸다.

파카카카카카카캉!

검날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어용지천참대검은 마치 오십 년쯤 사용한 동전 이십 냥짜리 검처럼 너덜거리는 모습으로 변하며 더는 예기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당장 그만두지 못하겠느냐! 이 검은 대업을 이루는 데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다. 네놈같이 하찮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검이란 말이다!”

“아무래도 만 개의 벼락이 떨어질 때마다 검에 담긴 영혼도 만 명씩 죽어 나가는 모양이구나.”

“네…… 네놈이 그것을 어찌!”

“네 업보가 남긴 망령이 말해 주더군.”

번쩍!

천일영은 만뇌멸화를 연이어서 어용지천참대검으로 떨어트렸다.

콰콰콰쾅!

빛의 속도로 떨어지는 만뇌멸화로부터 피할 길이 없는 하은월은 속절없이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만 개의 번개를 연속으로 맞은 어용지천참대검은 이미 검날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을 지경으로 부서지고 형태조차 제대로 유지 못 했다.

“네노오오옴!”

더는 검이 부서져 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던 하은월이 능공허도(凌空虛道)로 천일영에게 쏘아지듯 날아갔다.

순간 천일영은 하은월을 막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양손에 든 검을 내린 채 온몸의 내공을 텅 비우고 무(無)로 만들었다.

‘중단전에 양기. 하단전에 음기. 이것을 섞음으로 생사경에 이르는 힘을 만들 수 있다. 다만 나는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탈마의 몸. 그렇다면!’

중단전과 하단전을 각각 새로운 기운으로 채운 천일영은 하은월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단 한 번.

성공할지 실패할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방법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기에 천일영은 침을 삼켰다.

하은월이 일 장 거리까지 다가왔을 때였다.

번쩍!

만뇌멸화가 내리꽂혔다.

하지만 만 개의 번개는 하은월에게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니라 천일영의 몸으로 꽂혔다.

“크으으으으윽!”

미칠 것만 같은 통증이 온몸을 덮쳐 왔다.

번개가 가진 뇌(雷)의 기운이 혈도를 일시적으로 활성화하고, 열린 기도를 통해 양기와 음기가 서로 만나 뒤엉키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혈도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타들어 간다.

그럼에도 섞이기 시작한 양기와 음기는 기도를 타고 꿀렁이며 머리가 있는 방향으로 올라갔다.

본디 머리로 내리꽂힌 번개는 다리를 통해서 땅으로 스며들거나 몸의 어딘가를 터트리고 밖으로 빠져나와야 한다.

하지만 천일영은 천지일축공을 사용할 때처럼 발아래에 기의 발판을 만들고 온몸에는 기막을 둘러 번개의 힘을 억지로 몸 안에 가두었다. 그리고 혈도가 하나씩 타들어 가며 터지는 힘을 이용해 머리로 끌어 올려 상단전을 강제로 여는 것이었다.

“젠장! 크으으윽!”

찢겨 나가는 것과 같은 통증이 머릿속을 뒤집었다.

강제로 열어젖히는 상단전과 터지는 혈도로 인해 입에서는 피가 쏟아져 내렸다.

눈 안의 핏줄도 전부 터져 버려서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뭔가가 온몸을 관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상단전이 열린 것이었다.

천일영은 몸 안에 가두었던 만뇌멸화의 힘을 이동시켜 설화여월과 화하여월에 담았다.

그와 동시에 상단전이 일시적으로 열리면서 온전히 하나가 된 양의 기운과 음의 기운으로 검을 날렸다.

“네놈은 나를 이기지 못한다! 인제 그만 방해하고 죽어라! 천일영!”

“너야말로 무덤 속으로 기어들어 가거라. 너무 오래 살았다고 생각지 않느냐!”

어용지천참대검과 천일영이 든 두 자루의 검이 맞닿았다.

아니, 닿을 뻔했다.

번쩍!

만뇌멸화가 이제는 검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어용지천참대검을 관통하자.

파캉! 파스스스스.

이내 부러지고 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마지막 순간에는 한순간 청동의 빛을 띤 것도 같았다.

하지만 하은월은 검이 사라졌음에도 장권을 천일영에게 날렸다.

분명히 맞으면 죽게 될 살기가 주먹에 가득 실린 것을 본 천일영의 등 뒤로 무극지검이 떠올랐다.

콰지지지지직!

이기어검(以氣馭劍)으로 도현의 손에 들려 있던 무극지검이 하은월의 팔에 박혔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하은월보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천일영은 두 개의 검을 막아설 것이 없어지자, 뇌의 힘을 담아 번쩍이는 설화여월과 화하여월을 하은월의 심장이 있던 자리에 꽂았다.

콰지직! 퍼어어억!

“크아아아아아아악!”

“분명 네놈은 심장이 있던 자리에 영혼을 가득 모아 놓았지!”

두 개의 검이 원을 그리며 오른쪽 가슴을 도려냈다.

하은월의 가슴이 뚫리며 등 뒤의 풍경을 비췄다.

천일영의 검이 하은월의 목을 날리기 위해서 날아갔다.

하지만 그때.

“크으으윽!”

천일영의 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강제로 연 상단전이 다시 닫힌 것이었다.

그리고 강제로 연 상단전의 대가로 타들어 가는 고통과 함께 피를 토해야만 했다.

천일영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하은월의 가슴에 장권을 날렸다.

투욱.

아이의 주먹질 정도밖에 안 되는 힘이 하은월의 가슴에 박혔다.

하지만 하은월은 겨우 그 정도의 힘만으로도 신형이 무너져 내렸다.

이미 그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영혼을 감당하지 못하고 온몸을 비틀고 있었다.

“크아아아악.”

몸부림은 점차 경련처럼 변했고, 하은월의 몸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마치 전 녹림의 채주였던 현황우가 죽을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하은월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입을 열었다.

“마…… 망할. 이래서…… 네놈이 문제…… 라는 거다……. 천일……영.”

“컥! 컥! 쿨럭. 이제 끝을 내자. 혈천회의 주인.”

검을 들 만큼의 힘도 남아 있지 않고 극심한 고통에 당장이라도 기절하고 싶었지만, 천일영은 간신히 설화여월을 들고 하은월에게 다가갔다.

강제로 잡아 둔 영혼의 계속되는 이탈에도 하은월은 싸늘한 시선으로 천일영을 노려봤다.

더는 나눌 말도 없었다.

설화여월이 하은월의 목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것으로 혈천회는 끝이었다.

하지만.

카앙!

설화여월이 하은월의 목에 닿기 직전.

만뇌멸화에 맞아 반으로 갈라져 불타고 있던 거대한 고목의 그림자 밑에서 여인의 신형이 튀어나와 천일영의 검을 막았다.

그녀는 하은월을 보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천자님을 이렇게 만들다니 실로 무서운 분이시군요. 허나 천자님의 몸이 정상이 아니었기에 당신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그 기회를 제가 빼앗았으니 다음은 없을 것입니다. 곧 죽을 인생을 되돌아보며 남은 시간을 즐기시지요.”

“당장 혈천회의 주인을 내놔라! 안 그러면 너도 죽게 될 것이다.”

“천자님을 이렇게 만든 당신을 내 힘으로는 감당하지 못하니 여기서 작별하겠습니다.”

노송하가 하은월의 뚫린 가슴에 그림자 같은 어둠을 가득 채워서 메웠다.

천일영이 도망가려는 노송하에게 설화여월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스으으으윽.

그녀는 갑자기 나타났던 고목의 그림자 사이로 하은월을 데리고 사라졌다.

워낙에 빠른 행동이었다.

온몸이 온전치 않은 천일영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젠장, 여기에서 저자를 처리했어야 하는데.”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했다.

여인은 천일영의 몸 상태를 모르고 도망간 것이다.

만일 저 여인이 모든 상황을 알고 검이라도 날렸다면.

‘꼼짝없이 죽었을 터다. 나는 물론이고 도현과 소초련도.’

그러고 보니 생각났다.

소초련의 몸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번개를 몸에 가둔 탓에 지금까지도 혈도가 타들어 가며 극심한 고통과 토혈이 계속되었지만, 천일영은 억지로 참으며 소초련과 도현의 앞에 섰다.

“천마님! 괜찮으십니까.”

“네 몸부터 걱정하거라. 엉망이구나.”

무한에 가깝다는 내공과 기력을 거의 잃은 천일영은 온전하게 움직이는 몇 개의 혈도와 기도만으로 기운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진기를 소초련과 도현의 몸에 쏟아부었다.

평소 진기의 양과 비교하면 일 할도 안 되는 양이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도현은 상처가 나을 테고, 소초련은 죽지 않을 만큼 된다.

스으으윽.

진기를 받아들여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두 사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천마님과 함께 항주로 돌아가면 될 거로 생각했기에 나온 한숨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기운까지 모조리 도현과 소초련에게 나눠 준 천일영은 머리가 핑 돌며 속이 뒤집히는 것을 느꼈다.

털썩!

천일영이 쓰러졌다.

“천마님? 왜 이러십니까?”

“괜찮으십니까? 뭐라고 대답이라도 해 주십시오!”

하지만 쓰러진 천일영의 몸을 아무리 흔들며 물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천일영의 입에서 토혈이 시작됐다.

울컥. 주르르르륵.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피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도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의원! 빨리 가야 합니다.”

“아니다. 일단 전서구를 날려라. 하오문 귀주성 지회 윤의강에게 숨을 곳을 만들어 달라고 하고, 그곳으로 의원을 보내라고 해라. 귀주성에 우리가 숨을 곳이 있더냐.”

“젠장! 천마님을 위해 목숨을 버려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구해지다니!”

도현과 소초련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알 것 같았다.

마지막 남은 힘을 자신들을 살리기 위해서 나눠 주었다는 것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지. 젠장, 그런데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니!’

도현은 급히 전서구를 날리고 천일영을 둘러업었다.

체온을 낮춰서 토혈을 막아 보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문득, 눈앞의 풍경이 보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거대한 물줄기를 뿜어내던 폭포가 있었다.

지금은 물이 전부 증발하고 폭포도 사라졌다.

‘이것이 과연 탈마의 경지로 가능한 것일까.’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도현은 고개를 가로젓고 폭포가 있던 곳으로 뛰어올랐다.

폭포였던 곳과 이어진 상류에는 분명 차가운 물이 있을 터.

지금 등 뒤에 업혀 있는 천마의 몸은 불덩어리였다.

게다가 호흡도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정신 차리세요, 이 망할 천마님!”

차가운 물이 있는 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천일영이 죽을지, 아니면 체온을 식혀 줄 수 있는 차가운 물을 먼저 찾을지.

도현은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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